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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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사헬의 북조선 인간병기9
칼날처럼 예리한 눈빛이 오고갔다. 살기를 풀풀 피워 올리는 깡마른 남자, 잘 다듬어진 몸이다. 군살이라곤 한 점도 없다. 뼈와 근육으로 뭉친 신체는 망치로 치면 깡 소리가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저게 무언가? 너무 작다. 블랙맘바는 본의 아니게 선우현을 내려다보았다. 선우현은 눈을 치뜨고 올려 보았다.
북한은 먹을 게 없다더니 과연 그랬다.
성장 판이 열려 있는 시기에 제대로 먹지 못하면 키가 크지 못한다. 덩치가 작다 못해 왜소했다. 자신의 어깨에 겨우 미치는 키다. 163cm나 되려나.
천덕꾸러기가 되어 배를 곪던 어린 시절의 서러움이 절절하게 떠올랐다. 세상의 온갖 고통과 서러움 중에 배고픔이 제일이다. 매 맞고 혹사당하는 고통은 배고픔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
얼마나 못 먹고 지냈기에 몸뚱이가 자신의 반쪽밖에 되지 못할까!
오죽하면 이역만리 아프리카에 와서 먹고 살자고 삽질을 하고 있을까!
불현듯 살기 풀풀 날리는 놈이 측은해 보였다.
블랙맘바의 착각이다. 왜곡된 세뇌교육의 폐해다.
선우현의 실제 나이는 30대 중반이다. 선우현의 성장기인 50~60년대 당시의 북한은 경제 사정이 남한보다 우월했다. 작은 키는 유전자 탓이요 삭은 얼굴은 거친 아프리카를 떠돌았기 때문이다.
광폭한 맹수의 눈빛이 슬쩍 무뎌졌다.
군사정부의 왜곡된 교육이 선우현의 명줄을 연장시켰다.
‘저 종간나새끼래 살벌한 눈깔이 어케 이상하게 변함둥?’
선우현은 기분이 상했다. 작은 키 때문에 어디를 가든 업신여김을 받았다. 물론 작은 고추가 맵다는 사실을 마늘 다짐으로 알려주었다.
“니보라우, 남조선 동무 맞슴메? 얼굴 가리개 날래 치워 보라우. 쌍판 구경 해 보자우야.”
“내 얼굴?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에게 꼰지를라꼬. 곧 죽을 인간 소원 들어주지.”
블랙맘바가 리탐을 풀어냈다.
‘읔! 저거이 칸마?’ 선우현의 눈이 커졌다.
젊다 못해 어린 한국인이다. 그것도 미남이다. 윤곽이 뚜렷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균형 잡힌 잘 생긴 놈이다. 적어도 30대의 흉신악살을 예상했던 선우현은 충격을 받았다.
“억이 막힘둥. 칸마라고 소문난 인간이 에미나이처럼 곱상할 줄은 몰랐음메.”
“이봐 빨갱이, 내 우월한 유전자는 내가 잘 알아. 당신 은 유전자가 상당히 열등해 보이는 구마.”
선우현은 은근히 짜증이 났다. 자신의 체구가 작지만 제 놈이 언제 봤다고 유전자 운운까지 하며 아구리질을 한단 말인가.
“젊은 아새끼래 아구리가 아당지구먼. 나도 보여 주디.”
선우현이 리탐을 풀어냈다. 숯처럼 새카만 얼굴이 나타났다. 이마와 볼에 깊게 파인 주름이 40은 넘어 보였다. 얼굴빛은 원주민과 다를 바 없지만 한국인이 분명했다.
한국, 중국, 일본, 동양 3국인은 외모가 비슷하지만 미한 차이가 있다. 외국인은 분간하지 못하지만 엔간히 눈썰미 있는 한국인은 외국에서 만난 동족을 바로 알아본다.
검은 땅 아프리카, 그것도 오지중의 오지인 차드 사헬에서 남북의 인간이 적으로 만났다. 확률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기막힌 현실에 블랙맘바와 선우현은 서로 멀거니 쳐다보았다.
“니 빨갱이 군바리 맞나?”
블랙맘바가 침묵을 깼다. 선우현이 째진 눈으로 블랙맘바를 올려다보았다.
“빨갱이? 내래 억이 멕히서리. 내래 혁명 전사디. 님자래 남조선 반동 아새끼 맞지비?”
블랙맘바의 눈이 차가워졌다.
“혁명전사? 반동? 빨갱이가 맞구마. 동족이라고 손잡고 안부 물을 분위기는 아이지러.”
선우현이 피식 웃었다. 어린 얼굴을 보자 잔뜩 긴장했던 신체가 스르륵 풀렸다.
“어린 동무, 젖이나 한 모금 더 빨고 오기요.”
“빨갱이 걱정들을 나이는 아니야. 늙은 뼈다귀나 조심하라고.”
“후후, 나미르가 어린 아새끼를 호구잡을라네 가슴이 쓰리누만.”
블랙맘바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나미르? 아까부터 나미르라고 하던데 설마 나는 용이다라는 뜻은 아니겠지?”
