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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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귀환 전투15
박살난 시체와 새까맣게 달라붙은 파리 떼, 엔간한 선우현도 속이 메슥거렸다. 블랙맘바가 성한 오른팔을 휘저어 귓구멍과 콧구멍을 파고드는 파리를 쫓았다. 파리는 쫓아도 금방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혀를 차고 선우현을 불렀다.
“쫄따구, 내 배낭에 붕대 있다.”
“아까는 어케 주지 않았슴메.”
“잊었다.”
생사투는 극도의 집중을 요한다. 과부하가 걸린 뇌가 사소한 일은 제쳐놓았다. 선우현은 리탐을 풀어내고 압박 붕대를 꺼내 상처를 다시 감았다.
피에 젖은 리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블랙맘바가 휙 던져 버렸다. 파리가 성가시지만 피비린내 나는 천을 얼굴에 둘둘 감고 싶지는 않았다.
총탄을 빼내자 힘이 쭉 빠졌다. 스트레스가 누적된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근육이 당분을 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나무 둥치에 등을 기대고 근육을 이완시켰다. 잡낭에서 대추야자를 한 움큼 꺼내 입에 털어 넣고 질근질근 씹었다.
총상과 파편상을 입고 덤으로 해머로 다섯 대를 두들겨 맞는 수준의 충격을 받았다. 5.56mm탄을 맞았으면 견딜만했을 것이다. 물론 방탄복이 뚫렸을지도 모르고 전장에서 총알을 골라가며 맞을 재간도 없다.
팔을 조금만 움직여도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들었다. 안심이 되었다. 통증을 느낀다는 의미는 신경이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반가운 반응이다.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지 통증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통은 아홉 살 나이 때부터 지겹게 익숙해진 감각이다.
“와킬, 모르핀을 투여해야 하지 않겠슴메?”
선우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인간이 못 먹을 걸 먹었나?’
블랙맘바가 희뜩한 눈으로 태도가 달라진 선우현을 올려보았다.
“통증을 참느라 신경이 분산될 수 있슴메.”
“집중을 방해하는 통증과 감각 손실로 인한 위험도 증가 의 택일이군. 어느 쪽 위험이 클까?”
“긴급하고 현실적인 위험이 지나갔으니 애써 통증을 안고 갈 필요가 있겠시오?”
“그렇군. 꽂아!”
“길티, 와킬이 아무리 초인이라도 통증은 통증이디요. 걱정마시라요. 내래 호위 하겠수다.”
선우현이 모르핀을 꽂으며 주절거렸다.
블랙맘바는 주절거리는 주둥이를 한 대 때리고 싶었다. 별로 개의치는 않지만 전투를 피해 짱 박힌 주제에 말은 청산유수다. 여러 가지로 옴부티와는 스타일이 다른 인간이다.
5초가 경과하자 가슴에 가벼운 압박감이 느껴졌다. 모르핀 투여의 자각 증상이다. 8초 후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모르핀의 효과는 역시 대단했다.
모르핀은 또 다른 효과도 가져왔다. 머릿속이 선명해지며 공간지각력이 쫙 풀려나갔다. 도망친 놈도 많고, 머리를 처박고 숨어있는 놈들도 많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언제 어디서나 재수 좋은 놈이 있다.
살아남은 놈들은 전장 공포에 찌들었다. 총을 겨냥할 의지를 잃은 놈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들었다. 의지를 풀어버리는 요물이다.
선우현은 경외심 어린 눈으로 블랙맘바를 바라보았다. 야자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은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핏물에 젖지만 않았으면 농사일에 지쳐 잠시 쉬는 농부의 포즈다. 첫 만남에도 자신을 아작 내놓고 저렇게 편안한 자세로 잠들었던 인간이다.
‘과연 인간일까?’
선우현의 의문이다. 단신으로 완편 대대급 병력을 괴멸시켰다. 죽음의 천사, 사헬의 악몽이라 불리는 칸마, 명불허전이다. 나미르라는 별명을 붙이고 우쭐했던 자신이 민망하기 이를데 없었다.
수백 명의 적에게 포위된 상황이다. 자신은 몇 명이나 죽일 수 있었을까? 전투력으로 말하면 스스로 최고를 자부했지만 수백 명을 상대로 정면 격돌이라니, 턱도 없는 일이다.
후하게 점수를 주어도 스무 명이 한계다. 그 후엔 벌집이 되어 골로 간다. 전투가 격렬해지자 비트에 숨어버렸다. 개죽음 당하려고 아프리카까지 오지 않았다.
블랙맘바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무력과 살기에 눌리고 대범함에 눌렸다. 진정한 전사를 보았다. 만부막적의 전투력만이 아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죽인 적을 안타까워하는 인간, 비참한 전장에서도 인간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진정한 대인이다. 마음으로 승복했다.
‘내래 진짜 쫄따구가 되갔시오.’
선우현이 뻣뻣한 허리를 숙였다.
