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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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하비브의 최후6
그는 꿈에도 몰랐다. 새끼 오리가 살벌한 표정으로 닳아빠진 수첩을 뒤적이고 있음을…….
블랙맘바, 아니 무쌍이 은원록(恩怨錄)이라 이름붙인 수첩이다. 수첩 표지에 ‘은혜는 열배로 원한은 백배로’ 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남아있다.
‘재수 없는 느끼 남이지만 나쁜 놈은 아니니까.’
수첩에 이름을 올릴까 말까 망설이던 블랙맘바가 수첩을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삐에프는 사상 최악의 위기가 소리없이 닥쳤다가 소리없이 지나갔음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속담이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속담보다 훨씬 자주 쓰인다.
깨비텐이 다시 심문에 들어갔다.
“하비브 위원, 대답할 준비가 되었소? 협조 여하에 따라 살려 줄 수도 있소.”
“후후, 칸마를 만난 인간이 어찌 살기를 바라겠나. 객쩍은 소리 말고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해라.”
“마쿰보는 현재 소재는?”
“알만하군.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확인하고 싶어서겠지?”
하비브가 비웃는 표정으로 깨비텐을 올려다 보았다.
“험 험!”
속을 들킨 깨비텐이 헛기침으로 무안함을 달랬다. 부하에게 배신당한 하비브나 군부로부터 버림받은 자신이나 다를 바 없다.
“당신들 같은 인재를 서슴없이 미끼로 던져 버리는 프랑스가 대단한 나라다. 아니 차드라는 대어를 낚을 미끼로 약소한 편인가?”
“쓸데없는 소리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 해.”
깨비텐이 짜증을 냈다.
“병신!”
멀찍이 떨어져서 명상 중이던 블랙맘바가 비웃었다. 하비브는 프랑스를 조롱함으로서 상처난 자존심을 메꾸려 한다. 고지식한 깨비텐은 노회한 하비브에게 속절없이 흔들렸다.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 마쿰보는 은자메나에 있다. 우리 정보원이 대통령궁에서 배신자 놈을 확인했다.”
“망할!”
깨비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충분히 예상했지만 겨자를 한 움큼 입안에 틀어넣은 듯 맵고 썼다.
“마쿰보의 투항은 진실인가?”
“그 개 같은 변절자 놈의 사전에 진심이란 단어는 없어. 마쿰보를 앞세운 우리 작전은 미친 네놈들이 설치는 바람에 엉망이 되었다. 네놈들이 바람잡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멍청한 개구리에게 농락당한 나 자신이 한심할 뿐이다. 나도 한 가지 물어 보지. 카넴과 보루쿠에 특공대가 몇 명이나 투입되었나?”
“우리가 전부다.”
“억!”
하비브는 잠시 동안 멍하니 있었다.
“믿을 수 없지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겠지. 네놈들에게 죽은 내 부하가 900명이 넘었다. 프롤리나트 전체로 보면 1300명쯤 된다. 말도 안되는 상황은 칸마, 아니 블랙맘바란 존재 때문이겠지.”
하비브가 잠시 말을 끊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런 인간이 존재 할 줄이야…….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인간이 아닌 칸마에게 당했을 뿐이야. 내가 알라께 버림받은 건가.”
하비브가 정신 나간 듯 중얼거렸다.
“너무 억울해 할 것 없다. 내 부하도 절반이 죽었다. 우리는 죽지 않으려고 죽였을 뿐이다. 마쿰보가 빠져 나간 사실을 알면서 계속 공격하는 이유가 뭐냐?”
“몰라서 묻나! 사막의 전사는 수치를 참지 않는다. 너희들은 민족 해방군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내 죽음과 상관없이 민족 해방군은 자존심을 걸고 네놈들을 끝까지 추적할 것이다.”
“허, 한갖 자존심때문에 수 천명의 병력을 쏟아 붓는다고?”
“단순한 자존심 회복 차원이 아니다. 칸마의 위명은 프롤리나트의 공포를 능가한다. 칸마를 죽여야 프롤리나트가 사헬을 지배할 수 있다.”
“허, 그렇게까지 우리가 유명해졌나! 우리 정보는 어디서 얻었나?”
깨비텐은 정보를 어떻게 얻었나가 아니라 어디서 얻었냐고 물었다. 어떻게는 이미 알고 있다.
“리비아 정보국에서 정보를 받았다. 우리도 속았다. DGSE가 슬리퍼를 통해 흘린 정보를 공작인줄 모르고 덥석 물었다. 덕분에 네놈들을 잡으려고 날뛰다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고 보면 네놈들도 불쌍하다. 사자우리에 던져진 돼지 새끼라고 해야 하나. 크히히히!”
