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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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귀환 전투4
선우현은 블랙맘바의 계급이 이등병이란 사실을 알고 코웃음을 쳤다. 블랙맘바는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능력자다. 일개 군단에 필적하는 능력자를 이등병으로 방치한다면 개가 웃을 일이다.
목적은 다르지만 공화국도 정치 위원이 하전사로 위장시켜서 군단 지휘부에 근무하는 경우가 있다. 반당 종파분자를 색출하기 위해서다.
‘블랙맘바는 고위급 비밀 요원이다.’
선우현은 확신했다. 이등병이란 계급은 그야말로 계급에 불과하다. 팀 내에서 블랙맘바의 위상은 작전 팀장이상이다. 본인이 리더를 존중하고 나서지 않을 뿐이다.
납득할 수 없는 점은 블랙맘바 본인이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선우현은 사회 경험이 일천한 탓이라 여겼다. 경험 부족은 자신이 채워주면 된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블랙맘바를 위해 에이전트 노릇을 할 작정이었다.
선우현은 눈치 빠르게 사실에 근접한 추론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블랙맘바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블랙맘바는 자신의 가치를 모른 다기 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존재다. 그는 사헬의 악마라 불리지만 인간의 조건을 찾아 고뇌하는 구도자다. 선우현이 그를 어수룩하게 본 이유는 그가 천생산에서 일생의 모토로 세운 무쌍 삼불 때문이다.
무쌍 삼불은 불구분(不區分), 불우월(不優越), 불특권(不特權)의 세 가지를 말한다. 훗날 광대한 사헬 지역을 아우르고 아프리카 전역에 퍼진 무쌍공동체의 기본 사상이다.
블랙맘바는 자신의 가치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용하고 내세우려 하지 않을 따름이다. 소인배가 대인을 볼 때 어수룩해 보이는 법이다.
선우현의 강박적인 행동은 갑자기 소속감이 사라지면서 야기된 트라우마다. 졸지에 블랙맘바에게 박살난 그는 17년간 몸담았던 인민군을 떠났다. 놀이공원에서 엄마를 잃은 미아의 정신 상태다.
기와집에 이밥 먹여준다고 했지만 뚜렷한 언질을 받은 바 없다. 무엇보다 옴부티는 하인이고 자신은 쫄따구다. 신분이 불안했다. 하인이 되려고 악을 쓰는 공화국의 소좌라니, 눈물이 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살인밖에 없는 그가 폭넓은 사고를 하기에는 애초에 무리였다.
블랙맘바의 눈에 짜증이 어렸다. 옴부티도 부담스러워 죽을 지경이다. 동족이라고 살려주었더니 틈만 나면 책임지라고 들이댔다. 웬수가 따로 없다.
‘귀찮은데 그냥 죽여 버릴까!’
블랙맘바는 은근히 후회가 되었다. 전력에 보탬이 된다지만 자신의 기준에선 알알 짖는 스피츠에 불과하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끝없는 탈출로다. 혹까지 붙어서 앙알거리니 성질이 뻗쳤다.
눈치 빠른 선우현이 두 발짝 물러났다. 괴물의 심기가 나빠지면 재앙이 닥친다.
“에휴!”
블랙맘바가 한숨을 쉬었다. 며칠 비비적대다 보니 정이 들어버렸다. 살심이 일어나지 않았다.
철컥-
“와킬, 죽일까요?”
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데는 초절정 고수인 옴부티다. 귀신처럼 주인의 기색을 알아차리고 베레타 슬라이드를 당겼다.
고목 껍질처럼 거친 피부속에 깊숙이 박힌 눈이 살의로 번들거렸다. 블랙맘바가 눈만 깜박이면 당장 방아쇠를 당길 기세다.
“이 이거이 무시기 만행입네!”
얼굴이 시퍼레진 선우현이 후다닥 물러났다.
‘무서운 노친네!’
잔등에 소름이 쭉 돋았다. 김일성 광신도인 1호 호위대보다 더 막 나가는 중늙은이다. 그는 블랙맘바보다 옴부티가 더 무서웠다.
블랙맘바가 정색했다.
“선우현, 분명히 해라. 나는 자유의지를 세상 어떤 가치보다 높이 둔다. 공산주의는 자유의지를 인정하지 않는 사생아 체제다. 나는 한국이 싫어서 떠났지만 북한은 더 싫다. 솔직히 빨갱이인 당신을 쉽게 믿기엔 내 머리가 너무 굳었다. 당신은 조국인 북조선인민공화국을 버릴 수 있나?”
“공화국이래 먼저 나를 버렸슴메. 고조 내래 공화국이 싫슴둥.”
선우현은 생각할 틈도 없이 대답했다.
“빨갱이 사상을 버릴 수 있나?”
