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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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사헬의 북조선 인간병기6
곧 여명이 튼다.
여명(黎明)은 태양빛이 지구의 대기에 굴절되어 약하게나마 태양빛이 인지되는 순간을 말한다. 여명부터 일출 전까지 하늘이 점점 밝아지는 상태를 박명(薄明)이라고 한다.
12월 은자메나의 일출 시간은 06:09분이다.
현재 시간은 04:29분, 사막의 여명은 빠르다. 도시의 박명은 40분 내외지만 사막은 60분이다.
어둠은 아사신의 친구다.
그가 어둠속에서 움직일 시간이 30분 남짓 남았다는 이야기다. 꼬장을 부리는 마이크와 입씨름 할 시간이 없다.
“덜 떨어진 새끼가 꼭 계급을 가지고 지랄을 해요. 암만해도 교훈이 부족했어.”
삐에프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이크가 아니라 자기에게 하는 소리로 들렸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중대장님은 마이크 중사와 대기한다.”
“이봐, 블랙~”
삐에프가 대답도 하기 전에 블랙맘바의 신체가 어둠속으로 녹아들어 갔다. 삐에프는 당황했다. 정신을 잃은 마이크를 버려두고 따라갈 수도 없다.
“망할 새끼, 다시는 오뜨 뀌진을 사주지 않겠어.”
삐에프는 섭섭함을 소심하게 달랬다.
블랙맘바는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가볍게 잡목 숲을 빠져 나갔다. 옷깃이 스치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풀숲이 끝나자 사력층이 드러난 마른 와디가 나타났다.
그는 베레타와 쿠크리, 수전을 점검하고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 33분이다. 36분후 여명이 밝아 온다. 현재 시간이 인간의 집중력이 가장 약해질 시간이다.
막사까지 480m, 공간지각력 밖의 거리다.
두웅- 서늘한 파동이 전면으로 쫙 밀려 나갔다. 방향이 집중되자 거리가 늘어났다. 심상에 떠 오른 적은 60명 ,깨어 있는 놈은 여섯이다.
숙영지 좌우측 기관총 진지에 소초 넷이 있고, 동초 둘이 막사 주변을 끊임없이 오갔다. 놈들의 경계 상태가 게릴라답지 않게 엄중했다.
아사신이 되어야 할 시간이다.
주변의 모든 사물, 흙과 바위, 나무와 풀, 동물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블랙맘바의 기운이 대기 속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육체를 구성한 세포가 올올이 풀려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자연동화술이다.
“저 저게 뭐야?”
달빛에 의지해 블랙맘바를 주시하던 삐에프가 기함을 했다. 블랙맘바의 몸이 서서히 흐려졌다. 맑은 물에 떨어진 검은 잉크 한 방울처럼 육체가 대기 중으로 스며들었다.
멀쩡한 인간이 민들레 홀씨가 날리듯이, 물에 잉크가 스며들 듯이 스르륵 흩어졌다. 놀란 삐에프가 눈을 비비고 야시경을 눈에 붙였다. 녹색 인간 형체가 뚜렷이 보였다.
삐에프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서쪽 지평선에 걸린 하현달이 시린 월광을 뿌렸다. 사람의 형체는 충분히 구분할 수 있는 밝기다. 삐에프는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전방을 주시했지만 블랙맘바를 찾지 못했다.
“보초서는 놈들이 몽땅 서서 잠이 들었나?”
삐에프가 야시경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녹색 형체가 접근했지만 경계병들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녹색 그림자가 우측 기관총 진지의 사수와 겹쳤다.
뒤쪽의 그림자가 팔을 뻗었다. 정지해 있는 녹색 형체의 머리가 툭 꺾였다. 삐에프가 움찔했다. 뚜둑하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소름이 좍 끼쳤다.
뚜둑- 쇠몽둥이 같은 팔에 휘감긴 연약한 목이 단숨에 부러졌다. 기척을 느낀 조수가 얼굴을 돌리는 순간 강철 집게가 목젖을 틀어잡았다. 뿌욱-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기도와 식도가 박살난 소초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블랙맘바는 시체를 참호 벽에 걸쳐 놓고 시체 뒤에 몸을 숨겼다. 잠시 후 동초가 다가왔다.
“뭐야! 둘 다 자는 거야?”
“졸다가 뚜빌리스에게 걸리면 박살나는 거 몰라. 하루종일 자갈밭을 기고 싶어?”
동초가 주절거리며 죽은 소초에게 랜턴을 비추는 순간 수전 두 대가 블랙맘바의 손을 떠났다.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 수전이 후부두를 부수고 연수에 틀어박혔다.
“끄륵” “훅”
중추 신경이 끊어진 입에서 폐에 담긴 공기가 밀려 나왔다. 블랙맘바가 쓰러지는 동초 둘을 받쳐서 참호 벽에 기대어 놓았다.
삐에프는 손에 땀을 쥐었다.
그야말로 유령의 내습이다. 보초 넷을 지운 그림자가 미끄러지듯 좌측 기관총 진지로 스며들었다. 과정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보초 둘이 스르륵 땅바닥에 엎어졌다.
