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77
x 177
제21장 블랙맘바 쓰리탭 희망을 쏘다10
‘께스끼 스 빠스?, 세상에 이런 둔한 놈이 있나!’
폴이 가슴을 쳤다. 이놈은 큐르논스키가 극찬한 프로방스 부야베스를 앞에 두고 식어빠진 포토푀(potaufeu, 야채를 넣고 끓인 서민용 스프, 샤브샤브처럼 고기를 넣기도 한다.)를 찾는 놈이다.
“블랙, 둔한 거야 둔한 척 하는 거야? 자네 머릿속을 채운 여자가 미울 지경일세. 난 에델보다 더 좋은 여자가 있다곤 상상을 못하겠네. 친구로서 충고하건데 반드시 잡게.”
살짝 흥분한 폴이 침을 튕겼다.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두견고명명월송(杜鵑孤鳴明月松)[셀 수 없는 세월이 흘러도 인연은 어렵다네. 달 밝은 월송산에 뻐꾸기가 외롭게 우는구나!]”
블랙맘바는 진리를 얻기 힘들다는 여래의 말씀에 7언 율시를 붙여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월송은 짚은다리 월송산이다. 물론 폴의 귀에는 외계인 언어로 들렸다.
“알아들을 말을 해라. 간혹 자네가 수도사인지 용병인지 헷갈린단 말이야.”
“후후, 인간 자체가 혼돈 아닌가. 이별이 저만치서 기웃거릴 때 이미 가슴이 찢어졌다. 운명의 엇갈림까지 받아들인다면 내 가슴은 뭉개져 버린다.”
폴이 가슴을 쳤다.
“허이구 내가 미친다 미처. 에밀이 자네 별명을 정조대라고 붙였다며? 지난 일 년간 편지 한 장 오지 않았다며? 그 여자가 도대체 어떤 여자인가? 자네가 나비 부인, 아니 나비 신사인가?”
블랙맘바는 쏟아지는 의문사에 현기증을 느꼈다.
“에델이 폴의 여동생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을 내나?”
“등신아, 답답해서 그런다.”
“암담했던 내 생애에 빛을 던져준 여자다. 그녀가 먼 길을 돌아왔을 때 반겨 맞아줄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슬프겠나.”
“그녀가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나? 떠난 남자는 돌아와도 떠난 여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넌 아직 어려서 몰라. 나이가 들면 분명히 후회하게 될 거다.”
“돌아오지 않으면 다음 생에 만나면 된다. 내가 어리석고 못나서 지켜주지 못한 사랑이다. 내게 후회라는 말조차 사치다.”
벽창호 같은 소리에 폴은 억장이 무너졌다. 치마만 두르면 달려드는 에밀 같은 녀석이 있는가 하면 이 녀석처럼 멍청한 순정남도 있다. 참으로 인간은 백인백색이다.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나. 여자가 요물인가, 아니면 이상한 바이러스에 감염됐나? 자네같이 영리한 인간이 어리석은 벽창호가 되다니 말이야.”
“취한 듯 살아가는 인생, 어리석음에 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블랙맘바의 얼굴이 가을걷이 끝난 늦가을 논처럼 쓸쓸해졌다.
날이 밝으면서 함박눈이 싸락눈으로 변했다. 창문을 주르륵 긁고 내려가는 싸락눈이 데자뷰를 불렀다. LA행 비행기 꽁무니를 하염없이 쳐다보던 그날, 눈물 젖은 얼굴에 부딪히던 싸락눈의 촉감이다.
“일단 푹 쉬게.”
알프스를 어깨에 올려놓은 듯 지치고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다. 폴은 더 이상 닦달하지 못하고 병실을 나섰다.
“악트!”
식사를 막 마쳤을때 헌병의 호위를 받는 전령이 도착했다.
“뭔가?”
“국방부 의전실 소속 자베르 대위입니다. 장관님의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마땅히 대통령이 엘리제궁에서 훈장을 수여해야 하나 콜네임의 특성상 공식적으로 처리하지 못한 점 유감이다. 내 선물은 프롤리나트 3군 사령부 깃발에 대한 보답이다. 이상입니다.”
“무슨 깃발? 아하, 하비브의 깃발 말이군. 그게 장관실로 갔나?”
“그렇습니다. 국방장관님과 문화장관님을 비롯해서 여러분이 경합을 벌였습니다.
“헐, 그깟 헝겊쪼가리가 뭐라고 다퉈. 참 이상한 노인네들이네.”
자베르가 알루미늄 케이스와 오크목 상자를 전달하고 돌아갔다.
“흥, 양철쪼가리와 뒤도 못 닦을 빳빳한 종이를 어따 써. 젊은 피를 뽑아 먹는 늙은 오케오필라 스마라그디나들의 전형적인 수법이지.”
블랙맘바가 훈장과 증서를 휙 집어던졌다.
