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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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장 대우선사3
무쌍은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몸은 여위어 뼈마디가 불거졌지만 천의무봉한 모습은 여전했다. 해학적이고 아이 같은 해맑은 모습도 여전했다. 불안했던 마음이 싹 가셨다.
“사부님, 영혼 없는 농담 그만 하이소. 벨로 웃기지도 않거든요. 제자 골통에서 사리를 찾지 마시고 사부님이나 빛나리 사리 몇 개 만들어 두시소. 돈 없으면 팔아먹게요. 제자에게 물려주실 것도 없다 아임니꺼.”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을 봤나. 너나 어서 통장 뽑아와. 풀만 먹었더니 사리가 안 생겨. 짜식이 안심, 등심으로 입맛만 버려 놓고 외국으로 튀고 말이야.”
대우선사가 입맛을 쩍쩍 다시며 눈을 부라렸다.
“하이고 무서버라!”
“이놈아, 나도 소싯적에 중절모 쓰고 침 좀 뱉었느니라.”
“푸헤헤헤!” “헐헐헐!”
스승과 제자가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흰소리를 늘어놓는 사이에 암자에 석양이 깃들었다.
“사부님, 쪼매만 기다리십시오. 공양을 준비하겠심더.”
“암것도 없는데 우얄라카노?”
“사부님이나 저나 풀 쪼가리 먹는 데는 이골이 났다 아임니꺼.”
사월초 산중의 기온은 소름이 돋을 만큼 쌀쌀했다. 자신이야 추위도 더위도 침범 못하지만 스승은 연로하시다. 공령의 경지도 육신의 노화를 막을 수는 없다. 할 말은 많았지만 방을 데우고 공양이 먼저다.
무쌍은 도끼부터 찾아 들었다. 예전에 대장간에 주문해서 만든 도끼, 장한부(長恨斧)라 이름붙인 도끼다. 물끄러미 녹슨 도끼날을 내려다보았다. 무엇이 그리도 한이 맺혔던가!
당시엔 더러운 것들의 목을 처 버릴 생각에 장한부를 만들었다. 스승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장한부는 도끼날 폭이 30cm에 달하는 양날 광폭 도끼다. 두께는 손잡이가 박힌 중심부가 30mm에 불과하다. 벌목용이라기엔 지나치게 섬뜩한 흉기다.
손바닥으로 녹슨 도끼 면을 주욱 훑었다. 쮸웅- 녹이 우수수 떨러나갔다. 공진파의 묘용이다. 두세 번 문지르자 날이 시퍼렇게 살아났다.
“이놈아, 흉물스런 물건 내려놓고 당장 발전기부터 손봐라. 텔레비를 못 본지 일 년이다. 싱싱한 것들이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허연 다리를 못보는 사부의 고통을 니놈이 알기나 하냐?”
“예, 군불부터 피아 놓고, 금방 손 보겠심더.”
대우선사는 번득하고 산으로 사라지는 제자의 뒷모습을 보고 끌탕을 했다.
“선재, 선재로다. 아수라행과 보살행이 다르지 않으니 자신을 태워 세상에 빛을 던질 놈이로다. 폭주하는 천살성의 기운은 해소되었으나 영혼에 눌어붙은 피비린내를 어찌할꼬. 나무아미타불!”
대우선사는 눈을 감고 염주를 돌렸다. 제자의 몸에서 풍기는 자욱한 피비린내에 가슴이 저렸다. 수십 년 도끼를 휘두른 백정도 제자만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지 않는다.
“세상엔 아수라도 필요한 법이지. 일단 영혼에 배인 피비린내를 뽑아내야겠다. 스스로 저어함이 있으면 그것이 업이거늘. 제자야 오랜만에 손 맛 좀 보자꾸나. 니놈이 제법 컸다만 이 스승도 숨겨둔 밑천이 좀 있거든. 홀홀홀!”
