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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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응무소주 이생기심1
“내가 이상해 보이나?”
블랙맘바가 삐딱한 눈으로 선우현을 쳐다보았다.
“아임메. 와킬은 언제나 옳슴메.”
선우현의 얼굴에 주름이 잔뜩 졌다. 갑자기 웃는 얼굴로 바꾸려니 우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이왕 죽일 놈들 아닌가. 이리저리 합리화 하고, 악어 눈물을 흘리면 무슨 소용인가. 다 위선이고 변명이다. 고통 없는 죽음이 최선의 보시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란 말을 들어봤나?”
“그거이 무시기 말임메?”
“마음이 가는대로 행하라, 어떤 일을 행할 때 마음 가는대로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말을 마친 블랙맘바가 휘청했다. 선우현이 얼른 부축했다. 블랙맘바의 얼굴이 백납처럼 창백했다. 한바탕 움직인 어깨와 옆구리에서 피가 벌겋게 배어 나왔다.
“와킬, 응무 소주고, 대동강 소주고간에 이거이 무시기 꼬락서니임메. 고조 이렇게까지 해야겠슴둥! 송장 칠 일 있슴메?”
선우현이 평소 모습과 다르게 울먹이는 소리를 냈다. 동료의 생환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바보 같은 남자가 안타까웠다.
‘넨장, 삽질을 해도 멋있긴 하구먼.’
이악스럽게 살아온 선우현이다. 아바이가 숙청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막혀버린 출셋길을 안타까워했다.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멋있어 보일 줄은 몰랐다.
“쫄따구, 언제나 내일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 늘 올 것 같은 내일이 오지 않는 게 인생이여.”
블랙맘바가 선우현의 손을 뿌려 치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씨바, 풋내 나는 애송이가 인생을 거하게 논하고 지랄이네. 멋있는 말이긴 하구먼.’
선우현은 손바닥에 묻은 피를 바지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블랙맘바가 30m쯤 떨어진 대추야자나무 꼭대기를 흘끗 올려보았다. 나무 위를 노려보던 그가 철컥- 파무스를 견착했다.
“마음이 일지 않는구먼.”
한마디 중얼거리고는 총을 내렸다.
“무시기?”
“겁에 질린 쥐새끼다. 가자고.”
석탄같이 검은 얼굴이 무성한 야자잎 틈으로 빼꼼 나타났다. 검은 얼굴은 고개를 쭉 뽑아 블랙맘바가 사라진 방향을 확인한 후 나무줄기를 주르륵 타고 내려왔다.
나무위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살라족 청년 니탕가다. 지상에 내려온 니탕가는 가슴을 두드려 막힌 호흡을 틔웠다. 기도가 트이자 정신없이 헐떡였다. 한바탕 원맨쇼를 끝낸 니탕가가 곧바로 땅바닥에 엎드렸다.
“알라시여 감사합니다. 당신의 종이 심장 마비를 일으킬 뻔 했습니다. 칸마의 손에서 종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라의 권능으로 칸마가 돌아갔습니다. 알라는 홀로 위대하시도다. 비스밀라!”
니탕가는 둠브라이 숲에서 야코리를 잡아 생계를 유지해 온 평범한 청년이다. DGSE에 포섭된 니탕가의 임무는 프롤리나트 동북사령부의 동향 감시였다.
임무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야코리를 채집하면서 동북사령부에 나가고 들어오는 병력만 체크하는 간단한 일이었다.
통상적인 임무를 수행하던 니탕가는 동북사령부가 공격받는 장면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사령부가 불타오르고 수많은 병력이 튀어 나왔다. 놀란 그는 종려나무 꼭대기에 몸을 숨겼다. 니탕가는 블랙맘바와 프롤리나트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 꼼짝도 못했다.
탱크와 야포를 동원한 무시무시한 전투가 벌어졌다. 소문으로 들었던 칸마와 수백 명의 전투, 니탕가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악마의 전투를 구경했다. 시뻘건 피를 뚝뚝 흘리는 칸마가 나타났다. 죽음의 천사, 인간의 이름을 마음 내키는 대로 지운다는 아즈라일이 무서운 프롤리나트 수백 명을 지워버리고 등장했다.
얼음 같은 눈빛과 마주친 그는 추락할 뻔 했다. 총구가 지향할 때는 오줌을 지렸다. 다행히 칸마는 그를 죽이지 않고 떠났다. 현신한 아즈라일이 나쁜 놈만 죽인다는 사제의 가르침이 맞았다.
알라께 올리는 감사 기도는 반드시 땅에 엎드려야 한다. 기도를 마친 니탕가는 잽싸게 다른 나무를 타고 올랐다. 그는 마음이 변한 칸마가 자신의 목을 자르러 올까봐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니탕가는 석양이 질 무렵이 되어서야 나무에서 내려왔다. 조심스럽게 숲속으로 들어간 그는 얼굴이 노랗게 변해서 뛰쳐나왔다.