“으으! 머리야.”
마이크가 머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 중대장님!”
“잘 잤나?”
야시경 렌즈에 머리를 우겨넣을 듯이 몰입해 있던 삐에프가 영혼 없이 대꾸했다.
“블랙맘바는?”
“이미 보초를 지우고 침투했다.”
마이크가 후다닥 일어났다.
“중대장님, 경계병이 없으면 개활지를 건너서 잠입할 수 있습니다.”
“뭣! 척살에 뛰어 들자는 거냐?”
“당연합니다. 루키가 생사 결전을 치를 때 중대장과 분대장이 뒷짐을 지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마이크의 눈에서 불꽃이 튕겼다.
“그렇지. 소문이 퍼지면 고개를 못 들게 된다.”
“맞습니다. 인생 쫑칩니다.”
“맞다, 나는 블랙맘바의 중대장이다.
삐에프가 홀린 듯이 벌떡 일어났다.
마이크와 삐에프는 자기비하와 강박관념에 빠진 공통점이 있다. 상황 논리가 분석을 앞섰다. 자신의 능력을 냉정히 분석하지 못하고 상황에 매몰되는 현상이다. 현실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흔히 발생한다. 선거판에 홀린 듯이 나서는 찌질한 인간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소초와 동초를 소리 없이 정리한 블랙맘바가 연기처럼 천막 속으로 스며들었다. 사헬에도 새벽이면 이슬이 내린다. 게릴라들은 막사 중앙에 통로를 두고 양쪽으로 이십여 명이 나란히 잠들어 있었다. 쌀쌀한 기온에 불구하고 방수포를 한 겹 깔았을 뿐이다.
‘너희들은 군인이고 나도 군인이다. 군인으로 만났으니 유감은 없으리라 믿는다. 나무아미타불!’
그는 망자를 위해 잠시 묵념을 올렸다.
악몽이 잠든 게릴라들은 덮쳤다.
스악 스악- 시퍼렇게 날선 쿠크리가 오이꼭지 따듯 숨통을 잘라 냈다. 단 6초만에 20명의 숨통이 잘렸다. 목불인견의 참상이 펼쳐졌다. 피비린내와 사이한 기운이 천막을 가득 채웠다.
악몽이 스윽 다음 천막으로 옮겨갔다.
“딸끼스 알 콰디러, 아마타 쿤타 짜바난!(더러운 이교도 놈을 죽여라.)”
블랙맘바가 흠칫했다. 잠꼬대를 한 놈이 자세를 바꾸어 코를 골았다.
‘망할 새끼, 깜짝 놀랐네. 그나저나 대단한 광신도인가 보네. 알라께서 잘 보살펴 주시겠지.’
무정한 칼날이 잠든 자들의 숨통을 순식간에 잘라 냈다. 기도와 식도가 한꺼번에 잘려나간 희생자들은 신음 소리도 내지 못하고 절명했다.
선우현이 눈을 번쩍 떴다.
오른손이 슬그머니 베게 밑으로 들어갔다. 듬직한 NR-2대검의 손잡이가 잡혔다.
‘어드레 사십구호 간나새끼지비.’
사십구호는 북한의 정신병원이다. 또라이, 미친놈에 해당하는 욕설이다.
침입자는 또라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 했다. 딴에는 숨소리까지 죽이고 포복으로 파고들었지만 모래와 옷이 마찰되는 소리를 죽이지 못했다. 예민한 선우현의 감각을 속이기엔 한참 부족했다. 정찰여단의 하전사도 저놈보다는 실력이 낫다.
마이크와 삐에프는 후면의 단독 막사를 표적으로 삼았다. 지휘관이 표적이다. 삐에프는 전공을 세울 욕심에 눈이 멀고, 마이크는 피 맛을 볼 욕구에 사로잡혔다.
천막 입구에 방수포를 깔고 잠든 녀석이 보였다.
삐에프가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대검으로 목젖을 돌려 그었다. 그 틈에 마이크는 막사 내부로 스며 들었다.
마이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야전 침상에 세상모르고 잠든 녀석이 있다. 침상에서 잠들 정도면 지휘관급이다. 슈악- 망설임 없이 대검을 내리찍었다. 갈비뼈 3번과 4번사이 심장이 표적이다.
“헙!” 마이크의 눈이 튀어 나올 듯이 커졌다.
침상에 누워 있던 인간이 빙글 반 바퀴 돌아누우며 대검이 가슴을 향해 찔러들어왔다. 밥숟가락 들 듯이 자연스런 동작이다. 야시경에 시야를 제한받은 마이크는 실기했다. 대검은 헛되이 침상에 박히고 왼쪽 가슴에서 타는 듯 한 통증이 느껴졌다.
“띨한 종간나 새끼!”
