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71
x 171
제21장 블랙맘바 쓰리탭 희망을 쏘다4
수컷이라면 거부 못할 페로몬이다. 블론드 머리가 흑단으로 바뀌었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한 얼굴로 바뀌었다. 음영을 드리운 긴 속 눈썹, 노루처럼 긴 목, 섬세한 쇄골, 혜영이다.
잘 익은 버찌 같은 입술 틈으로 살짝 보이는 하얀 앞니가 데자뷰를 일으켰다. 비진도 민박집이다. 절절 끓는 아랫목, 구멍 뚫린 문종이, 화살처럼 쏘아져 들어온 아침 햇살에 빛나던 나신, 혜영이다. 수컷의 본능이 꿈틀했다.
저 입술을 가지고 싶다. 나약한 육체를 유린하고 싶다. 자신도 모르게 다가섰다. 허리가 서서히 굽혀졌다. 바로 눈앞에 빨간 버찌가 있다. 환영에 사로잡힌 블랙맘바는 바르르 떨리는 에델의 속눈썹을 보지 못했다.
쿵-
갑작스레 소음과 진동이 울렸다.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다.
‘응?’
외출나간 정신이 현실과 접속되었다. 테이블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는 섬연한 여체, 에델이다. 그는 하릴없이 환자복을 찢을 듯 솟구친 하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하산이후로 처음 느낀 성욕이다.
에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블랙맘바가 어깨에 숄을 걸쳐주고 병실을 휭 나갔다.
텅- 입원실 문이 닫히는 소리다. 에델의 눈꺼풀이 살짝 열렸다. 침상에서 떨어진 선우현을 째려보는 눈이 짐짓 사나웠다. 본의 아니게 암사자에게 단단히 찍힌 선우현이다. 미구에 떨어질 불똥을 알 리 없는 선우현은 침상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쿨쿨 잘도 잤다. 블랙맘바는 병원 옥상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바보 같은 놈, 네 놈 정심이 그리도 얕더냐!’
사부의 일갈이 쩡하고 머릿속을 두드렸다. 파란트로푸스는 강력한 육체만큼이나 성욕도 강하다. 오금연노법은 정심과 부동이 수련의 요체다 사부는 고육지책으로 만접토설(萬接吐泄)이라 이름붙인 환영술로 제자의 성욕을 다스렸다.
만접토설은 명칭 그대로 수많은 미인과 밤새 교접을 하고, 밤새 토설한다. 섹스를 진절머리 나는 행위로 인식토록 하는 술법이다. 몇 번만 당하면 제 아무리 미인이라도 부동심을 갖게 된다. 당하는 인간도 고역이지만 시전자도 엄청난 기력을 소모한다.
나모라다나다아야야 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정심법 법문 암송이 밤새 이어졌다. 쉬운 길을 두고 애써 어려운 길을 가는 블랙맘바다. 인간의 조건은 그토록 어렵다.
간밤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던 태양은 떠오른다. 이른 아침에 전령이 병실을 찾았다. DGSE에서 보낸 알루미늄 케이스이다. 전령을 돌려보낸 블랙맘바가 왼손 엄지 지문을 찍어 케이스를 열었다.
대통령, 국방, 보훈, 문화 장관, 레종 에뜨랑제 사령관의 서명이 들어간 서류가 세 종류다. 수당 계산서. 훈장 수여 증서, 전보 명령서다.
“뭐가 이렇게 빨라!”
빨라도 너무 빨랐다. 차드에서 날아 온지 겨우 일주일이다. 한국도 관료의 일처리가 답답하도록 느려터졌지만 프랑스 관료에 비하면 양반이다.
프랑스 관료의 일처리는 루즈하기로 악명 높다. 급료도 낮고 사기도 낮고, 책임감도 낮다. 통상적인 업무처리 관행대로라면 전과 포상은 빨라야 3개월이 지나야 윤곽이 나온다. 보니파스가 공무원들을 얼마나 족쳤을지 눈에 선했다.
두툼한 서류를 제쳐놓고 자신의 수당 계산서부터 확인했다. 양철쪼가리나 전보 명령 따위는 별 관심이 없다. 물론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헉!”
수당 계산서 숫자와 단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20,182,000프랑!
공식 환율 213을 곱했다. 비현실적인 숫자를 연산하느라 뇌가 바쁘게 움직였다. 43억 원이다. 보니파스에게 5천만 불, 1천만 불을 압박했지만 볼륨이 얼마인지 감이 없었다.
눈이 튀어 나올 숫자가 블랙맘바를 촌놈 무쌍으로 돌려놓았다. 1981년, 한국을 떠나기 직전 일반미 20kg한 부대 가격이 12,800원이었다. 43억 원이면 335,937부대를 살 수 있다.
‘짜장면이 얼마였더라?’
대충 360원, 1200만 그릇이다.
“흐흐흐, 하동 아지메 식구들까지 핑생 먹어도 못다 먹을 양이구마. 저승에 계신 아부지에게 보낼 수는 없을라나.”
