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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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필립 소장 블랙맘바를 감동시키다4
‘이 시끼가 먼 소리 하노?’
놀란 블랙맘바가 상체를 젖혔다. 끼익- 뒤로 밀린 의자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옴부티의 눈이 컴컴해졌다. 뭐 이런 놈이 있나 하는 표정이다.
“헐, 말조심해라. 남들이 들으면 내가 사디스트고 쫄따구가 마조히스트인 줄 알겠다. 환혼구타술은 더 이상 효과가 없다. 나이가 들어서 세포 분열을 유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거이 고조 안타깝슴메.”
선우현은 몹시 아까운 표정을 지었다. 환혼구타술의 효과는 확실했다. 일주 일만에 체중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몸이 가벼워졌다. 순간 스피드가 두 배는 빨라졌다.
지난 10년간 괴롭혀 온 장염도 깨끗이 사라졌다. 얼마나 몸이 가벼운지 블랙맘바와 한 번 붙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물론 붙어보자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혹시 청출어람을 겁내서 그만 때리겠다고 하는 거이가?’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선우현이다.
“앞으로 수련은 어케함둥?”
“격술도 나쁘지 않다. 내가 가르쳐 준 일곱 가지 수법을 병행해서 꾸준히 수련하고, 매일 10km를 갤럽 한다. 절반은 유산소 호흡, 절반은 무산소호흡으로 뛰어야 한다.”
“사격 훈련도 계속 해야디?”
“골격과 근육이 강해진 만큼 훨씬 안정된 사격을 할 수 있다. 신체에 쌓인 노폐물이 모두 빠져나왔다. 아마도 신체가 십년 이상 젊어졌을 것이다.”
십년 젊어졌다는 말에 에델과 옴부티의 눈이 번쩍했다. 탐욕으로 가득한 눈이 블랙맘바를 향했다.
“와킬, 저도 맞고 싶습니다.”
옴부티가 눈에 불을 켰다. 에델의 눈빛도 마찬가지다. 젊음을 열망하는 늙은이와 여자의 집착은 신도 말리지 못한다.
“하하, 곤란하다. 선우현에게 베푼 환혼구타술도 강도를 최대한 낮추었다. 더 이상 강도를 낮추면 효과 없이 몸만 상한다. 선우현 수준의 구타와 수련을 견딜 수 있겠나?”
옴부티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에델의 얼굴에 실망이 스쳤다. 쫄따구 수준의 구타라니, 그냥 죽으란 소리다. 살아야 청춘이지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인가!
“이번에 나도 기력을 많이 소모했다. 내 스승님은 나를 벌모 세수시키고 십년 수명이 소모되셨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이 세상의 법이다.”
말을 마친 블랙맘바가 선우현을 돌아보며 빙긋이 웃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때리는 사람의 수명이 줄어들 정도로 힘들다고!’
선우현의 얼굴이 우는 듯 웃는 듯 변했다. 그 누가 블랙맘바처럼 아무런 대가없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은 어떤가? 조금 전까지도 블랙맘바가 일부러 수련을 멈춘다고 원망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은 포로다. 동족이라는 이유에 빌붙어 온갖 혜택을 받았다. 돼지처럼 넙죽넙죽 받아먹고 더 달라고 꿀꿀거렸다.
‘아, 소인배는 진정한 대인을 바보로 본다더니!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나. 나는 돼지다.’
무엇인가 후끈하는 느낌이 온 몸을 휩쓸었다. 선우현이 벌떡 일어나서 무릎을 꿇었다.
“이사람 이거 왜 이래?”
놀란 블랙맘바가 몸을 피했다.
“와킬, 못난 놈에게 너무 많은 은혜를 베풀어 줬시오. 목숨을 살려주고, 갈 곳 없는 놈에게 국적을 취득해주고, 거액의 돈까지 줬시오. 수고로움을 마다않고 무술을 가르치고 지병까지 고쳐 줬시오. 내래 배따시 터지게 은혜를 입고도 더 받겠다고 앙알거리고, 뺀질거렸습네다. 나는 돼지 같은, 아니 돼지임 네다.”