“내래 고조 자본주의 사상에 완전히 물들었지비. 아바이가 숙청당한 리유래 그 때문임메. 감시당하고 억압받는 생활에 질렸슴메.”
선우현은 블랙맘바 패밀리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중요한 순간임을 알았다. 소좌 승진 면접을 볼 때처럼 최선을 다했다.
“자본주의 사회도 문제는 많아. 자유의지로 자신의 삶과 위치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 언놈은 금숟가락을 물고 태어나고 언놈은 손가락을 빨며 태어난다. 공평한 경쟁이 구두선이라는 이야기다. 하이에나 떼와 악어가 우글거리는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밥값을 못하면 굶어죽는 세상이다. 배급으로 살아온 당신은 밥값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것이다.”
“인간 취급을 받으려면 밥값을 해야지비. 내래 블랙맘바 동무의 하인이 되어서 밥값을 충실히 하겠슴메.”
“하인! 웬 하인?”
“옴부티 동무래 하인은 가족이라고 했슴메.”
블랙맘바가 옴부티를 돌아보았다. 대화를 엿듣고 있던 옴부티가 얼른 딴청을 부렸다. 눈치 빠른 그는 한국어를 모르지만 분위기만으로 선우현의 의도를 짐작했다.
“아직 난 당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동족이라고 당신을 덜컥 믿기엔 내가 받아 온 반공 교육의 뿌리가 깊다. 당신도 나를 잘 모른다. 그리고 나는 누구를 하인으로 둘 만큼 잘난 인간도 아니다.”
“블랙맘바 보스 동무, 아니 와킬 동지, 내래 옴부티처럼 와킬이라 부르겠슴메. 와킬이 묵사발내서 끌고 오는 바람에 내래 끈 떨어진 뒤웅박이 되지 않았겠슴둥. 죽이지 않을 거이면 옆구리에 차고 다니면서 물 마시는 바가지로 써 주시라요. 내래 밥값은 충실히 하겠시오.”
블랙맘바의 얼굴에 웃음이 떠 올랐다.
약삭빠르지만 밉지 않은 인간이다. 말도 잘한다. 하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를 따져봐야 무슨 소용인가. 사상 따위는 죽고 죽이는 야만의 대지 사헬에서 총탄 한 발의 값어치도 없다. 이곳엔 사상이 아니라 인간이 있을 뿐이다. 적어도 인간의 조건에 사상은 들어있지 않다.
“쫄따구라 불러서 미안하오. 앞으로 선 소좌라 부르겠소.”
블랙맘바가 정색을 하자 선우현이 손을 비글 꼬리처럼 야단스럽게 흔들었다.
“아임메, 아임메. 내래 그 말이 좋시오. 계속 그렇게 불러 주시라요.”
“나보다 연배가 두 배는 될 텐데 그럴 수야 없지요.”
“두 배!”
선우현의 검은 얼굴이 팍 찌그러졌다.
“무시기 소리 함메. 내래 48년 쥐띠임메.”
블랙맘바의 눈이 커졌다. 생각보다 젊다. 쥐띠면 34살이다.
‘팍삭 삭은 얼굴에 비해 신진대사가 왕성하더라니.’
블랙맘바가 눈을 끔벅였다.
“쫄따구, 와킬을 잘 모셔라. 와킬은 이리저리 재고 이용할 존재가 아니다. 잘 모시면 당신도 저절로 고귀해진다.”
눈치 빠른 옴부티가 툭 끼어들었다. 션이라는 꼬레앙 전사 수준이면 주인에게 충분히 도움이 된다. 주인이 수면을 취할 때 보초만 세워도 본전은 뽑을 수 있다.
‘눈치가 귀신인 노친네!’
선우현은 섬뜩했다. 귀신같이 자신의 속내를 짚어서 경고를 날리는 노인네다.
“휴, 알겠슴메.”
“나는 임모하렌 귀족이고 사십 둘이다.”
‘넨장, 알아서 기어라는 소리보다 더 무섭고 만.’
“휴우, 인정함메.”
선우현의 한숨이 더 길어졌다.
“와킬은 아즈라일의 영혼이 깃든 고귀한 존재다. 주인에게 존댓말 들을 생각 말도록. 주인이 존댓말을 하면 내가 당신을 쏴 버리겠어.”
“알았슴메. 와킬, 내게 말 높이지 마시 라요. 내래 고참에게 총맞아 죽기 싫슴둥.”
선우현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옴부티는 사려 깊고 딱 부러지는 성격이다. 섬뜩한 블랙맘바보다는 투아레그족 고참이 사실 대하기 편하다.
