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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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하비브의 최후7
역겨웠다. 눈앞의 늙은이는 툭하면 나타나서 때리고 침을 뱉던 놈이다. 허접한 늙은이에게 희롱당하는 신세라니, 헛웃음만 실실 새어 나왔다.
어차피 원한을 품은 놈은 수만, 수십만이다.
노스꼬레아 교관이 드레곤도 개천에 떨어지면 미꾸라지의 희롱을 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응을 포기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놈이 페니스를 자를 줄은 몰랐다.
같은 남자로서 야비하기 이를 데 없는 쓰레기다. 도살자라 불리는 자신도 남자의 성기를 자르지는 않았다. 여자라면 몰라도.
가학적인 기대로 번들거리는 벌건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혔다. 세상이 뒤집히니 별 시답잖은 인간까지 설친다.
“흐흐흐! 자격이야 충분하지. 지난 오년동안 두겔 하비브 나으리와 무스타를 죽이는 꿈만 꾸었거든.”
하비브는 기도 차지 않았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따위 불가능한 꿈을 꾸는 인간은 티베스티 남부에만 십만도 넘는다. 네놈은 십만 중의 한 놈에 불과해.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너같은 늙은이가 입에 올릴 이름이 아니다.”
하비브가 옴부티를 비웃었다.
“아직도 꿈속에 사는 놈이군. 뼈가 부서지고 살이 뜯겨나가면 정신이 번쩍 들걸.”
옴부티가 살기를 풀풀 뿌렸다.
“흐흐, 죽이든 살리든 니 맘대로 하세요. 귀찮다.”
하비브는 눈을 감고 땅바닥에 등을 붙였다.
옴부티는 맥이 쭉 빠졌다. 낚시를 해도 물고기가 퍼덕거려야 손맛이 난다. 와킬의 말대로 영혼이 죽은 놈의 육체를 죽여 봐야 별 의미가 없다.
뿌드득- 윤간을 당하고 비참하게 살해당한 아내와 딸의 시신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주먹질 몇 번하고, 페니스를 자른 정도로 풀릴 분노가 아니다. 난감했다. 아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옴부티!”
“허, 와킬!”
옴부티는 화들짝 놀랐다. 바로 옆에 있어도 인기척을 느낄 수 없는 사람, 주인이다.
“소인이 와킬의 잠을 방해 했습니다.”
“아니다. 깨어있었다. 비스밀라 준비인가?”
“예, 고민 중입니다.”
비스밀라는 본래 ‘신의 이름으로’라는 뜻이다.
무슬림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밥을 먹을 때도 물을 마실때도 비스밀라를 외친다.
짐승을 도살하거나 희생물을 바칠 때는 하다스를 피하기 위해 반드시 비스밀라를 외쳐야 한다. 사하라 사막 서남부 지역의 일부 부족은 비스밀라를 제단에 올리는 희생물을 뜻하는 의미로 쓰기도 한다.
하비브가 고개를 번쩍 들고 항의했다.
“블랙맘바, 네놈은 이름을 걸고 전사의 죽음을 약속하지 않았나. 전사로 죽고 싶다.”
“미친놈, 네놈은 성실히 대답하겠다는 약속을 먼저 어겼다. 압바스 대대의 위치를 함구했을 때 내 약속도 바람에 날아갔다.”
“지금 말하겠다.”
하비브는 다급했다.
반쯤 미친 투아레그족 늙은이는 피부를 한 겹씩 벗겨낼 기세다. 죽음도 여러 가지다. 총알을 머리에 박든, 나무에 매달든, 칼로 심장을 찌르든, 두렵지 않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괴롭힌다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늦었다. 나는 네놈의 처분을 옴부티에게 맡겼다.”
“말도 안 된다. 그따위 약속이 탈출 정보보다 가치 있단 말이냐?”
기가 막힌 하비브가 목청껏 부르짖었다.
“당연하다. 약속은 중요하다.”
블랙맘바의 대답은 얄미울 만큼 덤덤했다.
“으아, 무슨 이런 인간이 있나. 비천한 하인 따위, 하인 따위를……”
“와킬, 저놈의 말이 맞습니다. 비천한 하인을 염두에 두지 마시고 정보를 얻으십시오.”
놀란 옴부티가 블랙맘바의 소매를 끌었다. 자신의 복수는 작은 일이고 팀의 안전은 큰일이다.
“누가 감히 나 블랙맘바의 하인을 비천하다 말 하는가?”
우르릉- 수사자 포효보다 더 낮고 무거운 하울링이 사막을 흔들었다. 블랙맘바의 눈이 시퍼런 빛을 쭉 뿜었다.
“옴부티, 비천함과 고귀함은 본인이 정한다. 당신은 신의를 중히 여기는 전사이자 가족의 복수에 인생을 건 훌륭한 가장이다. 주인인 내가 이랬다저랬다 하면 하인의 신뢰를 잃는다. 신의 없는 주인이 되느니 정보를 포기하고 몸으로 때우겠다.”
“미친놈! 네놈이나 하인이나 전부 미쳤어.”
