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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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사헬의 밤하늘7
“무의무욕한(의지 없는) 무재간둥이 새끼, 딸딸이(무전기)도 없는데 전통병이 무슨 필요 있슴둥.”
선우현이 대검을 들고 바짝 다가서자 셍티엥이 시퍼레진 얼굴로 물러섰다.
“이게 무슨 짓이야. 내가 어쨌다고?”“사막에서 하루도 살아남지 못할 무재간둥이가 일껏 구해준 블랙맘바를 탓함메. 생각할 줄 모르는 대갈통은 붙어있을 필요가 없지비. 내래 골통을 뚝 떼어서 무진대(썩은 통나무)를 만들어 주갔어.”
선우현의 쭉째진 눈이 미친놈처럼 희번덕거렸다.
“미친놈, 두고 보자.”
살벌한 기세를 감당하지 못한 셍티엥과 막심이 슬쩍 자리를 피했다. 미친개는 우선 피하고 봐야 한다.
깨비텐의 눈살이 잔뜩 찌푸려졌다. 바깥의 다툼이 고스란히 들렸다. 용병치고 거칠지 않은 놈이 없다. 다투고 주먹질하는 정도야 예사다.
문제는 갈등이다. 갈등은 불신과 불만에서 싹 튼다. 생사의 간극을 수없이 넘긴 라텔팀 대원들의 친밀도는 형제 이상이다. 아니 살아남은 놈들은 전부 블랙맘바의 꼬붕이나 마찬가지다.
장쒼과 에밀은 삐에프가 끌고온 구출팀을 원망하고 있다. 구출은커녕 혹덩어리가 되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인식이다. 블랙맘바가 구출팀 때문에 무리해서 탈이 났다고 여긴다. 두 사람에게 블랙맘바가 중요할 뿐 중대장은 아무것도 아니다.
셍티엥과 막심은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하러 온 동료를 홀대한다고 섭섭해 한다. 잠복해 있던 갈등이 블랙맘바의 부재로 노출된 것이다.
“벨맨, 바깥의 소란이 들리나?”
“정신적 지주의 부재가 불러온 갈등이죠. 단세포 인간들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기야 하지.”
고개를 끄덕이는 벨맨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블랙맘바가 일어나면 흔적이 없어질 갈등이지만 블랙맘바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 문제다.
“블랙, 제발 벌떡 일어나게.”
깨비텐의 속이 숯덩이가 되었다.
“내미럴, 주인이 오락가락하는데 종간나 하인새끼는 어딜 간 거이가?”
“종간나 하인새끼 여기 있다.”
지치고 음울한 음성이 등 뒤에서 들렸다.
“헉, 옴부티!”
놀란 선우현이 고개가 부러져라 뒤로 돌렸다. 천하에 무서울 것 없이 막 나가는 그도 늙은 하인은 껄끄러웠다.
이름 모를 풀을 한 다발 손에 든 옴부티가 우멍한 눈으로 선우현을 노려보았다.
“늙은 하인이 와킬의 약을 찾아 어둠속을 헤맬 때 젊은 쫄따구가 쌈질이나 하고 있구먼. 쯧쯧!”
졸지에 철없는 싸가지가 된 선우현의 얼굴이 썩어문드러졌다.
“풀 쪼가리 뽑아다 어따 쓸 거임메?”
옴부티는 대답도 없이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내미럴, 하인이 벼슬임둥!”
선우현이 힘빠진 사설을 늘어놓았다.
“그게 뭔가?”
벨맨이 물었다.
“후블러브다. 용케 찾았다.”
“그걸로 뭘 하게?”
“와킬에게 먹일 거요.”
벨맨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그는 의사다. 당연히 아프리카의 이름 모를 풀 따위는 처방전에 들어있지 않았다.
“안 돼, 성분도 모르는 식물을 환자에게 쓸 수 없소.”
“우리 부족의 비전이요.”
“고려 인삼이라도 안 돼.”
“그럼 저대로 둘 거요. 진통제와 해열제도 듣지 않고 원인도 모른다며?”
옴부티가 발끈했다.
“어쨌든 정체불명의 식물을 먹일 수는 없소.”
벨맨도 물러서지 않았다.
“비켜, 시간 없소. 당신에겐 동료지만 내게는 주인이요.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의 방법이 있소.”
옴부티가 벨맨을 밀쳐내고 반합에 후블러브를 달였다. 맵싸한 향기가 퍼질 즈음 품에서 마른 뿌리를 몇 개 꺼내서 추가했다.
후블러브는 사막 부족이 고대부터 치료 주술에 사용해온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한국의 산삼과 비슷한 대우를 받으며 실제로 마취 성분과 자양강장 효과가 좋은 약용 식물이다. 투아레그족은 후블러브를 특히 신성시하며 엑기스를 뽑아내는 비전의 방법이 있다.
묘한 향기가 나는 걸쭉한 즙이 만들어졌다. 옴부티는 달인 즙을 블랙맘바에게 먹였다.
