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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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되지엠 랩4
1982년 8월,
차드 상황이 급변했다. 프롤리나트(FROLINAT, 차드 중북부 아랍계 군벌 연합)가 은자메나 봉쇄를 풀고 카넴주로 물러났다. 서방측의 석유 수입 중단과 무역 금지 압력을 버티지 못한 카다피는 차드 주둔군을 자국으로 철수시켰다.
카다피는 직접적인 군사력 투입을 자제했지만, 차드 중북부에 대한 야심을 포기하지 못했다. 은자메나에서 물러난 반군과 리비아군은 카넴주 북부와 티베스티 보루꾸주를 점거하고 기회를 노렸다.
프랑스 역시 어정쩡한 리비아의 태도로 인해 군사 행동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아차 하면 명분없는 개입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도덕 정치를 표방하는 미테랑은 욕먹기를 유난히 두려워하는 정치인이다.
결국, 파병 보류 명령이 떨어졌다. 프랑스는 군사 행동을 멈추고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되지엠 랩은 통상적인 훈련을 중지하고 출동 대기상태로 들어갔다.
되지엠 랩이 술렁였다. 전투력을 끌어올리기에 여념이 없던 용병들이다. 울화통을 터뜨리는 용병보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용병이 많았다. 차드 내전이 치열한 만큼 죽음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차드는 아프리카 중북부, 사하라 사막 이남에 자리 잡은 국가다. 국토는 한국의 12배인 128만㎢에 달하지만, 국토 대부분이 사헬과 사막, 산악지대로 황무지다. 인구는 농업 지대인 샤리강과 로곤강이 흐르는 남부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뚜렷한 산업은 없으며 목화가 주산품이다. 인구는 일천만으로 이슬람 50%, 기독교 35%, 나머지는 토속 종교를 믿는다.
차드는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독립은 새로운 고통의 출발점이 되었다. 내전으로 날이 밝고 내전으로 날이 졌다.
내전의 큰 줄기는 북부 아랍계 이슬람교도와 남부 수단계 비(非)이슬람 교도의 대립이다. 상황은 단순하지 않았다. 수많은 정치 파벌과 군벌이 뒤섞여 적. 아의 구분이 어려운 혼미한 상태가 지속하였다. 어제의 정부군이 오늘은 반군이 되는 상황이 연이어졌다.
차드 내전에 소비에트 연방과 미국, 리비아, 수단 등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끼어들어 더욱 복잡해졌다. 냉전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로 역외 파병에 극도로 신중해졌다. 대규모 파병을 하기엔 주위의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놈 솥뚜껑보고 놀라는 격이다.
무쌍은 김이 빠졌다. 일상으로 돌아간 그는 오금공 수련과 스나이핑 훈련에 집중했다. 파병은 취소가 아니라 보류다. 내일이라도 명령이 떨어지면 되지엠 랩은 출동해야 한다.
삐에프는 꼬레앙 팍에게 자유 훈련을 지시했다. 피지컬 차이 때문에 소대, 중대 훈련이 더 이상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쌍은 훈련 시간 절반을 스나이핑에 쏟아부었다. 친토산 사격장에 드라구노프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 무쌍은 성능이 뛰어난 저격 총을 마다하고 드라구노프를 고집했다.
1970년 후반부터 볼트 액션식 1MOA 이하급 고성능 저격 총이 쏟아졌다. 슈타이어사의 슈타이어SSG69, 레밍턴사의 M40, 발터사의 WA2000등 사거리와 정확도가 뛰어난 저격 총이 속속 개발되었다. 프랑스가 자체 개발한 FR-F1, 소위 에팔이라 불리는 저격총은 조악한 디자인과 독자적인 7.5mm탄 사용으로 인해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드라구노프의 정밀도는 2MOA다. 정밀도만으로 보면 저격총의 반열에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엄밀히 말하면 드라구노프는 정교한 저격총이 아니다. 돌격소총과 저격총의 중간 형태다. 개발된 지 20년이 지난 한물간 총기라는 평도 있다.