“쫄따구, 우중충한 쌍판 치아라.”
눈을 게슴츠레 뜬 블랙맘바가 선우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었다.
“내래 승복했수다레. 님자래 인민의 영웅임메.”
“후훗,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덜 말어. 인민의 영웅 따윈 개에게나 주라지.”
블랙맘바는 씁쓸하게 웃었다.
노자가 말하기를 상사(上事)는 무쟁(無爭)이라 했다. 싸움으로 날이 새고 지는 인간 백정이 바로 자신의 모습니다. 영웅은 개뿔이 영웅이란 말인가!
스승님은 아실까? 악귀가 되어 날뛰는 자신의 모습을 짐작하셨을까? 블랙맘바의 얼굴이 가을걷이 끝난 늦가을 들판처럼 쓸쓸하게 변했다. 선우현은 갑자기 가슴이 아렸다.
“와킬, 미안함메. 내래 목숨이 아까워 비트에 숨어 있었습네다.”
선우현이 민망한 얼굴로 손을 비볐다.
“잘했다. 당신은 쫄따구지 블랙맘바가 아니다. 전투에 도움이야 되겠지만 당신은 죽기 십상이다. 나는 내 주변 사람을 잃는 아픔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다. 개죽음은 마이크 중사로 족하다.”
‘네미럴, 통박 수준이 다르구먼.’
선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릇의 크기가 달랐다. 블랙맘바의 등이 새삼 넓어 보였다.
“길티, 인민군 소좌 따위야 되지엠 랩 이등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비.”
“이등병도 이등병 나름이지.”
자조 섞인 푸념에 블랙맘바가 맞장구를 처 주었다. 선우현이 백팩에서 씨레이션 4세트를 꺼냈다.
“내래 와킬의 밥을 챙겨 왔시오. 밥값은 넘칠 만큼 했슴메. 날래 드시라요.”
잔뜩 허기졌던 블랙맘바가 반색했다.
“어째 갈수록 옴부티를 닮아 가네. 이제야 하인노릇을 제대로 하는구먼.”
“고참 하인에게 많이 배우고 있시요.”
선우현이 비시시 웃었다.
기력을 충전한 블랙맘바는 전투력을 가늠했다. 떨어진 체력과 부상으로 인해 60%전투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상태가 좋지 않지만 놈들의 기지를 남겨두고 퇴각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사령부가 남아있으면 네트워크 가동은 순식간이다. 추적이 턱밑에 닿았다. 바타주의 병력이 모루가 되기 전에 박살내고 신속히 통과해야 한다.
블랙맘바가 끙 하고 몸을 일으켰다.
“빈집털이를 가자고. 추적을 못하도록 박살을 내버려야지.”
“그 몸으로 되겠슴메?”
선우현이 다친 어깨와 옆구리를 가리켰다.
“그렁께 쫄따구가 필요한 기라. 이번엔 화력을 보충하라우.”
“알겠슴메. 내래 가열차게 쏟아붓디.”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2시 30분, 전투를 시작한지 겨우 3시간 30분이 지났다. 반나절도 못되는 시간에 400명이 넘는 인간을 지우고 또 다른 인간을 찾아 지우려는 블랙맘바다. 뒤를 따르는 선우현은 블랙맘바의 뒷등에서 활활 타오르는 아수라의 불길을 보았다.
블랙맘바와 선우현은 시기(尸氣)가 가득한 숲을 뒤로하고 동북사령부로 향했다. 또 다른 살육전을 벌리기 위해서.
프롤리나트 동북사령부 건물은 막사 20동, 식당, 무기고, 본부대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은 야자나무를 뼈대 삼아 벽체와 지붕을 갈대로 덮었다. 화재에 취약한 건물은 1차 공격 때 대부분이 불타버렸다.
블랙맘바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령부를 스산한 눈길로 노려보았다. 불길이 잡힌 막사도 있지만 전소된 막사가 더 많았다.
선우현은 복구 작업에 바쁜 FAP병사들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모진 놈과 엮이면 피를 보게 마련이다. 블랙맘바가 어디 보통 모진 놈인가. 표적이 되면 끝까지 추적해서 물어뜯는 무시무시한 놈이다.
“와킬, 내래 총유탄 챙겨 온거이 있습네다.”
선우현이 백팩에서 총유탄을 주섬주섬 꺼냈다. 필요 없다고 했지만 많이도 가져왔다.
“경험이 없을 텐데.”
“내래 어떤 무기든 손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사용할 수 있슴메.”
선우현이 익숙한 솜씨로 어댑터를 연결하고 공포탄을 삽탄했다.
빵- ‘억-’
선우현은 요란한 폭발음과 강한 사격 반동에 움찔했다.
“이거이 코스토이(북한 유탄발사기, 구소련 GP25-Kostyor를 복제 생산품. 반동이 심하고 연사능력이 제한적이다.)보다 못함메. 무시기 반동이 사람 잡겠슴둥.”
