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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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되지엠 랩3
인간이라면 누구나 힘을 갖고 싶어 하고, 힘을 가지면 휘두르고 싶어 안달한다. 팍은 인간 한계를 초월한 능력자다. 카스텔노다리에서 곰 같은 백인 셋을 한 호흡에 박살 내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팍은 자신의 강함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갈등이 생기면 양보하고, 시비가 벌어지면 먼저 머리를 숙인다. 스물을 갓 넘긴 나이를 생각하면 놀라운 절제력이다. 팍이야말로 불운으로 점철된 인생에 처음 찾아온 행운이다.
“은혜는 무슨 은혜. 난 당장 돈 쓸 일이 없다. 돈은 쓰려고 버는 것이다. 쓸 곳에 쓰지 않으면 냄새만 난다. 장도 어려운 사람 도와주면 된다.”
무쌍이 손을 내 저었다. 말을 하면서도 오글오글했다. 돈을 벌려고 용병이 되었다. 한 푼이 아쉬운 입장이다. 장쒼에게 급전을 내 줄 때도 손이 떨렸다. 짐짓 통큰 흉내를 냈지만 자신이 소인배임을 잘 안다.
“협객은 원한을 잊지 않지만, 은혜도 잊지 않는다.”
무쌍이 군장을 메고 기관총과 탄 박스를 들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나는 남자에게 취미 없다.”
멋대가리 없는 반응에 장쒼의 표정이 썩어 문드러졌다. 친구는 불어 실력이 시원치 못하다. 농인지 진담인지 헷갈렸다.
삐익 삐익- 휴식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쳇!”
장쒼이 무쌍의 손에서 기관총을 뺏어서 에밀에게 내밀었다.
“이봐 에밀, 중국 속담에 끝을 내는 놈이 다했다는 말이 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네가 들어라.”
“오우, 그 말 마음에 든다.”
단순 무식한 에밀이 잽싸게 미니미를 받아서 어깨에 얹었다.
“정말 그런 속담이 있어?”
무쌍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방금 내가 만들었다.”
“크크크, 단순한 놈.”
무쌍이 에밀을 돌아보며 킬킬거렸다.
행군이 재개되었다. 선도병과 정찰병이 정신없이 내달렸다. 중대원들이 혀를 빼물고 뒤쫓았다. 차드 파병을 앞둔 탓에 이번 산악 행군은 예년과 달리 빡세게 시행되었다. 예전에는 산악 전대인 2중대가 관리하는 산장까지만 행군하고 요새로 귀환했다.
이번 행군 코스는 3단계다. 1단계는 친토산 능선을 따라 꼬훅스 자연공원까지다. 2단계는 꼬훅스 자연공원에서 북193번 도로를 타고 아작시오 항구까지 걷는다. 3단계는 해안도로를 타고 깔비로 귀환하는 코스다. 섬의 절반을 잘라서 돌아오는 노선으로 300km가 넘는다.
코스 절반이 산악과 해안 암벽을 넘나드는 험로다. 중대 참모의 브리핑을 듣던 중대원들이 똥 씹은 표정이 되었던 강행군 코스다.
그나마 아작시오에서 깔비까지는 해안도로다. 해안도로를 타고 가면 ‘포낭트’가 땀을 식혀준다. 포낭트는 지중해 서쪽에서 연중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다.
사실 한국 특전사의 천 리 행군에 비하면 이 정도는 껌이다. 한국 특전사는 7박 8일에 걸쳐 400km를 행군한다. 마지막 날은 무박 100km 행군으로 마감한다. 한국군의 무지막지한 훈련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물론 입대 자격을 박탈당한 무쌍은 모르는 일이다.
숙영은 비박이다. 친토 산장 부근의 공터와 숲이 침낭으로 빽빽이 들어찼다. 누에 사육장이 따로 없다. 텐트는 장비와 탄약 보관용 한 동이 전부다.
