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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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필립 소장 블랙맘바를 감동시키다7
막 퍼주고 싶다는 열망이 이글거리는 눈이다. 마약에 취한 흐릿한 눈이 아니다. 마약! 나이트 BOSS에서 웨이터 뻐꾸기로 근무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필로폰을 처먹고 룸 소파에 나자빠진 화자 년의 눈은 개개 풀려 있었다. 치마가 뒤집어져 시커먼 숲이 드러난 것도 모를 정도로 맛이 갔다.
추잡한 짓거리에 정신 빠진 놈의 아구통을 돌려놓고 천생산으로 끌고갔다. 생매장 시키려고 구덩이를 팔 때 탁발 다녀오던 스승님을 만났다.
깡마른 노승에게 복날 개 맞듯이 처맞고 엉엉 울었다. 실의와 비탄에 빠져 황폐해진 맹수를 인간으로 되돌려 준 스승님! 그리고 용서할 수 없는 악녀.
‘뼈다귀만 몇 개 부러뜨렸으니 잘 살고 있을 거야. 암, 잘 살고 있어야 해.’
뿌드득- 화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이빨이 갈리고, 음차원의 에너지가 자욱이 발산되었다. 삐딱한 눈초리에 살기가 폭증했다.
필립은 오해를 했다.
‘헐, 저놈 보게. 말 그대로 블랙맘바 눈깔일세. 골치 아픈 소리를 하기 전에 얼른 마감해야겠어.’
필립이 숨겨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블랙맘바의 성향을 파악해서 급하게 준비한 메인 폭탄이다.
“오늘부로 자네는 사실상의 프리랜스가 된다. 프랑스는 자네에게 자유를 주기로 했다.”
“프리랜서?”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깜짝 놀란 블랙맘바가 반문했다.
“아차, 프리랜서는 아니군. 블랙맘바를 프리랜서라 부르면 그런 모독이 없지. 메세네르 데 르 쥬스티스(Mercenaire de la Justice, 정의의 용병)가 맞겠군.”
블랙맘바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필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프리랜서(Free lance)는 자유 창기병을 말한다. 중세 서양의 용병단에서 유래된 말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전투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용병이다. 모욕은 모욕이다.
“명칭이야 어떻든 상관없다. 병영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한국에 머무르든 세계를 일주하든 자네 마음이다. 특수전통합사령부에 자네 사무실이 마련되겠지만 대외용 눈가림일 뿐이다. 천하의 아쥐 레머를 누가 통제하겠나? 병영 생활을 할 이유가 없다.”
필립이 시원하게 잘라 말했다.
‘흐미! 이기 다 머꼬? 꽃비가 쏟아지네.’
프랑스 군부에 적만 두고 에헤라디야~ 꽃놀이를 하라는 이야기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얼른 돌아가서 스승님의 도움을 받아 피에 젖은 심신을 씻어내고 싶었다. 블랙맘바는 풀어지는 얼굴과 찢어지는 입을 통제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놀고먹어도 비싼 봉급을 준다니 프랑스는 진정 자비로운 나라다.”
속마음을 감추고 슬쩍 비꼬았다. 표정관리를 위해서다.
“프랑스는 엄연한 자본주의 국가다. 손해나는 짓을 할리야 있나.”
“그렇지. 돌덩어리와 천 쪼가리에 명품이라고 새겨서 여자들 주머니를 긁어내는 나라가 어련하겠어.”
블랙맘바가 계속 빈정거렸지만 필립은 여유 있게 웃음으로 넘겼다.
“허허허! 남자는 세상의 돈은 벌고, 여자는 세상의 돈을 쓴다네. 당연히 여자를 공략해야지. 자네도 그 이치를 잘 알아야 노후를 편히 보낼 수 있을 걸세.”
한결 여유를 찾은 필립 소장이 객쩍은 소리까지 했다. 살벌하던 자리에 훈풍이 일었다.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아르망이 홍차를 추가로 내왔다.
“자네는 당국이 요청하는 특정 작전에만 출동하면 된다. 말하자면 마죠르 신분에 대령 예우를 받는 프리랜스다.”
“험!”
“자네가 한국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특별히 외교관 신분을 발급해 주겠다. 신분이 너무 많아지나?”
블랙맘바는 쏟아지는 선물에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이 받아내고자 했던 수준을 아득히 넘는 융단폭격에 절로 헬렐레 풀어졌다.
“외교관?”
“그렇다. 곧 외교부 훈령이 떨어질 것이다. 한국에서 자네 입지가 별로 좋지 않더군. 주한대사관에 헐렁한 자리 하나 마련하면 된다. 문화 참사관이나 선린 무관자리가 적당하겠지.”
“내가 전과자라는 사실까지 파헤쳤구먼.”
“당연하다. 자네는 프랑스의 주요 자산이다. 자넨 항모 클레망소보다 훨씬 가치가 높다. DGSE는 자네가 악랄한 함정에 빠져서 영어(囹圄)됐다는 사실까지 파악했다. 우리야 자네를 내쫓은 한국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 외교관 신분은 한국에서 살아갈 자네 입장을 감안한 조치다.”
