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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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장 대우선사2
미약한 생기, 온혈 동물치고는 너무 연약하고 파충류처럼 음습하지도 않다. 열 걸음도 안 되는 곳에서 발산되는 생기를 놓치다니, 그만큼 마음이 엄벙짐벙하는 상태라는 이야기다.
공양간 문을 밀고 들어섰다. 화기가 없다. 깔비와 장작이 쌓여 있던 자리는 산짐승의 배설물로 어지러웠다. 오랫동안 불을 피우지 않은 공간 특유의 쾌쾌한 공기가 코를 간질였다.
“헛! 나 원 참, 저거는 또 머꼬?”
무쌍의 시선이 공양간 한쪽 구석을 향했다. 겨우 형체를 갖춘 너구리 새끼 두 마리가 대가리를 처박고 있다. 기척을 낸 장본인이 이놈들이다.
인간의 난입에 놀라 서로 대가리를 숨기려고 바동대는 장면에 실소가 나왔다. 공양간은 산중의 굴보다 주거 여건이 훨씬 좋다. 얌통 맞은 너구리 년이 둥지를 틀었다.
인간이 불을 사용한지 백만 년이 넘었다. 인간의 위장은 더 이상 생식에 맞지 않다. 살아가려면 요리라는 중간 과정이 필요하다. 너구리가 둥지를 틀 정도니 사부는 생식을 했거나 곡기를 끊었다는 이야기다.
“영감 탕구가 보내준 돈은 우야고 이카노.”
몰라서 투덜거리는 게 아니다. 보살이 애새끼 등록금 낼 돈 없다고 징징대면 등록금을 내주고, 입원비 없다는 숲배미 박영감 치료비 대주고, 방앗간에서 얼라 만든 철딱서니 없는 년 데리고 병원에 갔을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다.
문제는 사부의 연치다. 위장 불수의근 노화를 되돌리는 무예는 없다. 화식을 해야 하는데 공양주도 없어지고, 불 땐 흔적도 없다.
“맨날 이칸다니까. 내가 말을 말아야지.”
짠한 마음이 원망이 되었다. 절에 찾아오는 인간들 대부분이 빈대다. 시주는커녕 사부의 주머니를 털어가기 바쁘다. 허허 웃고는 있는대로 내주는 사부도 딱하다. 사부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화수분이 바로 자신이다.
공양간에는 밥하는 큰 솥과 국을 끓이는 동솥 두 개가 있다. 동솥 뚜껑을 열어 보았다. 나물 찌꺼기가 말라붙어 있다.
무채와 쑥 건더기다. 예민한 후각에 희미한 들깨 냄새가 잡혔다. 동솥에서 나물을 무친지 최소 한 달이 넘었다.
찌거덕하니 열린 큰솥을 들여다보았다. 왕거미가 거미줄을 쳐놓고 중앙에 턱하니 눈을 부릅뜨고 있다. 거미줄에 붙어있는 파리 잔해가 여러 마리다.
“얼래! 장작은 또 어디갔노?”
공양간 옆 처마 밑에 쌓아둔 땔감도 보이지 않았다. 출국 전에 삼년치 장작을 쌓아 두었다. 그 많은 장작이 사라진 휑한 자리에 짐승 배설물만 남았다. 장작이 산으로 기어 올라가기라도 했단 말인가?
‘혹시, 사부님이 왕산하고 애먼 땡중이 빈 절을 차고 않은 거 아이가?’
별스런 불안감까지 스믈스믈 피어올랐다.
퉁 퉁 퉁-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는 소리다. 그 소리가 마치 저주파 하울링처럼 낮고 장중하다. 더듬이 잃은 개미처럼 애면글면하던 무쌍이 벌떡 일어났다.
사부님은 걸을 때면 늘 지팡이로 땅을 두드린다. 벌레 한 마리 밟지 않으려는 자비심의 발로다.
“사부님이닷!”
투왕- 검은 선이 쭉 늘어나서 일주문을 통과했다. 한 줄기 돌풍이 산 아래를 향했다.
“허, 무아가 왔구나. 천지자연의 기운을 빌지 않고 본연의 힘으로 자연을 윽박지르는구나. 쯧쯧, 순리를 버리고 어거지로 능력을 얻었어. 아무렴 어때. 저만하면 맞고 다니지는 않겠구나. 헐헐헐!”
