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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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블랙맘바 쓰리탭 희망을 쏘다8
“눈을 감아라.”
블랙맘바는 두 손으로 레아의 머리를 가볍게 쥐었다. 의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뇌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아차하면 사달이 난다.
두웅- 공간지각력이 뇌를 훑고 지나갔다. 별다른 느낌이 없다. 몇 차례 거듭해도 소득이 없다. 블랙맘바는 생각을 바꾸었다. 공간지각력은 기본적으로 동물이 발산하는 생기를 감지한다.
기생충은 파장이 다르기에 공간지각력에 형체가 잡혔다. 이물질을 감지하려면 공진파를 쓸 수밖에 없다. 공간지각력과 달리 공진파는 물리력이다. 여린 뇌를 곤죽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일을 행함에 자신을 믿어라. 회의가 정신을 잠식하는 순간 아미타불이 도로 아미타불이 된다. 바위가 주먹으로 깨지더냐? 신념으로 깨진다.’
오금공을 수련할 때 수없이 들었던 스승의 말씀이다.
구우웅- 공진파가 임맥 독맥을 휘돌아 두 팔로 몰려나왔다. 대부분의 흐름을 되돌리고 일부를 남겼다. 닥종이에서 섬유를 뽑아내듯이 가늘게 쪼갠 공진파를 뇌혈관으로 밀어 넣었다.
성체 인간의 혈관 총 길이는 120,000km라고 한다. 그중에 10%가 뇌에 몰려있다. 미세 혈관을 제외하더라도 엄청난 작업이다.
머리카락이 땀으로 푹 젖었다. 블랙맘바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에델이 가제로 조심스럽게 땀을 닦아냈다.
‘찾았다!’
거의 한 시간이 지났다. 공진파로 혈관을 일일이 탐색한 끝에 운동 중추부와 언어 중추부의 막힌 혈관 여러 개를 찾아냈다.
공진파의 진폭이 커졌다. 두웅- 두웅- 딱딱하게 굳은 혈괴를 정으로 쪼듯이 계속 두드렸다. 행여나 민감한 조직에 데미지를 입힐세라 출력을 높이지 못했다.
30분이 지나서야 막힌 모세 혈관 여섯 개를 말끔히 뚫어냈다. 탄력을 잃은 모세 혈관 2개가 손상되었지만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완전히 지쳐버린 블랙맘바가 털썩 주저앉았다. 물에 들어간 듯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에델, 막힌 모세 혈관 여섯 개를 뚫었다.”
에델의 얼굴이 환희로 넘쳐났다.
“오 마이 갓, 기어코 해 내셨군요.”
“어이구, 이거 할 짓이 아이다.”
“어머 땀 좀 봐. 어쩜 좋아!”
에델이 발을 동동 굴렀다. 의사인 그녀는 블랙이 얼마나 큰 심력을 소모했는지 충분히 이해했다. 수명이 단축된다는 기즈 박사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괜찮다. 이 녀석은 언제 회복될까?”
“이 개월 정도면 괴사된 세포가 대치되거나 재생 될 거예요. 제가 내일 MRI조영으로 확인해 볼게요.”
“다행이군.”
“레아, 기분이 어떠니?”
“……”
에델의 물음에 레아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레아, 언니가 물으면 대답해야 한다.”
“네, 언니 기분이 무척 좋아요.”
레아가 즉각 대답했다.
‘알 수 없는 분!’
에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거부당해본 기억이 없다. 어린 아이는 본능적으로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파악한다. 자폐아까지 마음을 열게 만드는 남자다. 세상에 이런 남자가 있을까.
십자가에 매달린 힘없는 아버지, 공포에 질려 숨어있어야 했던 자신, 그로 인해 물리적 강함을 동경했다. 인세에 존재하지 않을 블랙맘바의 강함!
아버지의 복수를 부탁하고 싶은 삿된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그는 개인의 복수나 맡는 해결사가 아니다. 자신을 태워 세상을 구원하는 아수라다. 그녀의 가슴이 영산홍처럼 붉게 타올랐다.
아이의 변화는 엄마가 가장 잘 알아본다.
“오우, 레아! 웬일이니?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걷는구나.”
쥴리가 반색을 했다. 늘 고개가 우측으로 기울어져 있던 레아다.
“부인, 레아는 완치되었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쥴리가 의아한 눈으로 에델을 쳐다보았다.
“레아는 언어중추와 운동중추의 모세 혈관이 혈전에 막혀 있었어요. 산소와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뇌세포가 괴사한 거죠.”
“그 그런 일이, 병원에서도 그런 진단은 없었어요. 저는 그냥 자폐 증세를…….언제 수술을 했나요?”
쥴리가 말을 더듬었다.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다.
“블랙이 뇌혈관을 뚫었어요. 뇌는 항상성이 있어요. 일단 산소와 영양이 공급되면 괴사된 부분이 건강한 세포로 대치됩니다. 앞으로 하루하루가 달라질 겁니다. 신나게 달리고, 참새처럼 재잘거릴 거예요.”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아요. 블랙, 에델 선생님의 말씀이 정말인가요?”
