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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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응무소주 이생기심4
“기생충이 그렇게 문제인가?”
“상상을 초월한다. 오염된 식수와 비위생적인 생활환경, 파리 모기의 창궐이 원인이다. 기생충 종류만 수십 종이다. 배가 뽈록 튀어 나온 아이들은 기아 부종도 있고, 촌충, 회충이 가득 들어찬 아이도 있다. 파동편모충, 열원충, 말라리아, 사상충, 방광주혈흡충, 이질아메바. 디스토마, 간카필라리아, 트리파노소마, 끝이 없다.”
“끔찍한 노릇이다.”
기즈 박사가 구멍 난 자신의 신발을 가리켰다.
“기생충도 문제지만 기아가 더 문제다. 신발값까지 아껴서 식량을 사지만 돈이 부족하다. 교수 셀러리 털어 넣고 MSF본부에서 지원하지만 늘 부족하다.”
블랙맘바는 머리를 끄덕였다. 작전 중에 마을에 들른 횟수는 세 차례에 불과하다. 메마른 대지, 메뚜기 떼의 습격, 프롤리나트 게릴라들의 약탈, 뼈만 남은 아기를 안고 있던 여자가 기억에 떠올랐다. 그거면 사헬 주민들의 궁핍한 생활을 파악하기에 충분했다.
“파리 대학 석좌 교수가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백년도 못 사는 인생 아닌가! 내 마음이 가는대로 살고 싶다.”
“마음이 가는 대로라~”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다. 기즈 박사가 금강경을 알리야 없지만 만유일통이다. 추레한 옷차림의 기즈 박사가 갑자기 커 보였다.
타인을 위해 사는 삶, 자신이 아수라 행을 할 동안 기즈는 보살행을 하고 있다. 동일하게 피 묻은 손이지만 한쪽은 죽이는 손이요 다른 쪽은 살리는 손이다. 찡하고 가슴이 울렸다.
“필라리아시스는 뭔가?”
“모기가 매개하는 기생충이다. 림프관을 막아서 다리를 못 쓰게 만드는 몹쓸 창조물이지.”
“별게 다 있군. 끊어졌다는 놈은 뭔가?”
“메디나충이다. 놈이 유충을 방사할 때면 피부를 뚫고 나온다. 조심해서 빼내는 중에 무식한 놈들이 소란을 떨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져 그 놈이 끊어져 버렸어.”
“끊어지면 어떻게 돼?”
“곤란하지. 놈이 조직 속에서 부패한다. 염증이 생기고, 석회화되면 다리를 잘라야 돼. 환자 다리를 일단 물에 담가 놓았지만 놈이 기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난리 났다.”
“수술은 불가능 하나?”
“놈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 길이 없다.”
“기즈, 환자를 데려와 봐.”
블랙맘바는 미안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동료들이 치료를 방해했단다. 어쩌면 공진파로 벌레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진을 방사(放射)할 수 있다면 흡입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잠시 후 에델이 눈물범벅이 된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를 데리고 왔다.
“기즈, 메디나충의 실물을 볼 수 있을까?”
실물을 보면 공간지각력으로 조직속의 이물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 놈이 아까 작업 중에 끊어져 버린 놈이다.”
기즈 박사가 샤알레를 내 밀었다. 길이 일 미터에 가까운 뜨개질 실 같은 징그러운 기생충이 둘둘 말려 있다. 보기만 해도 짜증나는 생물체다.
소녀의 환부를 살펴 본 블랙맘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벌레가 뚫었다는 터널은 보기에도 끔찍했다. 검은 피부에 붉은 속살이 드러나고 체액과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기가 막힌 장면이다.
블랙맘바가 손으로 환부를 덮자 아이가 움찔했다. 얼마나 심한 통증을 겪었는지 알만했다.
“아가야, 걱정하지 마라.”
블랙맘바가 부드럽게 말했다. 한국어지만 아이가 배시시 웃었다. 공간지각력은 형태장의 일종이다. 블랙맘바의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진 것이다.
공간지각력으로 메디나충의 잔해를 찾았다. 무릎 슬개골 바로 아래 힘줄과 근육사이에 들어있다. 생명 반응이 없다. 이래서야 엑스레이나 단층 촬영기 같은 의료기기를 동원해도 찾지 못한다.
우웅- 공진을 일으키고 메디나충을 끌어낸다는 의지를 강력히 실었다. 공진파를 쏟아내기만 했지 끌어들여 본 경험이 없다. 조직에서 벌레를 분리는 시켰지만 끌어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진땀이 솟았다. 사헬에서 깨달음을 얻어 방향성과 물리력을 시현하게 되었지만 정밀한 컨트롤은 아직 멀었다. 몸을 움직이고 공진파를 발동하자 간단치 않은 통증이 밀려들었다. 상처가 급속히 재생중이지만 완치는 아직 멀었다.
