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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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사헬의 북조선 인간병기10
비갑에서 수전을 한 대 뽑았다. 손짓 한 번이면 빨갱이의 영혼은 육신을 떠나간다. 생각과 달리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쩝, 그냥 죽여 버릴걸.”
그는 혀를 찼다.
죽이려면 격투를 벌일 때 사정 봐주지 말았어야 했다. 살려준 놈을 새삼 죽이기도 구차했다.
죽이자니 껄끄럽고 놓아 보내자니 찝찝했다. 지금까지 적이라고 판명되면 가차 없이 죽였다. 왜 죽이지 않았을까? 지금은 왜 망설일까?
블랙맘바의 시선이 자신의 손에 머물렀다. 네 자릿수의 인간을 지워 버린 손이다. 60명의 생 목숨을 끊어 놓은 마당에 선우현 한 명을 추가하든 말든 무슨 의미가 있다고 망설일까?
죽이기는 쉬워도 살리기는 어렵다는 스승님 말씀 때문일까? 아니다. 변덕이다.
인간에게는 인간일 수밖에 없는 씨앗이 있다. 그 씨앗이 혈연이다. 짐승은 모성 본능이 사라지면 독립 개체로 돌아간다. 모녀간에 먹이 다툼이 벌어지고, 부녀간에 교미를 한다.
피의 흐름을 인식하고 피로서 구분을 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기준을 세우고 분류하는 존재다. 범위가 넓어지면 피의 흐름도 넓어진다. 나-가족-친척-동네 사람-출신 지역민-민족-국민으로 범위가 넓어진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나라를 떠나는 순간에 나라는 존재는 민족, 국가라는 범위로 경계가 확대된다.
그렇다. 자신이 빨갱이 선우현을 살려준 이유는 이곳이 아프리카이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이유도 이곳이 아프리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적으로 만났나면 서슴없이 죽였을 것이다.
그렇구나. 판단의 기준, 의식의 기준이 내면이 아니라 외연에 있었구나!
나는 내 자신을 믿지 못하고 남들이 만든 기준에 따라 자신을 재단하고 있었구나!
블랙맘바는 보편적 기준, 합의된 기준이 자신을 속박하고, 착각을 일으키게 했음을 깨달았다. 기준이 만들어지면 구분이 생긴다.
구분은 자신과 동류 주위에 울타리를 친다. 울타리는 단절이다. 배척을 부르고, 다툼을 부른다. 니편 내편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국인임을 의식적으로 거부해 온 자신이 어리석었다. 구태여 외부의 정의를 빌려 가족, 동료, 민족, 국민을 개념화하고 스스로 속박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은 자유의지를 가진 무쌍이라는 존재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왔던가? 어머니를 찾아서 기와집 짓고 편히 살겠다는 좁디좁은 테두리에 자신을 가둬놓고 있지 않았던가!
주체는 자신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인간의 길이고, 인간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쩌적- 나만 편하게 살겠다는 생각에 금이 갔다.
블랙맘바는 널브러진 선우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준 고마운 놈이다.
‘근데, 북한 놈이 왜 프롤리나트에 붙어 있지? 탈북자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블랙맘바가 관심이 없는 탓이다. 아니 관심을 기울일 이유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이리저리 시류에 밀려다녔고, 케피 블랑을 받은 후로는 용병 생활에 적응하기 바빴다.
한국과 달리 북한은 일찍이 아프리카에 많은 공을 들였다. 공관을 설치하고,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고, 무기를 헐값에 수출했다.
1980년 8월, 김일성이 짐바브웨에 대규모 군사 고문단을 파견했다. 북한 군사 고문단이 무가베 대통령의 친위부대인 제5여단을 창설했다. 제5여단은 무가베가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칼날이 되었다.
무가베는 보카사, 아민과 더불어 검은 독재자 3인방으로 불리는 과격 공산주의자다. 그는 김일성을 롤 모델로 삼아 신이 되기를 원했다.
1980년 8월, 북한제 무기로 무장한 제5여단은 ‘마타벨레 대학살 사건’에 투입되었다. 이들은 마타벨레 주민 20,000명 이상을 학살했다. 선우현도 군사 고문단 멤버로 동 작전에 참여했다. 다 같이 잘 살자는 공산주의가 나만 잘 살겠다고 인민을 학살했다. 마타벨레 학살 사건은 선우현이 공산주의의 본질에 회의를 품게 된 계기가 되었다.
카다피와 무가베는 절친 이다.
독재자들은 서로 통하는 법이다. 제5여단의 활약에 감명(?)받은 카다피가 무가베에게 한 수 가르침을 청했다.
무가베는 기꺼이 응했다.