무쌍은 활엽수 잎을 모아 바닥에 두둑이 깔고 침낭을 펼쳤다. 종유굴 눅눅한 돌바닥에서 칠개월을 버틴 무쌍이다. 침낭까지 동원된 비박은 스위트룸에 다름 아니다.
비박(biwak)은 본래 독일 군영에서 쓰이던 용어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숙영 행위를 말한다. 즉 인공물로 지붕과 벽을 치지 않은 잠자리를 비박이라 한다. 자연 동굴을 이용하거나, 드보크를 만들거나, 낙엽 속에 파고들어 가는 등의 방법이 있다. 텐트를 치고 숙영하는 것은 비박이 아니라 야영이라고 해야 한다.
하늘에 박힌 달은 짚은다리나 친토산이나 다르지 않았다. 교교한 달빛에 온갖 상념을 불렀다. 찌룽- 찌룽- 이름 모를 밤새 소리가 가슴을 쿡쿡 찔렀다.
‘엄마를 빨리 찾아야 하는데, 스승님은 잘 계실까?’
뻐꾸기 울음소리, 교교한 보름달 빛, 이울어진 들국화 밭, 아련해진 혜영의 향기, 엉덩이가 데일 정도로 절절 끓던 비진도 민박집, 들끓는 잡념이 잠을 방해했다.
뒤척이다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방수 자크를 내렸다. 경계 근무 중이던 초병이 흘낏 쳐다보고는 곧 고개를 돌렸다. 초병의 어깨에 걸린 파무스가 신경질적으로 철컥거렸다. 국으로 자빠져 잘것이지 신경쓰이게 만든다는 불만이 팍 전해졌다.
토끼 길을 터덜터덜 걸었다. 달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동식물은 달라도 달빛은 월송산 자락에 걸린 보름달이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먹이 다툼 소란이 간간이 적막을 흔들었다. 무쌍의 청각은 일반인의 수백 배다. 예민한 청각이 동물의 소리 주파수를 구분했다. 동물 울음도 곤충 소리도 고향과 다르다. 우거진 수목도 월송산에서 보던 나무가 아니다.
‘그렇제. 여는 짚은다리가 아이고 코르시카였어.’
새삼 만리타향의 애수가 가슴을 콕콕 찔렀다. 천중에 자리 잡은 꽉 찬 보름달이 붉은 달무리를 둘렀다. 달무리가 지면 비가 내린다. 그러고 보니 지난 한 달간 비가 오지 않았다.
쏟아지는 달빛 아래 열병식 군인들처럼 펼쳐진 키 높은 풀이 바람에 서걱거렸다. 억새인지 갈대인지 구분이 안 되는 풀이다.
한가롭던 발걸음이 멈추었다. 붓꽃보다 작은 연한 분홍색 꽃이 키 큰 풀들 사이로 길게 꽃대를 내밀었다. 활짝 핀 시스토수다. 시스토수는 한국의 들국화처럼 코르시카 섬 전역에서 볼 수 있는 꽃이다. 친토산에 유난히 많다. 시스토수는 해당화와 장미꽃을 섞은 모양이다. 꽃대는 조금만 센 바람이 불면 꺾어질 듯 여리다. 연분홍 여린 꽃잎은 돌 틈사이로 수줍게 꽃대를 내민 제비꽃을 연상시킨다.
‘행랑채 뜨락에 핀 제비꽃인가? 월송산 자락의 패랭이꽃인가?’
묘하게 향수를 일깨우는 꽃이다. 무쌍은 흠칫했다. 또 짚은다리 생각이다. 잊을만하면 꼬리를 잡고 매달리는 고향이다.
연분홍 꽃잎에 청백색 달빛이 쏟아져 거무스름하게 보였다. 문득 혜영의 향기가 와락 덮쳤다.
“아, 아!”
무쌍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했다. 코끝이 아려 왔다. 혜영은 영리하고 현명한 여자다. 그녀가 웨이터 뻐꾸기를 액면대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은 없다. 어쩌면 그녀 본인도 핑계거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자존심 강한 인간은 대체로 그렇다.