깡마른 노승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물결쳤다. 통 통 통- 노승의 발걸음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이어졌다.
무쌍은 달리는 와중에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팡이 소리는 계속 들리는데 발걸음 소리가 없다. 퉁퉁 울리는 소리는 겨우 400m밖, 산모퉁이만 돌면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지팡이가 홀로 길을 가는 형국이다.
“설마 공령지신!”
예전에는 몰랐던 사부의 경지가 새삼 놀라웠다. 이것이 고수와 하수의 차이다. 예전에는 몰랐다. 사헬에서 공간지각력과 공진파를 깨닫지 못했으면 여전히 사부의 높은 경지를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생겼다.
회오리바람이 산모퉁이를 휙 돌았다. 지팡이에 의지해서 산길을 오르는 자그마한 노승이 눈에 들어왔다.
“사부님! 크흐흐흑!”
빛살같이 달려간 무쌍이 뼈만 남은 스승을 얼싸안고 울었다. 놀이 공원에서 잃었던 엄마를 되찾은 어린애가 따로 없다.
“오냐, 네가 왔구나!”
마치 마실 다녀온 꼬맹이를 맞는 듯 스승의 어조는 평온했다.
“어헝! 걱정 억수로 했심더.”
아즈라일, 전장의 악몽, 칸마, 아쥐 래머, 블랙맘바는 없었다. 스승을 만나는 순간 시간을 거슬러 천성사의 행자승으로 돌아갔다.
“어허, 이놈이 외국 물을 먹더니 어린애가 된 게냐.”
대우 선사가 탁발을 다녀온 동자승을 맞이하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부님 앞에서야 늘 어린애지요.”
“험, 보자. 몸뚱이가 더 실해졌구나.”
주름진 손이 단단한 어깨를 어루만지고, 철주 같은 등뼈를 더듬었다. 따뜻한 눈이 제자의 몸을 샅샅이 어루만졌다. 예전에도 흉터가 빼곡하던 몸이다. 흉터가 세배는 더 많아졌다. 왼쪽 뺨에도 흉터가 덧방을 쳤다.
흉터보다 제자에게서 자욱이 풍기는 혈향이 문제다. 십단위, 백단위가 아니다. 수천 단위의 살육을 해야 이처럼 진한 혈향이 풍긴다.
“아비지옥을 헤치고 다녔구나.”
대우선사의 음성이 살짝 떨렸다. 예상은 했지만 제자가 겪었을 심적 혼란에 가슴이 짠했다.
“벨거 아입띠다. 지옥이야 아수라의 안방이지예. 그보다 사부님이 돌아가신 줄 알고 식겁을 했심더.”
“에끼놈, 의발 전할 씨도 못 받았는데 죽으마 우짜노. 니놈은 불가와 인연이 없어. 줄 것은 손바닥만 한 암자밖에 없느니라. 헐헐헐!”
“법당은 작아도 마당은 엄청 넓지 않심니꺼. 팔면 돈 좀 될낀데예.”
“이놈아, 내가 죽고나면 팔아먹어. 아구구 다리야. 머하노, 냉큼 업어라.”
등을 돌려 스승을 업었다. 빈 부대처럼 무게감이 없다. 마르다 못해 가죽 부대에 뼈다귀를 담아 놓은 형상이다. 곡기를 끊다시피 했으니 단백질과 지방질이 남아 있을 리 없다.
무쌍의 눈에 습막이 차올랐다.
“사부님 몸이 와 이 캅니까? 공양은 우야고예?”
“걱정 말거라. 생식을 했더니 화기가 빠져 나간 게야. 내가 용한 점쟁이에게 점을 봤거든. 돈 많은 제자 덕에 늙을수록 배부르게 먹는다더라. 헐헐.”
공양주도 없이 벽곡단으로 연명을 하신 모양이다. 가슴이 울컥거리고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그동안 우예 지내가꼬 해골이 되삐릿심니꺼?”
“어허, 아직도 외물에 집착하느냐. 너는 초원을 달리는 비쩍 마른 표범과 살이 뒤룩뒤룩 찐 동물원 표범 중에 어느 쪽이 정상이라 생각하느냐?”