“뭘 그걸 갖고 새삼스럽게 그래. 누구든 다 그래.”
바로 저거다. 어린 나이에 불구하고 상대방의 약점이나 부족한 점을 그냥 품어준다. 어떤 조건도 계산도 없다. 자신의 나이가 몇이던가! 선우현은 진실로 부끄러웠다.
“아닙네다. 내래 창피한 노릇입네다. 둠브레이 숲에서 내래 싸우지 않고 비트에 은신했지만 와킬은 한 번도 입밖에 꺼낸 적이 없슴메. 내래 등을 지켰으면 와킬이 부상을 입지도 않았을 거임메.”
옴부티가 벌떡 일어났다.
“뭐야? 네놈은 쥐새끼처럼 숨고, 와킬 홀로 탱크까지 동원한 적과 싸웠다고! 어쩐지 이상했어. 그러고도 와킬께 붙어서 단물을 빨았단 말이지. 너 같은 놈은 진작에 사헬에 묻고 와야 했어.”
에델이 품속에서 권총을 뽑아드는 옴부티의 팔을 잡았다. 불똥 튀는 눈길이 에델을 향했다. 거무죽죽하던 눈빛이 흰자위로 번들거렸다. 에델이 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불똥이 피시시 꺼졌다. 에밀-선우현-옴부티-에델로 이어지는 먹이 사슬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모든 일이 잘 마무리 된 마당에 그런 이야기는 왜 하나. 기껏 공들여 키웠더니 옴부티에게 사살될 뻔 했지 않나.”
선우현이 흘끔 옴부티를 돌아보았다.
“옴부티, 고조 나를 쏘라우. 난 벌레만도 못한 놈이우다. 으흐흐흑!”
선우현의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선우현의 인상은 선보는 여자가 자지러질 만큼 험악하고 강파르다. 평생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면상이다. 괜히 뚜빌리스가 아니다. 끔찍한 얼굴에 줄줄 흐르는 눈물이 그로테스크하기 이를데 없다.
옴부티가 벌떡 일어나서 선우현을 걷어찼다.
“이런 멍청한 놈, 와킬께서 기력을 소모하면서 네 놈을 전사로 만든 뜻도 모르나? 네놈의 사명은 평생 와킬을 지키는 것이야. 총탄이 날아오면 몸으로 막고, 칼이 날아와도 몸으로 막아. 한 번 더 하인의 사명을 잊으면 목을 잘라버리겠어.”
썩어도 준치라고 늙은 투아레그 전사의 포스가 넓은 병실을 광광 울렸다.
에델의 눈이 흔들렸다. 인간이 신도 아닌 같은 인간을 저토록 믿고 따를 수 있을까!두 남자의 실갱이가 가슴을 뒤흔들었다.
이해관계에 따른 충성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충성이다. 아니다. 충성이란 진부한 단어로는 설명이 안 된다. 진짜 사나이라 불릴 남자들의 달아오른 심장의 부딪힘이다.
쫄따구는 의심이 많고 뺀질거리는 유형이다. 타인을 믿지않으며 쉽게 마음을 줄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마저 빨아들이는 블랙홀, 아니 블랙이다.
‘이것이 진짜 사나이의 세계인가? 저 이가 특별한 존재인가? 나도 남자가 되어 울어보고 걷어차이고 싶다.’
그녀는 처음으로 여자로 태어난 자신을 한탄했다.
“내래 와킬에게 바칠 것은 몸뚱이밖에 없시오. 쫄따구 선우현이 정식으로 신고합네다.”
선우현이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았다. 블랙맘바가 선우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선우현, 그 뜻을 받아들인다. 나는 구속을 싫어한다. 내 자신이 구속당하기도 싫고 타인을 구속하기도 싫다. 당신은 자유의지로 내 품에 들어왔다. 마음이 달라지면 당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떠나면 된다.”