진순이라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만사를 제쳐놓고 나이트 BOSS에 들어와 주방 일을 맡았을 것이다. 진순은 그런 아이다. 원망하지 않고 탓하지 않는다. 자신이 도울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각자의 개성이다. 혜영이 진순이 아니듯이 진순은 혜영이 아니다.
어쩌면 자신이 비겁했다. 혜영의 마음을 읽고 선수를 쳤다. 상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상처를 덮고자 했다. 대인 행세를 하고 싶어 유치한 짓을 저질렀다.
이역만리 타향에 혈혈단신으로 떨어진 신세다. 강한 것은 신체일 뿐 마음이 아니다. 씨아까렐로 한잔에 향수를 달래고 시스토수 한 송이로 그리움을 삭이는 무쌍이다.
자신은 그저 힘이 센 인간에 불과하다. 급소에 총알 한 방 맞으면 죽는 건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다. 내전 중인 차드는 언제 총알을 맞고 죽을지 모르는 전장이다. 혜영도 없고 가족도 없다. 미련이 있으면 총탄이 난무하는 전장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 혜영과의 사련을 털어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사라져 버린 엄마, 지금까지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도 용납하지 못했다. 아니, 용납의 문제가 아니다. 버려진 서러움이 너무 컸다.
백부와 하숙생 이강철, 두 사람은 엄마의 가출에 어떤 형태로든 관련이 있다. 엄마의 가출은 그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이 들고 판단 능력이 생기자 어머니가 가출한 원인이 따로 있음을 알았다. 지금까지 조사할 능력도 여건도 되지 못했다. 먹고 살기 바쁘고, 온갖 사건과 사고가 연속으로 터졌다.
퇴학당한 후 이강철과 백부 일가를 찾아서 족치려 했다. 결국, 손대지 못하고 비행기를 탔다. 신군부가 계엄령을 내리고 서슬 퍼렇게 설치는 통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끓어오르는 마음을 스승이 달래주지 못했으면 사고를 쳐도 크게 쳤을 것이다.
유년기와 소년기를 통틀어 정상적으로 보낸 세월이라곤 혜영과 함께 보낸 2년이 고작이다. 어리고 힘이 없었기에 이리저리 휘둘려 살았다. 힘이 없어 휘돌려 살아온 세월, 살아오는 동안 힘들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어쩌다 보니 산 넘고 물 건너 이역만리 낯선 곳까지 튕겨 왔다.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땅에서 생소한 인간들과 어울려 생소한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살아간다.
군복을 입은 지 8개월, 자신을 돌아보고 재평가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다. 다시는 타의에 휘돌리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각오를 굳게 다졌던 시간이다.
기이한 뼈다귀와의 조우는 아버지의 선물이다. 힘을 얻어 엄마를 찾으라는 아버지의 당부다. 육체적인 힘도 얻었지만 시간의 흐름 자체가 힘이 되었다.
친권자라는 법률적 우산이 몽둥이가 되었던 세월이다. 어리다고 무시 받고 짓눌렸다. 법률행위와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자체가 힘이다.
“어머니, 불쌍한 내 어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 아들이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찾을게. 어머니를 괴롭힌 인간은 백배 천배로 고통을 돌려줄게.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알려 줄게.”
무쌍은 이빨을 물고 중얼거렸다. 누구든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누구를 죽이더라도 감당할 정신적 강함을 얻었다. 어머니와 인연이 다하지 않았다는 스승님의 말씀만이 그를 위로해 주었다.
“더러운 것들, 기다려라. 곧 돌아가마.”
격정을 못 이긴 무쌍이 아름드리 참나무를 주먹으로 내질렀다. 쿠웅- 거목의 껍질이 떨어져 나가고, 줄기가 움푹 패었다. 낮 동안 열심히 산소를 뿜어주고, 휴식 중이던 거목이 모진 놈의 주먹에 맞아 다치는 수난을 당했다.
