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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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필립 소장 블랙맘바를 감동시키다3
저 표정이다. 양지쪽에 앉아 당신이 먹던 팥빵을 손에 쥐어주던 거친 손, 한없이 따스한 미소다. 블랙맘바의 시선을 받은 에델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두 눈에서 시작된 미소가 환하게 퍼져나갔다. 그는 넋을 잃고 에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와킬, 내래 늘 받기만 하디 민망함메.”
선우현의 인사에 퍼뜩 정신이 든 블랙맘바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
“야아, 오늘 커피 향이 유난히 진하네. 누가 만들었나?”
민망해진 블랙맘바가 흰소리를 했다.
‘눈치 없는 새끼, 날 잡아서 먼지 나도록 굴려야 겠어.’
옴부티의 사나운 눈길이 선우현의 마빡에 꽂혔다. 기껏 에밀을 쫓아냈는데 눈치 없는 녀석이 결정적일 때 분위기를 망쳤다.
“내래 팔자가 기구해서 가진 거라곤 몸뚱이밖에 없슴메.”
왕소금 선우현은 그 와중에도 줄게 없다고 실드를 쳤다.
“그리 비싼 물건은 아니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마음에 들고말고요. 블랙, 고마워요. 평생 간직하겠어요.”
대답은 에델이 했다. 그녀는 잔뜩 상기된 얼굴을 지갑으로 살짝 가렸다.
“별거 아닌데, 민망하게시리 인사를 하고 그래.”
블랙맘바의 눈에 충동 구매한 마카롱이 들어왔다.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에델, 마카롱의 주인은 에델이다.
“에델, 이거 선물이다.”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마카롱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를 받아든 에델의 눈이 점점 커졌다.
“마카롱!”
수많은 의미가 묻어난 단어가 한숨처럼 새 나왔다. 인간의 감정과 파장에 예민한 블랙맘바다.
“에델, 문제가 있나?”
“아니에요, 아니에요. 블랙,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에요.”
에델이 누가 뺏어 갈세라 과자 상자를 가슴에 꼭 당겨 안았다. 눈에 물기가 한 가득이다.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이군.’
블랙맘바가 옴부티를 쳐다보았다. 옴부티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거이 나눠 먹음세.”
“안돼욧!”
에델이 선우현의 손을 탁치고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
“애고 에미나이래 손이 맵다야. 에델양이 어케 저럼둥?”
블랙맘바는 머쓱한 표정그대로다. 옴부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에밀 같은 새끼! 저러니 여자가 없지.”
열받은 옴부티는 금방이라도 권총을 뽑을 기세다.
침실로 뛰어 들어간 에델은 조심스럽게 포장을 벗겼다. 상자 뚜껑을 열자 동그란 마카롱이 가지런히 늘어서서 그녀를 맞았다. 초콜릿으로 ‘Bon Courage!(용기를 내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아빠!”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십대 소녀들이 흔히 그렇듯 그녀도 달달한 과자를 좋아했다. 그중에도 마카롱을 광적으로 좋아했다.
엄마는 단 것이 좋지 않다고 말렸지만 아버지는 출장을 다녀올 때면 늘 마카롱을 사왔다. 엄마 몰래 다락방에서 아버지와 키득거리며 과자를 나눠 먹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달함, 천국이다.
‘루드리, 엄마에겐 절대 비밀이야.’
‘비밀 지킬 테니까 한 개 더 줘요.’
‘요런 사악한 것, 옜다 목이나 탁 막혀라.’
아버지가 작은 입에 넣기 벅찬 마카롱을 턱 물렸다.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엄마 몰래 먹는 마카롱은 은밀한 즐거움의 결정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유희였다.
아버지, 다락방, 그리고 마카롱. 가슴에 고여있던 눈물이 쉴새없이 솟았다.