“으음! 그렇게까지……”
이건 감동이다. 조국은 누명을 씌워 전과자를 만들고, 프랑스는 외교관 신분까지 부여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애국심을 강요하며 돈 몇 푼 던져주고 온갖 지저분한 임무에 동원시킬 것이다.
임무 중에 죽으면?
개값도 쳐주지 않는다. 북파 공작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게다가 미국이라면 마누라 팬티까지 벗어줄 군사정부가 버티고 있다. 이가 부드득 갈렸다.
“마지막으로 작은 선물이 있다.”
“또 선물!”
블랙맘바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아르망!”
아르망이 봉투를 필립에게 넘겼다.
“휴가비다.”
금액을 확인한 블랙맘바의 눈이 커졌다. 50만 프랑이면 일개 장성이 내놓을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다. 그가 처음으로 사양했다.
“휴가비치고 너무 많다.”
“프랑스는 금번 차드 작전을 통해서 자네가 짐작 못할 군사적 외교적 이익을 얻었다. 예전처럼 황제가 다스렸다면 자넨 대검귀족으로 영지를 받았을 걸세. 이번에 진급한 고급장교, 승진한 정부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갹출한 돈이다.”
“협박이 섞였을 것 같은데……”
“나를 포함해서 하는 일 없이 열매만 따 먹은 인간들이다. 자네 덕분에 놀고먹었으니 휴가비 정도야 당연히 부담해야지. 나도 초급 장교 시절에 인도차이나 반도의 밀림에서 고군분투한 경험이 있다. 자네가 사헬에서 보낸 44일, 내가 어떤 상상을 하더라도 그 이상일 것이다. 더 이상 유치한 변명은 않겠다. 고맙고 미안하다. 그동안 쌓인 때를 깨끗이 벗기고 푹 쉬기 바란다.”
필립의 눈에 언 듯 물기가 비쳤다.
“고맙다.”
블랙맘바는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표했다. 필립 소장의 뇌파는 거칠되 혼란스럽지 않았다. 진심이 느껴졌다. 장군이 될 만한 사람이다. 흐뭇해진 블랙맘바가 인사를 하려고 입을 열었다.
“저~ 장군님!”
필립이 손을 휘휘 저었다. 노련한 그는 잽싸게 상황을 종결지었다.
“됐네. 조금 부족하지만 자네가 이해하게. 계약서를 새로 작성 해야지. 이봐, 부관!”
급조된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자 필립이 밀봉된 서류를 넘겼다.
“봉투 속에 비밀번호 열자리가 들어있다. 외우고 파기하도록. 어떤 전화기든 비밀번호를 누르면 DGSE 책임자와 연결된다. 자네에게 부족한 부분은 경험이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겠다. 뒤만 보며 걷다간 엎어질 수 있어.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함께 앞을 보세.”
“동의한다.”
“DGSE아프리카 과장이 기다리고 있네. 또 다른 선물이 준비되어 있을걸세. 아니 자네를 붙잡아 둘 그물이라고 해야 하나!”
필립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떠돌았다.
“악트!”
블랙맘바가 사라지자 묵직하던 장군의 포스가 햇빛에 서리 녹듯 사라졌다. 필립이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만세! 감동시켰다.”
필립은 바위처럼 짓누르던 모든 불안과 공포를 털었다. 끔찍한 주먹질도 피하고, 뒤통수 근질거리며 살지 않아도 된다. 더욱이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전략병기가 손에 들어왔다. 그것도 엄청 싼값에.
“장군님, 특별군사고문 말입니다. 문제없겠습니까?”
루이 중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블랙맘바에게 준 선물 중에 다른 조건들은 관련기관과 협의가 끝난 사항이다. 특별군사고문이란 직책은 군부 조직 어디에도 없다. 필립 본인이 급조했으니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세 사람의 명령만 듣는다니 기가 막혔다.
“특급 콜네임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아르망도 참모장을 거들었다.
“내가 바보로 보이나? 자네들은 아직도 블랙맘바를 몰라. 저 친구는 가능한 한 조용히 살고 싶어 한다. 권한을 남용할 친구도 아니고 직책 따위에 연연할 소인배도 아니다. 그는 제어 불가능한 맹수다. 아무리 사나운 맹수도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육사는 따른다. 특별군사고문은 블랙맘바의 마음을 프랑스에 묶어두는 부드러운 족쇄다.”
“아!”
루이와 아르망이 땡중 도 터지는 감탄사를 뱉었다.
“국방부와 내무부쪽 협의에 문제는 없겠습니까?”
“블랙맘바는 그랑도피시에 훈장을 받은 전사다. 한바탕 설전을 벌여야겠지만 사인하지 않을 놈은 없다. 고집을 부리면 블랙맘바의 유감을 사고 싶냐고 슬쩍 겁을 주면 된다.”
루이와 아르망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사적인 풍모의 필립은 이미지와 달리 잔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역시 별은 아무나 다는 게 아니었다.