선우현이 흠칫했다.
“맞구마. 오글거리는 별명을 자작해서 붙였군. 어후 쪽 팔려.”
블랙맘바가 만부막적의 무용을 지녔지만 치기가 남은 20대 초반이다. 빨갱이를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
우월한 신체와 잘 생긴 얼굴에 짜증나서 한 마디 던졌던 선우현은 본전도 찾지 못했다.
“빨갱이는 당신처럼 나잇값을 못하나 보지? 안 그래 나로치?”
“머이 어드레! 나로치(미꾸라지)?”
선우현의 검은 얼굴이 확 붉어졌다. 스스로 즐기던 별명을 난데없이 나타난 남조선 아새끼가 까발렸다. 솔직히 창피했다.
“어린 아새끼래 버르장물 없다야. 뎀비라우.”
선우현이 손바닥을 편 왼손을 내밀고 대검을 쥔 오른 손을 등 뒤에 감추었다. 왼발을 반족장 내밀고 뒷발은 살짝 구부린 후굴 자세를 잡았다. 격술 기수식이다.
블랙맘바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살기와 투지가 가라앉아 버렸다. 아나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 없었다.
강자의 여유인가!
블랙맘바는 좌우로 널뛰듯 움직이며 거리를 좁히는 선우현을 덤덤히 바라보았다. 순간순간 자세를 바꾸며 거리를 줄이는 보법이 제법이다. 빨갱이도 동족이라고, 하는 짓이 그리 밉지 않았다.
삐에프와 폴에게 크라브마가 단검술을 배웠지만 파지법과 동작 시연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오금공의 깊이에 비하면 귀신 앞에 머리 풀어헤치는 수준이다.
무기는 손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다.
단검술의 90%는 찌르기다. 어설픈 양아치나 사시미를 들고 좌우로 휘두른다. 블랙맘바처럼 쿠크리로 목을 자르는 놈이 이상한 놈이다.
바짝 웅크렸던 선우현의 몸이 스프링처럼 펼쳐졌다. 등 뒤에 숨겨진 대검이 배꼽을 찔러 들어왔다. 배꼽은 신체의 중심이다. 가장 움직임이 느린 부위다. 블랙맘바의 복부가 쑥 들어갔다. 강력한 복근이 뱃가죽을 등가죽에 철썩 붙였다.
타점을 잃은 칼을 그대로 두고 선우현의 어깨가 움찔했다. 내밀었던 손이 사선으로 솟았다. 블랙맘바의 목이 구십 도로 툭 꺾인 자리를 손날이 슁 지나갔다.
“식겁했구마. 숨긴 대검이 허수고 진짜는 빈손이네.”
“간나새끼래 억하다야.”
칸마는 회심의 한 수를 발도 움직이지 않고 흘렸다. 여유 있는 상대의 모습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강자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런 존재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내래 격술의 달인 나미르임메.”
스스로 용기를 북돋웠다. 어차피 공화국 소환을 받은 몸,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불안한 신세다. 죽더라도 최강의 전사인 칸마와 대결에서 죽으면 적어도 개죽음은 아니다.
“끼요옷!”
왼발로 모래를 차 올려 시선을 가리고, 오른발이 땅을 박찼다. 일직선으로 얼굴을 찔러 들어갔다. 짱- 칼날이 맞부딪는 순간, 퉤- 칸마의 눈에 침을 뱉었다.
블랙맘바의 고개가 뒤로 구십 도로 꺾였다.
인간의 관절 구조로는 불가능한 동작이다. 볼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는 모습이다. 상대의 시선이 빗나간 틈에 지당각으로 하체를 후렸다.
뻑- “크윽!” 비명은 선우현의 입에서 새 나왔다. 사람의 다리가 아니라 백년 묵은 참나무다. 그는 이를 악물고 필생의 힘을 모아 상하좌우로 칼을 찔러 넣었다.
짱 짱- 철벽이다.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주특기인 하체 흔들기도 먹히지 않았다. 한 번 더 지당각을 썼다간 자신의 다리가 부러질 판이다.
선우현은 이해 할 수 없었다. 직선 찌르기는 최단거리 공격이다. 상대의 칼은 곡선으로 휘돌아 자신의 칼을 쳐냈다. 스피드가 두 배 이상 빠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블랙맘바는 현란하고 치사한 공격을 부드럽게 받아 넘겼다. 찌르고, 베고, 훑는 모든 동작이 오금공에 녹아들어 있었다. 공간지각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상대의 움직임이 빤히 보였다.
선우현의 공격력은 엑쓔삐아스트의 일원이라던 루브넨코와 수준이 비슷했다. 더 이상 긴장감도 없다.
“으얍!”
선우현이 이지관수로 눈을 쑤셨다. 퉤- 블랙맘바가 손을 걷어 낼 때 입안에 숨겨 둔 독침을 불어냈다. 최후의 한 수다. 동시에 이목을 흐리기 위해 아랫배에 칼을 박았다.