투덜거리는 중에도 선우현은 놀라운 명중률을 보였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총유탄이 본부 막사 중앙부를 정확히 때렸다. 뒤이어 또 한 발이 동일 건물을 때렸다.
멀쩡한 건물은 모두 총유탄을 얻어맞았다. 오랜 가뭄에 바싹 말라있던 막사다. 순식간에 불꽃에 휩싸였다. 모진 놈의 방문을 재차 받은 사령부는 또다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칸마다!”
“칸마가 또 왔다.”
진화작업과 뒷정리를 하던 인원들이 엄폐물을 찾아 거미새끼처럼 흩어졌다.
불붙은 본부 건물과 막사에서 총을 든 게릴라 수십 명이 쏟아져 나왔다. 욕설과 고함소리가 난무했다. 게릴라들은 와디 건너편으로 겨냥도 않고 총을 난사했다. 스스로 표적지가 되는 전투 상식도 없는 놈들이다.
“멍청한 놈들만 남았나? 도대체 학습효과가 없어.”
블랙맘바는 머리를 갸우뚱하고 드라구노프를 잡았다.
“죽어도 싼 놈들임메.”
한심한 모습에 선우현이 열을 냈다. 전직 교관의 체면 문제다.
깡 깡 깡- 드라구노프 속사 저격이 시작되었다. 눈 깜짝할 순간에 노출된 게릴라들 수십 명이 쓰러졌다.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게릴라들이 엄폐물을 찾아 흩어졌다.
투투투- 투투투-
장담대로 미니미를 다루는 솜씨가 에밀을 능가했다. 삼점사로 탄약을 절약하면서도 표적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불붙은 건물에서 튀어 나온 게릴라들이 미니미 저격에 퍽퍽 쓰러졌다. 선우현은 인간능력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 전투 머신이다. 블랙맘바의 위엄에 눌려 존재감이 흐릿할 뿐이다.
블랙맘바와 북한출신 전투 교관의 협력 공격에 기지는 처참히 괴멸되었다. 때마침 불어온 세찬 북동풍이 기지 전체를 불덩어리로 만들었다. 화마를 피해 튀어 나온 게릴라는 여지없이 저격당했다.
주둔지에 남은 병력은 경비 중대다. 지휘관과 전투병은 숲에서 전멸 당했다. 지휘관도 부족하고, 전투력도 낮고, 가용할 지원화기도 부족했다. 두들기면 두들기는 대로 맞는 비참한 상황이 벌어졌다.
더 이상 움직이는 물체가 보이지 않았다. 직접 저격한 숫자가 오십이다. 폭사 당했거나 선우현의 손에 죽은 숫자를 더하면 프롤리나트 동북사령부는 생물학적으로 전멸했다.
시체 타는 메케한 냄새가 후각을 괴롭혔다. 블랙맘바는 파무스와 드라구노프를 내려놓고 불타는 기지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만행을 저지르는 놈들이지만 가슴이 아렸다. 오늘 자신이 씨몰살시킨 프롤리나트가 485명이다.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아버지다.
“와킬, 청소 할 거임메?”
선우현이 블랙맘바의 눈치를 보았다. 호칭 문제로 며칠간 골머리를 썩이더니 와킬로 낙찰을 본 모양이다. 그도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동무라는 말은 남조선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들었다. 간나새끼라고 불렀다간 묵사발이 된다. 까마득하게 어린 사람에게 보스나 동지라고 하기도 낯간지러웠다. 블랙맘바라 부르기도 내키지 않았다. 처절하게 박살난 자화상이 상기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옴부티처럼 와킬이라 부르기로 했다. 하인을 자처했으니 와킬이 맞는다.
“저기를 들어가자고? 사양한다. 타죽고 싶으면 당신이나 들어가.”
기지는 불덩어리가 되었다. 뛰어들었다간 바비큐가 되기 십상이다.
‘네미럴, 말을 해도 정 떨어지게 하는구먼.’
“나무아미타불 사바세계 미련두지 말고 저승 문턱 빨리 넘으시라. 후생엔 성불하여 윤회 겁을 벗어나시기를…….지장보살, 지장보살!”
블랙맘바가 경건한 자세로 죽은 자들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잔잔한 독송이 후끈하니 달궈진 대지를 떠돌았다.
전투는 끝났다. 무기를 챙기는 블랙맘바의 얼굴이 평온했다. 수백의 생목숨을 반나절에 끝장낸 얼굴이 아니다.
선우현의 얼굴이 컴컴해졌다. 가슴이 부르르 떨렸다. 종잡기 힘든 인간이다. 아니 야누스다. 무자비한 홀로코스트를 벌여놓고 한없이 슬픈 얼굴로 극락왕생을 비는 놈이다. 염불이 끝나자 순식간에 평안한 얼굴로 변했다. 닭 한 마리를 죽여도 저처럼 무덤덤하지는 못할 것이다. 자신이 악마의 품에 뛰어들지 않았는지, 심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