“와킬, 당신은 강합니다. 알라와 투아레그 조상의 가호가 와킬에게 임할 것입니다.”
옴부티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길고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호모 파란트로푸스의 세포는 호모 사피엔스의 세포와 질적으로 다르다. PGC-1으로 알려진 마스터 유전자가 활성화되어 미토콘드리아를 증식시킨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당 한 개 들어있는 생체 엔진이다. 그 숫자를 2개, 4개로 증가시킨다. 미토콘드리아 숫자가 늘어난다는 이야기는 세포가 4기통에서 8기통 16기통으로 올라간다는 이야기다.
각성 당시 블랙맘바는 백부 댁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다.
영양 부족으로 인해 근육, 골격, 혈액등 신체 기관이 완전한 변이를 이루지 못했다. 특히 머리는 변이를 이루지 못했다. 뇌는 여전히 호모 사피엔스다.
불행 중 다행이다. 뇌까지 파란트로푸스로 변이가 진행되었다면 오셀롯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탄생했을 것이다.
전투를 통해 블랙맘바의 신체는 느리지만 꾸준히 진화했다. PGC-1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허약한 두부(頭部)의 밀도와 강도를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파란트로푸스의 뇌는 오로지 개체의 안전과 생존을 최우선 가치에 둔다. 공격성이 강해지고 쉽게 흥분하며 절제력이 약해진다. 두개골이 두꺼워지면서 뇌 용량도 감소한다. 한마디로 힘센 괴수가 된다. 두뇌 활동 측면에서 보면 퇴행이다.
블랙맘바는 어린 시절부터 절제와 집념의 삶을 살아왔다. 박진보와 김말순의 따뜻한 사랑, 불자 생활과 오금공 수련, 사헬에서 얻은 깨달음이 바탕이 된 뇌는 퇴행을 거부했다.
현재 블랙맘바가 겪고 있는 고통은 두개골의 허약한 세포가 아포토시스(apoptosis, 개체를 위한 세포자살)되고 강력한 세포로 치환되는 현상이다. 통증은 급속한 세포분열과 소거로 인해 기존의 신경조직이 받는 부하(負荷)다. 동시에 PGC-1의 활동과 이를 저지하려는 뇌 활동의 충돌에서 오는 부하다.
옴부티가 복용시킨 후블러브가 효과를 발휘했다. 체온이 떨어지고 통증이 경감되었다. 신토불이다. 파란트로푸스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종족이다. 아프리카 산삼인 후블러브가 파란트로푸스 유전자의 발현을 안정시켰다.
“병장님, 체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브로닌이 울듯이 소리쳤다.
“뭐라고, 정말이냐.”
벨맨이 후다닥 일어섰다. 우당탕- 쨍그랑- 요란한 소음이 울렸다. 약품과 기구를 배열해둔 간이 테이블이 엎어졌다.
“조용히 하시오. 와킬은 잠 들었소.”
옴부티가 턱 끝을 치켜들고 엄숙히 말했다.
“알았소. 미안하오.”
벨맨이 찌그러졌다. 전사의 세계에서 힘센 놈이 장땡이듯이 의사의 세계에서는 희귀한 약품이든 풀 쪼가리든 고친 놈이 갑이다.
사피엔스와 파란트로푸스의 겨루기가 끝나자 열이 순식간에 떨어졌다. 블랙맘바는 코를 골며 잠들었다. 깨어나면 철두공 고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래쿤 작전 40일째,
블랙맘바가 눈을 번쩍 떴다. 안개낀 듯 몽롱하던 머리가 청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찌뿌둥하던 몸도 정상이고 두통도 싹 사라졌다.
‘얼래? 이 양반은 왜 이러고 있나?’
옴부티가 자신의 옆에 새우처럼 꼬부리고 잠들어 있다.
“흐흥 그랬군.”
반합에서 풍기는 냄새와 자신의 입에 남은 냄새가 일치한다. 그는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캄캄한 밤에 약초를 찾아 헤매고 다녔을 중늙은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12월 사헬의 기후는 한 낮엔 살을 태울 듯이 뜨겁고 새벽녘이면 냉기가 몸을 파고든다. 옴부티를 번쩍 들어서 자신의 자리에 눕혔다.
본인은 땅바닥에 부직포를 펼치고 자면서 자신의 자리는 마른 갈대로 푹신한 잠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하인을 자처하면서 하는 짓은 철없는 아들을 챙기는 아버지다.
‘나이 들어서 뼈마디가 쑤실 텐데.’
그는 침낭을 펼쳐서 옴부티를 덮어주고 막사를 나섰다. 동쪽 하늘이 잿빛으로 살짝 물들었다. 여명의 시작이다.
그런데 내가 왜 깨어났지?
무엇인가 이질감을 느끼고 잠이 깼다. 감각은 예민하지만 더위와 추위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신체다. 추워서 깨지 않았다.
숨소리!
