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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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사헬의 밤하늘2
“후, 지워버렸으면 깔끔했을 텐데 이젠 어쩔 수 없게 됐어. 악령의 저주를 피할 방법을 강구해 봐. 나는 국방부 늙은이들과 의논해 봐야겠어.”
축객령을 내린 보니파스가 골루즈를 세 대째 피워 물었다.
‘젠장, 나도 악령에게 바치는 희생물인가! 망할 서펀드, 비린내 나는 담배나 작작 피우지.’
미구엘은 어질 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고 집무실을 나섰다.
“아라고! 빌어먹을 아라고 프로젝트, 빌어먹을 건달 새끼!”
보니파스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빨았다. 흑인 소년들의 겁에 질린 커다란 눈망울이 새삼 양심을 쿡쿡 찔렀다.
아라고 프로젝트는 그가 자책할 일이 아니다.
나폴레옹 3세의 아집이 만든 비극이다. 프랑스 근대사에서 나폴레옹 3세, 루이 나폴레옹만큼 운 좋고 희극적인 인물도 없다.
루이 나폴레옹은 따지자면 나폴레옹의 조카다. 나폴레옹 황제의 동생 루이와 조세핀 왕후의 딸 오르탕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루이다. 나폴레옹 본인 기준으로 보면 조카, 마누라 기준으로 보면 손자인 셈이다. 한국이라면 멍석말이를 당할 사건이다.
룸펜으로 떠돌던 루이가 권력을 쥐게 된 시대적 상황도 극적이다. 혁명과 노동자를 탄압하는 공화정에 지친 민중은 나폴레옹을 그리워했다. 농민은 사회주의자들을 싫어했고, 노동자들은 공화정의 실력자 카레냐크를 싫어했다. 그 틈에 루이 나폴레옹이 어부지리로 대통령이 되고, 제위에 올랐다.
건달에 불과했던 루이 나폴레옹이 1세 황제와 같은 카리스마와 능력이 있을 리 없다. 엉터리 나폴레옹이라는 조소와 매도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해외로 세력 확장을 시도하고 쉼 없이 전쟁을 일으켰다.
아프리카 식민지 전쟁, 인도차이나 전쟁, 크림 전쟁을 일으켜 국제적 고립을 초래했다. 멕시코 출병으로 국고를 탕진하고, 프로이센과 전쟁을 벌여 포로가 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1866년에는 프랑스 선교사 살해를 빌미로 조선에도 싸움을 걸었다. 이것이 병인양요다.
1865년 피레네 산맥의 동사면 샤를르시 또따벨에서 특이한 석회 동굴이 발견되었다. 특이하다는 말은 이곳에서 고대 인류로 추정되는 유골 화석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아라고 동굴은 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왕실 정보부는 다른 의미에서 아라고 동굴에 주목했다. 동굴에 들어간 마을 사람 몇몇이 신체가 기괴하게 비틀려 죽었던 것이다.
왕실 정보부는 즉각 동굴을 폐쇄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3일후 동굴에서 십대 중반의 소년이 튀어 나왔다. 호랑이 같은 기세로 마을을 덮친 소년이 지옥을 연출했다.
담벼락이 무너지고, 현관문이 박살났다. 그 무엇도 소년을 막지 못했다. 소년은 야생 곰처럼 힘세고 호랑이처럼 날렵했다. 인간과 가축을 불문하고 무차별로 학살당했다.
한적한 시골마을 또따벨은 일순간에 피바다가 되었다.
출동한 군인들이 집중사격으로 괴물 소년을 사살하기까지 무려 120명의 주민이 희생되었다.
가톨릭교회에서 또따벨을 사탄의 땅으로 지정하고 출입을 금지했다. 왕립 정보부의 보고를 받은 루이 나폴레옹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무서운 결심을 했다. 골치를 썩이는 놈과 무시하는 놈은 지워버리면 된다.
그는 아라고 동굴의 비밀을 파 헤쳐서 적을 말살할 강력한 칼을 길러내기로 결심했다. 아라고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과시증후군 환자인 루이 나폴레옹다운 생각이다.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잡혀 온 수많은 소년이 아라고 프로젝트의 실험 재료로 죽어갔다. 동굴에 감금된 소년들은 아무런 변화가 없거나 고통스런 죽음을 당했다.
1870년, 루이 나폴레옹은 프로이센과의 전투에 패한 후 영국으로 망명했다. 숙적 비스마르크에게 뮤턴트 암살자를 보내겠다는 황당한 계획도 폐기되었다.
아라고 프로젝트는 나폴레옹 3세가 망명한 후에도 비밀리에 계속되었다. 1910년, 왕립학회는 유골에 침착된 보이지 않는 특이한 물질이 사망 원인임을 밝혀냈다.