나폴레옹이 제정한 레종 도뇌르 훈장은 다섯 단계가 있다. 1등급 그랑크로아, 2등급 그랑도피시에, 3등급 코망되르, 4등급 오피시에, 5등급 슈발리에다.
레종 도뇌르는 영광의 군단이란 뜻이다. 주로 군인에게 수여되지만 일반인과 외국인에게도 수여된다. 1980년대까지 레종 도뇌르 한국인 수상자는 없다.
“어머, 레종 그랑도피시에!”
에델이 블랙맘바가 집어던진 훈장 증서를 확인하고 탄성을 터트렸다. 레종그랑도피시에는 외국의 국가원수에게 수여되는 훈장이다. 남발되는 슈발리에와는 차원이 다르다. 에밀등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야, 이거 말만 들었지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말도 안 돼. 왜 우리는 흔해 빠진 5등급이고 블랙은 2등급을 주는 거야?”
“무슨 소리. 블랙이 국가원수급보다 못한 게 뭐가 있어.”
“임마, 국가원수를 주먹으로 뽑나?”
“블랙은 똑똑하다구.”
에밀과 장쒼이 늘 그렇듯이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에밀은 무식한 편이다. 반면에 장쒼은 깐죽대는 스타일이다. 붙어있으면 늘 툭탁거린다. 그러면서도 찰떡처럼 붙어 다닌다.
“슈발리에든 그랑도피시에든 돈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블랙맘바가 툭 던지는 말에 용병들은 물론 에델까지 멀뚱해졌다. 그랑도피시에는 정부가 고귀한 신분을 증명하는 훈장이다. 집어던질 물건이 아니다.
옴부티만이 자부심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은 아즈라일의 환생이다. 국가원수급 에게 주어지는 그랑도피시에라지만 인간의 물건일 뿐이다. 옴부티의 콧대가 한없이 올라갔다.
명성과 체면에 무심한 블랙맘바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조금 작은 상자를 개봉한 블랙맘바가 픽 웃었다. 은장 발터 PPK, 호신용으로나 사용될 예쁘장한 권총이다.
“왜 웃어요?”
“발터PPK는 히틀러가 자살할 때 사용한 권총이다. 한국에서는 김이라는 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쏘아 죽인 총이기도 하지. 제르맹은 자신이 잘못하면 이 총으로 자신을 쏘라는 시그널을 보낸 거다. 찬스에 강하고 순발력이 뛰어난 늙은이다. 그러니 그 자리에 앉아 있겠지만.”
“너무 예뻐요.”
“에델, 선물하고 싶지만 이 총은 ‘지도자 킬러’라는 별칭이 붙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다. 에델에게 선물하고 싶지 않다.”
“오우, 블랙! 고마워요.”
무뚝뚝한 한 마디에 담긴 진정에 가슴이 떨렸다. 감격한 에델이 블랙맘바의 볼에 키스를 날렸다.
이것이 사랑인가! 자신을 생각해주는 한 마디 말에 행복 웅덩이에 풍덩 빠졌다. 사촌 앤드류의 값비싼 선물과 달콤한 말은 귀찮기만 했었다.
“이봐 백만장자들, 내가 간식을 준비해 두었다.”
눈치가 귀신인 옴부티가 일행을 몰아서 병실을 빠져나갔다.
병실에 두 사람만이 남자 에델이 커튼을 활짝 걷었다. 온통 설백으로 변한 시가지가 하얗게 빛났다. 멀리 눈덮힌 몽빠흐나쓰 묘지와 룩셈부르그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아티에도 눈이 오면 얼마나 좋아.’
아이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아프리카 의료봉사는 늘 위험이 동반된다. 질병과 테러다. 질병은 예방하면 되지만 테러는 예방할 수 없다.
자신이 병균을 잡는 전사라면 블랙은 테러를 잡는 전사다. 블랙과 함께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다. 소총처럼 커다란 주사기를 든 자신을 블랙과 나란히 세워보았다. 은근히 어울려 보였다.
“킥 킥!”
에델은 혼자만의 상상에 킥킥거렸다.
‘나는 저이를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고, 함께 일하고 싶다고.’ 에델은 스스로를 강변했다.
옴부티가 좁고 긴 유리잔 두 개를 받쳐 들고 들어섰다.
“와킬, 없는 솜씨로 소르베(sorbet, 과일즙이나 설탕으로 만든 베이스를 아이스크림처럼 저어 공기를 불어넣으면서 얼린 아이스크림의 일종)를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달달한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풀어진다. 최강 집사 옴부티는 마음에 쏙 드는 에델을 위해서 온갖 꼼수를 다 부렸다.
“블랙, 탐욕과 가식이 가려진 세상이 아름답지 않나요?”
창밖을 가리키는 에델의 볼이 일출을 받아 잘 익은 복숭아처럼 빛났다.
‘으음!’
블랙맘바는 가슴이 찌르르했다. 혜영의 목덜미 솜털만큼이나 충격적인 아름다움이다. 페로몬을 뿌리는 두 번째 여자다.