대검을 비틀어 뽑으려던 선우현이 손잡이를 놓아 버리고 침상에서 몸을 튕겼다. 짱- 배후에서 달려든 삐에프의 찌르기를 선우현이 여유있게 튕겨냈다. 어느새 선우현의 손에 또 한자루의 대검이 잡혔 있었다. 삐에프가 크라브마가 그라운딩 기술로 선우현의 뒷덜미를 잡아 당겼다. 선우현은 오히려 파고들며 하체를 후려찼다. 두 사람은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굴었다.
투다다닥- 몇 차례 손속을 나눈 두 사람이 화다닥 떨어졌다.
“크으!” 삐에프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 나왔다. 덩치로 누르고 파운딩을 날렸지만 손해를 봤다. 놈의 칼날 같은 손날이 갈비뼈를 헤집었다.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아찔했다.
쉭- 손가락 크기의 표창이 선우현의 손을 떠났다.
쨍- 삐에프는 얼결에 카바 나이프로 표창을 쳐냈다. 한 바퀴 굴러 몸을 일으킨 삐에프가 자세를 잡았다.
스악- 눈앞이 번쩍하는 순간 삐에프는 아랫도리에 타는 듯 한 통증을 느꼈다.
“으악!”
비명이 절로 터졌다. 신체가 소금뿌린 지렁이처럼 꼬이고 힘이 쫙 풀렸다. 눈앞에 찔러 들어오는 칼을 신경 쓰는 사이에 사타구니를 차였다.
뻐억- 선우현의 발이 숙여진 삐에프의 뒷목에 작렬했다. 일명 곡괭이 찍기다.
땅바닥에 풀썩 쓰러진 삐에프는 이를 악물고 카바 나이프를 횡으로 그었다. 되지엠 랩 대위는 포커 쳐서 따는 자리가 아니다. 그도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선우현이 한 발 물러나는 순간에 삐에프는 죽어라 입구 쪽으로 굴렀다.
“흐흥, 가려고? 니놈 멋대로 안되지비.”
쉭 쉭- 선우현의 손을 떠난 표창 두 개가 삐에프의 허벅지와 옆구리에 퍽퍽 틀어 박혔다.
꽝- 뒤이어 선우현의 돌려차기가 관자노리에 작렬했다. 삐에프가 통나무 쓰러지듯이 쿵 무너졌다. 야시경이 바닥에 툭 떨어져 뒹굴었다.
‘올빼미 눈을 가진 놈이 또 있었어.’
삐에프가 기절하기 전에 떠올린 마지막 생각이다.
침입자 둘을 간단히 잠재운 선우현은 화들짝 놀랐다.
피비린내다. 암살자가 대대적으로 스며들었다는 이야기다. 무장을 점검하고 후다닥 막사를 뛰쳐나갔다.
“아싸씬! 아싸씬!”
두 번째 막사의 작업이 완료될 무렵, 바깥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델라뚠!”
“아싸신!”
“입타이드 비쑤르아(빨리 피해라)”
소동이 벌어졌다.
‘이런, 어떻게 알았지?’
블랙맘바는 혀를 찼다. 자연동화술을 발휘한 자신을 알아볼 능력자가 있을 리 없다. 알라에게 면회간 34명 모두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놈이 있나?’
그는 중대장과 마이크의 삽질을 꿈에도 몰랐다.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게릴라가 깨어났다.
“덴타 머시눈?(이런, 어떤 새끼야?)”
잠이 덜 깬 게릴라가 소총을 잡았다. 번쩍- 쿠크리가 빗살처럼 날아갔다.
“헉!” 게릴라는 잠이 확 깼다.
뿌악- 차라리 잠이 깨지 않는 편이 좋았다. 쿠크리가 얼굴 복판에 박혔다. 투사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게릴라의 목이 한 바퀴 휙 둘아갔다.
“델라뚠!(적이다!)”
또 한 명의 게릴라가 후다닥 일어났다.
“바보 새끼, 그럼 적이지 친구겠냐?”
윙- 잠이 덜 깬 게릴라의 목에 군화발이 틀어박혔다. 일격에 경추가 부러지고 얼굴이 반쯤 부서졌다. 두 번째 막사에서 잠든 8명의 생기가 사라졌다.
“종간나 새끼들, 날래 후방 바위로 튀지 못함메!”
고함소리가 쩡 울렸다. 게릴라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숙영지 막사가 순식간에 텅 비었다.
지휘관의 상황 판단력이 놀라웠다. 게릴라들도 놀랍게 기민했다. 얼디 하마르에서 지워 버린 놈들과 같은 부류다. 암살은 틀렸지만 우왕좌왕하는 놈들 틈에 뛰어들어 난장을 칠 생각이었던 그는 헛물을 켰다.
“쩝, 지휘관 녀석이 똘똘하네. 2분이면 끝낼 수 있었는데 귀찮게 되었어.”
경계병까지 34명을 암살했다.
후방 바위 언덕으로 피신한 놈들은 27명이다. 블랙맘바는 쿠크리를 왼손에 옮겨 쥐고 오른손으로 베레타를 뽑아들었다. 아드레날린이 맹렬히 분비되었다. 개싸움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