‘흐흐, 타고난 장사꾼이라는 쉰덕도 나처럼 장사를 잘 하지는 못 할걸.’
필립은 뿌듯했다. 무엇보다 블랙맘바의 맺힌 마음을 풀었다. 국가적인 이익에 비하면 블랙맘바에게 부여하는 혜택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한 푼을 써서 만금이 남는 장사를 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아르망, 주불 한국대사관에 꽃다발을 보내게. ‘인재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게 써서 보내. 크하하핫!”
필립 소장이 즐거움에 빠져있을 때 블랙맘바의 기분도 째졌다.
“뭐, 막 퍼준다는데 받아야지.”
블랙맘바는 어질어질한 머리를 싸안고 본부 막사를 나섰다.
마죠르는 준사관 최고 계급이다. 카포랄과 마죠르는 무려 여섯 단계 차이가 난다. 콜네임의 계급은 별 의미가 없지만 무려 여섯 단계를 뛰어 넘었다. 게다가 대령 대우를 해 준단다.
마죠르는 한국의 원사나 준위와 다르다. 장교와 하사관의 연결 핀이며 영관급이나 장군과 같이 논다. 할 일 없이 노는 보직으로 최고참 하사관에게 휴식을 주려는 의도가 가미된 계급이다.
장교든 하사관이든 상관없다. 봉급만 많으면 장땡이다. 수많은 죽음을 접했다. 생명의 무게에 지쳤다. 부하의 생명을 떠맡는 장교보다는 헐렁한 마죠르가 백번 낫다.
블랙맘바도 바보가 아니다. 프랑스 당국의 넘치는 호의가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 않았다.
‘하늘이 능력을 줄때는 쓰라고 줬겠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세상이다. 각자의 스킬로 밥벌이를 하고, 능력이 좋은 놈은 당연히 많이 버는 세상이다.
돈은 많을수록 좋다. 절간 유지비도 넉넉하게 보내 드릴 수 있고, 값이 악 소리 나는 고급 요리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진순이 자매 학비도 넉넉히 보내 줄 수 있다.
통 큰 블랙맘바, 아프리카 난민 구호금으로 5천만 프랑을 쉽게 말하는 그도 자신에겐 소박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내가 왜 한국 국적을 포기 못했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사랑하지만 좋아할 수 없는 조국! 블랙맘바, 아니 무쌍의 딜레마다.
이튿날 블랙맘바는 곧바로 대기 중인 허큘리스를 타고 오바뉴 본부로 날아갔다. 인사처에서 신분증을 받아든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직책 란에 Conseiller de Militaire spécial(특별군사고문)이라 명기되어 있다. 필립 소장이 특수전통합사령부에 사무실이 있다고 말했지만 귀담아 듣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한다.
“아쥐당((Adjudant, 주임상사), 특별군사고문이 뭐냐?”
“나도 모른다. 방첩과에서 설명해 줄 것이다.”
필립이 급조한 신분을 인사처 상사인들 알 리 없다.
“카포랄, 고문님을 방첩과로 모셔라.”
50대 중반의 상사가 짜증난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마죠르라니, 잔뜩 심기가 상한 눈치다.
오바뉴 본부의 방첩과에 들른 블랙맘바는 눈살을 찌푸렸다. 좁은 룸이 담배연기로 자욱했다. 과장석에 삐딱하게 앉아 담배를 피던 남자가 일어섰다.
수직 슈트에 칼같이 날 선 바지, 까르띠에 시계에 고야드 손가방, 질리오띠 구두, 전형적인 보보스족(Bobos)스타일이다.
“아쥐 래머, 반갑다. 무사 발부에다.”
블랙맘바는 머리만 끄덕였다.
“아쥐 래머, 먼저 기밀 엄수 서약을 해야 한다.”
서류엔 무시무시한 내용이 빽빽이 쓰여 있었다. 기밀 엄수와 기밀 누설시 처벌에 관한 조항이다. 무쌍은 서류를 힐끔 보고는 툭 밀어놓았다.
“이딴 서류에 내가 왜 서명해야 하지? 그리고 나를 아쥐 레머라 부르지 마라.”
발부에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쥐 레머는 정보부에 오른 당신의 별칭이다. 당신은 DGSE와 국방부의 특별관리 대상이다. 당신은 특급 보안 대상이다. 표면상의 신분은 국방부에 파견된 되지엠 랩의 하사관이다. 특별군사고문은 콜네임 블랙맘바를 가리는 포장지 신분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DGSE의 관리를 받는 국방부 특수 요원이다. 당신은 3일간 기밀엄수 교육을 받는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레종 에뜨랑제에서 마죠르 봉급을 받고, 국방부에서 특별군사고문 봉급을 받으며 놀아라는 이야기네. 정부에서 요청하면 콜네임 블랙맘바라는 특수 요원이 된다. 맞나?”
무쌍은 필립이 말한 마죠르 급여 두 배의 수당이 이해되었다. 특별군사고문은 신분 세탁을 겸해서 급여를 맞춰주는 자리다.
“아쥐 래머, 머리가 좋은 편이군. 이제 사인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