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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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필립 소장 블랙맘바를 감동시키다6
“삐에프를? 망할 노무 자식, 폴이 경고한 대로 악령에 빙의라도 된 모양이다. 큼직한 고깃덩이를 준비했으니 걱정할 것 없다.”
여유 있는 말과 달리 필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레종 에뜨랑제는 자유스러운 만큼 군기도 세다. 되지엠 랩에서 사병이 직속 중대장을 구타한 사건은 창군이래 없었다. 기율로 고삐를 채울 수 없는 맹수가 블랙맘바다.
더욱이 삐에프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사헬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블랙맘바의 분노가 자신의 예상을 초월했다는 소리다.
루이는 급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실려 가던 삐에프가 눈에 선했다. 선물을 꺼내기도 전에 패버리는 무지막지한 놈이다. 필립도 똑같이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봐 아르망, 소장님이 입던 대령 복장 어디에 있나?”
“부관실에 있습니다.”
“다행이군. 얼른 갈아입혀.”
아르망은 바로 알아들었다. 블랙맘바는 전우애가 강하다고 했다. 번쩍이는 별판이 분노 게이지를 높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순식간에 소장 명패가 서랍 속으로 들어가고, 소장 플래그도 구석에 처박혔다. 필립은 썩어문드러진 얼굴로 소장 상의를 벗고 대령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장군이 일개 사병을 두려워한다면 오리가 웃을 노릇이지만 죽음의 천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996명이라는 숫자는 오리나 닭의 숫자가 아니라 인간이다.
전무후무한 전장의 악몽, 칸마의 현신이다. 인간의 목을 추수하듯 끊어내는 악령 앞에선 장군도 허약한 보통 사람일 뿐이다.
“장군님, 블랙맘바의 계급이나 나이는 잊으십시오. 실수하면 안 됩니다. 블랙맘바가 아니라 아쥐 레머(죽음의 천사)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뱀보다 더 차가운 보니파스도 떨게 만든 괴물입니다. DGSE가 녀석의 별칭을 아쥐 레머로 변경한 이유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필립은 장황한 루이 참모장의 잔소리에 짜증을 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명색이 장교라는 놈들이 쩔쩔매는 꼬락서니가 가관이다.
“알아 안다고. 그 놈은 디망쉬 사령관님과 국방부 자문관, 공정여단장까지 사헬로 쫓아낸 괴물이라고. 한 끗발 낮은 내가 숙여야지 어쩌겠어.”
필립은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서랍을 뒤졌지만 파이프가 보이지 않았다.
DGSE가 분류 별칭을 아쥐 레머로 바꾼 배경에 미구엘과 땅쉬의 엽기적인 죽음이 있다. 파리 발데그라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블랙맘바가 그들을 죽였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시간상, 거리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DGSE와 관련자들은 역설적으로 블랙맘바의 보복 살인임을 확신했다. 명목상 자신의 부하지만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인 놈이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가고 싶었지만 전장 영웅의 신고를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폴의 말대로 남은 인생을 뒤통수 서늘하게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한국 속담에 이왕 맞을 매는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필립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즐기기는커녕 긴장한 필립은 본인이 금연을 선언하고 파이프를 버렸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
똑 똑 똑- “헛!”
필립은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악령이 부르는 초혼가다.
‘나는 노력 할 만큼 했다. 저 놈은 내 부하란 말이다.’
필립은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잇새로 내 뱉었다.
“들어와!”
대령 복장을 확인한 블랙맘바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바짝 쫄았군. 슬슬 흔들어 볼까.’
“악트!”
‘윽!’
경례 소리에 집무실이 우르릉 울렸다. 화들짝 놀란 필립의 손에서 지휘봉이 툭 떨어졌다.
‘새끼가 초장부터 겁을 팍팍 주네.’
날 선 한 자루 칼에서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피부에 소름이 돋더니 따끔따끔한 느낌이 왔다. 몸이 짓눌리고, 현기증까지 일었다. 필립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배 나왔다.
눈치 빠른 아르망이 차를 테이블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실드를 쳤다.
“블랙맘바 고생했다.”
“쫄짜는 입 닥쳐!”
‘헙!’
살벌한 경고와 눈빛에 아르망의 입이 합죽이가 되었다. 폴에게 아랫도리를 걷어차이고, 사병에게 험한 말을 들어야 하는 부관 자리도 쉬운 자리가 아니었다.
“쉬 쉬어!”
필립은 블랙맘바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새카맣게 탄 얼굴, 뺨에 새겨진 회색 십자 흉터가 음산하게 도드라져 눈앞에 다가섰다. 번쩍이는 눈은 쳐다보기도 겁났다.