“아빠, 그이가 마카롱을 선물했어요. 아빠가 그이에게 마카롱을 들려 보냈어요. 그이에게 짐을 지울까 겁나요. 그이는 아빠보다 천배 만 배 강하지만 피를 싫어해요. 아빠 이야기를 하면 그이가 떠나버릴 것 같아 너무 두려워요. 아빠, 저는 그이가 소중해요. 아빠의 복수는 흑흑흑! 나쁜 삼촌을 어떻게 해요. 흑흑!”
블랙맘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평소와 다른 에델의 행동에 걱정이 되어 감각을 풀어놓았다. 에델의 독백이 고스란히 귀속에 박혔다.
‘망할, 이런다니까! 내 팔자가 그렇지 뭐.’
벌떡 일어난 블랙맘바가 침실 문을 열었다.
에델이 얼굴을 들었다.
“블랙!”
놀란 에델이 흐느낌을 뚝 그쳤다. 거실 쪽의 조명을 가리고 철탑같이 우뚝 서있는 남자, 방안 공기가 묵직하게 눌렸다.
에델은 처음으로 그에게서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읽었다. 그녀는 얼른 눈물을 닦아냈다. 평소 마스카라를 하지 않아 다행이다.
뚜벅 뚜벅- 블랙맘바가 다가섰다. 에델의 심장이 콩알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울음소리가 들려서 화가 났나? 당장 아프리카로 돌아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에델, 아버지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다.”
“그게 무슨 말씀~”
에델은 깜짝 놀랐다. 블랙이 아버지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나는 블랙맘바다.”
묵직한 음성이 두웅 울렸다. 두근거리던 가슴이 순식간에 차분히 가라앉았다.
“블랙, 당신의 강함에 끌려서 아버지의 복수를 부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재산도 찾아야 하고요. 하지만 내겐 당신이 더 소중해요. 피를 싫어하는 당신에게 복수를 부탁한다면 내가 무슨 염치로 당신 곁에 있을 수 있겠어요.”
“복수하고 싶지만 힘이 없어서 잊고 살겠다는 건가?”
“그래요. 당신의 짐을 나누어지지 못하는 내가 내 짐을 당신의 어깨에 얹을 수는 없어요.”
“에델, 판단은 내가 한다.”
에델은 바위처럼 단단한 남자를 물끄러미 올려보았다. 큰 부상을 입은 몸으로 아이들을 치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하고자 하면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앉아요. 자리는 넓어요.”
에델이 침대를 손바닥으로 탁탁 두드렸다. 블랙맘바가 침대에 엉덩이를 털썩 내려놓았다. 침대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냥 들어주기만 하세요. 지난 7년 동안 속을 끓이기만 했더니 가슴에 사리가 생겼어요.”
“흠, 여자는 가슴에 사리가 생기나 보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겠어. 옴부티!”
침대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을 보는 순간 옴부티의 얼굴주름이 더욱 자글자글해졌다.
“커피! 그리고 옴부티도 자리 하도록.”
“넵!”
사정을 모르는 옴부티의 대답에 힘이 철철 넘쳤다.
에델의 이야기는 무려 두 시간을 끌었다. 그러고도 끝날 줄 몰랐다. 비교적 차분히 시작된 이야기가 갈수록 감정 분출과 흐느낌으로 채워졌다. 감수성 강한 젊은 여자의 특징이다.
블랙맘바는 사연을 들어보기로 한 결정을 저주했다. 그의 최대 약점이 외국어다. 불분명한 발음과 도치된 화법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주인의 눈치를 보던 옴부티가 에델의 말을 잘랐다.
“에델양, 내가 정리를 하겠습니다. 부친인 콜튼 웨인라이트 에델 남작이 오랜 의무관 생활을 끝내고 가산을 정리해서 펜데(Pende)강 연안 도바(Doba)에 목화 플랜테이션을 시작했다. 농장 수익금으로 현지민들에게 의료지원과 교육지원 사업을 계속했다는 거죠?”
