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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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장 대우선사1
1983년 4월 1일,
무쌍이 탑승한 DC-10이 한국 영공에 접어들었다. 공교롭게도 만우절이다. 거짓말처럼 떠났고, 거짓말처럼 돌아왔다.
무쌍이 동체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비행기 날개 아래에 펼쳐진 흰 구름조차 달라 보였다. 구름사이로 드문드문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군산 군도라 했던가?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고향이다. 81년 11월22일에 김포공항을 떠났다. 16개월의 시간이 마치 16년이나 지난 듯했다.
DC-10이 나르는 관짝이란 악명과 달리 육중한 몸집을 사뿐하게 활주로에 내렸다. 계류장에 들어서자 안내 멘트가 흘러 나왔다.
-대한항공을 이용해 주신 승객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본 768항공기는 싱가포르를 이륙한지 4시간15분이 지나…….
응, 빵, 숑, 꾸가 아니라 귀에 눌어붙은 모국어다. 피비린내 나는 사헬도 아니고, 박터지게 잔머리 싸움을 벌인 프랑스도 아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끝없는 모래바람, 지글거리는 태양, 윙윙대는 파리 떼, 겹겹이 쌓인 시체더미가 눈앞을 스쳐갔다. 쥇웨이를 걸어 나오며 두 손을 들어 올려 냄새를 맡았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영혼에 각인된 냄새다.
‘내가 정상적인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왈칵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벵기가 연착이라꼬? 이자 막 탈라카는데 우야노?”
“어머님, 한 시간만 기다리면 된답니다. 어서 나가시죠. 아버님, 어서 가세요.”
“오이야. 아가 니기 고상이 많구마.”
서울 며느리가 경상도 시부모를 여행 보내는 풍경인가 보다. 고막을 두드리는 낯익은 언어가 두려움을 몰고 나갔다.
고통과 한숨으로 채워진 고향이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떠난 고향이건만 왜 이리 가슴이 설레는가?
영혼과 육체가 만들어진 땅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가 묻혀있는 땅이고, 이땅 어딘가 어머니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적포기를 못한 이유다.
불현듯 가슴이 벌렁거리며 코끝이 싸해졌다.
“왔구나. 고향이 머라꼬 내가 이카노.”
건장한 젊은 남자가 눈물을 그렁거리는 모습은?
보기 좋은 풍경일 리 없다. 재빨리 곁눈질로 주위를 살폈다. 각자가 자신의 사연에 따라 바쁘게 오갈 뿐이다.
“이기 머꼬?”
게이트를 빠져 나온 무쌍은 어리둥절했다. 수화물 벨트에 인간 군상이 잔뜩 몰려 있다. 떠날 때는 한산했던 공항 로비다. 채 2년이 지나지 않았다. 북적대는 공항 풍경이 너무나 생경했다.
제5공화국이 1981년 해외여행 족쇄를 일부 풀었다. 당시에 일반인은 외국 여행에 나설 꿈도 꾸지 못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정부는 1983년 1월1일부터 50세 이상 국민에 한해 200만 원을 1년간 예치하는 조건으로 연 1회에 한해 관광여권을 발급했다.
당시 200만원이면 개봉동이나 신림동쪽에 작은 주택을 살 수 있는 돈이다. 돈 없는 서민과 젊은 것들은 닥치고 죽도록 일이나 하라는 소리다. 어이없는 조건이지만 당시엔 그랬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독재에 짓눌려 살아온 국민들 사이에 해외여행 바람이 불어 닥쳤다. 협소한 김포공항 국제선 로비는 시장판이 되었다.
일본 시모노세키를 방문한 부산 주부 17명이 일제 코끼리밥통을 사온 사건도 이때다. 주부들이 떼로 관광을 나가 코끼리 밥통을 사오는 바람에 세관에 밥통이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당시 1.8리터 코끼리 밥통 현지 구매 가는 13,000엔(원화 39,000원)이었다. 39,000짜리 밥통을 사오면 국내에서 140,000원에 팔 수 있었다. 코끼리 밥통을 든 주부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꼴불견이 일본 신문에 대서특필된 가슴 아픈 시절이다.