행복감이 물릴 듯이 밀려들었다.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엄마를 찾을 수 있다. 진순이 자매의 학비와 용돈도 넉넉히 줄 수 있다. 대학 등록금도 충분하다. 빗물이 새는 천생산 암자를 수리할 수 있다.
훈장 증서와 전보 명령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사헬의 악령 칸마, 죽음의 천사, 블랙맘바의 본질은 짚은다리 촌놈이다. 돈을 벌려고 총을 잡은 가난뱅이 무쌍이다.
프랑스인과 비교하면 한국인의 생활은 겁나게 빡빡하다. 여가 생활? 꿈도 못 꾼다. 미친 듯이 일해야 먹고 산다. 열 두 시간 노동은 보통이다. 한국에서 프랑스인처럼 점심시간을 두세 시간 느긋하게 즐겼다간 바로 잘린다.
일요일 작업도 당연시 한다. 대기업은 그나마 반공일과 일요일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한 달에 두 번만 쉬는 곳이 한국의 실정이다. 밤 12시에도 연락을 받고 공장에 나가기 다반사다.
근로시간으로 따지면 대략 세 배다. 그렇다고 배불리 먹고 사는 것도 아니다. 죽도록 일하면서 늙어간다. 노후 대책? 꿈도 못 꾼다. 자식 학비 대기 바쁘다.
45일 일하고 43억이다. 식겁할 노릇이다.
“두 당 오백 프랑이라!”
목숨 한 개 단가가 500프랑이다. 원화로 환산하면 대략 100,000원이다. 1981년 한국의 시중은행 신입행원 초봉이 180,000원 내외다. 목숨 값이 한 달 급료보다 못한 셈이다. 블랙 코메디다.
자신의 손에 죽은 프롤리나트 반군이 공식적으로 1,996명이다. 1,996명을 죽인 댓가가 998,000프랑이다. 사람을 떼거리로 죽이고 그걸 계산해서 돈을 받다니 코미디도 이런 블랙 코미디가 없다. 쓴물이 식도를 넘어왔다.
“1,996명이라!”
많이도 죽였다. 새삼 한 숨이 나왔다. 열 명을 살리자고 2,000명을 죽였다. 사부님은 사람과 개미의 생명이 다를 바 없다고 하셨다. 자신은 동료의 목숨 값에 200배 가중치를 둔 셈이다. 업장이 얼마나 쌓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보니파스가 말한 선물이 이건가?”
물경 이천만 프랑이다. 그는 돈에 얽매이지 않으려 할뿐, 노력의 대가를 마다할 바보가 아니다. 학비 몇 만원을 벌자고 막장에 들어가고, 산판을 돌아다녔다.
이렇게 왕창 안겨 준다면 오케오필라 스마그라디나가 배신했든 사기를 쳤든 다 용서해 줄 수 있다. 물론 본인에 한해서다. 동료들의 빚은 당연히 별개로 정산해야 한다.
속고 배신당한 기분이 좋을 리야 없지만 살아온 경험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조카를 5년 동안 돈 한푼 주지않고 노예로 부린 인간도 있다. 자신은 용병이다. 밥값을 하려면 당연히 피를 흘려야 한다. 속았다느니 배신이라느니 떠들어봐야 찌질한 인간의 투정일 뿐이다. 그래서 최대한 뜯어냈다.
한편으로 보면 오케오필라 스마라그디나들은 자신들의 기준에서 최선이라 여겨지는 판단을 하고 작전을 실행했다. 보니파스의 변명대로라면 백도 어는 불확실한 패를 엮어서 확실성을 제고한 작전이다.
보니파스가 던진 스트레이트는 확실히 통했다. 그는 예상을 뛰어넘는 보따리를 던져서 불만을 압사시켰다. 역시 만만치 않은 인간이다.
그자의 다음 수순이 그려졌다. 훅과 어퍼컷을 날리고 클린치를 할 것이다. 본인으로서도 나쁠 게 없다. 동료들의 몫은 챙길 만큼 챙겼다. 마음에 안든다고 배척만하면 세상과 어울려 돌아가기 너무 힘들다.
블랙맘바는 자신의 분노 게이지가 크게 올라가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강자의 여유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니 역지사지를 할 수 있다. 바로 수틀리면 깔끔하게 지워버리면 된다.
‘미음에 안 들면 지워버린다고? 내 심성이 변했나?’
블랙맘바는 흠칫했다. 지극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짐승의 생각이다.
사헬에서 보낸 45일이 파노라마로 스쳐갔다. 풍뎅이와 전갈도 부족했던 굶주림, 뇌가 불타는 갈증, 끝없는 전투와 살인, 끔찍한 파리와 모기, 찬란한 밤하늘, 지긋지긋한 모래바람,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소년병, 목이 잘리는 순간에도 알라를 부르짖는 늙은 게릴라.
‘생각할 수 있고 돌아 볼 수 있는 한 나는 인간이다.’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블랙맘바는 서류를 금고에 던져 넣고 벌떡 일어났다. 산사람의 일이 정리되었으니 죽은 자의 혼백을 신원(伸冤)해 줄 타임이다.