기즈는 블랙맘바와 혜영의 관계를 모른다. 그는 은근히 에델을 부추겼다.
“에델 선생, 블랙맘바는 동양의 신비한 기를 쓸 줄 안다. 저거 무지하게 힘들다. 본인의 수명이 단축될 정도다.”
“오 마이 갓, 본인의 수명을 단축시켜서 치료를 하다니, 블랙은 진정한 나이트의 표상입니다.”
에델이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블랙맘바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기즈의 입 꼬리에 비시시 웃음이 매달렸다.
‘이렇게는 안 되는군. 생각을 바꿔야겠어.’
블랙맘바는 우반신에 공진을 일으키고 좌반신을 텅 비웠다. 엔트로피는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역시 발상의 전환이 주효했다. 츄르르- 죽은 벌레가 이미 파놓은 터널을 통해서 조금씩 끌려나오기 시작했다. 소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블랙맘바는 공진파를 세심하게 조절했다.
“아이나 유믈리무니?(아프지 않니?)”
에델이 소녀에게 물었다.
“나암 야후쿠카(네. 간지러워요.)”
“헙!” 블랙맘바가 짧은 기합을 토하고 손을 뗐다. 상처를 덮었던 오른손을 뒤집어 보였다.
“오우, 이럴 수가!”
“세상에! 마법이다.”
끊어진 메디나충의 나머지 몸체다. 기즈 박사와 에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오, 하느님. 됐어요. 이제 다리를 자르지 않아도 돼요.”
기쁨을 참지 못한 에델이 블랙맘바의 품에 몸을 던졌다. 뭉클한 여체가 안겨들자 블랙맘바의 얼굴이 난감해졌다. 그도 건강한 남자다. 아니 보통 남자와 비교도 안 되는 정력가다. 신체의 한 부분이 요동을 쳤다.
“에델 선생, 끼또이 상처를 치료해 주시오.”
“흥!”
에델이 울먹이는 아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좋은 아가씨다.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영리하다.”
“그렇군.”
블랙맘바는 고개만 끄덕였다. 피에 절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가씨다.
“멋대가리 없는 놈. 어떻게 한 건가?”
“그냥. 설명이 불가능하다. 말해도 기즈는 이해 못한다.”
“하긴 옛날에도 그랬어. 훨씬 강해졌군.”
“아마도! 그놈도 이젠 무섭지 않다.”
“싸이 도지쿠?”
블랙맘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즈 박사는 자신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친구다.
“기분이 어때?”
“좋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수많은 인간을 죽인 손으로 소녀의 다리를 살렸다. 아수라가 보살행에 눈을 뜨는 순간이다.
소녀의 다리에 숨어있는 기생충 한 마리를 빼냈을 뿐인데 세상이 밝아 보였다. 죽이면 죽일수록 가슴이 공허해졌다. 아이 한 명을 치료해주고 느끼는 이런 충족감이라니!
블랙맘바는 명상에 빠졌다. 벌레를 공간지각력으로 찾아서 공진파로 분리하고 끌어내는 과정을 세심하게 복기했다.
아이를 치료하는 중에 새로운 능력도 얻었다. 스승님은 주면 얻는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는 새로운 공진파 운용법을 흡공파라 이름 지었다. 작명 센스는 더럽게 없는 놈이다.
똑 똑- 문을 두드리고 옴부티가 들어섰다.
“와킬, 본부와 통신이 완료되었습니다. 헬기가 이륙했답니다.”
“그렇게 빨리?”
“이미 준비하고 있었답니다.”
“흐흥, 그런다고 원죄가 없어지진 않지.”
블랙맘바가 스산하게 웃었다. 자신의 손은 치료하는 손이 아니다. 벼락을 때리는 손이다.
“착륙 지점은?”
“이곳과 빠스깨발입니다. 앞으로 80분이면 도착합니다.”
“이젠 지긋지긋한 사헬은 끝인가!”
블랙맘바의 얼굴에 회한이 어렸다.
“소인은 퇴출 준비를 하겠습니다.”
눈치 빠른 옴부티가 잽싸게 진료실을 나갔다.
“블랙, 그 능력을 무한정으로 발휘할 수는 없겠지?”
“글쎄, 하루에 두세 번? 그 이상이면 힘들다.”
아닌 게 아니라 메디나충을 빼내느라 기진맥진했다.
“음, 만능은 아니군. 블랙, 아프리카에서 사이비 교주 해 볼 생각 없나?”