“오오, 와킬!”
하비브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지고, 옴부티의 얼굴이 환희로 빛났다.
세상 어떤 주인이 하인을 이렇게 높이 대우해 준단 말인가!
옴부티도 가슴으로 울었다.
“옴부티, 묻어라.”
“네?”
말의 의미를 파악 못한 옴부티가 되물었다.
“당신의 손을 하다스(불결, 부정한)할 필요 없다. 알라의 심판이 있다고 들었다. 사막에 말뚝을 박고 묶어 놓는다지. 그럴 필요 없다. 목만 내놓고 묻어라. 죽을 때까지 최악의 공포와 고통을 겪게 해 주어라.”
최도식은 닌자 수련을 시킨답시고 툭하면 대롱을 물려서 땅에 묻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력감과 절망감은 당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수련이라기보다 기를 꺾으려는 형벌이다.
고대 이집트에도 ‘훔다이’라는 비슷한 형벌이 있었다. 사람을 산채로 관속에 넣어 묻는 형벌이다. 훔다이가 순장의 형태로 변형되었다.
옴부티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오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옴부티는 블랙맘바의 의도를 이해했다. 와킬은 하비브의 처형을 알라의 뜻에 맡겼다. 사헬 지역은 대형종인 점박이 하이에나 서식지다. 굶주린 하이에나 무리가 하비브를 발견할지 못할지는 알라의 뜻에 달려 있다. 주인은 진정으로 공정하고 무서운 존재다.
옴부티는 하비브를 메고 캠프에서 5야드 떨어진 계곡으로 내려갔다.
“야움 알 딘(Yawm al-din, 심판의 날이다), 네놈의 이마에 새겨진 흉터가 바로 내 아내가 남긴 흔적이다. 이제 네놈이 심판을 받을 차례가 왔다.”
하비브는 힘겹게 눈을 떴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옴부티를 향했다.
기억이 났다. 원주민답지 않게 반항을 심하게 하던 여자, 돌로 자신의 이마를 찍었던 여자가 있었다.
그는 웅얼거리듯 말했다.
“그 여자의 남편인가? 마크 툽(신의 뜻대로)!”
옴부티가 백팩에서 긴 물체를 빼냈다.
달빛을 받은 물체가 영롱한 빛으로 반짝였다.
“응, 그건 도주한 오셀롯의 채찍이 아닌가?”
“맞습니다. 와킬이 뒤집어 놓은 레 메르엔 호텔 후원에 떨어져 있더군요. 제가 챙겨 두었습니다.”
“허, 나는 생각도 못했다.”
“채찍 자루가 없어 아쉽지만 대단한 기물입니다. 와킬이 사용할 만 합니다.”
“별로 상서로운 물건이 아니다.”
말을 하고보니 어폐가 있다. 자신의 쿠크리는 오셀롯의 채찍 이상으로 피를 먹은 기물이다.
“무기는 돈과 마찬가지로 사용자의 뜻을 따릅니다. 나쁜 무기란 없습니다. 사용하는 인간이 나쁜 거죠.”
“음, 맞는 말이지만 내게 또 다른 무기는 필요 없다.”
“와킬은 접근전과 장거리 타격을 겸비한 완벽한 전사입니다. 여기에 중거리 무기까지 갖추면 금상첨화가 될 겁니다.”
“흠, 생각해 보겠다. 지금 그 물건을 꺼낸 의도는 저놈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와킬의 재산을 제가 딱 한 번만 사용하겠습니다.”
“알겠다.”
“허락한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깐깐한 하인 옴부티다.
“허락한다.”
“감사합니다.”
옴부티의 의도를 짐작한 블랙맘바가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섰다. 은근히 무서운 인간이 옴부티다.
츄악- “끄아악!”
처절한 비명이 사막을 울렸다. 오셀롯의 채찍 표면은 다이아몬드 파편과 가루가 코팅되어 있다. 자잘한 가시가 박혀있는 셈이다. 채찍이 한차례 어깨를 훑고 지나갔다. 옷이 뜯겨나가고, 피부가 진피까지 쫙 벗겨져 나갔다.
츄악- “아악, 비열한 돼지 새끼!”
채찍 끝이 볼을 치고 지나가자 광대뼈가 드러날 정도로 살이 뜯겨져 나갔다. 옴부티가 몇 차례 더 채찍을 휘둘렀다. 오셀롯의 채찍은 끔찍한 위력을 발휘했다. 채찍질 몇 번에 하비브는 혈인이 되었다.
옴부티가 채찍을 돌돌 말아서 백팩에 보관했다.
“와킬, 제가 소중히 보관하겠습니다. 활용할 방안을 연구해 보십시오. 참으로 아까운 물건입니다.”
“고맙다.”
옴부티의 진심이 가슴에 와 닿았다.
민족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지만 진정은 통한다. 늙은 투아레그 전사는 진심이다. 진심은 진심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옴부티를 바라보는 블랙맘바의 눈에 온기가 어렸다. 머나먼 이역에서 새로운 가족을 얻은 기쁨이다. 가족이란 별것 아니다. 진심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면 가족이다.