용병은 자신의 무기 구입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나은 무기는 생존에 그만큼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무쌍도 짠돌이지만 무기 구입에 돈을 아끼지는 않는다.
그가 드라구노프를 고집하는 이유는 내구성, 휴대성, 연타성 세 가지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세 가지 특성 모두가 스나이퍼와 관련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오히려 돌격 소총에 요구되는 특성이다. 무쌍이기에 필요로 하는 성능이다.
저격총은 정밀성에 치중한 나머지 내구성이 희생된다. 드라구노프의 내구성은 아까보와 함께 정평이 나 있다. 총기는 잔고장 없이 필요시 제 성능을 발휘해야 한다. 아무리 우수한 성능의 총기도 고장나면 몽둥이에 불과하다. 연사를 주특기로 하는 무쌍에 총기 내구성은 반드시 확보해야 할 요소다.
휴대성도 뛰어나다. 여타의 저격 총이 7kg~12kg임에 반해 드라구노프는 4.3kg에 불과하다. 돌격소총 무게와 큰 차이가 없다.
연타성은 최고 수준이다. 드라구노프 탄창은 10발과 20발 두 종류다. 소련 군부가 드라구노프를 소대 지원 화기로 채용하면서 20발 탄창을 개발했다. 무쌍이 홀딱 반한 부분이다. 저격총을 기관총처럼 사용하는 무쌍이다. 내구성, 휴대성, 연타성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장점이다.
드라구노프의 단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다소 낮은 2MOA 정밀도다. 그 정도는 자신의 공간지각력으로 충분히 보정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4배율 고정식 스코프다. 야간 스코프 기능을 제공하지만, 서방측 스코프와 비교하면 질이 많이 떨어졌다.
무쌍은 질 낮은 스코프에 핸디캡을 매기지 않았다. 무쌍의 눈은 인간과 다르다. 인간 시력의 8배에 달하는 매의 시력, 야행성 맹수를 능가하는 야안이 있다. 또한, 스승에게 전수받은 사기적 스킬인 관법이 있다. 스코프 성능에 연연하지 않는 이유다.
무쌍은 기꺼이 62,500프랑짜리 PSG1을 포기하고 4,200프랑짜리 드라구노프를 선택했다. 예로부터 뛰어난 무사는 자신의 칼과 소통한다고 했다. 무쌍은 당연히 그 말을 믿었다. 월송산 해골과 접촉한 당시에는 천지의 영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의 백은 특정한 사물에 깃들기도 한다.
인간의 염원은 간혹 놀랄 만한 현상이나 결과를 초래할 때가 있다. 수많은 생명을 끊은 칼에 원념이 깃들 듯이 훈련소에서 받은 낡은 드라구노프에도 수많은 원념이 서려 있었다.
혼이 윤회에 들어가면 껍질인 백은 천지자연 속에 녹아든다. 백과 분리되지 않은 오염된 혼의 찌꺼기가 원념이다. 즉, 백에 눌어붙은 혼의 파장이다.
실체를 잃은 원념은 생기를 가진 인간을 질투한다. 살아 있는 인간을 죽이려는 강력한 사념을 생성시킨다. 대표적인 원념이 지박령이고 물귀신이다.
무쌍은 좌도방 이능으로 얻은 기감, 이보, 화경의 능력을 무의식적으로 억제했다. 영이나 귀체에서 뿜어지는 사념과 접촉되면 피를 보고자 하는 욕구가 솟구쳤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사람과 부대끼는 것만으로 충분히 피곤하고 힘들었다. 실체 없는 영은 그의 관심 밖이었다. 제자의 상태를 알아본 스승께서 정심법으로 이능력을 봉인했다.
이능이 봉인되자 억제된 초지각 능력이 공간지각능력으로 전이되었다. 강력해진 염파가 레이더처럼 주위 사물의 움직임, 생기와 기척을 감지했지만, 본인은 그 본질을 알지 못했다.
