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57
x 157
제19장 응무소주 이생기심2
치료에 매달린 벨맨 본인도 탈수증에 걸린 상태다. 치료를 하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조수 역할을 하는 브로닌도 이마에 흥건히 고이는 식은땀을 연신 닦아냈다.
용병들은 침울한 얼굴로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블랙맘바의 부상은 단순한 전력 손실이 아니다. 절망의 시작이다. 삐에프와 깨비텐, 발부아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덮였다. 블랙맘바가 퇴로를 열었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옴부티가 슬그머니 막사를 빠져나갔다. 요란한 바이크 폭음이 들렸다. 한 시간쯤 지나 옴부티가 돌아왔다. 그의 손에 후블러브가 한 다발 들려 있었다.
“고맙소!”
벨맨이 반색했다. 며칠 전만 해도 아프리카의 믿지 못할 주술 나부랭이라고 폄하하던 벨맨이다. 후블러브의 약효는 본인 눈으로 확인했다.
옴부티는 후블러브를 다른 몇 가지 약재와 섞어서 달였다. 벨맨은 생채를 갈아서 상처에 처덕처덕 바르고 붕대로 감았다.
장쒼이 비실거리는 몸으로 블랙맘바의 근육을 마사지했다. 에밀은 타월을 적셔서 체온을 식혔다. 셍티엥과 막심은 방수포를 휘둘러 파리를 쫓아냈다. 용병들이 모두 블랙맘바의 치료에 달라붙었다.
“폴, DGSE와 군부는 이번에 큰 실수를 했네.”
“실수가 아니라 고의지요.”
깨비텐이 삐에프의 말을 퉁명스럽게 받았다. 그들이 저지른 행태를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치밀었다.
“아니, 블랙맘바 말일세.”
“무슨 뜻입니까?”
깨비텐이 희뜩한 눈으로 삐에프를 쳐다보았다. 삐에프는 능력 있는 장교지만 출세 지상주의자다. 시련을 겪고 많이 변했지만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들이 블랙맘바의 가치를 오판했네. 블랙맘바는 전술병기가 아니라 전략병기란 말일세. 그들이 블랙맘바의 가치를 제대로 알았다면 이런 황당한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네.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은 셈일세.”
깨비텐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삐에프 대위님, 인간을 수단으로 여기는 그런 발언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군요. 블랙맘바는 우리 형제입니다. 비열한 수단으로 블랙맘바를 이용하려는 놈은 내가 먼저 쏴 죽여 버릴 겁니다.”
삐에프가 손사래를 쳤다.
“어허, 이사람 살벌하기는. 블랙맘바를 아끼는 마음은 나도 마찬가질세. 나는 블랙맘바가 귀환 후에 혈기를 이기지 못할까 걱정이야. 블랙맘바가 성질만 조금 죽이면 우리 모두 큰 걸 얻을 수 있네. 자네가 잘 다독거려 주게.”
깨비텐이 삐에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자 곧바로 진급 욕심을 부리는 인간이다. 참으로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 존재다. 삐에프가 대책 없이 구출팀을 이끌고 사헬에 진입하지 않았으면 블랙맘바가 중상을 입을 이유도 없었다. 왈칵 짜증이 났다.
“블랙은 무력만 강한 인간이 아닙니다. 치밀하고 집요한 두뇌가 더 무섭죠. 곡소리 날 사람 많을 겁니다. 특히 히트맨을 보낸 관련자와 정보를 흘린 자는 처단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처단!”
삐에프는 등에 소름이 쭉 돋았다. 뒤에서 장난을 친 인간이 한두 명이 아니다. 군부와 정보국의 고위급이 여럿이다. 블랙맘바는 한 나절 만에 반군 사령부를 지워버린 존재다. 그런 존재가 파리에서 날뛴다면? 킹콩, 고지라 같은 괴수 영화 따위는 애교 수준이다.
‘조프레 미안하네. 자넨 끝장이야.’
DGSE에서 파견한 조프레 소령이 그의 절친이다. 폴 중위에게 구명을 부탁하려던 말이 쑥 들어갔다.
“깨비텐, 출발 준비 끝났습니다.”
에밀이 힘차게 보고했다. 에밀은 설사병을 이기고 정상을 찾았다. 후블러브의 덕을 단단히 보았다.
“이동 중에 블랙맘바 부상이 악화되지 않을까?”
삐에프가 걱정했다.
“블랙이 부상을 무릅쓰고 뚫은 퇴로요. 벨맨, 블랙을 이동해도 문제가 없겠나?”
“오히려 빨리 이동해야 합니다. 야전 치료는 한계가 있어요. 신체 손상도 심하지만 파상풍 위험이 큽니다. 제대로 된 시설에서 치료가 급합니다.”
지도를 확인한 깨비텐이 옴부티를 불렀다.