“머라꼬?”
놀란 블랙맘바의 입에서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기즈, 나는 사헬에서 한 달 보름을 사람을 죽이고 다녔다. 이젠 사헬이란 말만 들어도 신물이 올라온다. 지금은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
“에휴, 관둬, MSF는 젊은 자네가 할 일이 아니야. 자넨 더 큰일을 할 사람이다. 그래도 아쉽네.”
기즈는 욕심대로라면 당장 블랙맘바를 MSF에 끌어넣고 싶었다. 그는 진짜 초능력자다. 그의 능력이면 수많은 사람을 고칠 수 있다.
“미안하다. 난 한국에서 할 일이 많다.”
기즈는 자신의 어린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5년의 세월이 풋내 나는 어린 친구를 묵직한 남자로 바꾸어 놓았다. 더 남자다워지고 더 신비롭게 변한 친구다. 친구는 큰물에서 놀면서 자신을 더 키워야 할 나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아프리카 구호기금을 내 왔다. 아프리카가 이 꼴이 된 배후엔 내 조상들의 책임이 크다. 이곳엔 벽시계조차 도난에 대비해서 자물통을 달아야 한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를 먹이려고 소시지를 지원하면 부엌에서 어른들이 다 먹어 버린다. 아이를 가르치라고 돈을 주면 선생이란 놈이 들고 도망가 버린다. 도대체 믿을 인간이 없었다. 절대 가난 때문이다. 배고파 쓰러진 인간에게 도덕과 윤리란 초콜릿 한 조각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자랐다. 고등 교육을 받았고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내가 받은 것은 모두 내 부모님과 국가 체제에서 나왔다. 그러면 국가는 어떻게 부와 기술, 문화를 얻었을까? 유럽은 원래 다른 대륙보다 미개했다. 유럽 제국은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의 등을 벗겨서 자신의 배를 채웠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프리카를 경멸하고 폄하한다. 일본이 가까이 있으니 잘 알겠군. 결국 나는 직접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블랙맘바는 나이 많은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열정이다. 마음속에 단단한 심지가 있고, 하겠다는 열정이 펄펄 끓는다.
“행복한가?”
“예전에 무쌍이 내게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했지? 바로 그거다. 살아가려니 행복이 필요했다.”
“훌륭하다!”
기즈의 열정에 감동했다. 인간을 죽이는 자신의 손, 인간을 살리는 기즈의 손.
‘행복한가?’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기즈, 메디나충 건은 비밀로 해 줘.”
“흐흥, 아이 셋의 문제를 해결해 주면 내 입은 조개가 될 걸세. 덤으로 에델과 아이들의 입도 단속하지.”
기즈가 장난스럽게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쥐어뜯으며 손바닥을 팔랑거렸다. 오랜만에 보는 익살이다.
“5년 만에 만난 친구의 뽕빨을 뽑으려 하다니. 진짜 칸마는 내 친구 기즈였어.”
“하늘이 능력을 줄 때는 쓰라고 준 거야.”
“알았다. 헬기가 오기 전에 서두르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후딱 하자고.”
“자네가 중환자란 사실을 잊지 말게. 무리는 하지 마.”
“병 주고 약주는 거야? 사실은 가짜 환자다.”
“자네가 가짜환자면 세상의 환자는 전부 가짜야. 무리하는 건 좋지 않아. 하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기도 싫군.”
에델이 간호원을 시키지 않고 직접 아이 셋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녀도 눈치가 백단이다. 블랙맘바의 능력에 놀랐지만 세상에 드러나서 좋을 게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신이여, 친구를 혹사시키는 나를 용서하소서! 필라리아시스에 감염된 아이들이다. 3기까지 진행되어 버렸어. 치료시기를 놓쳐 버렸다.”
“약품은?”
“치료시기를 놓치면 다이시카바마이신도 소용없다.”
보들보들해야 할 아이들의 피부 촉감이 엉망이다. 지방 조직이 늘어나서 어른 다리보다 더 굵다. 섬유화가 많이 진행되었다.
허옇게 각질이 일어나고, 깊게 팬 주름에서 진물이 흘러내렸다. 코끼리 다리라는 말 그대로다. 아이의 다리를 쥐었다. 공간지각력을 일으키지 않아도 이물의 기척이 잡혔다.
“필라리아시스라는 벌레를 가루로 만들어버리면 되나?”
“바로 그거야. 밀가루처럼 빻아 버려. 가루가 되면 조직에 바로 흡수된다.”
“블랙, 부탁해요. 림프액이 제대로 흐르면 완치될 수 있어요.”
에델이 힘내라는 듯이 작은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