무쌍은 공항 로비를 가득채운 인간 군상에 눈길을 뺏겼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부부, 중절모를 쓴 노인, 한복을 입은 할머니, 바짝 밀착된 젊은 남녀, 모두가 밝아 보이고 행복해 보였다.
검붉은 대지, 휘몰아치는 모래바람이 아니라 행복해 보이는 인간 군상들의 물결이다. 칙칙한 아프리카가 아니라 한국이다.
공항 택시로 서울역에 도착했다. 역 광장 노점 리어카에서 촐싹대는 뽕짝 메들리가 꽝꽝 울렸다.
[~ 초가집도 님과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함께면~ ]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도 한창 유행했던 남진의 님과함께 라는 유행가다. 저렴하고 경박하기 그지없는 드럼, 무게 없는 신디사이저, 지나친 에코가 부담스러운 마이크, 바로 고향의 모습이다.유치한 가사가 느끼한 샹송에 비해 훨씬 귀에 쏙쏙 잘 들어온다. 자신의 뿌리는 어쩔 수 없는 이곳 한국이다. 무쌍은 역 광장에 우두커니 서서 노점에서 풍기는 오뎅 냄새, 떡볶이 냄새, 부침개 냄새를 가득 들이켰다. 포스가 풀풀 풍기는 외모지만 하는 꼬락서니는 영락없는 갓 상경한 촌놈이다.
장신에 짧게 쳐 올린 머리, 진한 레이밴, 몸에 착 붙는 슈트와 등에 달랑거리는 백팩,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패션이다.
스쳐가는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젊은 아가씨들은 가까이 접근해서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이빨을 드러내고 빙긋이 웃으면 하나같이 화들짝 놀라 몸을 피했다.
체격은 떠날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눈빛과 분위기가 변했다. 기세를 갈무리해도 본연의 포스는 어쩔 수 없이 발산된다. 호랑이 눈처럼 번쩍이던 눈빛은 호수처럼 깊이 가라앉았다.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져도 파랑이 일지 않을 고요한 눈이다.
오랜 수도를 한 도인과 불성을 깨달은 고승의 눈은 고요하고 맑다. 무쌍의 눈은 고요한 눈동자 깊숙이 선홍색 붉은 기운이 번득였다. 수많은 살인으로 인해 얻어진 아수라의 눈이다.
슬쩍 접근하던 쓰리꾼이 손 장난 없이 비켜 지나갔다. 무쌍은 빙긋 미소 지었다.
“감이 좋은 녀석이네.”
떠날 때나 지금이나 역 광장에 쓰리꾼이 득실거렸다. 감각만으로 녀석들의 손장난이 훤히 파악된다. 쓰리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무쌍의 근처엔 오지도 않았다.
광장에서 병뚜껑 몇 개를 주웠다. 슁- 병뚜껑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아악!” 이십대 초반이 청년이 난데없이 손목을 움켜잡고 맴을 돌았다. 막 노인의 허리 전대로 손을 뻗던 녀석이다. 비명이 세 차례 이어졌다. 역 광장에 알짱대던 쓰리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짜슥들이 음악 감상을 방해하고 지랄이야. 흐흐흐!”
무쌍은 흰 이를 드러내고 낄낄거렸다. 쓰리꾼 녀석들은 전부 손목 뼈가 골절되었다. 8개의 뼈로 이어진 손목은 신경이 예민한 신체 부위다. 녀석들은 한달쯤은 숟가락도 못든다. 몇 달뒤 완치되면 일상 생활은 지장없지만 예민한 손놀림은 틀렸다. 이런 여유가 좋다. 언제 총탄이 뒤통수에 박힐지 모르는 사헬이 아니다.
노점상의 레퍼토리가 변했다.