필립은 체면을 구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무리 블랙맘바지만 사병 계급이다. 장군이 사병에게 쫄았다고 소문나면 오리가 허파를 내놓고 웃을 일이다.
“부상은 완쾌 되었나?”
“쓰레기는 문제없이 청소할 수 있다.”
“다행이다. 걱정이 많았다.”
“걱정이라~”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이 필립의 눈을 파고들었다. 필립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자자 앉게, 자네 활약은 폴에게 충분히 들었다. 영웅적인 활약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지원을 잘 해준 덕분이다. 여섯을 사막에 묻고 넷밖에 살려오지 못했다. 내 능력 부족이다.”
블랙맘바는 지원, 여섯, 능력부족에 악센트를 팍팍 넣었다.
‘윽, 이자식이 삐딱하게 나가네.’
필립은 바짝 긴장했다. 폴의 말대로 확실히 뒤끝이 심한 놈이다. 지원 문제와 사망한 동료의 책임이 필립 본인에게 있다는 뉘앙스다.
“블랙맘바이기에 지옥에서 넷이나 살려왔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내가 한심하다.”
‘흥, 미안하다는 말로 때우려고? 그건 안 되지.’
블랙맘바의 안색이 굳어졌다.
“폴 대위에게 들었다.”
필립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무~ 무엇을 말인가?”
블랙맘바가 커피를 훌쩍 비우고 잔을 움켜쥐고 불끈 힘을 주었다. 빠각-하는 소리에 필립과 아르망의 눈이 커졌다. 차이나 본이 박살났다. 도자기 파편이 테이블에 탁탁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파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필립이 움찔움찔했다.
도자기 잔이 손으로 움켜쥐면 박살나는 물건이었나?
필립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에이, 중국산은 이렇다니까.”
블랙맘바가 투덜거리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죽은 전우들 몫, 그리고 내 몫!”
필립의 얼굴이 노랗게 물들었다.
“헉, 이보게 삐에프도 한 대로 끝내지 않았나.”
“삐에프는 겨우 소령이다. 장군님, 남자답게 끝내자. 일곱 대!”
‘망할 새끼, 얻어맞는데 계급이 뭔 상관이야.’
필립은 억울했다. 그의 눈이 주먹과 테이블에 떨어진 도자기 잔해를 오갔다.
“이 나이에 맞아죽으란 말인가. 보니파스도 무사하지 않은가.”
필립이 체면도 버리고 볼멘소리를 했다.
“보니파스는 선물을 많이 했다.”
‘아 놔, 저 새끼 보게!’
듣고 있던 아르망이 뒷목을 움켜잡았다. 이건 양아치처럼 대놓고 선물을 내놔라는 협박이다.
“보니파스의 선물은 내 작품일세. 내가 머리털 빠지도록 군부와 정부 인사를 설득했네.”
“별로 고맙지 않다. 라텔팀의 공적에 비하면 약하다.”
‘이 자식 이거 마피아 같은 놈일세. 준비된 선물로 달랠 수 있을까?’
필립은 고민에 빠졌다. 푸짐하게 준비한 보따리가 자꾸만 작게 느껴졌다. 그가 머뭇거리자 폭탄이 날아들었다.
“나는 전역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
폭탄선언에 놀란 필립이 벌떡 일어났다.
“아니! 왜 전역을?”
“너무 많은 피를 봤다. 피가 싫어졌다.”
블랙맘바는 엄포를 놓았다. 전역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외인부대처럼 좋은 직장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안 돼, 전역은 절대 안 돼!”
필립이 단호하게 거부했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블랙맘바는 일인 군단급 무력을 보유한 국보적인 존재다.
프랑스는 국내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해외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과거 해외 식민지와 아프리카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무리를 하는 상황이다. 블랙맘바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더욱이 블랙맘바의 존재만으로 레종 에뜨랑제는 군부 내 위상이 높아진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아니 만병통치약 치트키다.
필립은 케이지를 벗어나려고 파닥 거리는 황금 거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역이라니, 어림 턱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강제로 전역을 막을 수도 없다. 의무복부 5년을 들이댔다간 이빨이 몽땅 털릴 판이다. 방법은 선물 폭탄밖에 없다.
“블랙, 자넨 왜 용병을 택했나?”
노회한 필립은 슬슬 그물을 풀었다.
“주류 사회에서 밀려났다.”
“이해할 수 없군. 자네 같은 능력자가 밀려날 정도로 한국이란 나라가 대단한가?”
“깃털이 덜 자란 독수리 새끼는 까마귀에게도 잡아먹힌다.”
“타의에 의해 용병이 되었다는 이야기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나?”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구속받지 않는 삶이라! 방법을 찾아보세. 관계 당국과 협의할 동안 바깥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게.”