“에델, 당신은 아름답고 현명한 여자다. 나는 거친 용병이다. 하루하루가 작두날 위를 걷는 신세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당신이 피비린내 나는 내 곁에 있는 이유가 뭔가?”
에델이 소르베를 한 입 잔뜩 베어 물었다.
“블랙, 나는 지금 내 입에 든 소르베를 당신 입으로 옮겨주고 싶어요. 이유가 뭘까요?”
“끙!”
블랙맘바가 된 신음을 뱉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묘하게 비튼 반문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이만하면 강적이다.
“블랙, 여자가 있지요?”
에델의 질문은 마치 동생이 있느냐고 묻는 것처럼 평온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 변화에 민감하죠. 피냄새를 맡는 상어처럼요. 모든 암컷은 수컷만큼이나 강한 씨를 퍼뜨리려는 본능이 있어요. 당신같이 강하고 빛나는 수컷을 내버려둘리 없죠.”
“크크크, 그것참 대단한 초능력에 대단한 유전 생물학 이론이군.”
블랙맘바가 시니컬하게 웃었다. 뻐꾸기 낭자하게 울던 6월의 어느 날, 꿈결처럼 다가왔던 그녀, 긴 속눈썹에 덮인 젖은 눈동자가 저 멀리서 슬프게 보고 있다.
“캄캄한 세상에 홀로 허우적거릴 때 손을 잡아 준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내 누이고 어머니가 되어 주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떠났지만 난 원망하지 않는다. 남녀의 사랑은 서로가 디딤돌이 되어주지 못하면 영속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그녀의 짐이었다. 이젠 그녀의 짐을 받아줄 준비가 되었기에 기다린다.”
“아!”
에델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기다린다고 한다. 가슴이 찢어지지 않을 여자가 없다.
또한 감동이다.
짐이 되기에 떠나는 여자를 잡지 못하고, 짐을 받아 줄 수 있기에 여자를 기다린다고.
이 무슨 팝송 가사 같은 소리인가. 이런 남자이기에 자신의 마음이 기울었다. 바보로 여겨질만큼 순수하고 열정적인 남자다.
“블랙, 나도 기다리겠어요. 당신이 그녀를 기다리듯이 나도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
“바보짓이다. 우리는 일 때문에 만났다. 만난 지 고작 열흘이 지났을 뿐이다.”
“블랙답지 않은 말씀을 하네요. 시간만큼 상대적인 개념도 없어요. 사랑하는 여자와 하루를 살고 싶나요?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평생을 살고 싶나요?”
“……”
마음이 아릿해졌다. 바로 자신이 혜영에게 던졌던 말이다. 혜영은 깔깔 웃었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서 평생 데리고 살겠다고 말했다.
난감했다. 에델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녀는 헤픈 여자가 아니다. 마음이 여릴뿐 주관이 뚜렷하고 의지가 강한 여자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리는 여자가 에델이다. 아버지는 여자를 울리는 놈은 호로자식이라고 했다. 참으로 고약한 상황이다.
“당신의 대답이 무엇인지 나는 알아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어요. 내 자유의지로~ 어맛!”
꽈당- 에밀이 황소처럼 병실 문을 밀고 뛰어 들었다. 에델의 고백이 침입자의 난입으로 뚝 끊어졌다.
“이얏호, 블랙 블랙!”
난처한 상황에서 풀려난 블랙맘바의 표정이 가벼워진 반면에 에델의 눈이 세모꼴로 변했다. 매번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 저 곰탱이다.
“블랙, 쟌느가 허락했다.”
“쟌느가 누군데? 허락은 또 뭐냐?”
“억, 네가 아니라 장쒼에게 이야기 했구나. 육군병원에서 간호사를 꼬였거든. 그녀가 허락했어. 한 달간 크루즈 여행을 떠나기로 말이다.
‘아 놔, 이 자식 또 엮였어.’
블랙맘바가 머리를 짚었다. 에밀은 치마만 두르면 좋다는 녀석이다. 외인 용병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돈 많은 용병은 달콤한 먹잇감이다. 멍청한 녀석이 또 여자에게 낚였다.
“그러니까 입원했던 병원에서 담당 간호사를 꼬셨고, 함께 뼈와 살을 태울 여행을 하기로 했다 이거냐?”
“우와, 역시 블랙은 머리가 좋다. 요약을 잘 한다.”
에밀이 별 시답잖은 일에 감탄했다.
“그래서, 언제 출발하나?”
“오늘 저녁에 툴룽으로 간다.”
“오늘?”
블랙맘바의 눈이 커졌다.
“어머 잘됐네요. 미스터 에밀의 무운을 빌어요.”
에델이 반색을 했다. 앓던 이가 쑥 빠진 표정이다.
“카하하, 고맙습니다. 쟌느에게 사나이 에밀의 매력을 한껏 뿜어 줄 겁니다.”
‘멍청한 녀석, 돈과 정액을 실컷 뿜겠지.’
블랙맘바가 한심스런 눈으로 에밀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