“아티 시내 병원은 위험하겠지. 외곽에 병원이 있는데 시설이 어떻소?”
“NGO병원입니다. 시설은 모르겠소. 의사들의 실력과 약품은 현지 병원보다 훨씬 앞서지요.”
“좋아, 블랙이 지금까지 우리를 살렸다. 이제부터 우리가 블랙을 살린다.”
블랙맘바가 필사의 전투를 벌여 뚫은 탈출로다. 꾸물거리다 다시 막히면 그런 낭패가 없다. 선우현이 잠이 든 블랙맘바를 모포로 감싸서 픽업 뒷자리에 실었다. 옴부티가 운전대를 잡고, 에밀과 벨맨이 탑승했다. 깨비텐과 선우현이 바이크를 타고 호위로 나섰다.
삐에프, 셍티엥, 막심, 브로닌이 베타에 탑승했다. 베타는 구급차인 셈이다. 마지막 감마에 장쒼과 발부아가 탑승했다. 구급차가 된 픽업 행렬은 블랙맘바가 열어젖힌 베르달레를 신속히 통과했다. 그들은 꼬리에 불이 붙은 듯 남서쪽으로 내달렸다.
옴부티는 엔진을 식히거나 휴식을 취할 때마다 후블러브를 구하러 다녔다. 그는 매 시간마다 블랙맘바에게 후블러브 즙을 다려 먹이고 상처에 즙을 짓이겨 발랐다. 수십 년을 붙어 산 마누라처럼 수발을 드는 모습에 선우현은 머리를 흔들었다. 역시 하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옴부티, 어디로 가고 있나?”
화들짝 놀란 옴부티가 눈물을 글썽였다.
“와킬, 깨어났군요. 베르달레를 통과해서 210km를 남하했습니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만 하루가 지났습니다.”
“블랙, 엄살 그만 떨고 일어나라고. 손가락보다 작은 쇳조각에 맞아 넉다운되다니 창피하지도 않나.”
블랙맘바는 벨맨의 농담을 듣지 못했다. 다시 잠들었다. 개체가 심각한 데미지를 입자 파란트로푸스 인자가 깨어났다. 모든 신체 활동을 정지시키고 에너지를 개체 복구에 투입했다.
블랙맘바의 신체는 세포 자살과 분열이 맹렬히 일어나는 중이다. 수시로 체온이 40도를 넘나들었다. 사정을 모르는 벨맨과 옴부티는 속이 썩어문드러졌다.
래쿤 작전 44일째, 아티(Ati)는 인구 35만으로 차드 동북부 최대 도시다. 버스 정류장 수준이지만 비행장도 있다. 아티는 수단에서 발원한 바타(Batha)강이 동서로 흘러가는 길목에 있다.
물이 있는 곳에 도시가 발전한다. 바타강은 메마른 땅을 적시고 아티 서쪽 90km지점에 위치한 피트리(Fitri)호수로 유입된다.
바타강 북쪽은 사헬 지역에 속하고 남쪽은 스텝지역에 속한다. 강을 경계로 인간이 살 수 있는 땅과 살기 힘든 땅으로 갈라지는 셈이다.
피트리 호수는 인구에 회자되지 않지만 장축 35km, 단축 24km에 이르는 큰 호수다. 바타주와 구에라주의 수만 명이 피트리 호수에 의지해서 삶을 이어간다.
피트리 호수가 위치한 바타 남부와 구에라주는 원래 프롤리나트의 주축을 이룬 아랍계 차드인의 대지였다. 하브레의 정부군이 아랍계 프롤리나트를 바타 북쪽으로 밀어냈다.
프롤리나트 입장에서는 통한의 땅인 셈이다. 유사이래 인간의 다툼은 물과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국경없는 의사회(Médecins Sans Frontières)가 운영하는 병원은 아티 시내 남서쪽 2km지점에 있다. 마음이 급해진 옴부티가 거칠게 픽업을 몰았다.
“옴부티, 대원들을 먼저 숨겨야 한다.”
바이크를 탄 깨비텐이 고함을 질렀다. 옴부티가 마뜩찮은 눈으로 깨비텐을 흘겨보았다.
“와킬의 상태가 좋지 않다.”
“대원들도 엉망이다. 떼거리로 몰려가면 정보원의 촉수에 잡힌다. 가볍게 움직여야 한다.”
“니기미 조또!”
기어이 옴부티의 입에서도 한국어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는 바타강 연안의 빠스깨발 계곡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곡 안쪽으로 진입하면 은폐할만한 장소가 나올 거요. 알아서들 짱박혀 있으시오.”
옴부티는 계곡 입구에서 곧바로 핸들을 돌렸다. 마음이 콩 튀듯 급했다. 선우현이 냉큼 차에 올랐다. 상태가 호전된 에밀이 미친 듯이 달려와서 픽업에 올라탔다. 깨비텐이 눈을 부라렸다.