“악트!”
무쌍이 경례하고 집무실을 나갔다.
그제야 필립은 깊은 심호흡을 했다. 내내 호흡이 짓눌려 답답했다.
“대장님, 준비된 보상으로 충분합니다. 또 무슨 선물을?”
“루이, 자네가 진급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거야. 받는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야. 한국에서는 그걸 면피라 불러. 자넨 블랙맘바가 면피나 할 인물로 보이나?”
그렇다. 블랙맘바는 감동을 시켜야 하는 존재다. 별은 아무나 다는 게 아니다. 얼굴이 썩어문드러진 루이는 반박하지 못하고 찌그러졌다.
‘흐흐, 처음부터 세게 나갔으니 머리가 많이 아플 게야.’
블랙맘바는 부속실에서 느긋이 커피를 즐겼다. 삐에프의 턱을 부순 것부터 시작해서 계속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대구 칠성시장에서 조폭을 때려잡을 때 놈들로부터 배운 수법이다. 치사하지만 효과는 그만이다. 필립이 어떤 선물을 내 놓을지 자못 기대가 컸다.
삼십 분후 아르망이 불렀다.
“먼저 제안을 한 가지 하겠네. 자넨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으니 장교가 될 수 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게.”
“포기?”
“그렇다. 프랑스는 자네에게 대령 계급을 달아 주기로 결정했다. 법규상 이중국적 자는 장교가 될 수 없다.”
“헐!”
헛바람이 절로 새 나왔다. 어제까지 이등병이 대령이라니, 국적을 포기한다는 말 한마디면 대령이 된다. 같은 대령이라도 프랑스와 한국은 위상과 대우가 다르다.
‘국적 포기라?’
별로 생각할 것도 없다. 무엇하나 받은 것 없이 눈물과 고통만 강요한 한국이다. 한국 국적 따위 개에게 던져 버리라지. 자신을 알아준 프랑스는 얼마나 우아한 나라인가! 대령이 되면 막연하게 기획중인 프로젝트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다.”
생각과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했지?’
블랙맘바는 자신의 입을 쥐어박고 싶었다. 입이 뇌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였다.
‘이봐, 다시 한 번 권유하라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릴 때 아르망이 낙심한 필립의 귀에 속삭였다.
“장군님, 블랙맘바는 의리와 충성심이 강한 용병입니다. 국적 포기 종용은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저 정도 인물이면 자존심도 엄청날 테지. 내 실수다.”
속삭임이 스테레오로 들렸다.
‘실수가 아니란 말이야. 저 쉐이가 산통을 다 깨네. 다시 국적 포기를 종용하란 말이야.’
절규했지만 버스가 떠나 버렸다.
“미안하네. 내 입장만 생각했네. 국적 포기는 거론하지 않겠네. 두 번째 안도 준비되어 있네.”
“두 번째 안?”
“일단 준비된 선물을 먼저 받고 설명하겠네.”
아르망이 타이핑된 서류를 필립에게 넘겼다.
필립이 서류를 읽었다.
1. 블랙맘바의 콜네임을 보안등급 1급에서 특급으로 상향조정한다. 소속을 국방부 직속으로 변경하고, 되지엠 랩의 위장 신분을 유지한다. 블랙맘바의 보안 관리 및 작전 투입은 DGSE에서 관리한다. 작전 투입은 레종 에뜨랑제 최고위 지휘관, 국방부 전략 자문관, DGSE총국장의 합의에 의한다.
2. 블랙맘바의 계급은 법규상 취득 가능 한계인 마죠르(Major, 최고 하사관)를 부여한다.
3. 블랙맘바의 급여는 마죠르 최고 호봉으로 지급하되 세전 총액의 두 배를 군사고문 수당으로 지급한다.
4. 블랙맘바는 특급 콜네임의 권한 외에 유사시 대대급 전투 부대를 작전에 차출할 수 있다.
5. 레종 에뜨랑제는 화기를 포함해서 블랙맘바가 필요한 모든 물품을 무상으로 지급한다.
6. 블랙맘바는 국적기를 포함한 모든 교통기관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정부 소유의 차량운반구를 징발 이용할 수 있다.
7. 블랙맘바에게 특별한 직책을 부여해서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토록 한다.
8. 블랙맘바를 특별군사고문에 임명한다. 특별군사고문은 특수전통합사령부의 고문을 맡으며 대통령, 국방장관, DGSE총국장외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다.
필립의 입에서 입이 떡 벌어질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저 인간이 대낮부터 마약을 처먹었나?’
블랙맘바가 희뜩한 눈으로 필립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