번쩍 깨달았다. 주위에서 들리는 숨소리 이상을 느끼고 깨어났다. 기감이 예민한 그는 잠이 든 상황에서도 외부 환경이 변화하면 즉각 깨어난다. 심신을 일정 수준 이상 단련한 무인이 얻는 감각이다.
숨소리 중 한 개가 끊어졌다.
바깥에서 잡히는 두 개의 익숙한 기척은 불침번을 서는 깨비텐과 벨맨이다. 막사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삐에프, 마이크, 옴부티, 벨맨 모두 별 문제없다.
옆 막사로 들어갔다.
에밀, 장쒼, 선우현, 브로닌, 발부아가 잠들어 있다. 아니, 호흡이 넷이다. 호흡이 없는 놈이 에밀이다. 화들짝 놀란 블랙맘바가 에밀을 살펴보았다.
벌어진 눈동자, 뻣뻣해진 근육, 푸르스름한 얼굴, 전형적인 동사(凍死)현상이다.
“에밀, 에밀!”
애타게 불렀지만 전혀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심장, 심장은?
그는 손목을 잡고 맥박을 카운트하지 않는다. 귀만 기울여도 상대의 맥박소리가 천둥치듯 들린다. 에밀의 심박이 가늘고 불규칙했다. 곧 꺼질 듯 여렸다.
“이런 젠장! 리엔트리(심실세동)상태다.”
그는 난리 통에도 불구하고 코를 고는 장쒼을 냅다 걷어찼다.
“장, 벨맨 불러.”
“뭐 뭐야?”
놀란 장쒼이 벌떡 일어나 권총을 뽑아들었다. 제법 빠른 반응이지만 칭찬할 여유가 없다.
“에밀이 위급하다.”
“헛, 블랙맘바!”
“임마, 정신 차려. 에밀이 죽는단 말이다. 벨맨 불러와.”
블랙맘바가 장쒼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에밀이 죽는다고!”
정신이 번쩍 든 장쒼이 팽이처럼 막사를 빠져 나갔다.
“브로닌, 물 끓여.”
허겁지겁 달려온 벨맨이 소리를 질렀다.
“이런 멍청한 새끼!”
벨맨은 에밀의 뺨을 때리고 젖은 옷을 급히 벗겼다. 수차례 주의를 주어도 젖은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잠든 미련한 놈이다.
장쒼이 구급 통에서 아트로핀을 찾아서 달려들었다.
벨맨이 장쒼을 걷어찼다.
“미친놈, 쇼크사 시킬 일 있어. 에피네프린(강심제, epinephrine)도 지금은 무리야. 몸이나 주물러.”
잠자다 여러 번 걷어차이는 장쒼이다.
벨맨이 구강 호흡을 하는 동안 브로닌과 장쒼이 달려들어 에밀을 주물렀다. 난리 통에 잠이 깬 발부아와 선우현도 달려들었다.
귀속에서 온도계를 뽑아든 벨맨이 신음했다.
“30도! 큰일이다.”
아차하면 또 한사람의 동료를 잃는다. 장쒼이 옷을 홀딱 벗고 에밀의 몸 아래로 들어가서 바짝 끌어안았다. 브로닌은 에밀의 몸에 수건을 덮고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었다. 모두 결사적으로 움직였다.
“젠장, 내 생전에 남자 새끼를 안고 지랄을 떨 줄이야. 아프리카 적도에서 얼어 죽는다는 게 말이 돼.”
장쒼이 볼멘소리를 버럭 질렀다.
“무식한 놈, 심부 체온이 떨어지면 얼어 죽는다. 얼음 기둥이 되는 것만이 동사(凍死)가 아니란 말이야.”
막사로 뛰어 들어온 깨비텐이 버럭 소리 질렀다.
블랙맘바가 뜨거운 물에 타월을 적셔서 피부를 맹렬히 문질렀지만 상황이 호전되지 않았다.
“벨맨, 어쩔 수 없다. 에피네프린을 투약하라.”
깨비텐의 명령에 망설이던 벨맨이 에피네프린 주사를 혈관에 꽂았다.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리엔트리 상태에서 강심제 투여는 위험하다. 아차하면 심장이 완전히 정지해 버린다.
저체온증(hypothermia)으로 인한 동사는 인체가 외부로 체온을 지속적으로 빼앗길 때 발생한다. 심부 체온이 섭씨 30도 이하로 내려가면 부정맥이 발생하고 심장이 정지한다. 심장이 정지한 인간이 살았다는 선례는 예수님 외에는 없다.
인간의 신체는 어떤 면에서 콘택트렌즈만큼이나 섬세하고 연약하다. 내부 장기와 세포가 활동 가능한 신체 온도 대역은 30℃도~40℃ 사이다.
정상 체온 36.5℃에서 아래쪽 6.5℃, 위쪽 3.5℃가 신체가 감내할 수 있는 온도 대역이다. 체온이 30℃ 이하로 내려가면 심장이 정지하고, 40℃를 넘으면 기관이 괴사한다. 심부 체온이 30℃이하로 내려가면 얼어 죽고, 40℃를 넘으면 장기가 썩는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