하비브가 낄낄 웃었다. 자신은 비참한 꼴이 되었지만 용병들도 빠져 나갈 곳이 없다.
“깨비텐, 더 이상 들을 필요 없습니다. 당장 죽여 버립시다.”
머리 뚜껑이 열린 장쒼이 베레타를 뽑아 들었다.
“그렇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저 놈을 죽이고 본부 놈들을 다 쏴 죽여 버립시다.”
“DGSE 놈들부터 때려 죽여야 해.”
에밀과 벨맨도 흥분했다.
깨비텐은 자신의 의도대로 따라오는 부하들의 모습에 속으로 웃었다.
“잠시만 기다려라. 확인할 사항이 남았다.”
그는 흥분한 부하들을 말렸다.
이제 와서 하비브를 심문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 뻔 한 사실을 확인하는 이유는 심리적 탈진에 빠진 팀원들의 분노를 촉발시키려는 의도다.
인간이 자포자기해서 생존을 포기하는 원초적인 공포는 어떤 것일까?
망망대해에서 의지하던 구명정이 터졌을 때, 조난당한 열대 정글에서 블랙맘바에게 물렸을 때, 사막에서 마지막 남은 물통을 엎었을 때, 총알 없는 빈총을 들고 굶주린 호랑이를 만났을 때……모두 아니다. 진정한 생존의 위협은 그러한 단발적이고 격한 위협이 아니다. 물이 스며들 듯이 야금야금 조여드는 위협이야말로 진정한 공포다.
바로 라텔팀이 처한 상황이다.
고립된 낯선 땅, 끈질기게 추적하는 적, 하나 둘 죽어가는 동료, 경험 많은 고참의 부재……
지금까지 버텨온 원동력은 블랙맘바라는 초월적인 존재다. 그럼에도 장기간의 스트레스가 팀원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들을 격발시키는 방아쇠가 분노다. 깨비텐은 고지식하지만 어리석지는 않았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빨리 물어라. 너무 힘들다.”
하비브가 심문을 재촉했다.
“본부에서 정보를 빼돌린 놈은 이미 체포되었다. 외인부대 사령부도 백도어 팀의 존재를 알고 있나?”
하비브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왜 내게 묻나. 어차피 너희들은 11공정여단의 지시를 받지 않나?”
“훗, 그렇긴 하지.”
깨비텐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백도어 작전이 DGSE의 단독 공작인지, 외인부대 고위급의 동조, 묵인 하에 진행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어느쪽이던 다를 게 없지만 적어도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의 배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안타까운 심정의 발로다.
깨비텐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갑자기 회의가 치밀었다.
‘젠장, 나도 늙었어. 추한 꼴 보기 전에 전역할까.’
몇 번째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전역 충동이다.
“프롤리나트의 봉쇄망을 말해라.”
“허, 죽기는 싫은 모양이군. 힘들 거야. 내 저택을 역습한 작전은 훌륭했어. 압둘의 습격으로 오해한 내가 엉뚱한 명령을 내렸거든. 지금까지 살아남은 걸 보니 위원회가 뒤죽박죽이 된 모양이군. 그래도 안돼. 사헬은 우리 안방이다. 민족 해방군 전체가 귀환 루트 봉쇄에 나섰다. 티베스티 주둔군까지 풀려 나왔다. 모루와 망치에 끼인 네놈들이 박살날 일만 남은 셈이지.”
블랙맘바가 나섰다.
“하비브, 마지막 질문이다. 바타주의 압바스 대대 위치를 밝혀주어야 겠다.”
“용케도 모루 일부를 알아냈군. 배신자 키갈리 놈이 불었겠지.”
“그렇다. 그도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있더군.”
하비브는 속으로 웃었다.
음흉한 키갈리는 압바스 대대의 위치를 블랙맘바에게 숨겼다. 놈이 독립하려고 마음먹었으니 그럴만 했다. 압바스도 키갈리와 마찬가지로 투아레그족의 지도자다.
키갈리가 빌마.티베스티의 아메노칼이라면 압바스는 엔네디.바타주의 아메노칼이다. 키갈리는 칸마의 손을 빌려 아메노칼을 제거하고 싶은 것이다. 권력이란 마약보다 더 중독성이 강한 요물이다. 다 똑같은 놈들이다.
칸마, 자신이 이십년간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일격에 부수어 버린 존재, 저놈만은 지옥행 열차에 태우고 싶다.
“큭큭큭!”
하비브가 어깨를 들썩이며 낄낄거렸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 알라후 아끄바르!”
말을 마친 하비브가 눈을 감았다.