딱- 대우선사가 마지막 염주를 엄지로 탁 튕기고 벌떡 일어났다. 몽둥이 지존 블랙맘바가 몽둥이 조종에게 후달리게 생겼다. 이곳은 뻐꾸기 소리 낭자한 천생산이다.
무쌍은 오랜만에 신나게 도끼를 휘둘렀다. 그의 나이 스물넷, 열여덟의 나이때 산판에서 신들린 도끼란 별명을 얻었다. 인간 같지 않은 적면 셋의 목을 날려버리고 백백교주의 팔을 날려버린 솜씨다.
슝- 도끼가 공간을 끊었다. 도끼날은 쿵하는 소음도 없이 나무 밑동을 그대로 통과했다. 수초후 수십 년 성상을 버텨온 졸참나무가 쿵하고 자빠졌다.
쉭쉭쉭- 도끼날이 석양에 번쩍번쩍 빛났다. 순식간에 잔가지가 후드득 떨어져 나가고, 줄기가 팔뚝 길이로 잘려나갔다. 중국 역사서에 기록된 무산 초부가 사부로 모실 솜씨다.
순식간에 통나무가 한 가득 지게에 쌓였다. 무쌍은 마닐라 바를 당겨 묶지도 않은 지게를 지고 덜렁덜렁 산을 내려갔다.
내딛던 왼팔이 주춤하고 무릎이 살짝 솟아올랐다. 왼쪽으로 삐져나오던 통나무 한 개가 오른쪽으로 툭 밀려들어갔다.
지게에 얹힌 수십 개 통나무의 미세한 흔들림, 그 흔들림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수련이다. 고수는 일상생활이 수련의 연장이다.
파악- 파악- 마당에서 요상한 소음이 울렸다. 대우선사가 방문을 비죽이 열었다. 무쌍이 신나게 장작을 패고 있다.
제자 놈은 도끼를 던져버리고 손날로 장작을 쪼개고 있었다. 장난하듯이 툭툭 내려치는 손이다. 참나무 둥치가 손으로 내려칠 때마다 쫙쫙 쪼개졌다. 실소가 흘러나왔다.
“허허, 그놈 참! 공진파로 장작을 패다니, 정법 조사님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시겠구먼.”
대우선사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전무후무한 무골이다.
가벼운 움직임 속에 요동치는 거력이 느껴졌다. 대기가 웅웅 울렸다. 팍팍 소리는 공기의 결을 끊는 소리다. 제자는 어느새 실전 운용 단계에 이르렀다.
“헐헐, 좋구먼. 절간 같던 절간이 펄펄 살아나는구나.”
행자복 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시무시한 근골이 심상에 잡혔다. 제자의 신체는 그리 우람하지 않다. 키는 육척이 넘지만 뼈대와 근육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호리호리한 편이다.
“대단하다!”
제자의 신체를 볼때마다 느끼는 경이감이다. 한올한올 삼줄을 꼬아 만든 듯 섬세한 근육은 송곳을 튕겨낼 정도로 질기다. 뼈대의 강도는 달리는 자동차와 부딪혀도 버텨낼 수준이다. 뼈대와 근육을 움직이는 힘줄은 고래 힘줄 보다 탄성이 강하고 질기다.
이해 불가능한 영역의 유전자와 극한의 수련을 통해 탄생한 금강야차, 수많은 영혼을 탈거시키고 현세에 재래한 아수라다.
“부처님의 가피로고. 나무아미타불!”
아차하면 통제 못할 마구니가 될 뻔한 녀석이다. 녀석을 거둔 것도 부처님의 뜻이요. 운 때가 맞아 전장으로 보낸 것도 부처님의 뜻이다.
전장은 인간을 짐승으로 만들지만 제자는 인간이 되어 돌아왔다. 억눌린 살기와 마성은 대부분 배출되었다. 눈에 담긴 심살의 기운만 뽑아내면 된다.
‘패려면 명분을 만들어야지.’
대우선사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무아야!”
“예, 사부님!”
