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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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응무소주 이생기심3
피투성이 남자를 업은 원주민 중늙은이가 진료실로 뛰어들었다. 그 뒤를 덩치 좋은 젊은 남자와 중년의 백인이 허겁지겁 뒤따랐다.
에델은 어렵게 장만한 진료실 문이 무사할지 걱정스러웠다. 웨이스테이션(way station, 국경없는 의사회의 이동식 텐트)을 면한 지 겨우 한 달이다.
“할 후나-카 따비-분 아우 무마르리둔?(여기 의사나 간호사 있나?)”
중늙은이가 억센 아랍어로 고함을 질렀다.
“우에엥!”
로비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어린애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트렸다. 에델의 놀람은 분노로 변했다.
“이게 무슨 교양 없는 짓이에욧!”
“여자, 시끄럽다. 급한 환자다. 당장 치료해.”
중늙은이가 더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평소에 말 수가 적은 옴부티지만 블랙맘바와 관련되면 새끼 잃은 호랑이로 변신하는 인간이다.
거친 아랍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에델이 깨비텐을 쳐다보았다. 그나마 말이 통할만 한 상대로 보였다.
‘흐으, 소피 마르소!’
에밀의 입이 헤 벌어졌다. 안구가 정화되는 느낌이다.
M-S-F가 프린팅된 헐렁한 언더아머 셔츠를 입은 이십대 중반의 여자, 두 달째 사막에서 암컷이라곤 모기와 파리만 만난 에밀이다.
여자다, 젊다, 예쁘다, 가슴이 빵빵하다.
한창 주가를 올리는 소피 마르소와 어금버금하다. 에밀의 눈이 뒤집혔다. 파트너의 부상을 걱정하던 마음이 썰물처럼 밀려 나갔다. 그 자리를 호수 같은 눈과 체리 같은 입술이 채웠다.
에밀은 돌아서서 손바닥에 침을 뱉어 머리를 정돈하고 나섰다. 깨비텐은 쓴웃음을 지었다.
“마드무아젤, 외인 용병 에밀입니다. 아름다운 손에 키스할 영광을 주십시오. 일평생 당신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품고 싶습니다.”
에밀이 19세기 궁전식으로 왼발을 뒤로 내밀고 오른팔을 굽히며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아으!”
에델이 이마를 짚고 비틀했다. 에밀의 꼬락서니는 말이 아니다. 땀에 쩐 전투복에선 쉰내가 풀풀 난다. 기름기와 먼지로 떡진 머리를 손질하기란 애초에 불가능이다. 파리 뒷골목 거지가 열배는 깨끗하다. 거지가 열연하는 느끼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차라리 거친 아랍인 쪽이 백번 낫다.
“이봐요, 내가 당신 같은 불한당이 찾아오라고 파리 모기에 뜯기며 병원 문을 열어 둔 줄 아세요? 그런 느끼한 멘트 들으려고 편한 침대 두고 스티로폼 한 장 깔고 버티는 줄 아세요? 당장 나가욧.”
빽 소리를 지르고 돌아서던 에델이 다시 돌아섰다.
“뭐해요. 환자를 죽일 참이에요. 거기 덩치 큰 양반 당장 베드 끌고 와요.”
에델의 박력에 밀린 에밀이 후다닥 달려가서 베드를 밀고 왔다. 깨비텐은 엉거주춤 블랙맘바를 받아서 베드에 눕혔다.
“고함지른 놈이 누구야?”
반대쪽 진료실 문이 벌컥 열렸다. 50대 중반의 남자가 식식거리며 뛰쳐나왔다.
깨비텐의 손이 번개같이 글록 손잡이를 잡았다가 슬그머니 놓았다. 청진기를 목에 건 모양새가 의사다. 중년 남자는 여의사처럼 가운을 입지도 않았다. 차림새가 가관이다.
밤색 사냥용 단화의 앞 코가 뚫려 엄지발가락이 비죽이 빠져나왔다. 옷차림도 그에 맞추어 추레했다. 허름한 하와이안 나염 남방을 걸치고 짧은 반바지를 입었다. 중늙은이가 대뜸 깨비텐의 멱살을 잡았다.