쥴리가 블랙맘바를 올려다보았다. 간절한 시선이다. 블랙맘바의 말이라면 자갈을 감자라고 해도 믿을 쥴리다.
‘어머니!’
쥴리 여사의 얼굴에 어머니 얼굴이 겹쳤다. 신작로에서 엎어져 무릎이 까졌다. 아까징기가 없어서 혀로 핥아주던 어머니, 친척 잔칫집에서 몰래 떡을 손에 쥐어 주던 어머니, 밤늦게 호롱불 아래 양말을 깁던 어머니, 땅이 다르고, 물이 달라도 세상의 어머니는 다르지 않았다.
“쥴리, 레아는 두 달이면 활력을 주체하지 못해 말썽을 피우는 아이가 될 겁니다. 나 블랙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내 조카가 다른 애들만 못해서야 체면이 아니지요.”
“오 마이 갓! 레아가 말썽쟁이가 된다니…….우리 그이가 당신을 보내주셨군요. 키다리 아저씨를 보내 주셨어요. 으흐흑!”
쥴리가 블랙맘바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흐느꼈다.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는 순간 자신도 죽고 싶었다. 몇 푼 나오는 전사 위로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슬픔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블랙이 막막했던 현실을 단번에 뻥 뚫어주고, 딸의 난치병까지 고쳐주었다. 병원에 들어설 때까지 어둠이 가득했던 가슴이다. 한 줄기 빛이 들더니 세상이 환하게 밝아졌다.
“너무 큰 은혜를 받고도 보답할 길이 없어요. 옴부티님과 쫄따구님이 하인이라 하시더군요. 저는 하녀가 되겠어요.”
뜬금없는 소리에 블랙맘바가 펄쩍 뛰었다. 머리가 뜨끈해졌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인이 아니라 친구입니다. 보답은 쥴리가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겁니다.”
“그럼요. 그렇게 하고말고요.”
쥴리가 방아깨비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후식으로 마카롱과 타르트를 즐기던 에밀과 장쒼이 속닥거렸다.
“저 녀석 보게. 이젠 처녀를 건드리다 못해 나이든 여자도 울리네. 저런 나쁜 놈은 다시 사헬로 보내야 해.”
“넌 눈에 치즈를 처발랐냐? 지금 광신도를 또 한 사람 얻은 거라고. 곧 블랙교가 창시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허이구 퍽이나, 저 녀석은 남 앞에 나서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놈이야. 어둠의 주재자, 막후의 괴수, 대충 이런 부류지.”
“아깝다.”
“뭐가 아까워?”
“중국에 가서 도관(道冠)만 쓰면 돈을 태산처럼 끌어 모을 텐데 말이다. 역시 안 되겠지?”
“쉿, 옴부티가 온다. 야밤에 눈 쏟아지는 야외로 쫓겨나지 않으려면 블랙에게 이놈 저놈하지 마라.”
“젠장 하인이 무서워서 친구를 씹지도 못하네.”
“에델도 조심해야 돼. 옴부티를 닮아가고 있어.”
“옴부티 바이러스가 무섭긴 무섭네. 치명적이야.”
“쩝, 아깝다. 도관만 씌우면 돈 덩어리인데 말이야.”
장쒼이 돈벌레 중국인답게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다. 밤이 깊었다. 옴부티가 예약된 호텔로 유족들을 이끌었다.
“블랙, 내 새로운 아들이여, 신의 가호가 있을진저.”
엠마와 에밀리가 블랙맘바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피에르 옹도 발길을 옮기지 못했다. 쥴리는 블랙맘바의 가슴에 얼굴을 박고 울었다. 레아는 블랙맘바의 품에서 곤히 잠들었다.
마음이 따뜻했다. 인간의 조건은 공감이다. 긍정적인 감정의 공감이야말로 인간이 행복해지는 바탕이다. 살기위해서는 행복이 필요하고, 행복하려면 공감이 필요하다.
“에르 엑딤 전투보다 더 힘들다.”
블랙맘바가 침대에 척 늘어졌다.
“자네 덕분에 모두가 행복하게 되었어. 보상을 팍팍 얻어 내려고 자네를 잔인한 악당으로 만들었네. 필립 대령, 아니 소장은 자네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거야. 용서하게.”
폴이 낄낄 웃었다.
“잘했다. 감정 분출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얻을 것을 얻으면 된다.”
냉정한 말이다. 폴의 얼굴이 뜨악해졌다. 어린 나이에 불구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이 언제나 생경했다.
‘멍크로 지내서 그런가?’
“내가 화를 내지 않아 이상한가?”
“그렇다. 어쩌면 래쿤 작전의 가장 큰 피해자가 자네다. 피를 싫어하는 자네가 배신과 음모에 걸려서 피바다를 굴렀다. 나도 마음이 아프다. 자네가 감정적으로 날뛸 인간은 아니지만 한바탕 뒤집을 줄 알았다.”