군 참모총장인 콘스탄틴 치웬가 장군을 내세워 카다피와 비밀 군사 협약을 맺었다. 동 협약에 의해 짐바브웨의 제5여단 1개 대대가 리비아 혁명 수비대를 훈련시키기 위해 파병되었다.
선우현은 무가베의 야만적 독재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즉각 리비아 행을 자원했다. 카다피 역시 무가베와 다를 바 없는 독재자다.
소위 청소라 불리는 정적과 반대 종파를 척결하는 전투에 수시로 투입되었다. 리비아에서도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 그는 카다피가 지원하는 FAP에 군사 교관으로 건너갔다.
사상적 혼란을 겪는 가운데 피의 아수라장을 헤치고 살아 온 선우현이다. 그의 인생 여정 또한 블랙맘바못지 않게 기구했다.
아즈라일 블랙맘바를 만난 뚜빌리스 선우현, 모든 결과에는 원인과 과정이 있는 법이다.
피를 뒤집어쓰면 체력이 남아도 나른한 피로가 몰려든다. 블랙맘바는 바위에 기대어 두 다리를 쭉 뻗은 자세로 꾸벅꾸벅 졸았다.
타고난 싸이코패스가 아닌 한 홀로코스트는 육체적 피로뿐만 아니라 정신에 타격을 가한다. 무아지경의 율동을 보이던 댄스 가수가 무대를 내려오면 덜컥 쓰러진다. 그처럼 홀로코스트의 긴장감이 끝나면 근육이 올올이 풀어져 버린다.
칼끝처럼 날 섰던 신경이 풀어지면 만사가 무의미하게 여겨진다. 바로 옆에 머리가 부서진 시체와 목 잘린 시체가 나둥그러져 있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수분이 함유된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다.
‘에밀인가?’
개활지를 건너 포복으로 접근하는 물체가 기감에 잡혔다. 전진 속도로 볼 때 잔뜩 얼어 있다.
“에밀!”
“억, 블랙!”
블랙맘바가 부르자 에밀이 벌떡 일어나서 미니미 거총 자세로 쏜살같이 달렸다. 그의 머리엔 파트너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미친 듯이 달려온 에밀이 바위틈에 엄폐후 사주 경계에 들어갔다.
“끝났다. 삽질 그만해.”
에밀이 머쓱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그의 시선이 총탄이 스치고 지나간 뺨을 향했다.
“블랙, 다쳤나?”
“조금 긁혔다.”
“휘유!”
에밀은 전장을 돌아보고 한숨을 내 쉬었다.
지옥도가 따로 없다. 사방에 각양각색의 시신이 흩어져 있었다. 총격을 받아 뇌수가 흘러나온 시신은 그나마 깨끗했다. 목이 꺽인놈, 얼굴이 부서진 놈, 가슴이 내려앉은 놈, 목이 잘린 놈, 사방이 피투성이다. 몇 번째 보는 장면이지만 적응이 되지 않았다.
피를 머금은 대지와 바위가 푸르스름한 여명을 받아 섬뜩한 색채로 달려들었다. 에밀은 으스스 몸을 떨었다. 지옥이다. 달리 죽음의 천사, 전장의 악몽이 아니다.
“저건 뭐야?”
에밀이 기절한 선우현을 가리켰다.
“계륵이다”
“계륵! 그게 뭐냐?”
“그런 게 있다”
말하기도 귀찮다. 블랙맘바는 성의 없는 대답으로 끝을 맺었다. 피곤해 죽을 지경인데 조조와 양수의 고사를 언제 설명 한단 말인가.
에밀이 둘레둘레 고개를 돌렸다.
“중대장님과 마이크 중사는 어디 있나?”
“삐에프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블랙맘바가 머리를 갸우뚱했다. 마이크는 힘들지만 응급처치를 해준 삐에프는 자력 보행이 가능하다. 3km후방의 숙영지까지 걸어서 복귀할 수 있다.
“막사에 가서 찾아봐.”
턱으로 정찰대 막사를 가리켰다.
“뭣, 그럼?”
“생각대로다. 두 인간이 삽질을 한 거지.”
에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런 병신들, 주제도 모르고 아즈라일의 전투에 끼어들었단 말이야!”
에밀이 허둥지둥 막사를 향해 뛰었다. 짚이는 바가 있었지만 만사가 귀찮아 내버려 두었다. 삐에프는 마이크를 간호하느라 복귀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면 자책감 때문이거나.
“끝까지 덜 떨어진 새끼!”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잠에 빠진 평범한 인간이 자연동화술을 알아차릴 수 없다. 뒤따라온 삐에프와 마이크가 삽질을 하는 바람에 달밤에 죽어라 칼춤을 추고 뺨에 상처까지 생겼다. 자신은 무적이 아니다. 아무리 피지컬이 뛰어나다 해도 인간인 이상 총탄 몇 발 맞으면 죽는다. 위험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한다.