쿵- 선우현이 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하늘에 맹세코 영원히 쫄따구로 살겠슴메. 밥만 먹여주고 옷만 입혀 주시라요. 와킬이 내려 준 보상금도 에델 양에게 기부하겠습네다. 갑작스레 많은 돈이 생기니 끼니 삿된 마음이 들었슴둥.”
“쫄따구, 그 마음은 잘 받겠다. 당신 보상금은 옴부티에게 투자해라. 내가 옴부티에게 시킬 일이 있다.”
“그렇게 하겠슴메.”
블랙맘바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렇게 또 한사람의 인생이 어깨에 올려졌다. 인연중중이라며 빙그레 웃던 사부의 말씀대로다.
“쫄따구, 나와 함께 하려면 세 가지를 버려야 한다.”
블랙맘바는 말을 끊고 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가 빙그레 웃고 있다. 잘하고 있다고.
차별받던 서러움, 쥐꼬리만 한 권력을 휘두르지 못해 안달하는 인간들, 남의 몫을 빼앗아 배를 채우는 인간들, 권력을 유지하려고 생명을 빼앗는 자들, 탐욕과 질시는 동서양과 민족을 가리지 않았다.
“첫째 구분의식을 버려라. 나 또는 내가 속한 집단이 특별한 존재고, 옳다는 도그마가 인간사회의 크고 작은 갈등과 고통의 근원이다.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다.
둘째 구분의식에 수반되는 우월의식을 버려라. 우월의식이 있으면 상대를 존중하지 않게 된다. 상대를 존중 않으면 상대가 반감을 갖게 되고 다툼이 생긴다. 백인이 흑인을 보는 시각이 어떤가? 저들은 흑인을 열등한 종족으로 보고 수백 년간 노예사냥이라는 용서받지 못할 죄악을 저질렀다. 사하라 이남의 아랍계 토착민을 보라. 흑인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이 침팬지보다 우월한가? 아니다. 다를 뿐이다.
셋째 특권의식을 버려라. 우월의식이 표출되지 않은 심상이라면 특권의식은 표출된 우월의식이다. 쥐꼬리만 한 권력, 재력, 인맥, 학식을 가진 자들이 자존망대해서 자신을 하늘 위에 올려놓는다. 이들은 법을 무시하고, 질서를 지키지 않고, 관습을 무시한다. 영혼이 더러워진 자들이다.
“오우!”
블랙의 말을 대영제국의사당에 걸고 싶다. 국경없는의사회가 갈 길이 바로 저것이다. 가슴이 열기로 끓어올랐다.
에델의 가벼운 탄성이 분위기를 잠시 출렁였다. 옴부티도 어느새 선우현의 옆에 무릎을 꿇고 경청했다.
“나는 사헬에서 많은 생각을 했고, 적지 않은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의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배고픔이에요.”
에델의 대답에 선우현과 옴부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배고픔이다. 배고픔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배부른 소리를 한다. 사헬에서 아이가 굶어죽는 비참한 현장을 보았다. 기즈 박사와 에델의 노력을 보았다. 에델의 부친인 에델경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 분의 인생은 정의롭다. 정의롭지 못한 인생엔 늘 변명이 따른다. 그 변명은 이유가 있을 뿐 합당한 이유는 없다. 나는 내 힘이 미치는 한 잘 먹고, 잘 배우고, 잘 일하는 대지를 만들고 싶다.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이것이 나 블랙맘바의 뜻이다.”
마지막 말은 맹수의 저주파 하울링처럼 두웅- 울렸다. 병실이 한 차례 지진을 만난 듯 흔들렸다.
옴부티와 선우현, 에델은 황홀한 눈으로 블랙맘바를 바라보았다. 인간의 몸에서 빛이 번쩍인다. 방사된 의지가 사물을 뒤흔든다.
“와킬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옴부티와 선우현이 소리 높여 외쳤다.
“당신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 질 거예요.”
에델은 옴부티처럼 와킬이라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은 자신만 알 뿐이다.