‘MSF 인간들은 전부 조울증 환자인가?’
깨비텐은 MSF에 대한 환상이 깨어져 나갔다.
“당신,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거야?”
“뭘, 뭘 말이요?”
기습을 당한 깨비텐이 말을 더듬었다.
“에이 망할!”
꽃무늬 남방 중늙은이가 깨비텐을 확 밀치고 잔뜩 인상을 긁었다.
“기즈 박사님, 설마?”
에델의 커다란 눈망울이 흔들렸다.
“바로 그 설마야. 망할 것이 끊어져 버렸어.”
“맙소사! 이를 어째.”
에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녀가 진료실로 후다닥 뛰어들어갔다. 그 뒤를 하와이안 남방도 따라 들어갔다.
“우리가 뭘 어쨌게?”
“끊어져? 팬티 고무줄인가?”
멍해진 남자 셋은 어깨만 으쓱했다. 깨비텐은 기분이 찝찝해졌다. 도움을 받으러 온 입장인데 뭔가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침울한 얼굴로 진료실에서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요?”
“알 필요 없어요. 일단 환자는 봅시다.”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깨비텐은 전화를 빌리자는 말을 꺼낼 엄두도 못 냈다. 둘 다 돌 씹은 시어머니 표정이다. 부탁했다간 청진기로 얻어맞을 분위기다.
“어머, 이 남자 잘생겼다.”
블랙맘바의 얼굴을 알코올로 닦아낸 에델이 비명 같은 탄성을 질렀다. 돌 씹은 시어머니 상이 순식간에 화사한 벚꽃처럼 변했다. 깨비텐 등은 뜨악한 얼굴로 여의사를 바라보았다.
루드리 에델, 런던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자격증을 따기도 전에 차드로 넘어온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아가씨다. 그녀의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졌다.
얼굴을 덮은 핏물을 닦아내자 여자처럼 섬세한 얼굴이 드러났다. 가늘고 짙은 눈썹, 곧게 뻗은 콧날, 선명한 라인의 입술이 드러났다. 왼쪽 뺨에 새겨진 십자형 흉터마저 멋있어 보였다.
에델이 익숙한 솜씨로 간두라와 샬로와르를 벗겼다. 피에 젖은 붕대를 걷어내자 조각상 같은 나신이 드러났다. 단 한 점의 군살도 없는 근육질 나신, 와이어 로프를 겹쳐놓은 듯 섬세한 근육이 백열등 아래 존재감을 뿜었다. 레이저가 하트로 바뀌었다.
하와이안 남방이 투덜거렸다.
“에델 선생, 환자는 치료하는 물건이지 감상하는 물건이 아니야.”
‘내 말이!’
용병 둘과 안내인은 남자의 말에 격하게 동의했다.
“어머 무슨 말씀, 기즈 박사님도 보시면 감탄할걸요. 다비드가 울고 갈 몸이라고요.”
“어이 난 정상적인 남자라고. 남자에게 관심 없어.”
블랙맘바의 얼굴을 흘끗 보고 지나가던 기즈 박사가 갑자기 휙 돌아서 후다닥 침대에 달려들었다.
“이 이럴 수가, 앙크파라블(무적, 적수가 없는) !”
기즈 박사의 눈이 잔뜩 커졌다. 오 년 전 방태산의 그 날이 우르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절벽에서 추락한 자신을 업고 무서운 속도로 눈 덮인 산을 달리던 초인 소년, 해리성 기억 상실증에 걸려 과거를 잃어버린 소년, 놀라운 의지로 기억 상실을 극복해 낸 소년.
“박사님, 아는 분인가요?”
“내 친구야. 에델 선생, 빨리 수술실로 보내요. 보니, 보니!”
십대 중반의 흑인 소녀가 달려왔다.
“발터 선생님 빨리 모셔와.”
“네, 선생님”
소녀가 팽이처럼 병원을 뛰쳐나갔다.
‘이건 또 무슨 쎄느야?’