“조직은 그 자체의 의지를 가진다. 개인의 의지는 조직의 의지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참작할 여지가 많다. 폴 당신도 차드에서 여러 번 조직의 입장에서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용서하되 잊지 않으면 된다.”
폴은 등이 서늘했다.
전투력만 강한 인간이 아니다. 무서울 정도의 통찰력을 갖춘 영리한 인간이다. 사헬에서 리더의 실수를 알고도 조직의 생리를 감안해서 말없이 따랐던 인간이다.
“자네 일처리가 매끄럽긴 하지만 아쉬움도 조금 남는다. 흠씬 두들겨 주고 싶은데 말이다.”
“폴, 본래 금화소리가 나면 욕설이 사라지는 법이다. 이래저래 맺힌 게 많지만 우린 군인이다. 그것도 용병이다. 당국에서 돈 보따리를 화끈하게 풀었으니 잊어버린다.”
폴은 그만 하하 웃고 말았다. 필립 소장의 부탁을 받아 블랙맘바를 달래러 온 자신의 행보가 무색해졌다.
“폴, 당신은 팀을 잘 이끌었다. 고지식한 면도 있었지만 당신은 훌륭한 군인이다. 백년도 못사는 인생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당신은 블랙맘바의 좋은 친구다.”
블랙맘바가 손바닥으로 폴의 등을 두드렸다.
“흐으 블랙맘바의 칭찬을 받다니 감격스럽구먼. 자네는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소금 같은 존재다. 동료의 몫을 챙겨주느라 자신의 몫을 소홀히 하진 않았겠지?”
“충분히 챙겼다. 보니파스와 제르맹의 머리가 뜨끈했을 거다. 고맙게도 신임 아프리카 과장 놈이 습격까지 해 주었거든.”
“크크, 죽고 싶으면 차라리 악어 아가리에 대가리를 들이밀지. 전부 죽였나?”
“그깟 조무래기 죽여서 뭐해. 인상 좀 썼더니 입막음 뇌물을 잔뜩 안기더군. 고마워할 필요는 없겠지?”
“뒤가 구린 인간들이다. 뇌물을 받아줘서 엄청 고마워 할 거다.”
“자네 성질에 미구엘은 성하지 못했겠군.”
“오늘 오전에 아네씨 호수에 다녀왔다.”
“아네씨? 서알프스의 아네씨 호수 말인가?”
“알프스 산중에 숨었더군. 엔간히 내가 무서웠던 모양이다. 통구이가 되었다.”
“통구이?”
“백린을 뒤집어썼다. 뼈도 못 찾을게다.”
“그야말로 알라의 심판을 내렸군.”
폴은 다시금 등이 서늘했다. 죽을죄를 지은 놈이지만 백린으로 태워버리다니, 과연 칸마다운 일 처리다. 바로 직전까지 부리머의 두 딸을 데리고 놀던 놈이다. 아이의 장래를 걱정하고, 노부부의 손을 잡고 흐느끼던 놈이다. 역시 본질은 맹수인 인간이다.
“이젠 끝난 셈인가?”
“조프레 녀석과 땅쉬 대령이 남았다.”
“휴, 내가 말린다고 들을 자네도 아니고, 두 놈에게 조의를 표해야 겠군.”
죽음의 천사에게 찍혔으니 두 놈의 운명은 바로 끝장이다.
“11공정여단의 주둔지를 아나?”
“설명이 조금 필요하겠군. 11공정여단은 특수전통합사령부 소속이다. 예하에 8개의 연대가 편제되어 있다. 우리 되지엠 랩도 8개 연대중의 한 개다. 각 연대마다 2~3개의 GCP(공수코만도)을 운영한다. GCP는 12명으로 구성된 최고의 엘리트 전투 집단이다. 병원을 습격한 놈들도 GCP팀일 가능성이 높다. 조심해야 될 놈들이다.”
“그 따위 녀석들이 엘리트라니, 엘리트가 몽땅 제대했구먼.”
블랙맘바가 비웃었지만 폴의 안색은 풀리지 않았다.
“자네 수준에서 보면 그렇겠지. 하여간 그 놈들이 기동 타격대다. 시그널을 받으면 GCP는 3분내 출동, 본대가 5분내 출동하는 정예 조직이다. 땅쉬가 미구엘의 소사(燒死)를 알게 되면 인의 장막을 치게 된다. 놈들이 블록 단위로 진형을 짜고 화력을 집중하면 자네도 위험해 진다.”
“그래서 오늘 움직인다. 내가 아싸신이란 사실을 잊지 말게.”
폴이 머리를 쳤다.
“그렇지. 그림자를 누가 막겠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공정여단이 만만한 조직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정여단 본부는 도버 해협쪽 르아브르에 있다. 땅쉬는 본부에 있을 테고, 조프레는 저지 섬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저지 섬에 특수전통합사령부 유치장이 있거든. 미구엘이야 써펀트가 버렸지만 땅쉬는 아니야. 그놈을 블랙이 찾는다는 흔적을 남겨선 안 돼.”
“옳은 말이다. 르아브르와 저지 섬이라~, 귀찮게 되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