무쌍은 파견대기 중에 드라구노프에 달라붙은 수많은 원념의 아우성을 들었다. 친토산에 올라 코르시카 특산의 멧토끼 사냥을 할 때다.
삐에프가 무쌍을 호출했다.
“꼬멍 딸레 부우?(어떻게 지냈나?)”
“싸바 비앙!(잘 지내!)”
삐에프를 대하는 무쌍의 태도가 퉁명스러웠다. 원래는 싸바 비앙 에부? 라고 대답해야 한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에 부’가 빠졌다. 심기 불편이다.
무쌍은 페디투 캐나룽 사건으로 인해 삐에프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한 방 먹이고 싶지만 계급이 깡패다. 눈치를 챈 삐에프도 더 이상 페디투 캐나룽을 써먹지 않았다.
“펠리씨따씨옹(축하한다). 상부에서 콜네임이 내려왔다. 블랙맘바다.”
“블랙맘바?”
무쌍은 어리둥절했다. 레종 에뜨랑제는 익명을 허용한다. 신분을 드러내기 싫은 용병이 익명 즉, 별명을 쓴다.
자신은 익명을 신청한 적이 없다. 콜네임은 또 무엇인가?
“석 달 전에 연대장님이 국방부에 콜네임을 신청했다. 팍은 오늘부터 블랙맘바로 불린다.”
“알겠습니다.”
무쌍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석 달 전 연대장과 고급 장교들, 나이 든 무관이 참석한 가운데 스나이핑 시연을 한 기억이 났다. 설명 없이 중대장에게 불려 가서 5시간 동안 친토산에서 생고생을 했다.
800m 거리에서 살아 있는 시궁쥐 열 마리 스나이핑, 1분 이내에 600m 밖의 30개 정지 표적 스나이핑, 가상의 적을 상정한 이동 표적 스나이핑등 갖가지 테스트기 이어졌다. 8km 떨어진 친토산 산장에 숨겨진 탄알 한 발을 찾아오라는 별스런 테스트도 있었다.
마지막 테스트는 11공정 여단의 코만도 팀 30명으로 이루어진 대항군을 클레어 시키는 모의 전투였다. 5시간 동안 지루한 테스트를 받은 결과가 블랙맘바라는 콜네임인 모양이다. 테스트는 퍼펙트로 끝났다. 연대장이 테스트마다 상금을 500프랑씩 걸었기 때문이다. 수전노 무쌍이 돈을 마다할 리 없다.
테스트가 끝난 다음 날 입이 찢어진 연대장이 아구리아 해를 건너서 본토인 툴룽의 식당에서 크게 한턱냈었다.
무쌍은 심상하게 받아들였다. 콜네임이든 콜택시든 조직이 효율적으로 뽕빨을 빼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회사에서 직급을 높여 주듯이 말이다.
다만, 블랙맘바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입안이 시커먼 흉측스러운 놈, 개체 수가 많지 않은 아프리카의 대형 독사다. 이놈은 동일 목표를 열 번이나 연속 깨무는 공격적인 독사다. 코브라의 20배에 달하는 치명적인 독성을 가졌고, 시속 20km로 사람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블랙맘바의 공격을 받은 사람은 거의 사망했다고 봐야 한다.
블랙맘바는 공격성, 독성, 속도, 목표를 끝까지 공격하는 집요함으로 볼 때 현존 최고의 독사다. 크기도 성체가 5m에 달하는 대형이다. 개체 수가 코브라처럼 많았다면 지상 최악의 치명적인 생물로 자리매김했을 놈이다.
프랑스 국방부의 콜네임은 영국 정보부 MI6의 007과 전혀 다른 개념으로 운용된다. 007이 외무부 소속의 첩보원이라면 콜네임은 국방부 소속 비밀 전사다.
기존의 군인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일에 투입되는 초인이 콜네임이다. 국방부가 보유한 콜네임은 특급 보안 사항이다. 콜네임은 연대장급 이상의 고급 장교가 국방부에 신청할 수 있다. 콜네임 요원은 군단급 사령관과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DGSE가 검증 절차를 밟는다.