“네, 농장에서 나온 수익금을 전부 투입했다고 들었어요. 아빠는 목화 수확철 외에는 늘 차드 남부를 돌아다녔어요. 때로는 바타와 엔네디까지 가셨어요. 아빠는 목화농장을 구호 활동을 위한 캐시 카우로 여겼어요.”
“오오,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땅을 살 때 삼촌인 닉 웨인라이트 에델씨의 상속분도 일부 투입되었다. 삼촌은 형인 콜튼씨의 활동에 불만이 많았다. 콜튼씨가 순회 진료를 나가 있는 동안 무장 괴한들이 수차례 농장을 습격했다. 삼촌이 인부들을 무장시켜서 자경단을 조직했다. 삼촌이 아버지에게 농장 습격을 알렸다. 급히 돌아 온 아버지를 자경단이 십자가에 매말아 처형했다. 그때 삼촌은 출장 중이었다. 맞습니까?”
“네. 그들 모두가 아버지에게 치료받고 임금을 받던 인부였어요. 아버지를 샤르터블 페르(charitable père, 자비로운 아버지)라 부르던 사람들이었죠. 벌목도와 도끼로, 흑흑흑! 그 무서운 장면이 눈만 감으면 떠올라 너무 괴로워요.”
“존경합니다. 어린 나이에 끔찍한 일을 당하고도 이처럼 훌륭하게 성장하셨습니다. 에델경의 보살핌인가 봅니다. 아버지가 처형된, 죄송합니다. 아버지가 불행한 일을 당한 다음날 삼촌이 돌아왔다. 에델양은 목화밭에 숨어서 삼촌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삼촌 닉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농장 습격 사건을 조작했다. 인부들을 매수해서 아버지를 처형했다. 아버지 죄목은 반군과 내통해서 정보를 넘겨준 스파이 행위다. 로곤 오리앙탈 주지사도 스파이 행위를 인정했다. 농장은 삼촌에게 넘어갔다. 맞습니까?”
“네, 농장을 습격한 무리도 삼촌의 사주를 받았을 거예요. 삼촌에게 농장이 넘어간 때부터 한 번도 습격이 없었거든요,”
“그럼 삼촌인 닉이 에델양을 살려 준 이유가 뭡니까? 에델양까지 없애면 상속 문제도 깔끔할 텐데요.”
“삼촌은 저를 앤드류와 결혼시키려고 해요.”
“앤드류가 누굽니까?”
‘제 사촌, 삼촌의 아들이에요.”
옴부티는 단번에 전후 상황을 파악했다.
“에델경의 농장 지분을 지참금 형식으로 앤드류에게 넘기겠다는 심보구먼. 양도세도 물지 않고 말이야. 아니 어쩌면 닉 본인이 꿀꺽했을 수도.”
‘투아레그 귀족은 원래 똑똑한가?’
블랙맘바는 분노하는 와중에도 옴부티의 능력에 감탄했다. 옴부티는 에델이 두 시간 동안 털어놓은 이야기를 단 5분 만에 깔끔하게 정리했다. 변호사 개업을 해도 먹고 살 것 같았다.
“에델, 도대체 농장이 얼마나 크기에 닉이란 놈이 형을 해치기까지 한단 말이요.”
묵묵히 듣고 있던 블랙맘바가 물었다.
“7,500에이커, 미터법으로 30㎢쯤 될 거예요.”
블랙맘바는 영국식 도량형 단위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방킬로미터 단위도 마찬가지다.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에서 별로 쓰이지 않는 단위다. 평으로 계산해야 머리에 들어온다.
“구 구백만평!”
놀란 블랙맘바가 버럭 소리 질렀다. 구백만평이라니! 아버지가 십년 동안 죽도록 일해서 장만한 토지가 2,000평이다. 9백만 평이면 아버지가 45,000년을 일해야 마련했을 토지다. 구석기 시대부터 곡괭이를 휘두르는 아버지를 생각하자 웃음이 쿡 새 나왔다.
“대단합니다. 남부에 대규모 농장이 많지만 그 정도로 넓은 농장은 별로 없을 겁니다.”