[~님주신 밤에 씨 뿌렸네……처음 만나 맺은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야~]많이 들어 본 조용필의 음색이다. 관안을 발휘해서 자켓을 들여다 보았다. 조용필의 신곡 일편단심 민들레다.
[~ 그 여름 어인 광풍 그 여름 어인 광풍 낙엽지듯 가시었나~]피를 토하는 절규가 이어졌다. 무쌍은 벼락을 맞은 듯 굳었다. 지하도 입구에 멍하니 서서 한 소절이 끝날 때까지 말뚝이 되었다.
“아아, 혜영!”
탄식이 새 나왔다. 그렇다. 광풍에 휩쓸려 헤매는 동안 그녀는 포공영(민들레) 홀씨처럼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버렸다. 읍사무소 뒤쪽 적산가옥 2층에서 바라보던 히라니와 정원을 맴돌던 낙엽이 가슴을 저몄다.
조무래기 쓰리꾼을 쫓으며 가벼워졌던 가슴이 가을걷이 끝난 들판처럼 쓸쓸해졌다. 슬그머니 리어카에 다가서서
“에델!”
시련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그녀, 조각 같은 미모에 헌신적이고 현명했던 그녀, 혜영으로 착각하고 입술을 포갤 뻔했던 그녀, 에델의 영상이 혜영을 슬쩍 밀어냈다.
“아, 나란 놈은! 아부지 보기가 부끄럽구나.”
무쌍은 머리를 흔들어 에델을 털어냈다.
‘쫄따구와 옴부티가 잘 지켜 주겠지. 번뇌로다. 라훌라!’
아즈라일 블랙맘바도 청춘은 청춘이다.
무쌍은 열차표를 예매하고, 정동에 있는 영국 대사관을 찾았다.
“오우, 이럴 수가! 무쌍 사나이가 되었구나.”
헤밀톤은 집나간 아들을 맞듯이 반겼다. 어깨를 얼싸안고 빙빙 돌았다.
“엉클,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웬 덕분은, 건강해 보인다.”
“엉클도 건강해 보이십니다.”
무쌍은 헤밀톤의 아들 뻘이다. 삼촌이라고 부르지만 두 사람은 친구사이다. 무쌍은 헤밀톤의 대가없는 도움을 잊지 않았다. 외인부대 입대도 전적으로 헤밀톤의 도움 덕분이다.
헤밀톤이 늘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지만 조폭 몇 놈 망가뜨리고 병원으로 업고 가서 입원 보증금을 대납했을 뿐이다. 그야말로 마음가는 대로 행했고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았다.
사바세계는 나쁜 인간도 많지만 좋은 인간도 많다. 그래서 사바세계라는 스승의 말이 생각났다. 선한 인간만 살면 천국이고, 나쁜 인간만 살면 지옥이다. 이런저런 온갖 군상이 몰려 사는 사바 세상은 그래서 재미있다.
사부는 소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철학적 사유가 끝없이 깊은 분이다. 평소에 툭툭 던지는 말씀에도 깊은 현기가 어려 시종을 짐작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헤밀톤 선물이다.”
무쌍은 국방부 장관에게 받은 은장 발터PPK를 선물했다.
권총을 받아들고 요모조모 살피던 헤밀턴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무쌍, 이건 가벼운 물건이 아니다. 내가 받기에 지나친 선물이다.”
“선물은 선물일 뿐이다.”
사헬에서 주워온(?) 권총 숫자만 20개가 넘는다. 한 개쯤 줘도 표시도 안 난다. 호기로운 응답에 헤밀톤이 허허 웃었다.
“허허허! 아는 거냐 모르는 거냐? 이 권총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장군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한정 제작한 귀중품이다. 총열과 기관부를 제외하고는 전체가 순은으로 만들어졌지. 전 세계의 수집마니아가 돈을 아끼지 않고 손에 넣으려는 수집품이야. 소더비에 올리면 최저 경매가가 10만 불에서 시작할 걸.”