“사부님은 표범이 아이라 사람 아입니꺼.”
볼멘소리에 대우 선사가 껄껄 웃었다. 늙은 사부와 건장한 제자가 조손간처럼 두런거리며 산길을 올랐다.
“껍질이 다를 뿐이다. 다 왔구나. 읏차”
“엇!”
무쌍이 깜짝 놀랐다. 등에 업혀있던 스승이 연기처럼 빠져나갔다. 어느틈에 큰방 쪽마루에 앉아계신다. 청파보로는 흉내도 못낼 경지다.
“사 사부님!”
“이놈아 목소리 낮춰. 서까래 먼지 떨어진다.
“그기 멉니까?”
무쌍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야 이놈아, 니 이바구부터 해라. 늙은 중이야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다. 니놈은 천변만화한 생활을 했을 거 아니냐. 엉, 어딜 가려느냐?”
“사부님 차를 올려야지예‘”
“에그 녀석, 효성스러운척 말고 그냥 앉거라. 차를 마시지 않은지 오래다. 차도 없다.”
“와요? 차를 즐기시잖아요?”
“똥막대기같은 놈이지만 제자를 지옥에 보내놓고 차가 목구멍에 넘어가겠느냐.”
“사부님, 제자의 죄가 큽니다.”
무쌍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천의무봉한 경지에 이른 사부의 유일한 식도락이 차다. 제자 걱정에 그마저 그만두신 모양이다. 사부의 사랑에 가슴이 먹먹했다.
“이놈잇, 사부까지 울적하게 만드네. 한 대 맞고 이바구를 시작하자.”
따악- 무쌍이 멀뚱멀뚱 사부를 쳐다보았다. 대우선사는 중동이 딱 부러진 지팡이를 들고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황당한 시선이 제자의 머리통과 부러진 박달나무 지팡이를 오갔다. 바위를 후려쳐도 쉽게 부러지지 않을 지팡이다.
“어허, 그것도 니놈 신체의 공능이더냐?”
“야, 크게 다쳐가꼬 정신이 없을 때 하인이 후블러브라는 산삼 비슷한 식물을 달여 먹였거든요. 자고나니까 이래 돼뿌심더.”
대우선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듣느니 기사(奇事)도 이런 기사가 없다.
“어허, 불성은 약해지고 몸띠만 강해지는구나. 다른 이상은 없느냐? 아니다 내가 봐야겠다.”
대우선사가 무쌍의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열 손가락이 단숨에 백회혈과 대추혈을 비롯해서 두부에 위치한 열 개 대혈을 짚었다.
슈아아- 대우선사의 몸 주위에 작은 회오리가 일었다. 무쌍은 상쾌한 허브향이 머리를 휘젓는다고 느꼈다.
“그것참 기사로다. 내용물은 아무 이상 없구나. 하인은 머꼬, 후블러브는 어떻게 생겼더냐? 아니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딴나라 아가씨들 맛은 쪼매 봤느냐? 젊은 놈들 말로는 백마고지에 깃발 꽂는다 카더만. 허허허!”
마음이 놓인 듯 대우선사의 장난끼가 다시 발동했다.
“아이구 사부님, 무슨 부처님이 노할 천박한 말씀을 그리 하십니꺼.”
무쌍이 펄쩍 뛰었다. 사부님의 장난끼가 더 심해졌다.
“어허, 이놈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중생들이 열심히 깃발 꽂고 새끼를 까야 부처님도 얻어먹을 거리가 생기지 않겠느냐. 새끼를 깔 젊은 것들이 마카 도시로 빠져나가니 치성오는 보살도 없구나.”
“아이고 사부님 쪼옴~”
남이 들을세라 질겁했지만 대우 선사는 한 술 더 떠서 지청구를 놓았다.
“법당에 계신 우리 부처님 바라. 맨날 손가락만 빨고 있지 않느냐. 늙은 나도 햄벅인가 함빡인가 먹고 싶어도 손가락만 쪽쪽 빨았다. 주머니에 쇳가루는 없고 서캐만 가득하니 우야겠노. 서양 할배 모형 앞에서 침만 잘잘 흘렸능기라. 이게 다 호박씨 깔 줄 모르는 니놈 탓이여.”