깨비텐과 에밀은 갑자기 벌어진 난리 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오오, 알라께서 와킬을 돌보심이라. 알라께서 홀로 위대하시도다.”
옴부티는 쌍수를 들고 기뻐했다. 찬스를 잡은 깨비텐이 수술실로 향하는 기즈 박사의 팔을 잡았다.
“선생님, 전화가 필요합니다.”
“앙크파라블의 동료?”
“피를 나눈 형제입니다.”
“알았소. 저쪽 사무실에 있으니 쓰든지 부수든지 맘대로 하시오. 급해서 이만.”
의사는 깨비텐의 팔을 털고 휭하니 수술실로 들어가 버렸다.
“에밀, 우리가 확실히 문명 세계로 돌아온 건가?”
“그 글쎄요. 우리가 사헬에 있는 동안 과격 바이러스가 퍼졌나 봅니다.”
“전화만 감염되지 않았으면 돼.”
깨비텐이 후다닥 사무실로 뛰어갔다.
“박사님, 저를 왜 부르셨습니까? 파상풍 예방용 펜토바르비탈이나 처방하면 됩니다.”
외과의 발터가 투덜거렸다. 위급한 환자가 있다는 보니의 말에 치료중인 환자를 두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환자는 전혀 급할 것 없는 나이롱환자다.
“그게 말이야. 분명 곧 죽을 것 같았는데……”
기즈 박사가 청진기로 자신의 이마를 탁탁 쳤다. 열이 40도가 넘고, 봉합한 상처가 터져서 피를 줄줄 쏟던 환자다. 거짓말처럼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피도 멎었다. 시퍼렇게 변색된 피부도 제 색깔을 찾았다.
“맹관총창은 관통총창에 비해 조직 손상이 심합니다. 덤블링 현상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손상 부위가 예리한 칼로 깎아낸 듯 하지 않습니까? 탄소 반흔만 아니라면 총창 소견을 내지 못했을 겁니다. 처음 보는 현상입니다.”
“감염 소견은?”
“혈구분석기 수치와 히스토그램, 도말 분석상 문제가 없습니다. 치명적인 총상과 파편상을 입고도 염증 반응이 없습니다. 이 친구 적혈구 지수와 백혈구 감별이 일반인과 전혀 다릅니다. 외계인이 아닐까요?”
기즈는 뜨끔했다. 발터가 무쌍에게 관심을 가져서 좋을 게 없다. 발터의 등을 쳐서 문밖으로 밀어냈다.
“어허 이런, 내가 호들갑을 떨어서 자네를 번거롭게 했구먼. 내 한 잔 사지.”
그는 무쌍의 혈액 샘플을 당장 폐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불한당들이 선생님을 잡고 난리를 쳤겠죠. 일주일이상 지난 상처를 이제 와서 호들갑 떠는 인간은 뭐냐고요? 이래서 무식한 군인은 안 된단 말이야.”
발터가 에밀을 쏘아보며 투덜거렸다. 30대 중반의 발터는 뮌헨 출신의 외과의다. 에델을 마음에 두고 있는 그는 심사가 잔뜩 꼬였다. 외과 의사인 만큼 인체에 대해서는 하느님 다음으로 잘 안다.
환자라고 누워있는 동양인 청년은 신의 육체를 가진 놈이다. 게다가 여자처럼 예쁘장하게 생겼다. 붕대 감는 일 정도야 현지 간호원을 시켜도 된다. 에델이 찰싹 달라붙어 설치는 이유가 뻔했다. 평소 거칠고 무례한 군인들에게 반감이 많은 발터다. 질투심이 폭발했다.
“총질밖에 모르는 멍청한 인간.”
“군인이 다 멍청하지는 않소.”
블랙맘바가 눈을 번쩍 떴다. 진작 잠에서 깨었지만 나긋나긋한 손길이 난처해서 자는 체 했다.
“오우!”
블랙맘바의 옆구리에 붕대를 감고 마지막 매듭을 짓던 에델이 화들짝 놀랐다.
“고맙소.”