‘이곳이 나에겐 천국이다.’
외인부대는 범죄자나 마약 전력이 없으면 과거를 따지지 않는다. 본인이 갖춘 능력과 현재의 모습 외에는 상관하지 않는다. 조국이 거부한 그를 프랑스가 받아주었다. 그에겐 축복이다.
레종 에뜨랑제는 훈련만 하고 밥만 축내는 군대가 아니다. 프랑스의 국익이 걸린 분쟁 지역에 가장 먼저 투입되는 전투 부대다. 오늘 당장 작전이 시작되고, 언제 출동 명령이 내려올지 모른다.
작전이 시작되면 적의 머리 위에 포탄을 쏟아 붓고, 심장에 총탄을 박아 넣어야 한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로 또 다른 피를 찾아 날뛰는 악귀가 되어야 한다.
‘타인의 생명을 취하는 자는 자신의 생명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연대장 쟝 필립 대령이 툭하면 내뱉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무쌍은 망설임 없이 차드 내전에 지원했다. 죽음은 항상 삶의 곁에 존재했다. 방태산 동굴에서 절실히 느꼈던 명제다. 어차피 인간은 필멸자다. 살아 있다는 것은 죽음이 연장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서서히 죽느냐 갑자기 죽느냐 일 뿐 죽는다. 죽음이란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지 언제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전장에 뛰어들어 자신의 내부에 도사린 야수가 어떻게 나올지 확인해 볼 참이다.
“펑요우, 잠이 안 오나?”
생각에 잠겨 걷다 보니 어느새 3소대 경계지역을 넘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다. 장쒼 역시 잠을 못 이룬 듯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땅바닥이 축축했다.
“장, 땅바닥에 앉으면 치질 걸린다.”
무쌍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와인 숙성용 오크통을 절반으로 잘라 놓은 크기의 바위가 보였다. 납작하니 의자 대용품으로 딱이다. 바위를 번쩍 들어다 장쒼의 옆에 툭 던졌다.
쿵- 지면이 울렸다. 식겁한 장쒼이 후다닥 일어났다. 네 명이 들어도 끙끙댈 바위다. 그것을 손가방 들듯 가볍게 들어서 던지다니!
인간 같지 않은 모습을 수차례 목격한 그로서도 적응되지 않았다.
“따꺼!”
“그냥 펑요우라 불러. 팍이라 부르던지.”
“펑요우, 제발 조심해라.”
“응, 노력하지.”
영혼이 담기지 않은 대답이 돌아왔다. 팍이 노력한다는 말은 잔소리는 들어주지만, 곧 잊어버리겠다는 의미다. 도대체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한 자각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런 인간이다.
“팍, 사람 죽여 본 적 있나?”
“있다. 삼 년 전”
“삼- 년- 전!”
심드렁한 대답에 놀란 장쒼의 반문이 한 음절씩 딱딱 끊어져 나왔다. 삼 년 전이면 팍은 미성년자다.
“응, 여섯을 죽였다. 다섯일지도 모르고.”
“류 류? 샹 치라이 떠우 쥐에더 신징단잔 더!(여 여섯? 생각만 해도 오싹하군!)”
장쒼은 간이 떨어질 만큼 놀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중국어가 튀어나왔다. 그럼에도 “진짜냐?” 따위의 반문을 하지 않았다. 펑요우 팍은 거짓말을 모르는 남자다.
장쒼은 질린 눈으로 펑요우를 바라보았다. 신체에 새겨진 끔찍한 상처를 보고 험한 인생을 짐작했지만 한둘도 아닌 사람을 여섯이나 죽이다니!
장쒼은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못했다. 따꺼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떠돌았기 때문이다. 양자강 홍수에 휩쓸린 고향의 마을보다 더 황폐한 미소다. 몸에 새겨진 수많은 상처와 뺨에 길게 남은 흉터가 편치 않은 삶을 말해 주었지만, 살인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
대화가 끊어졌다. 장쒼의 담배만 빨갛게 타들어 갔다.