대우선사가 부러진 지팡이로 쪽마루를 땅땅 치며 을렀다. 햄버거를 먹지 못해 무척 억울했던 모양이다.
“저도 할거 다 합니다. 저번에 여보살을 스물이나 몰고 왔다 아임니꺼. 돈푼께나 있는 여자들인데 사부님이 몽땅 내 쫓았다 아임니꺼.”
“아서라 이놈아, 싱싱한 것들을 델꼬와야 이 사부가 눈요기라도 하지. 부처님은 안중에도 없이 니놈 가슴팍과 사추릴 빨아먹을 듯이 쳐다보는 눈깔하며, 암내를 풀풀 풍기는 것하며, 사타구니를 비비꼬는 늙은것들을 어따 써. 자고로 올라타더라도 젊고 싱싱한 걸로 골라야 혀.”
거침없는 사부의 입담에 무쌍은 머리가 어질 거렸다. 사부는 툭하면 제자의 씨를 받아서 의발을 전하겠노라며 갈구었다. 감당이 되지 않았다.
“저도 알건 다 알고, 해볼 건 다 해봤다고요.”
“퍽이나 그랬겠다. 니놈은 물 건너 간 후로 한 번도 정을 뽑아내지 않았어. 사부가 모를 줄 알았지? 참한 아가씨를 억지로 떨쳤구마. 자알한다. 그러고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 잠그고 오형제를 혹사 시켰을끼다. 쯧쯧!”
“억, 어떻게 아셨습니까?”
무쌍이 깜짝 놀랐다. 사부가 루드리 에델의 사건을 어찌 안단 말인가? 아까 머리속을 뒤졌나?
“안 봐도 뻔하다. 진순이도 건드리지 않는 놈이 뭘 제대로 하겠노. 군바리가 여자 주워 먹는 재미도 없이 무신 재미로 살았더냐. 땡중들도 껄떡대는데 젊은 놈이 어찌 여자에게 그리 관심이 없는 기야. 튼실한 물건이 아깝다. 쯧쯧!”
“그기 말입니다. 서양 여자는 노린내도 나고……”
“떽, 백마, 흑마 올라탄 색스런 이야기를 들어 보렸더니 틀렸구나. 쪽 팔리는 줄 알아라. 맨날 일어섰다가 하릴없이 죽는 물건에게 미안한 줄도 알고.”
무쌍은 머리를 긁적였다. 꼭히 여자를 멀리 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혜영을 향한 그리움, 사랑은 한번 뿐이라는 구시대적인 아집에 매달린 자신이 멍청하긴 했다. 훈련과 수련에 집중하다보니 여자 생각도 별로 나지 않았다.
인간답지 않게 예민한 후각과 시력도 큰 걸림돌이다. 여자들의 몸에서 풍기는 역한 채취와 커다란 땀구멍, 허옇게 일어난 각질을 보면 안고 싶은 생각이 천리 만리밖으로 달아났다.
“바쁘게 지내다 보니 여자를 사귈 시간도 없었심더.”
“이런 멍충한 녀석, 지 실력 없는 건 탓하지 않고. 쯧쯧!”
사부가 끌탕을 치자 무쌍은 은근히 심사가 뒤틀렸다.
“사부님 생활비 보낸다꼬 허리가 휘어졌다 아임니꺼. 화대가 없어서 여자 옆에 가보지도 못했심더.”
대우선사가 한심하다는 듯 부러진 지팡이로 제자의 머리를 딱딱 두드렸다.
“헐헐헐, 이 하수야, 여자는 꼬셔서 먹는 기다. 돈 내고 먹는 영업용이 온전한 게 어딨노. 씨 뿌려봐야 새끼도 못 깐다. 사면바리 붙지 않으면 다행이지. 외국 여자들은 헤퍼서 팬티를 잘 내린다는데 니는 띨하게 손가락만 빨다 왔구마. 내 실수로다. 오금공이 아니라 무산운우경을 가르쳐야 했어.”
짐짓 안타깝다는듯 가슴을 쿵쿵친 대우선사가 제자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어이쿠, 벌씨로 사리가 몇 개 자리를 잡았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