“아빠가 할아버지 유산까지 다 털어 넣었어요. 로곤 오리앙탈 주에서 제일 큰 농장일거예요.”
“그렇다고 신외지물이 인간의 생명보다 더 중요할 수야 없지. 에델, 난 이 세상에서 뒤통수치는 놈이 제일 싫다. 이 일은 내가 맡겠다. 에델의 복수라는 측면만이 아니다. 탐욕스럽고 불의한 자가 득세하는 꼴을 보기 싫다. 농장을 찾으면 아버지의 구호 사업을 이어받을 생각인가?”
“당연하죠. 돈만큼 좋은 게 없지만 쌓아두면 그만큼 썩는 냄새가 지독한 물건도 없거든요. 전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서 냄새에 민감해요. 쌓인 돈의 악취를 참지 못해요.”
여유를 찾은 에델이 농담까지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곧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에델의 말을 믿는다. 그러나 믿는다는 것과 사실은 괴리가 있을 수 있다. 쫄따구에게 먼저 조사를 시키겠다. 투자를 했으니 써 먹어야지.”
에델은 하고 싶은 말이 태산같이 많았다. 땅위에 뭉게구름이 내려앉은 듯 끝없이 펼쳐진 탐스런 목화송이, 배꼽을 내놓은 아이들과 어울려 흰개미 집을 부순 이야기, 땀으로 번들거리는 반나체 여인들의 커다란 엉덩이, 그 엉덩이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이들이 얼마나 친근하게 느껴지는지, 모기에게 시달려서 온 몸에 반점이 생겼을 때는 아프리카가 싫어졌다는 이야기, 끝없는 이야기가 입안에서 뱅뱅 돌았다.
“블랙,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겠어요. 가족 간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그 대신 사랑한다고 말 할래요.”
“맞는 말이다. 응, 뭐라고?”
블랙맘바는 대답을 하고 옴부티를 째려보았다. 음흉한 하인이 코치를 했음에 분명했다.
“쫄따구, 할 일이 생겼다. 컨디션이 어때?”
“내래 움직이지도 못하겠슴메. 이거이 인간 형상이 아임메. 내 살 물어내기요.”
원래 깡말랐던 선우현은 병원에 있는 동안 기름진 음식을 먹고 푹 쉰 덕분에 제법 살이 올랐었다. 섬뜩한 인상이 완화되는가 했더니 일주 일만에 좀비, 아니 스켈레톤이 되었다.
착 달라붙은 언더 아머셔츠위로 도드라진 갈비뼈가 비쳤다. 뼈와 그 뼈에 바짝 붙은 피부가 선우현의 현재 모습이다. 이래서야 여자를 사귀기는 틀려버렸다. 실망한 그는 은근히 반항했다.
“걱정 말아요. 검사결과 생체 대사는 오히려 좋아졌어요.”
에델이 걱정 말라는 듯 선우현을 향해 손을 팔랑거렸다. 좀비의 인상이 무너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블랙맘바가 싱긋이 웃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기가 죽지 않는 선우현이 썩 마음에 들었다.
“껍데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인간의 힘은 뼈와 근육의 지렛대 원리에서 나온다. 알다시피 힘은 무게와 비례하고 스피드의 제곱에 비례한다. 무게를 늘리면 스피드가 떨어진다. 스피드를 올리려면 뼈와 근육의 양을 줄이고 질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오금연노법이 지향하는 바다. 몸이 가볍지 않나?”
“내래 시력도 좋아지고, 몸무게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가볍슴메.”
“보디빌더의 근육은 근육 세포를 키운 풍선 근육이다. 힘을 내려면 근 섬유를 쪼개서 근육 절대량을 늘려야 한다. 환혼구타술은 근섬유 세포를 활성화시키고, 세포 분열을 막는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천년의 비기다.”
말인즉슨 기연을 얻었다는 소리다. 선우현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외쳤다.
“내래 매일 때려 주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