콜네임을 받는 순간 당사자는 특별관리 대상이 된다. 콜네임외의 모든 인적 사항이 특급 비밀로 취급된다. 블랙맘바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군부와 정보부 최상층이 주시하는 인물이 되었다.
삐에프는 기분이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보물도 이런 보물이 없다. 치명적인 사격 실력, 동체 시력이 따라 잡지 못할 정도의 빠른 움직임, 10발들이 탄창을 5초 내에 비우는 연타 실력,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 꼬레앙 박은 블랙맘바이상으로 치명적인 생물이다.
“콜네임의 의미가 뭐냐?”
“콜네임은 특수 작전 능력을 갖춘 최고의 군인에게 주어지는 암호명이다. 현재 레종 에뜨랑제에서 콜네임을 받은 대원은 팍이 유일하다. 연대장님이 설명해 주시겠지만 팍의 모든 기록이 지워지고 블랙맘바란 이름만 남는다. 지금부터 팍의 신상은 DGSE((Direction Generale de la Securite Extenieure, 안전총국. 국내외 정보와 방첩을 담당하는 정보기관.)가 관리한다.”
무쌍은 떨떠름했다. 아무리 까라면 까는 군대지만 지놈들 멋대로 아버지가 지은 이름을 지우고 아가리 시커먼 흉측한 뱀 이름을 떠억 붙였다. 별로 달갑지 않았다.
열 살 때 백부 집에서 잡은 황구렁이를 팔아먹은 뒤로 온갖 고난이 끝없이 따라다녔다. 괴물 구렁이의 습격이 방태산에서 최도식과 얽히는 악연의 시발이었다.
사이비 교주이자 닌자 술사인 사이 도지쿠가 떠오르자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렸다. 바짝 바른 몸, 살 한 점 없는 강파른 얼굴, 돌출된 광대뼈, 쭉 째진 눈, 번들거리는 안광, 얇은 입술, 왼쪽 입술 끝이 슬며시 비틀려 올라갈 때 폭발하는 광기, 무쌍은 아직도 최도식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에 또 뱀이란다. 전생에 뱀과 원수를 졌는지 콜네임마저 뱀 새끼 이름으로 받았다. 황구렁이의 저주인가? 하고 많은 별칭도 많은데 블랙맘바가 무엇인가.
“무엇이 달라지나?”
삐뚜름한 어조로 물었다.
“봉급 액수만큼 수당이 나온다.”
삐에프는 수당부터 거론했다. 팍은 수당이 많다는 이유로 되지엠 랩을 지원한 꼴통이다.
“오우, 앙크야빌레!”
블랙맘바가 된 무쌍이 탄성을 터뜨렸다. 삐에프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역시 단순한 놈이다. 돈만 많이 주면 불만이 없는 놈이다.
어려서부터 눈치로 단련된 무쌍이다. 중대장이 속물, 단순한 놈이라고 비웃는 속마음이 읽혔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도 좋다. 헤밀턴이 말하길 약간 멍청한 놈 취급을 받으면 조직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다고 했다.
“콜네임을 받으면 기존 군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등병인 블랙맘바가 아쥐당(상사)을 구타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거 더 좋다. 깨비텐(캡틴, 대위)을 구타해도 되나?”
음흉한 시선으로 삐에프를 쓰윽 째려보았다. 비웃은 얼굴에 대한 보복이다.
“흠 흠, 위관급 이상 장교를 구타하면 쌍방이 재판받는다. 명령체계가 달라지지는 않지만, 특수한 작전 명령은 DGSE와 국방부에서 직접 하달될 경우가 있다. 내가 아는 수준은…….콜네임에 대해서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 연대장님이 직접 알려주실 것이다.”
무쌍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작전에 투입되지만, 돈을 더 많이 준다. 말썽을 피워도 대충 무마된다. 비밀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신분을 드러내선 안 되고, 블랙맘바라는 콜네임으로만 움직인다. 충분히 이해했다.”