나무숲이 아니라 시체 숲이다. 땅이 아니라 붉은 물감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체가 숲 곳곳에 나자빠져 있었다. 바위가 깨지고 나무가 박살났다. 숲이 뒤집혔다.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속을 뒤집었다.
“으으, 칸마다.”
경기를 일으킨 니탕가는 교육받은 대로 긴급 보고서를 썼다. 보고서는 간단했다.
소재 : 바타주 베르달레 둠브레이 숲
사망자 : 500~600명
경과 : 사령부 전소, 주둔 인원 전멸.
이레이져 : 칸마
니탕가는 알제리에 있는 DGSE 아프리카 지역본부에 보고서와 사표를 함께 제출했다. 사직서에 쓰인 이유는 ‘머리가 터지고, 목을 잘려 죽고 싶지 않다.’였다. 그는 겁 없이 나섰던 정보원 생활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니탕가는 토루바 마을의 야코리 채집인으로 복귀했다.
바이크에 오르던 블랙맘바가 머리를 흔들었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원근감이 사라지며 핸들을 잡은 손아귀에 힘이 풀렸다.
‘젠장,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흐미, 아까운 내 피!’
의식이 까무룩 잠겼다.
“와킬, 니보라우!”
선우현의 목소리가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와킬도 사람은 맞긴 맞구만!”
선우현은 개구락지가 된 블랙맘바를 안아 일으키며 혀를 찼다. 작은 체구로 건장한 블랙맘바를 안은 채 바이크를 타려니 고충이 많았다. 캠프가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블랙맘바가 돌아왔다. 아니 블랙맘바 비슷한 혈괴가 돌아왔다. 캠프는 막대기로 두들긴 벌집이 되었다. 탈수 증세로 누워있던 환자들도 모두 기어 나왔다. 수차례 난전에도 멀쩡했던 블랙맘바다. 얼마나 흉험한 전투를 벌였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브로닌이 전투복을 가위로 잘라내고 방탄복을 조심스럽게 벗겼다. 상태를 체크하는 벨맨의 손이 떨렸다.
블랙맘바는 아홉 발을 맞았다. 등 쪽 방탄복 위에 맞은 세 발은 시퍼런 멍만 들었다. 양쪽 옆구리와 복부에 맞은 다섯 발은 총에 맞은 부위가 시커멓게 변색되었다. 방탄복도 누더기가 되었다. 이정도면 일반인은 뼈가 몇 개는 부러져서 사경을 헤맬 수준이다. 벨맨이 왼쪽 어깨를 묶은 붕대를 풀었다.
“이게 뭐야?”
올림픽 기념주화만큼이나 넓은 피격 흔적, 눌어붙은 피부와 근육, 이리저리 헤집어 놓은 조직, 엉망이다.
“끙!”
총상을 확인한 벨맨의 입에서 된 신음이 나왔다. 탄자를 파내느라 근육을 온통 헤집어 놓았다. 피와 근육이 떡진 상처가 이차 감염을 받아 시퍼렇게 부어올랐다. 상처 주변의 조직은 구겨서 버린 원고지 꼴이다.
“쫄따구, 설명이 필요하다.”
선우현의 이마에 혈관마크가 돋았다. 블랙맘바가 부른다고 개나 소나 쫄따구다.
“나이프로 탄자를 파냈슴둥.”
“뭐라고!”
“헛, 그건 전설로 전해지는 스토리 아닌가?”
에밀과 장쒼이 화들짝 놀랐다.
총탄에서 화약을 빼내어 총상을 소독한다는 둥, 불에 달군 칼로 총알을 빼낸다는 둥 하는 이야기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삽질이다. 인간의 신체로 통증과 쇼크를 견디지 못한다.
“쀠탱, 미련한 놈, 파상풍 위험은 없나?”
샤트르를 파상풍으로 잃은 깨비텐이 펄쩍 뛰었다.
‘약해 빠진 종간나새끼, 그게 어때서!’
욕을 먹은 선우현의 얼굴이 썩어문드러졌다.
벨맨이 피식 웃으며 수축된 근육을 메스로 가리켰다.
“나름 소독 처리를 잘 했습니다. 탄자가 휘감아 들어간 섬유와 이물질도 깨끗이 적출했습니다. 덕분에 할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익숙한 솜씨로 상한 조직을 정리한 벨맨이 봉합을 시작했다.
“헛!”
옆구리쪽 붕대를 풀어낸 브로닌이 헛바람을 불어냈다. 넓이 20mm 길이 80mm에 이르는 큰 상처다.
“벨맨 병장님!”
상처를 들여다 본 벨맨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런 각도로 파편이 박힐 수 있나?”