“옴부티, 세계지도, 아니 중서부 사헬 지도를 가져와.”
눈치 빠른 옴부티는 보니파스에게 요구한 15,000㎢건임을 알았다.
“옴부티, 아오주(Aouzou) 지역에 대해서 아는 바 있나?”
“엔네디 고원 북부의 황량한 대지입니다. 해발 일천 미터의 화산성 산지라 물도 없습니다. 메마른 붉은 흙과 바람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주 인구는?”
“버려진 땅입니다. 거주민이 아오주에 이삼천 명이 있을 뿐 거의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1972년에 톰발바예 대통령이 리비아에 넘긴 땅입니다. 하브레 정권이 리비아와 와 국경 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해발 일천 미터에 화산성 산지라~ 틀렸군.”
블랙맘바는 다시 지도에 코를 박았다. 옴부티가 살며시 병실을 빠져나갔다. 와킬은 와킬의 일이 있고 자신은 자신의 일이 있다.
지도를 들여다보던 블랙맘바가 이마를 쳤다.
‘아차, 벨맨의 부탁을 잊었다.’
병실 문을 열고 소리쳤다.
“쫄따구, 밖에 있는 시커먼 놈 들어오라고 해.”
경계 근무 중인 작전부 요원이 불려왔다. 랑드르가 사고를 친 후로 이들은 옴부티와 선우현의 밥이 되었다. 온갖 심부름을 시키고, 심지어는 변기 청소까지 시켰다. DGSE작전부 요원이 아이스크림을 사오고,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가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악트!”
“랑드르에게 즉시 튀어 오라고 해.”
“랑드르님은 회사를 떠났습니다.”
잔뜩 긴장한 요원이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저런! 똑똑한 친구인데 안타깝게 되었다.”
블랙맘바의 안색이 일순간 흐려졌다. 꼭 동생을 잃은 형의 표정이다. 작전부 5조 팀장 누벨레는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었다. 중동 아프리카 과장 랑드르의 뼈를 15개 부러뜨린 장본인이 VVIP실 손님이다. 쉬쉬하지만 암암리에 소문이 퍼졌다. 악어의 눈물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역시 악마다.’
누벨레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악마에게 홀리면 뼈가 맷돌에 갈리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후임은 누구냐?”
“엑조세 아리바님이십니다.”
대외비가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가 보고 싶다고 전해.”
“악트!”
“쩝”
블랙맘바가 입맛을 다셨다. 실제로 안타까웠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써먹기 딱 좋은 놈인데 아기 보러 집에 가버렸다. 하긴 수모를 당한 보니파스가 참고 있을 리 없다. 어디 시골구석 풀밭에 해골을 눕히고 있을지 모른다.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대나무처럼 바짝 마른 40대 남자가 병실에 들어섰다. 신체 건조도가 선우현과 견줄 만 했다.
“바쁜 분을 면담 요청해서 미안하다.”
아리바는 흠칫했다. 말은 정중했지만 눈빛은 칼날이다. 탁 쏘아지는 눈빛에 안구가 시큰거렸다. 뱀의 왕 써펀드라 불리는 보니파스 부장이 눌릴만 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아랫배에 힘을 잔뜩 주었다.
“블랙맘바의 사안은 최우선 처리 항목이다.”
서로가 신분은 물론 인사말도 나누지 않았다. 서로의 신분을 빠삭히 알고 있으니 비밀 신분 간에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부탁이 있다. 벨맨 중사, 본명은 아담 데이비스다. 전직 CIA필드 요원이다. 데이비스는 내부 작전 기밀 누설죄로 CIA 청소팀의 추적을 받아왔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허, 어떻게 벨맨이 레종 에뜨랑제의 철저한 신분조회를 넘겼지. 이중 신분을 썼겠군. CIA내부 문제라 곤란하다.”
아리바가 난색을 표했다. 타국 정보기관 내부 문제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도 없지만 잘못 끼어들었다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청소 팀 간에 난타전이 벌어진 사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