옴부티가 열심히 땅을 팠다.
기쁨에 넘친 그는 손이 부러트도록 삽질을 했다. 구덩이 깊이를 가늠한 옴부티가 하비브를 번쩍 들었다. 늙은이가 힘도 좋았다.
“이럴 수는 없다. 알라시여, 더러운 이교도 놈들과 배덕자를 지옥에 처박으시옵소서.”
하비브가 마지막 힘을 모아 소리쳤다.
“헐, 어째 아무드 놈과 토씨 한 개 틀리지 않네.”
냉정한 눈으로 작업을 지켜보던 블랙맘바가 실소를 흘렸다.
“십자군 원정때부터 이어져 온 저주입니다.”
“별로 와 닿지는 않는다.”
“인간을 사랑하는 알라께서 이 딴 놈의 간청을 들어 줄만큼 한가하진 않을 겁니다.
옴부티가 구덩이 흙을 밀어 넣고 밟아 다졌다.
땅위에 동그란 머리만 남았다.
“저 친구 입장에서 억울하긴 하겠어. 야차가 아수라를 만났으니 별수 있나. 재수를 탓 해야지.”
“와킬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옴부티, 가족간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오늘부터 편히 잠들게 되어 다행이다.”
“슈크란. 하-다- 아프달 야우민 피- 하야-티-(감사합니다. 생애 최고의 날입니다.)”
옴부티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쏟아졌다.
옴부티는 밤을 꼬박 새우고, 여명이 틀 즈음 계곡을 찾았다.
“오, 알라시여, 알라는 공정하고 위대하시다. 와킬도 공정하고 위대하시다.”
옴부티는 두 손을 높이 쳐들고 쿵 무릎을 꿇었다.
동쪽을 향해 다섯 번, 주인이 잠든 막사를 향해 두 번 절했다.
하비브가 묻혔던 장소는 흙이 뒤집혔다. 짐승이 파헤친 흔적이다. 구덩이 주변은 선혈이 말라붙었다. 찢어진 옷가지와 굵은 뼛조각 몇 개만 남았다. 사헬의 도살자 하비브가 하이에나에게 도살당한 흔적이다.
하비브는 지상에 목만 내놓고 묻혔다. 맹수가 이빨을 드러내고 빙빙 돌지만 손가락 한 개 까딱 못한다. 옴부티는 하비브가 겪었을 공포와 절망감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끝났다.
아내와 딸이 겪었을 공포와 절망감을 그대로 가해자에게 돌려주었다. 완벽한 복수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잠언 그대로다.
“우와와!”
옴부티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분노, 회한, 통쾌함, 슬픔 온갖 감정이 뒤섞인 함성이다. 어느새 소리 없이 나타난 블랙맘바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암, 복수를 잊으면 사나이가 아니지.’
옴부티는 남은 잔해를 모아 하비브가 묻혔던 구덩이에 쓸어 넣었다. 이슬람의 가르침은 죽은자를 모욕하지 않는 법이다. 블랙맘바가 묘비를 세웠다. 그는 묘비를 세워 주겠다는 하비브와의 약속을 지켰다.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졌다.
-حبيب، مدرب القبيح من أولئك الذين تغفو هنا.-
(두겔 하비브, 추악한 자들의 두목 여기 잠들다.)
래쿤 작전 35일째,
라텔팀은 꼬박 24시간 강행군 했다. 몸은 고달픈 만큼 거리가 단축되지 않았다. 행군 속도는 겨우 시속 4km에 불과했다. 새로 편입된 용병들의 미숙함 때문이다.
낙타를 이용한 이동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도로를 버리고 움직였기에 프롤리나트 매복조를 피할 수 있었다. 파야를 떠난 후 삼일이 지날 동안 프롤리나트 정찰대와 겨우 두 번 만났다. 원주민 정보원들의 촉수를 피하는 부수적 효과도 누렸다.
“옴부티, 프롤리나트 정찰대가 열 명으로 구성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무슬림은 99라는 숫자에 큰 의미를 둡니다. 알라의 다른 이름이 99개입니다. 백 번째 이름에서 완결되는 만유일체성을 암시합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영웅 산파라는 100명의 적을 죽이겠다고 알라께 맹세했습니다. 99명의 적을 죽이고 부상당한 산파라는 자신의 부러진 뼛조각으로 백 번째 적을 찔러 죽이고 본인도 죽습니다. 거지같은 놈들이 산파라 전사의 흉내를 내서 정찰대 9명을 내 보내고 독전관 1명을 붙이는 겁니다.
“헐, 영웅의 흉내를 내면서 부하를 믿지 못하다니 웃기는 놈들이다.”
“와킬이 말씀한 인간의 조건인 정과 신뢰가 없는 집단이니 독전관을 붙일 수밖에요. 전투 부대도 마찬가지입니다. 9명, 49, 99명 단위로 부대를 구성하고 9명당 독전관 1명이 배치됩니다.”
“10을 채웠으니 알라에 대한 불경이 아닌가?”
블랙맘바가 머리를 갸우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