권력도 생명도 끝났다. 남은 것은 배신당한 영혼과 망가진 육신뿐이다. 무엇을 얻으려고 그 많은 생명을 죽였던가. 허망하기만 했다.
짧은 이승은 영혼을 단련하는 훈련장이다. 영원한 어둠속에 영혼이 던져지는 형벌이 두려울 뿐 삶에 별다른 미련도 없다.
“블랙맘바, 병력 배치 상태를 알아야 한다.”
마이크가 조바심을 냈다.
하비브의 표정을 흘끔 본 블랙맘바가 고개를 흔들었다.
“틀렸다. 신체가 죽기 전에 마음이 죽어 버렸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손가락 몇 개 잘라내면 다 불게 되어 있어.”
벨맨이 카바 나이프를 꺼내는 마이크를 말렸다.
“블랙의 말이 맞다. 고문해봐야 소용없다.”
“뭐라고, 포로 대우라도 해 주자는 거냐?”
“에밀, 중사님의 간이 커진 모양이다.”
마이크가 움찔했다.
장쒼이 에밀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투르 쥐 귀삐따(Trou du cul putain, 지 에미 엉덩이에 붙어먹을 놈)”
분을 참지 못한 마이크가 하비브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하비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이크, 죽은 자는 입을 열지 않는다.”
블랙맘바가 나직이 말했다. 하비브에게서 썩은 시체 냄새가 풍겼다. 영혼이 죽었다.
“벨맨 저놈을 어쩌지?”
깨비텐이 혹덩어리를 발로 툭툭 찼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포로를 끌고 다니기엔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프롤리나트의 내분 상태로 볼 때 인질로써 가치가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한국 속담에 맺은 자가 푼다고 했습니다. 블랙맘바에게 던져 주시죠.”
“블랙맘바, 들었지?”
“알았다. 맺은 자는 내가 아니라 옴부티다. 옴부티가 해결 하면 된다.”
“그러던가.”
반군 게릴라는 정규군이 아니다. 당연히 제네바 포로 협정 대상이 아니다. 피에 미친놈을 포로 대우할 이유도 없었다. 하비브 본인은 전사라고 주장하지만 인간 본성을 잃은 쓰레기에 불과한 놈이다. 교조적 우월주의에 매몰된 폐기물에 다름 아니다. 쓰레기나 폐기물은 청소부가 처리해야 한다. 흥미를 잃은 깨비텐은 비참한 지경에 처한 반군 지도자를 일별하고 삐에프와 자리를 떠났다.
“옴부티, 선물이다.”
블랙맘바는 하비브의 처분을 옴부티에게 맡겼다.
옴부티의 입이 찢어졌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였다.
“와킬, 감사합니다. 남은 인생을 바쳐 은혜를 갚겠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이마를 쿵쿵 박았다.
주인은 약속대로 원수를 온전히 잡아다 처분을 맡겼다. 드디어 원한을 풀게 된 그의 눈에 섬광이 튀었다.
사헬의 밤이 깊어갔다.
침장에 빠진 블랙맘바는 시간을 잊었다. 장마철의 계곡처럼 거세게 흐르던 혈류가 유장한 흐름으로 바뀌었다. 핏속에 섞인 은빛 알갱이의 숫자가 늘어났다. 실핏줄을 따라 은빛 알갱이가 뇌를 휘돌았다. 솨아아- 여름 소나기 소리가 들렸다.
짝-
‘응!’
작은 소음에 침장(沈藏)이 깨어졌다.
옴부티와 하비브가 잠든 곳에서 나는 소리다. 하비브를 정성껏 치료하는 옴부티가 보였다. 소음은 옴부티가 아트로핀을 꽂으려고 허벅지를 때린 소리다.
옴부티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었다. 그는 정신이 말짱한 하비브를 비스밀라(제물)로 올리려는 의도다. 모른 척 눈을 감았다.
“으~”
하비브가 신음 소리를 냈다. 옴부티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비스밀라는 산 제물을 올려야 한다. 죽은 놈을 신성한 제물로 올릴 수는 없다. 놈이 죽어버릴까 봐 간을 졸였다.
옴부티는 코끝이 부딪힐 정도로 얼굴을 바짝 들이 밀었다. 살기어린 말이 그의 잇새로 빠져 나왔다.
“안타 캘브(개같은 놈), 내가 누군지 알겠나?”
하비브는 억지로 떴던 눈을 다시 감아 버렸다. 만사가 귀찮았다.
“으~, 또 늙은 놈이군. 지겹다. 그만 괴롭히고 죽여라.”
“하비브, 비스밀라의 시간이다.”
하비브가 눈을 번쩍 떴다.
“비스밀라! 네놈이 무슨 자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