“병장님, 이걸 보십시오.”
에밀이 블랙맘바의 잡낭에서 찌그러진 파무스 탄창을 꺼냈다. 탄창 양쪽 철판 두 장이 떡이 되어 엉겨 붙었다.
“크기로 보아 야포 파편이다. 탄창을 먼저 때리고 튕겨서 옆구리에 박혔군.”
그제야 벨맨은 예각으로 파고 들어간 상처를 이해했다. 탄창이 1차 프로텍터가 되지 않았으면 블랙맘바는 연옥 대기병으로 보직이 변경되었을 상황이다. 벨맨은 가슴이 서늘했다.
“본인이 자신의 살을 헤집고, 파편을 뽑아내 버렸어.”
“인간의 인내심으로 불가능한 짓을 했군.”
삐에프가 촌평을 했다. 둘러서있던 용병들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게다가 부러진 갈비뼈를 본인이 끌어내 맞추었다.”
깨비텐이 시커먼 멍 두 곳을 가리켰다. 용병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인간이 얼마나 지독하면 부러진 갈비뼈를 자신이 당겨 맞춘단 말인가!
“내래 와킬의 바이크를 수거해 오디. 고참, 날래 갑세.”
고생하고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 선우현이 안달복달하는 옴부티를 뒷좌석에 태우고 휑 사라졌다. 에밀과 장쒼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끔찍하군. 달군 칼로 근육을 헤집어 총알을 빼냈다는군. 우리도 가능할까?”
“사양하지. 우린 설사 따위에도 꼼짝 못하는 보통 사람 아닌가. 블랙이나 가능한 이야기다.”
“체온이 떨어진다. 수혈이 필요하다.”
벨맨의 고함에 깨비텐이 물었다.
“혈액형이 뭐야?”
“B형, RH플러스다.”
“나야 나. 죽지 않을 만큼만 뽑으라고. 마이크 중사에게 뽑아주고 파트너에게 뽑아주고 내가 도너여? 미치겠네.”
에밀이 투덜거리며 팔뚝을 걷었다. 막심과 셍티엥도 팔뚝을 걷고 나섰다.
바이크를 수거해서 돌아온 선우현이 벨맨을 닦달했다.
“와킬 상태는? 회복되려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함메?”
“옆구리 창상, 갈비뼈 골절, 견갑골 윤낭 파열, 인대 손상, 조직괴사, 실혈 지수 25, 당분간 왼팔을 쓰지 못한다. 48주 진단이다. 아무리 블랙이라도 2주는 지나야 한다.”
선우현의 얼굴이 급격히 흐려졌다.
“네미럴, 막판에 껍데기 사령부를 공격해설랑……”
일반인이라면 꼼짝도 못할 부상이다. 무리하게 사령부를 지워버린 후유증이 컸다. 식수를 구하러 갔던 옴부티와 깨비텐이 막사로 들어왔다.
“쫄따구, 어떻게 된 건가?”
선우현이 모르핀에 취해 잠이 든 블랙맘바를 흘끗 쳐다보고 간단히 대답했다.
“정보가 틀렸슴메. 전차와 야포까지 갖춘 병력이 600명이 넘었슴메. 내래 와킬과 함께 몽땅 클레어 시켰지비.”
선우현은 전투를 피해 비트에 은신했다는 사실을 쏙빼고 간단히 말했다.
“전차에다 육백 명을 클레어 시켰다고!”
놀란 깨비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렇디, 내가 야간 전투를 권했지만 추적을 염려한 와킬이 서둘렀디.”
“그랬군.”
깨비텐은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맘바는 야간 전투의 신이다. 그는 동료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장기를 버렸다. 아무리 훈련이 부족한 게릴라지만 육백이란 숫자는 끔찍한 수치다. 살아 돌아온 게 천만다행이다.
“블랙이 중상을 입었는데 쫄따구는 왜 멀쩡하나?”
에밀이 껄끄러운 질문을 던졌다.
“내래 나미르 선우현이우다.”
선우현은 여전히 큰소리를 쳤다. 와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지만 허접한 용병에겐 꿀릴 건더기가 없다.
“쫄따구 고맙다. 덕분에 와킬이 무사했다. 너는 목숨 두 개를 살렸다.”
옴부티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선우현은 가슴이 찡했다. 하인이 아니라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다. 갑자기 잊고 있었던 아바이가 생각났다.
“고마울 거 없슴메. 내래 별 도움이 되지 못했디. 와킬은 아즈라일임메. 내래 신과 함께 한 것만으로 영광스럽디.”
옴부티의 인사에 선우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선우현은 아직도 옴부티가 어떤 인간인지 몰랐다. 옴부티가 말한 목숨 두 개는 옴부티 본인과 선우현이다. 옴부티는 선우현이 혼자 살아왔으면 당장 쏴 죽이고 남을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