“부상당한 대원들은 어쩌고?”
“내래 와킬을 호위해야 함둥. 와킬이 발딱 서지 않으면 어차피 끝장임메.”
“벨맨이 남아 있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파트너와 함께 하라고 깨비텐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에밀도 물러나지 않았다. 생사교를 수차례 넘나들더니 깨비텐에게 엉길만큼 간뎅이가 부었다.
“아이고!”
깨비텐이 뒷목을 움켜잡았다. 명령을 들을 기세가 아니다. 대원중에 전투력이 유지된 인간은 자신과 말 안 듣는 두 놈이 전부다.
벨맨, 장쒼, 삐에프, 발부아, 셍티엥, 막심은 전투력이 제로다. 쫄따구의 말이 맞다. 블랙맘바가 중상을 입은 이상 더 이상 전투 수행이 불가능하다.
“깨비텐이 남으쇼.”
마음이 바빠진 옴부티가 한 다리 끼어들었다.
‘역시 하인의 위치는 대단하구먼.’
선우현이 속으로 감탄했다.
“안 돼. 나는 통신을 해야 한단 말이다.”
깨비텐이 버럭 소리 질렀다. 선우현과 에밀이 서로 쳐다보았다. 둘의 눈에서 불꽃이 튕겼다.
“나는 쫄따구다.”
“나는 파트너다.”
“옴부티가 하인은 부하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파트너고 친구다.”
깨비텐이 한숨을 쉬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으이그, 둘 다 남아!”
깨비텐의 말이 먹히지 않았다.
“너 나보다 쎄?”
선우현이 무력을 들먹였다. 주먹다짐을 해서라도 따라가겠다는 기세다.
“엠병, 우리가 싸우러 가냐? NGO병원에는 여자 의사도 많아.”
“여자가 뭔 상관이야?”
“너는 얼굴이 흉기라고.”
“네미럴~”
결정적인 말이다. 에밀을 노려보던 선우현이 슬며시 픽업에서 내렸다. 선우현 본인도 자신의 인상이 살벌한 줄 안다. 뚜빌리스라는 별명도 살벌하게 생긴 얼굴이 일조를 했다. 성분 좋은 군관임에도 얼굴 때문에 아직 총각이다.
“약해 빠진 놈, 내가 와킬을 위해서 양보함메.”
“조또, 힘만 쎈 새끼!”
승리한 에밀이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옴부티가 픽업을 거칠게 몰았다. 망할 찌질이들 때문에 오 분이나 허비했다. 입술이 파랗게 변한 블랙맘바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쏟아졌다.
“와킬, 내 피를 몽땅 뽑아 먹여서라도 와킬이 일어나게 하겠습니다.”
옴부티가 엑셀을 사정없이 밟았다.
국경없는 의사회(MSF, Médecins Sans Frontières)는 1971년 프랑스인 의사와 저널리스트가 창설한 인도주의 의료 구호단체다. 아티의 MSF병원은 필라리아시스(Filariasis) 퇴치를 위해 1980년에 설치되었다.
1960대 후반부터 시작된 가뭄은 중북부 아프리카 전역을 빈사지경으로 몰아넣었다. 피트리 호수도 차드호와 마찬가지로 호면이 계속 줄어들었다. 1980년에는 호수 면적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바타강도 간신히 흐름을 이어갔다.
강의 흐름이 원활치 못하고, 호수 바닥이 드러나면서 모기 개체수가 해마다 급증했다. 창궐한 모기는 아티 주민들에게 재앙이 되었다.
필라리아시스는 가느다란 실 모양의 기생충으로 모기를 매개로 감염된다. 흡혈이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주민들이 필라리아시스에 감염되었다.
필라리아시스에 감염되면 기생충이 림프관을 막아 다리가 붓고, 피부가 단단하고 두꺼워진다. 시간이 흐르면 피부가 코끼리 껍질처럼 변한다. 감염도 쉽게 된다. 한 사람이 감염되면 수년을 두고 주위 사람에게 전염된다.
부종이 계속 진행되면 조직사이에 림프액이 축적되어 조직이 두껍고 단단하게 변한다. 조직이 경화되면 림프액이 흡수되지 않아 부종이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 단계에 접어든다.
이때부터 통증이 심해지고 걷기도 힘들어진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상피증(elephantiasis)으로 진행된다. 소위 코끼리 다리가 되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게다가 림프액 정체로 인해 혈관육종과 같은 암이 발생할 수도 있는 골치 아픈 풍토병이 필라리아시스 상피증이다.
꽝- 진료실 문이 떨어질 듯 열어젖혀졌다.
“오 마이 갓!”
기겁을 한 루드리 에델의 손에서 구충약 봉지가 툭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