“머리가 좋군. 흐흐흐!”
삐에프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메흐씨 드 부 도네 떵 드 뻰느(수고 많았다.). 즈 부 쒸 흐드바블르(신세를 많이 졌다.)”
삐에프의 얼굴이 환해졌다. 블랙맘바는 은근히 뒤끝이 강한 꼴통이다. 콜네임 부여 절차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되었다. 거부하거나 따지고 들면 답변이 궁해진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자네는 오늘부터 모든 훈련에서 열외다.”
“현재도 열외다.”
“그건 비공식적인 열외다. 콜네임은 훈련도 본인이 알아서 한다. 단체 훈련에 참여하든 말든 엿장수 맘대로란 소리다.”
“그거 아주 좋다.”
“오늘부터 친토산에 올라가라.”
“붉은 사슴이라도 한 마리 잡아 오라는 건가?”
“그렇다. 사냥해라.”
“사냥? 동물보호단체가 나를 오븐에 처넣고 스위치를 올릴 텐데.”
블랙맘바가 질색했다. 동물보호라면 극성을 떠는 나라가 프랑스요 프랑스인이다. 웃기게도 휴가철에 수천수만 마리의 애완동물이 굶어 죽는 황당한 나라도 프랑스다.
프랑스인은 분수에 오줌을 싸는 어린애를 향해 눈을 흘기면서 그 옆에서 똥을 질질 싸지르는 견공을 탓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다. 그 똥을 치우는 사람도 없다. 공무원들이 없는 별도로 치운다.
“곧 파병 명령이 내려온다. 그딴 걱정하지 말고 최고의 감각을 유지해라.”
“알았다.”
박무쌍이란 이름을 지우고 블랙맘바가 된 그는 살아 있는 동물을 표적으로 실전 훈련에 들어갔다.
친토산에는 몸무게 100kg이 넘는 붉은 사슴이 많다. 사슴은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넘버원 사냥감이다. 장대한 체구, 뜨거운 피, 아름다운 뿔은 사냥꾼들을 환장하게 만드는 아이템이다. 그리고 사슴 가죽은 뛰어난 스웨이드(고급 가죽의 한 종류) 재료다.
인간의 탐욕은 적당히를 모른다. 19세기부터 친토산 붉은 사슴은 무자비하게 사냥당했다. 친토산 붉은 사슴은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사냥감에서 벗어났다.
당국은 강력한 공권력을 동원해서 불법 수렵을 막았다. 동물보호단체가 눈에 불을 켜고 밀렵을 감시하고, 밀렵꾼을 고발했다. 붉은 사슴은 인간의 변덕을 레버리지 삼아 다시 친토산의 명물이 되었다.
대형동물은 사냥꾼의 로망이다. 장대한 체격의 붉은 사슴이 가지 뿔을 앞세우고 숲속을 달리면 사냥 본능이 폭발한다. 블랙맘바도 몇 번이나 스코프에 들어온 붉은 사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19세기가 아니라 20세기다. 대형 사냥물은 사냥 후 처치도 곤란하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시비를 걸면 난처해진다. 삐에프가 문제없다고 했지만 코르시카 인은 외부인에게 지극히 배타적이다. 분란을 일으켜 좋을 게 없다. 어차피 목적은 훈련이다. 감각 수련에는 멧토끼나 다람쥐 같은 작고 빠른 동물이 제격이다.
450m 전방, 재수 없는 멧토끼가 드라구노프 스코프에 잡혔다. 녀석은 굴참나무 군락에서 먹이 활동에 분주했다. 햇빛이 교목 가지 사이를 창처럼 뚫고 내려왔다. 수풀과 관목이 햇빛을 받아 줄무늬를 만들었다. 다갈색 토끼는 환경과 완벽한 동화를 이루었다. 일반인은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은폐 스킬이다.