특이 물질이 수분을 흡수했을 때 활성화되고, 생체와 접촉시 감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엔 바이러스 개념이 없었다. 학회는 알 수 없는 무엇에 엑시타(excita, 깨우는 것)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해 겨울, 빈 바카르라는 이름의 소년이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파리 뒷골목을 전전하다 납치되어 실험에 투입된 집시 소년이다.
3공화국 정보부는 기억을 잃은 소년을 아싸신으로 키웠다. 파란트로푸스 인자가 발현된 바카르는 무섭게 변했다. 말보다 빨리 달리고 황소보다 힘이 강해졌다. 반면에 지능은 갈수록 퇴보했다.
파란트로푸스의 특징인 강력한 골격 때문이다.
두개골이 두꺼워지면서 새로운 뇌를 짓눌러 지능이 떨어지고 이상 행동이 나타났다. 지능이 퇴화된 바카르는 다루기가 쉬웠다. 1912년부터 5년간 공산주의 지도자들과 반체제 인사들이 원인 모르게 살해되는 사건이 잦아졌다.
정보부가 쾌재를 불렀지만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자신이 인간과 다른 돌연변이임을 자각한 바카르는 통제 불능의 존재가 되었다. 결국 바카르는 왕실 정보부의 관리자들을 살해하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10년 후 희대의 살인마 오셀롯이 등장했다.
1950년 DGSE의 전신인 SDECE가 바카르, 즉 오셀롯을 추적하면서 아라고 프로젝트가 재개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카르 이후 뮤턴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1980년 DGSE 기술부가 SDECE의 아라고 프로젝트를 이어받았다. 프로젝트의 실험물 조달 책임자가 바로 보니파스다. 그는 아프리카를 재료 공급처로 계속 활용해 왔다.
보니파스는 절반 남은 골루즈를 신경질적으로 비벼 껐다. 그 잔해가 마치 고통 속에 죽어간 아이들 같았다.
“후, 국가를 위해 일하다 보면 개인의 희생은 어쩔 수 없지.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지옥에 가도 좋아.”
그는 머리를 흔들어 상념을 털었다. 칸마에게 던져줄 희생물 리스트가 급했다.
보니파스의 행태는 조직의 권력에 매몰된 인간들이 흔히 보이는 모습니다.
조직과 국가를 위해서라고 자가 세뇌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의 사유화에 다름 아니다. 목적은 권력 유지와 자신의 안전 확보다. 본인조차 진실을 모른다는 점이 불행이다.
미구엘에게는 자세한 언급을 피했지만 사헬에서 보인 블랙맘바의 위용은 충격적이었다. 블랙맘바는 프랑스가 긴 세월동안 열망해 온 뮤턴트다. 그것도 완성품이다. 블랙맘바가 원한을 품고 군부 주요 인사들을 척살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맹수는 두렵지 않지만 생각하는 맹수는 두렵다.
보니파스는 자신의 역량을 총 동원해서 블랙맘바를 달랠 생각이다.
희생물만으론 부족하다. 그는 적색 전화기를 들고 도청방지 버튼을 눌렸다. 겁을 줘야할 늙은이들의 리스트가 주르륵 머리를 스쳐갔다.
국방부 장관 제르맹, DGSE총국장 라고스, 외인부대 사령관 디망쉬 중장, 작전참모장 몽탕 소장. 11공정여단 참모장 땅쉬 대령, 국방부 전략 자문관 페롱.
다이얼이 계속 돌아갔다.
길고긴 통화를 끝낸 보니파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문화부 장관 자끄 랑이 문제군.”
희생물과 금전적 보상에 이어 세 번째로 던져주는 먹이는 레종 도뇌르 상급 훈장이다. 외국인인 블랙맘바에게 코망되르는 턱도 없다고 펄펄 뛸 자끄 랑이 눈에 선했다.
‘가만, 자끄 랑이 게이 애인을 숨겨놓았지.’
보니파스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장쒼 차량 문제없나?”
“없습니다.”
“벨맨 마이크 수술은 어떻게 되었나?”
“잘 끝났습니다. 셍티엥과 에밀의 피를 쪽쪽 빨아 넣었습니다.”
“망할 새끼, 중사나 되는 놈이 말이야.”
깨비텐이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마이크를 멤버에 끼워 넣은 인간이 삐에프다. 쌍으로 누워있는 두 진상의 꼴이 가관이다. 다급한 판에 웬 혹이란 말인가.
깨비텐이 버럭 소리 질렀다.
“장쒼, 빨리 배급해. 뱃가죽이 등가죽에 들러붙었다.”
“위!”
장쒼이 씨레이션을 2개씩 배급했다.