짱- 상대가 칼을 쳐내는 순간, 선우현의 얼굴에 득의의 미소가 떠올랐다.
‘먹혔다!’
미소가 일순간 썩은 얼굴로 변했다.
쉬악-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스피드로 손바닥이 눈앞에 나타났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꺾어 피하는 순간에 손바닥이 어깨에 툭 떨어졌다.
뻑- 쇄골을 내려친 오른손이 하단으로 휘돌아 복부를 치고, 숙여지는 턱을 올려쳤다. 오금공의 단양타 삼연격이다. 십륜연환격을 썼다간 핏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퍼 퍽- 파찰음이 동시에 터졌다.
“형편없구먼.”
“크악!”
허리가 접히도록 강한 충격을 받고, 구수에 턱을 맞은 선우현은 팽이처럼 한 바퀴 돌고는 풀썩 쓰러졌다. 턱을 맞으면 뇌가 흔들리고, 귓속의 평형기관이 충격을 받는다. 결과는 기절이다. 정찰여단 최고수라는 선우현도 블랙맘바에게는 일초지적에 불과했다.
육체 변이를 거치고, 인체의 움직임과 힘의 흐름을 체득한 블랙맘바다. 전투력이 또 다른 경지로 들어섰다. 선우현의 전투력이 대단하지만 인간 기준일 뿐이다.
퉤- 블랙맘바가 입에 물려 있던 독침을 뱉어냈다.
대비를 하고 있던 그는 코앞에서 날아오는 독침을 이빨로 받아 냈다. 로스께 루브넨코의 독침에 혼이 난 블랙맘바다. 같은 수법에 두 번 당하면 전장의 악몽이란 별명이 아까워진다.
“짜식, 메뚜기멘치로 디기 팔딱 거리네. 엄살 부리지 말어. 빨갱이지만 동족이라 살짝 때렸어 임마.”
쓰러져 있던 선우현이 꿈틀했다.
“에휴, 동족이 머라꼬……”
모래를 뿌리고, 침을 뱉고, 이빨로 물고, 독침을 뱉고, 별의별 치사한 공격을 한 놈이다. 죽여 버릴까 하다가 참았다.
어느새 달이 졌다. 동쪽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퍼졌다. 60명의 생명이 지워진 피의 대지에서 휴프노스가 장막을 거두어 갔다.
바위 언덕에 자욱한 사기와 피비린내만 넘쳐 났다. 블랙맘바는 팔다리와 허리를 가볍게 스트레칭 해주고 바위에 털썩 기대앉았다. 에스컬레이트된 긴장이 풀리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꼼짝도 하기 싫었다.
원거리 저격에 비해 근접전은 야만의 극단이다. 피가 튀고 뇌수가 쏟아진다. 순간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원시적인 악의의 충돌에 살육 본능이 끓어오른다.
뼈를 부러뜨리고 근육을 찢어 내는 상쾌한 감각,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에 밀려드는 희열, 미쳐 날뛰는 순간에는 살육의 쾌감이 말초신경을 치달린다. 그리고 전투가 끝나면 감당 못할 허무가 밀려든다. 어느새 자신은 전장의 괴물이 되어 버렸다.
이때가 가장 싫다.
망자가 내뿜는 음차원의 에너지가 공간을 떠돈다. 망자의 혼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강력한 사념파가 정신을 파고든다. 육체는 힘이 남아돌아도 정신적 피로가 파도처럼 덮친다.
잡낭을 뒤져 담배를 찾았다. 담배는 스나이퍼로서 절대로 피해야 할 기호품이다. 몸에 배인 담배 냄새는 상당히 멀리 퍼진다. 담배는 후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그럼에도 살육이 끝나면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후우, 폐 깊숙이 연기를 빨았다가 뱉어냈다.
폐활량이 큰 만큼 연기가 구름처럼 퍼졌다. 코히바 지골로 특유의 향긋하고 쓴맛이 피비린내를 씻어 냈다. 샤트르를 생각나게 하는 향이다. 야만의 대지가 진저리나게 지겨워졌다.
그는 대자로 퍼진 빨갱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선우현은 거친 땅바닥에 코를 박은 볼썽사나운 자세로 엎어져 있었다.
빨갱이를 살려 둔 이유는 같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조금 반갑기도 했다.
‘빨갱이 놈들은 인간이 아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이웃 어른들에게 수없이 들어 온 말이다. 지독한 세뇌로 인해 빨갱이는 도깨비처럼 머리에 뿔이 난 존재로 알았다. 머리에 뿔난 도깨비가 일본산이란 사실을 알고는 쓴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인간은 고립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반복 학습에 취약한 존재다. 세뇌는 어렵지 않다. 외부 정보를 차단하고 반복 학습을 시키면 된다.
무쌍 본인도 성장기를 정권에 세뇌당한채로 보냈다. 대통령은 박정희밖에 없는 줄 알았을 정도다.
용병 생활을 하면서 남북관계를 객관적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남북한의 위정자와 기득권 세력이 망할 놈들이다.
‘점마를 어떻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