“천만에요. 당신은 환자고 나는 의사랍니다.”
블랙맘바가 빤히 올려다보자 에델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봐, 끝났으면 피 비린내 그만 풍기고 어서 떠나라고. 바깥에 환자가 줄지어 기다린단 말이야.”
발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발터, 그만하게. 그는 내 친구일세.”
“닥터 기즈?”
블랙맘바의 눈이 잔뜩 커졌다.
“기억은 완전히 찾았나?”
기즈가 빙그레 웃었다.
“이럴 수가! 블랙맘바의 친구 로렌 기즈가 맞군. 여긴 어딘가?”
기즈는 블랙맘바를 강조하는 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무쌍은 정체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MSF병원일세.”
“MSF? 기즈가 왜 여기 있나?”
“심심해서 MSF와 계약했지. 난 이곳에 있는 친구가 더 놀랍다.”
“헛 참, 인연이란 이래서 무서워. 난 레종 에뜨랑제에 입대했다.”
“자넨 폭력과 피를 싫어하지 않았나?”
“신의 축복을 받은 인간이나 입맛대로 살 수 있겠지.”
“그렇군, 소개를 하지.”
기즈 박사가 에델과 발터를 불렀다.
“소개하지. 뮌헨의 망나니 로만 발터, 리버풀의 예쁜이 루드리 에델일세. 좋은 직장과 평안한 삶을 버리고 진창에 구르는 멍청이들이지. 이쪽은 레종 에뜨랑제의 전사 블랙맘바다.”
“블랙맘바다.”
블랙맘바는 간단하게 인사했다. 발터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MSF의사는 존경의 대상이다. 무례한 인간이 없지 않지만 이놈은 무례가 아니라 무덤덤이다. 그게 더 눈에 거슬렸다.
“오우, 블랙맘바! 멋있는 이름이네요. 나는 루드리 에델이에요. 루드리라고 불러 주세요.”
에델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블랙맘바가 손을 가볍게 잡자 에델의 숨결이 가빠졌다. 발터의 눈이 심상찮게 번쩍였다.
인사를 나누자 기즈가 사적인 이야기가 있다며 두 사람을 내 보냈다.
“비밀 요원인가?”
“그 비슷하다. 무쌍이란 이름은 쓰지 말아줘.”
“알았네. 블랙맘바라고 부르지. 자네가 칸마인가?”
“음, 이곳까지 소문이 퍼졌나?”
“역시 그랬군. 무쌍이 아니면 누가 프롤리나트를 뒤집어 놓겠나. 칸마가 나쁜 군인들을 모두 죽이고, 마음 편히 살게 해 줄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
“크큭, 구세주인가?”
“구세주는 개뿔이, 악령이라 불리는 주제에 무하마드라도 되고 싶은 모양이지. 워낙 희망이 없다보니 그런 소문에라도 매달리는 거다. 왜 이렇게 많이 다쳤나?”
“어제 오후에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
“어제 오후? 하긴 특별한 신체니…….입을 단속해야 겠군.”
기즈의 표정이 묘해졌다. 총상이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물러 붙을 수는 없다. 새삼 그가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이 재인되었다.
“부상 정도는 어때?”
“아무리 앙크파라블 팍이라도 일주일은 안정을 취해야 할 걸. 일반인이라면 일 년은 침대 신세를 져야할 수준이다.”
“이 정도 부상이야 별 것 아니다. 아티도 프롤리나트의 위협에서 안전지대는 아닐 텐데 문제는 없나?”
“반군도 NGO는 건드리지 않아. 약품을 약탈해 갈 때가 있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아. 그 놈들도 국제적인 압력은 두려운 게지.”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아프리카와 신경정신과는 매치가 되지 않는다.”
“아프리카에서 섹터가 무슨 소용 있어. 어제는 외과, 오늘은 내과, 내일은 산부인과 의사가 되는 거지. 수단에서 기니웜과 한 판 하는 중에 필라리아시스가 이곳으로 부르더군. 아니 친구가 불렀나 보군. 아프리카는 정말 큰일이다. 망할 기생충이 인간을 정복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