일단 블랙맘바 패거리에 한발을 걸치게 된 선우현의 얼굴이 환해졌다. 블랙맘바는 옴부티가 신참을 길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미소만 지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깨비텐이 막사로 들어서는 블랙맘바를 돌아보았다. 옴부티가 뒤따르고 블랙맘바의 드라구노프를 든 쫄따구가 따랐다.
‘서열이 확실해졌군.’
깨비텐의 얼굴에 비시시 미소가 떠올랐다.
“블랙, 컨디션이 어때?”
“양호하다.”
“회의를 해야겠다.”
“회의? 누구와?”
블랙맘바의 질문에 깨비텐이 쓴 웃음을 지었다. 검지로 블랙맘바를 가리키고 자신을 가리켰다.
‘휴, 나밖에 없구나.’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깨비텐의 뒤를 따랐다.
작금의 라텔팀은 형편무인지경이다.
환청에 시달리는 벨맨, 블랙맘바에게 두들겨 맞고 온 몸을 붕대로 둘둘 만 에밀(타박상과 창상일 뿐 속은 멀쩡하다), 설사병이 들어 늘어져 있는 장쒼, 겨우 거동만 가능한 삐에프, 만성 무력증과 이질 증상을 보이는 셍티엥, 막심, 발부아, 전투력 꽝인 브로닌, 그야말로 야전 병동이 따로 없다.
전투력을 보유한 사람은 깨비텐, 블랙맘바, 선우현이 전부다.
막사를 벗어나자 지평선까지 하늘 가득 들어찬 별과 싸늘한 냉기가 인간을 맞이했다. 보루쿠주와 바타주 경계는 사헬 벨트의 경계이기도 하다. 위도 상으로 2~3도 적도에 가까워졌지만 기온은 오히려 떨어졌다.
깨비텐이 적갈색 사암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앉아”
깨비텐이 맞은편을 손짓했다.
“블랙, 우리가 프롤리나트를 너무 열 받게 했나봐. 우리가 사살한 인원이 천오백 명쯤 되나? 아니 그보다 많겠군. 하비브까지 처형해 버렸으니, 늙은이들의 똥집이 단단히 비틀렸나봐.”
“닭장에 뛰어든 족제비로 보이겠지.”
족제비란 놈은 오소리 이상으로 잔인하고 포악한 동물이다. 다른 육식 동물과 달리 닭장에 들어가서 전멸시키고, 딱 한 마리만 물고 달아나는 못된 짐승이다.
“놈들은 우리 팀의 이동 경로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망치와 모루가 더 튼튼해지기 전에 빠져나가지 못하면 개죽음 당하게 된다.”
“동의한다. 모티 전술로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깨비텐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영리한 상대는 이용해먹기 어려운 반면에 대화가 편하다. 멍청하면 전후 사정을 설명하느라 진이 빠져 버린다.
“또 한 번 무리한 부탁을 해야겠다. 흐흠……”
깨비텐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린 블랙맘바로 하여금 끊임없이 핏물을 덮어쓰라고 요구하는 자신이 역겨워졌다.
“깨비텐, 변죽 울릴 필요 없다. 이미 결론은 내지 않았나. 나는 블랙맘바이기 전에 라텔팀의 이등병이다. 깨비텐 명령한다. 나는 따른다. 감정 필요 없다.”
깨비텐은 놀랄 만큼 절제력이 강한 꼬레앙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선한 눈빛, 개구쟁이 틀을 갓 벗어난 앳된 얼굴이다. 죽음의 천사, 전장의 악몽은 어디에도 없다.
맞은편 바위에 단정한 자세로 앉아있는 모양새가 파리 공립 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다. 가슴이 아렸다. 어쩌면 이번 작전의 가장 큰 희생자는 블랙맘바다. 늙은이들의 탐욕에 전도양양한 젊은이가 피비를 뿌리고 있다.
“고맙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자네가 아티(Ati)로 들어가는 관문인 베르달레를 뚫어주어야겠다.”
“베르달레에 압바스 대대와 동북 사령부가 있다고 키갈리가 말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위치만 알면 때려 부술 수 있다.”
블랙맘바는 하비브를 옴부티에게 넘겨주기 위해 바타주에 포진한 프롤리나트 정보를 포기했다. 그때 당시에 블랙맘바는 이미 베르달레를 도주로로 상정해 두었다. 리더가 깨비텐인 만큼 맡겨두고 있었을 뿐이다.
“와킬, 압바스 대대 주둔지는 비르 와키브 습지의 둠브라이 숲에 있습니다. 그곳이 동북사령부입니다.”
차를 준비해 오던 옴부티가 생각지 못한 정보를 전했다.
깨비텐이 반색했다.
“어떻게 알았소?”
“파야에서 움마 친구들에게 정보를 들었소. 압바스는 투아레그족의 배신자요. 놈은 하비브에게 붙어서 투아레그족 탄압에 앞장선 인물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