“옴부티, 등산을 가야겠다.”
“파리에서 등산할 곳이 있나요?”
뜬금없는 말에 에델이 고개를 갸웃했다. 파리는 평원에 건설된 도시다. 나지막한 구릉이 고작이다.
“조금 멀리 간다.”
“조금 멀리? 아침을 빨리 차릴게요.”
에델이 종종 걸음을 쳤다. 프릴달린 앞치마가 팔랑거렸다. 전날 언제 맛이 갔냐는 듯이 활기가 넘쳤다.
옴부티는 최강 집사답게 바로 알아들었다.
“어제 저녁에 똥 막대기가 자료를 보내 왔습니다. 프로방스 안시(Annecy)에서 아네씨 호수를 따라 2.6km남쪽입이다. 베오그라드 호텔 뒤쪽으로 산을 700m 오르면 2층 통나무 별장이 나옵니다.”
“망할 녀석, 멀리도 가서 짱박혔구먼. 차량 이동은 어렵겠지?”
“차량 이동 거리로 630km입니다. 똥 막대기에게 가젤을 부탁해 두었습니다. 등산복과 등반 장비는 준비해 두었습니다. 암벽 지대라 특수 로프 50m를 준비했습니다.”
역시 최강 집사다. 옴부티는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다.
“와킬, 오늘 오후에 용병 동무들이 옴메. 기냥 실행하기요?”
블랙맘바가 이마를 쳤다.
“아차, 까맣게 잊었다. 시간이 될려나?”
“가젤 SA342에 무장을 탑재하지 않으면 시속 300km까지 가능합니다. 100분이면 목표지점에 도달합니다. 와킬이 구태여 밤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길티, 오늘 밤에는 배 터지게 마셔야 함메. 와킬, 즉시 출발합세다.”
선우현이 맞장구를 쳤다.
에델이 살벌한 눈으로 선우현을 노려보았다.
“안돼요. 아침 먹기 전에는 등산은커녕 산책 나갈 생각도 말아요. 블랙은 환자란 말예요.”
“헐!”
에델의 박력에 밀린 남자 셋이 끽소리 못하고 식탁에 앉았다.
“얼래, 삼계탕? 에델 어떻게 이걸 만들었지?”
블랙맘바의 눈이 커졌다. 닭 냄새가 나기에 코코뱅을 준비하는 줄 알았다. 아침 일찍 종종걸음 치더니 삼계탕을 끓였을 줄은 몰랐다. 맛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대추, 밤, 은행, 잣, 쌀을 넣어 만든 그럴듯한 삼계탕이다.
“병원 뒤쪽 싹스가에 한국 식당이 있어요.
“에델, 고맙다.”
“가족간에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법이랍니다.”
에델이 배시시 웃었다. 부은 눈두덩이 오히려 청순함을 더했다. 블랙맘바는 한순간 아찔했다.
상대를 배려해서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마음 씀씀이가 가슴을 찔렀다. 화려한 미모, 잘빠진 몸매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소리 없이 스며드는 정이 무섭다. 이 여자는 혜영의 고상함과 진순의 청순함을 모두 갖추었다. 에델의 미소가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에델양, 내 삼계탕은 어디 있지비?”
“쫄따구님은 아침이 없어요.”
“뭣? 옴부티 몫도 있는데 나는 왜 없슴메? 내래 삼계탕을 무지 좋아함메.”
영문을 모르는 선우현이 포크로 빈 접시를 시위하듯 두드렸다.
텅- 말라빠진 소시지 몇 개가 담긴 접시가 선우현의 앞에 툭 던져졌다. 전날 술안주로 먹고 남은 말라빠진 소시지다.
“쫄따구님 식사예요. 제가 차린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가서 드셔도 좋아요. 그러면 블랙도 나가서 먹어야 할 거예요.”
부족한 퀼리티만큼 감정이 채워졌다. 말을 마친 에델이 휭 침실로 들어갔다. 선우현의 얼굴이 썩어문드러졌다. 엄청난 협박이다.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외식을 하면 와킬의 식사도 차려주지 않겠다는 소리다. 그런일이 발생하면 옴부티가 당장 권총을 뽑아든다.
“무시기 이런 일이, 넨장 오늘이 그날인가?”
선우현이 구시렁거리며 딱딱한 소시지를 씹었다. 블랙맘바가 싱긋이 웃으며 선우현의 접시에 닭다리를 올려 주었다.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불운한 중생에게 베푸는 보시다.
쿠두두두- 오전 9시, 정해진 시간에 가젤이 병원 옥상에 착륙했다. 등산복 차림의 블랙맘바와 선우현이 올랐다. 가젤이 요란한 로터음을 남기고 남쪽으로 급속 운항했다.
“와킬, 내래 산악은 자신있슴메. 함께 오르기요.”
“나도 알아. 시간이 없다. 쥐새끼 한 놈 처리하자고 형제들을 기다리게 할 수야 있나. 기장에게 말해. 목표지점 50m상공에서 퇴출한다. 헬기는 호수를 한 바퀴 돌아서 30분후 동일 지점에서 패스트 로프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