타깃은 지름 100mm 토끼 머리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스코프가 비 오는 날의 차창처럼 뿌옇게 흐려졌다. 급히 사격 자세를 풀고 스코프 렌즈를 확인했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 다시 사격 자세를 잡고 스코프를 들여다보는 순간 무쌍은 화들짝 놀랐다.
웬 노인분이 땅에서 솟아난 듯 토끼가 있던 자리에서 어정거렸다. 그는 식겁을 했다. 렌즈가 흐려지지 않았으면 격발했다. 위치상 토끼가 아니라 노인이 총에 맞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노인은 등에 망태기를 지고 있었다. 대나무로 엮어 만든 망태기에는 버섯이 삼 분의 일쯤 담겨 있었다. 버섯을 채취하려고 산에 오른 코르시카 주민이다.
이곳 일대는 되지엠 랩의 훈련장으로 국유림이다.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다. 노인이 경계 라인을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노인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군사 지역이니 나가라고 설득할 자신이 없다. 당장 외국인 밀렵꾼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코르시카 인은 중세부터 수차례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자연 배타적 성향이 강해졌다. 이들은 프랑스 본토인들도 외국인 취급한다. 그가 눈에 띄면 노인이 당장 꼬훅스 자연공원 당국에 신고해 버릴 것이다. 문제 될 거야 없지만 번거러움은 딱 질색이다.
이곳저곳을 쑤석거리던 노인이 숲 안쪽으로 사라졌다. 토끼도 사라져 버렸다. 퍼뜩 토끼가 있던 곳에서 좌측으로 15m 떨어진 곳을 주시했다. 그냥 느낌이 왔다.
그 느낌은 자신의 감각이 아니었다. 누군가 머릿속에다 그곳을 보라고 충동질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곳에 당초 표적이 되었던 멧토끼가 나타났다.
불쌍한 토끼를 향해 조준선 정렬을 마쳤다. 스코프 십자선에 걸린 토끼가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기겁을 한 블랙맘바가 다시 스코프를 들여다보았다. 토끼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관법을 운용하면 물체를 확대해서 볼 수 있다. 적절한 용어가 없어서 볼 수 있다고 표현하지만 보는 것이 아니다. 느끼는 것이다. 눈이라는 시각 기관을 통하지 않고 뇌가 직접 본다.
지금은 토끼가 실제로 눈앞에 나타났다. 자신의 관법과 상관없이 일어난 현상이다. 다시 한 번 토끼 머리를 십자선에 넣고 격발 순서에 들어갔다.
토끼가 망원 렌즈로 당긴 것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뿌옇게 흐려진 안경을 거즈로 깨끗이 닦아냈을 때의 기분과 같았다.
PSO-1M2광학 스코프는 4배율의 고정 조준경이다. 지금은 월남전 시절이 아니다. 16배율 가변형 제품까지 출시되었다. 4배율은 저격총의 스코프로는 턱도 없이 낮은 수준이다.
450m 살짝 넘는 거리다. 바람에 날리는 토끼털이 선명히 보였다. 4배율로는 말도 안 되는 해상도다. 12배율로도 그런 미세한 현상까지 보기 어렵다.
매의 눈을 가진 무쌍은 3~400m 표적에 스코프를 쓸 필요도 없다. 보이는 현상은 자신의 시력이나 스코프 성능과는 관련이 없는 현상이다.
확인이 필요했다. 토끼와 거리는 465m, 표적은 오른쪽 뒷발 발가락이다. 꽝- 토끼가 펄쩍 뛰어오르는 순간 머리를 쏘았다. 토끼 머리가 터져 나가며 피가 쫙 튀었다.
표적을 확인했다. 블랙맘바의 표정이 묘해졌다. 불쌍한 토끼의 뒷발 발가락이 사라졌다. 아무리 자신이 갓 스나이퍼라고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움직이는 동물, 그것도 손톱만 한 토끼 발가락을 465m 거리에서 정확히 명중시켰다? 깔비의 카페에서 허풍 칠 때 써먹기도 힘든 황당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