‘으악, 저게 진짜 원판 ’지도자 킬러‘였다고라! 망할 장관 녀석, 설명이라도 제대로 해주지. 흐미 아까비.’
은도금으로 알았던 물건이 진짜 은장품이란다. 그것도 히틀러 한정 컬렉션!
10만 불이면 40만 프랑이다. 자신이 이등병일 때 30년 치 연봉이다. 100만 불에 낙찰되면 300년 연봉이다.
속에서 슬며시 신물이 올라왔다.
“하하하, 헤밀턴은 젠틀맨이다. 그 정도는 돼야 젠틀맨의 품위를 돋보일 수 있다.”
피눈물이 흐르는 속마음과 달리 무쌍은 호탕하게 웃었다.
“오우, 고맙네. 피스톨보다 나를 알아주는 무쌍이 더 고마워.”
너스레를 떠는 헤밀톤이 얄미워 보이는 무쌍이다. 이래서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생겼다.
무쌍은 급한 마음에 통일호를 탔다. 구미행 제일 빠른 표를 달라는 요청에 쥐어진 표가 통일호 입석이다.
‘어휴, 복잡하네. 가물치가 빨리 도착해얄텐데.’
통로에 서서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부대끼고, 수시로 오가는 홍익회 수레를 비켜주느라 몹시 성가셨다. 더 곤란한 건 사람들의 눈초리다. 여자들은 킥킥거리기도 한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다.
어디가나 사람에 치이는 이 땅이 바로 자신의 고향이다. 야만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돌아온 이상 감수해야 할 번거로움이다.
무쌍은 산길을 마다하고 천생산을 일직선으로 올랐다. 급한 마음에 웬만한 굴티는 건너뛰고, 날다람쥐처럼 나무에서 나무로 건너뛰었다.
암자에는 전화가 없다. 매달 안부 편지를 띄우다 작전에 들어가면서 석 달이나 편지를 보내지 못했다. 답장을 할 스승도 아니지만 총망중에 잔뜩 걱정이 앞섰다.
일주문에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어설픈 솜씨로 졸참나무를 다듬어서 세웠다. 암자에 일주문이라니 당치 않지만 스승의 허락도 없이 뚝딱 만들어 세웠다.
일주문 보에 한쪽 귀퉁이만 붙은 길쭉한 송판 한 장이 바람에 덜렁거렸다. 天性寺 현판이다. 무쌍의 심장도 덜컹 떨어졌다. 아무리 내외창통한 스승이지만 연치가 구십이다.
후다닥 암자로 뛰어들었다. 인적이 없다. 뎅그렁- 뎅그렁- 법당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 소리만 산바람에 맑았다.
“사부님! 사부님!”
천생산이 우르릉 울렸다. 암자를 누르고 있던 적막이 화들짝 놀라 사라졌다. 암자는 대답이 없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혹시 왕산하시지 않았나 하는 불안감에 손이 덜덜 떨렸다. 사부가 적정에 들어가면 자연동화술을 시전한 자신과 비슷해진다. 공간지각력을 풀어도 잡히지 않을 것이다. 꽈당- 법당 문이 떨어질듯이 열어젖혀졌다.
법당은 변함없이 단출했다. 흔한 탱화 한 폭 보이지 않는 법당이다. 부처님은 여전히 졸고 있고, 목탁은 법상위에 단정히 놓여 있다. 깡마른 노승이 늘 앉아있던 포단만 텅 비었다.
무쌍은 불전에 놓인 청정수를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신선하다. 하루를 넘기지 않은 물이다.
“탁발을 나가셨나?”
무쌍은 큰방 쪽마루에 털썩 걸터앉았다. 뛰던 가슴이 가라앉았다. 그제야 천성산 이곳저곳에서 울어대는 철 이른 뻐꾸기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수많은 생명을 가차 없이 끊어놓은 주제에 스승의 안위엔 평정을 잃었다.
‘응, 공양간에 머꼬?’
무쌍의 눈썹이 찡긋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