‘마이크는 죽었겠지.’
생기가 흐릿해진 상태로 볼 때 생존이 어려울 것 같았다.
블랙맘바는 거친 땅바닥에 네 활개를 펴고 드러누웠다. 눈꺼풀이 수미산 무게로 떨어졌다.
삼일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긴장의 연속이고 전투의 연속인 나날이 6주째다. 진화된 신체가 아니었으면 애저녁에 과로사 했을 강행군이다.
식욕, 수면욕, 성욕은 야생의 생존 본능이다. 식욕과 수면욕은 개체 생존 본능, 성욕은 종족 유지 본능이다. 개체 생존 본능이 당연히 종족 유지 본능에 앞선다.
일단 살아야 새끼를 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성욕은 참을 수 있다. 식욕은 죽을 각오를 하면 참을 수 있다. 수면욕은 죽을 각오를 해도 참을 수 없다.
깊은 물에 가라앉는 듯 전신이 나른해졌다.
살인에 무감각해졌다지만 정신적 데미지는 피할 길 없다. 문득 깨비텐이 행했던 전장의 세례가 기억났다. 새로운 뇌를 속이는 간단한 치유법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인간의 뇌는 신구(新舊)부분이 나뉘어 있다.
야만의 시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뇌는 개체 생존을 위해 살인 명령을 내린다. 문화 시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뇌는 동족 살해를 거부한다. 내재된 문화적, 도덕적, 윤리적 의식이 끊임없이 살인을 거부한다. 전장의 정신적 피로는 야만과 문화의 충돌에서 온다. 그 도피처가 잠이다. 블랙맘바는 땅바닥에 누운 채 코를 골았다.
“몽 디우 쎄 땅크화이아블르!(세상에, 믿을 수가 없군!)”
피바다가 된 현장을 목격한 발부아와 셍티엥, 브로닌, 막심이 하나같이 비명을 질렀다.
가슴이 빠개지고, 사지가 꺾이고, 머리가 터지고, 목이 잘린 시신이 사방에 널렸다. 그들이 입을 딱 벌린 반면 깨비텐과 벨맨, 장쒼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죽음의 천사가 날뛰는 곳이 바로 게헨나다. 문제는 블랙맘바의 안전이다.
“블랙이다!”
벨맨이 피투성이 혈구를 가리켰다.
화들짝 놀란 깨비텐과 장쒼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블랙, 다쳤나?”
“으흐흐, 펑요우!”
장쒼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만하시오. 와킬은 잠이 들었소.”
옴부티가 장쒼을 말렸다.
“뭐라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자는 사람이 어디 있나?”
“와킬은 늘 그랬소.”
늘 그렇듯 블랙맘바를 향한 옴부티의 믿음은 종교만큼이나 굳건했다.
“왜이리 시끄러워!”
블랙맘바가 눈을 뜨고 버럭 소리 질렀다.
“헉!”
놀란 장쒼이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벨맨이 득달같이 블랙맘바에게 달라붙었다.
“정말 멀쩡하구먼.”
벨맨이 허탈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뺨에 난 상처 외에는 긁힌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놈은 역시 인간이 아니다.
“내상은 없나?”
“농 쁘로블램. 피곤한데 왜 잠을 깨워.”
“허허, 나 원!”
블랙맘바의 역정에 동료들의 얼굴이 피에로처럼 변했다.
옴부티가 깨끗한 샬르와르와 간두라를 백팩에서 꺼냈다.
“와킬, 모양 사납습니다.”
“이곳에 시장이 있었나?”
썰렁한 농담에 옴부티가 비시시 미소를 지었다.
“목 없는 놈들에게 빌려 왔습니다.”
브로닌과 막심이 옴부티에게서 후다닥 떨어졌다. 셍티엥이 옴부티를 괴물 쳐다보듯 바라보았다.
“이놈은 뭐야? 멀쩡하네.”
깨비텐이 기절한 선우현을 발로 툭 찼다.
“나로치, 아니 쫄따구!”
블랙맘바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래도 동족인데 미꾸라지라고 부르기는 거시기 했다.
구분에 따른 대표성의 문제다. 한국인인 선우현을 나로치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그들의 의식엔 한국인과 미꾸라지라는 기명이 새겨진다. 프랑스인이 개구리라 불리는 것처럼 말이다.
세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쫄따구? 그게 뭐냐?”
“일단 살려 둔다.”
“그렇군. 일단 살려 둔다는 말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