“난 사람을 죽여 본 적 없다. 죽이고 싶은 놈은 있었다.”
“과거형이라면 대상이 죽었거나 포기했겠군.”
“포기했다.”
장쒼이 이빨을 악물었다.
“왜?”
“내가 건드리기 힘든 거물이다.”
장쒼의 얼굴이 비틀렸다. 새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놈은 일부러 승용차 속도를 줄이지 않고 호우밍을 들이받았다. 놈은 차를 세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중상을 입은 와이프는 수술 후에도 여전히 중태다.
사실 뺑소니도 아니었다. 호우밍을 친 놈은 안휘성 합비 공안 분국장의 아들이다. 놈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천문학적인 아내의 수술비 때문에 외인부대의 문을 두드렸다. 팍이 선뜻 도와준 덕분에 수술했지만 재수술은 치료비가 더 많이 들어간다. 남은 방법은 장기 이식이다.
“아내와 자식 때문이겠군.”
“어떻게 알았나?”
“내 펑요우는 졸장부가 아니다. 지켜야 할 것이 있으면 남자는 약해진다.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장쒼에게 하는 이야기지만 자신의 이야기다.
“고맙다.”
“위로하려고 한 말이 아니다. 사실을 말했다.”
장쒼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응어리진 마음이 스르륵 풀렸다.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어린 나이에 인생의 쓰라림을 이다지도 잘 알까!
“다음 달이면 사람을 죽여야겠지.”
“내가 안 죽으려면 죽여야지. 죽일 거면 많이 죽여서 많이 벌어야지”
장쒼이 불편한 마음을 자조적인 어투로 불어 냈다.
“장, 넌 가지 마라. 호우밍이 슬퍼 질 수도 있다.”
“호우밍의 간이 또 문제다. 간 이식을 해야 한다.”
“수술했지 않나.”
“지난번 따꺼가 준 돈으로 수술은 했다. 그런데 좋지 않다.”
“문제가 뭔가?”
“병원에서도 잘 몰라. 중국 병원은 수준이 낮다.”
무쌍은 한숨을 쉬었다.
“돈이 많이 들겠군.”
“그래서 난 차드에 가야 해. 가서 게릴라들을 많이 죽여야 호우밍을 살릴 수 있다.”
“많이 죽여야 사람을 살린다? 내가 용병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는군. 준폐이가 쓴 인간의 조건이란 소설이 생각난다. 장이 죽으면 호우밍은 과부가 돼.”
“펑요우 옆에만 있으면 죽지 않는다. 등은 내게 맡겨라. 펑요우를 노리는 놈은 내가 폭탄을 쏟아 부어 주지.”
무쌍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과 마찬가지로 장쒼에게도 충분히 등을 맡길 수 있다. 윗 대가리들은 잘 모르지만 장쒼의 포술 실력은 경이적이다.
광역 제압용 무기인 박격포를 점표적으로 사용하는 놈이 장쒼이다. 이놈도 자신의 실력을 다 내보이지 않는다. 아마 인간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
장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리 훈련이 힘들어도 훈련일 따름이지 전장은 아니다. 아내를 살리고자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죽이러 가야 한다. 스물다섯 살 청년의 속이 편안할 리 없었다.
무쌍의 마음도 밝지 못했다. 코흘리개 나이에 세상에 버려졌지만 그럭저럭 살아남았다. 살아남다 보니 타인의 목숨을 거둬야 하는 더러운 인생이 되어 버렸다.
‘인간의 조건은 무엇일까?’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까?’
고향에서 15,000km 떨어진 이역만리 낯선 나라다. 달빛이 시리도록 환하게 빛났지만, 각자의 상념에 젖은 두 청년의 심사는 한없이 어두워졌다. 고향의 소쩍새 소리는 없어도 밤은 잘도 깊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