용병들은 걸신들린 듯 씨레이션을 흡입했다. 4일만의 식사다. 장쒼과 에밀은 죽을 때까지 전투식량 맛을 불평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와킬, 라면을 끓일까요?”
‘이 영감은 지구 최강의 집사일세!’
블랙맘바가 옴부티를 빤히 쳐다보았다. 얼마나 학습 능력이 빠른지 자신의 속내를 귀신처럼 들여다본다.
“피를 너무 많이 덮어썼다. 느끼하고 역해 죽겠다. 칼칼한 뜨거운 국물이 그립던 참이다.”
“그러실 거라 짐작했습니다. 저도 좋습니다.”
한국산 라면을 맛본 옴부티는 구수하면서 화끈한 맛에 매료되었다. 그는 라면 예찬론자가 된지 오래다.
옴부티가 김이 풀풀 솟아오르는 커다란 반합을 들고 왔다.
“와킬, 드시지요.”
“와우, 냄새 죽인다. 같이 먹자고.”
선우현은 머리가 어질 거렸다.
‘이거이 무시기 일이지. 요상한 늙다리의 정체가 도대체 머임둥?’
옴부티라는 늙다리가 개털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영락없는 하인이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자신은 쫄따구고 영감은 하인이다.
앞에 서야할지 뒤에 서야 할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늙은 아프리카산 영감과 서열 다툼을 하게 된 신세가 처량해졌다.
‘에이 모르겠슴둥.’
그는 더 이상 생각지 않기로 했다.
블랙맘바가 멀거니 서있는 선우현을 불렀다.
“어이 빨갱이, 같이 먹자고.”
“빨갱이 소리 그만하기요. 내래 선우현이우다.”
블랙맘바가 과장되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나미르가 아니었어?”
“내래 얼굴이 없슴메.”
“나로치 얼굴이야 본래 없지. 미꾸라지 얼굴은 본 적도 없고, 있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거든. 사실은 죽일지 살릴지 결정을 못해서 이름을 확인하지 않았어.”
‘무서운 새끼!’
선우현은 가슴이 서늘했다. 치기어린 모습에 깜박했다. 이름을 모르면 죽일 때 거리낌이 없다는 이야기다. 눈앞의 인간이 죽음의 천사임을 새삼 깨닫게 된 선우현이다,
“빨갱이 양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어. 복잡한 이야기는 천천히 하자고.”
“내래 선우현이라 불러주기요.”
블랙맘바가 재차 재촉하자 선우현이 자리를 차고앉았다.
땅개로 군대를 다녀온 어둠의 자식들은 안다.
사격 훈련이 끝나고, 진지 보수 작업이 끝나고, 사계 청야 작업이 끝나고, 동기별 한 따가리를 끝내고, 철모나 반합에 끓인 라면 한 젓가락을 입안에 걸어 넣을 때 만들어지는 위대한 스토리를…….
라면은 진순이 대구에서 국제 특송으로 보내주었다.
라면 값보다 운송비가 열배는 더 들어간 값비싼 물건이다. 블랙맘바는 인정이 밥상머리에서 나온다는 아버지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인간이다.
국내 최초의 라면은 1963년도에 출시된 삼양 라면이다. 롯데와 농심이 잇달아 라면 시장에 뛰어 들면서 한국은 라면 공화국이 되었다.
블랙맘바도 라면을 즐겨 먹는 편이다.
오죽하면 아프리카 오지까지 라면을 배달시켰겠는가!
그것도 자비를 들여서 사헬에 투입되는 보급품 목록에 끼워 넣었다.
선우현이 블랙맘바 옆에 끼어 앉으려하자 옴부티가 슬쩍 밀어냈다. 그리고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텃세를 당한 선우현은 쓴웃음을 짓고 자리를 바꾸었다. 늙다리 영감이 만만치 않았다.
라면을 맛본 선우현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동무, 이거이 남조선에서 만든 거임메?”
쫄깃하고 구수한 면발, 매콤하고 시원한 국물, 라면의 위엄에 선우현은 감동했다.
“고럼, 차드에서 만들었겠냐. 상표를 바라. 일본 라면은 택도 없능기라. 느끼하고 비싸기만 해. 인간아 쫌, 국물 다 마시뿌마 우야노.”
“쩨쩨하게 굴지 말라우, 내래 처음 먹지만 서두 동무는 일껏 처먹지 않았슴메.”
“아이구 이런 걸베이 자슥하고는, 장쒼 스테이크 한 팩 던져라. 뱃구레를 채아 나야 힘을 쓰제.”
“길티, 괴기를 먹어야 쫄따구 힘이 남메. 앗, 가열차게 긁어가면 내래 어케 하란 말임둥.”
젊고 늙은 한국산 인간이 티격태격하며 라면 국물 쟁탈전을 벌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곳은 야만의 땅 사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