무쌍이 작업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능력을 남에게 보인 적이 있더냐?”
“저 그게 말임다……”
무쌍은 우물쭈물했다. 사부님의 당부를 몇 번 잊어버렸다. 최근엔 공기를 눌러서 아리바 과장의 호흡을 틀어막은 적이 있다. 괘씸한 마음에 생각 없이 저지른 실수다.
“이놈, 사부의 당부를 잊고 자신의 힘에 취했구나.”
“죄송합니더. 제자의 생각이 짧았심더.”
무쌍이 깨갱하고 꼬리를 내렸다.
“하늘위에 하늘이 있는 법이다. 작은 성취에 우쭐하면 더 큰 것을 얻지 못하는 법이다. 그리고 세상은 간단치 않다. 육체적 능력은 그리 경계 대상이 아니지만 정신 능력은 세상에 큰 소란을 일으킬 수 있느니라. 호승심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네가 곤란해 질 수 있음이다.”
“제자 명심하겠심더.”
“명심은 몸으로 느껴야 각인이 되는 법이다.”
“헉! 사부님, 말로 하셔도 제자는 다 알아듣습니다요. 연로하신 존체에 무리가 가면 우얄라 캅니꺼.”
“걱정할 것 없느니라. 너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표어도 보지 못했느냐. 무예가는 뼈마디를 끊임없이 움직여줘야 녹이 슬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내 듣자하니 영감탕구라고 사부를 욕하더구나.”
‘조때따!’
무쌍의 얼굴이 썩어문드러졌다. 사부의 천이통 능력을 생각지 못했다.
“오늘은 네놈 이야기를 밤새 들어야 하니 내일 저녁 공양을 마치고 준비하거라. 험 험!”
대우 스님은 헐헐거리며 고무신을 꿰어 신고 법당으로 올라갔다.
“헐헐, 혼탁해진 세상엔 아수라도 필요한 법이지. 저놈을 키운 것만으로 내가 세상에 나온 의무는 다했어. 그런데 어떤 색시가 무정한 저 놈의 마음에 파고들었지? 요즘 세상에 양색시면 어때. 저놈이 색시를 맞아서 얼른 새끼를 까야 의발을 물려주지. 저놈 가슴에 춘풍을 일으켜 달라고 부처님께 생떼나 부려 볼까나.”
무쌍은 큰방 아궁이를 들여다보았다. 재가 잔뜩 쌓여 고래(아궁이에서 구들로 연기와 화기가 들어가는 입구)가 막혀 있다. 긁개를 밀어 넣어 재를 말끔히 긁어냈다. 갈비(마른 솔잎)에 불을 붙이고 장작을 포갰다. 그동안 불 맛을 보지 못한 고래가 맹렬히 불을 빨아 들였다.
큰 방에 들어가서 연기가 새는 곳을 체크했다. 연기가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눅눅해진 바닥이 갑자기 강한 불길을 받아 달구어지자 균열이 생겼다.
무쌍은 양동이를 들고 산으로 내달렸다. 천생산에는 결이 고운 백토가 여러 곳에서 출토된다. 거친 황토는 채로 쳐야 하지만 백토는 바로 물에 이겨 방바닥을 바를 수 있다. 사헬의 아즈라일은 천생산 불목하니였다.
“사부님, 오늘은 작은방에서 주무십시오.”
“허허, 니놈이 오니까 수선스럽기 그지없구나.”
무쌍은 흙으로 범벅이 된 손을 얼른 뒤로 감추었다.
“헤헤, 사부님은 외물에 섭간되지 않을 경지인데 무신 상관입니꺼.”
“이놈이 외국에 나가 있더니 입심만 늘었구나. 작은 방도 불을 넣거라. 눅눅할게야.”
“그라지예”
“먼 길을 왔는데 피곤하지 않느냐.”
“헤헤, 지가 피곤할리 없지예.”
“사람의 몸도 기계와 다를바 없느니라. 무리한 가동은 자신도 모르게 신체 일부에 문제를 일으키고, 그것이 누적되면 몸이 상하는 법이다. 무리하지 말거라.”
대우선사가 빙그레 웃었다. 제자의 피지컬 능력은 사부인 자신도 가늠하기 힘들다. 세상사람 오십억이 과로로 죽어도 제자는 끄떡없겠지만 스승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공양간에 너구리 새끼가 있던데요.”
“아, 그년, 지난겨울에 눈이 많이 왔거든. 그년이 비실비실 마당에 들어서길래 고구마를 몇 개 던져 줬어. 그날부터 염치없는 년이 맨날 찾아오는 게야. 찾아오는 년을 빈손으로 보낼 수 있나. 올 때마다 고구마나 옥수수를 줬지. 그 년이 나를 호구로 봤나봐. 공양간에 턱하니 자리 잡더라.”
“새끼까지 깟구마요.”
“응, 그년이 멍청한 놈을 꾀어서 새끼를 친 게야. 내 여태껏 살면서 저리 뻔뻔한 짐승은 첨 봤다. 쪼매 있으면 그 년이 돌아 올 끼다. 절간에 먹을 게 부족하니까 그제야 먹이를 찾아 나서더구나.”
“하하하! 사부님답네요.”
스승님다운 행사다. 제자가 생목숨을 오이 꼭지 따듯 따고 있을 때 스승은 짐승 가족을 구휼하고 계셨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형만한 아우 없듯이 스승을 넘는 제자도 없다. 자신이 견강부회할 때 스승님은 생활 자체가 천의무봉의 경지에 이르렀다.
작은방 아궁이에 장작을 밀어 넣어두고, 공양간을 말끔히 청소했다. 너구리 둥지는 그대로 두었다. 공양간에 남은 재료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 꽁다리, 배춧잎 한 장 없었다. 너구리가 두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장까지 내려가려면 산길 십리가 넘는다. 당장 탈것이 없다. 가물치는 은자메나에서 주한프랑스 대사관으로 부쳤다.
차라리 허큘리스에 탑재해서 프랑스에서 탁송했으면 훨씬 빨리 도착할 텐데 실수했다. 차드의 조악한 물류 능력을 감안하면 일 년 뒤에 도착해도 할 말이 없다.
간사한 게 사람이다. 시장까지 6km거리다. 10분이면 넉넉히 도착한다. 20개월의 편리함이 20년 세월을 엎었다.
“자전거라도 한 대 사야 하나?”
아파트 수천 채를 살 돈을 벌어놓고 자전거 타령하는 무쌍이다. 인간의 근본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무쌍은 어둑해지는 산길을 달려서 시내로 내려갔다. 음식 재료를 사고, 등유 한 통을 사서 득달같이 암자로 돌아왔다.
무라타 발전기는 등유를 공급하자 별 탈 없이 돌아갔다.
‘내 실수였어.’
등유 재고를 확보해 놓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 사부는 당신의 손으로 기름을 구입할 분이 아니다. 전등도, 냉장고도, 티브이도 사용하지 못하셨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는 분이 스승이시다.
스승과 제자가 오랜만에 겸상을 했다.
“어허 여전하구나.”
대우 스님은 밥통 째로 들고 퍼먹는 제자를 인자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주름 가닥마다 미소가 깃들었다. 전깃불이 없어도 그만, 방이 추워도 그만, 따듯한 공양이 없어도 그만이다.
외물의 편안함과 편리함을 벗어난 지 오래다. 제자는 심성이 더 할 수 없이 여리고 순후한 놈이다. 녀석이 마음 편하면 그것으로 족했다.
탐욕스런 인간들이 욕심 없는 제자를 아수라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그 또한 부처님의 뜻일진대 제자가 짊어지고 가야할 업이다. 발리(선량하고 현명한 아수라. 신의 반열에 든 아수라다.)의 화신일지도 모르는 제자, 그 끝이 안개낀 듯 모호해서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