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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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장 대우선사4
‘녀석, 좋다는 재료는 다 넣었구나.’
대우선사는 흑임자죽을 한 숟가락 맛보고 미소를 지었다. 마른 전복과 안심을 갈아 넣고, 후추를 살짝 뿌려서 냄새를 지웠다. 가족없이 구십 성상을 살아온 대우선사다. 제자의 정성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곡기를 접하지 않은지 두 달이다. 생식도 아닌 화식이 들어가자 위장이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제자가 애써 준비한 공양이다. 대우선사는 공진을 일으켜 음식을 분자 단위로 분쇄했다.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는 식사와 호흡에서 얻어진다. 소화과정에서 섭취된 유기물을 산소로 태워 당을 만든다. 미토콘드리아가 분자 단위로 당을 흡수해서 ATP와 대사에 필요한 각종 요소를 생성하고 아토포시스를 행한다. 결국 대기 중에서 인체가 필요로 하는 원소를 직접 흡수할 수 있다면 음식 섭취와 소화 작용이라는 과정이 필요 없어진다는 이야기다. 바로 공령지경이다.
다시말해 공령이란 동물과 식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지라고도 할 수 있다. 공령지경에 들어선 대우선사는 천지자연의 기를 받아들이면 된다, 부족한 영양소는 생식으로 족하다. 애써 요리된 음식을 먹을 필요 없이 냉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대우선사는 숟가락을 쉬이 놓지 못했다. 죽 한 술에 스민 제자의 따뜻한 마음을 음미하고 싶었다.
‘아낀다고 품안에서 키울 수야 없지. 오염된 살기를 털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제자를 등 떠밀어 살계를 열었으니 성불하긴 틀렸어. 뭐 그까짓 성불이 대순가. 축생으로 태어나면 축생으로 살아보고, 인간으로 태어나면 다시한번 인간답게 살면 되지. 헐헐헐!’
대우선사는 볼이 터져라 밥을 퍼먹는 제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아(無我)는 제자이기 전에 아들이고 손자다. 일생을 살아온 보람이다. 뿌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무아는 소위 후천적으로 천살성이 된 경우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학대를 받으며 쌓인 분노와 원한, 기연이랄 수도 있는 신체 변화, 백백 교주라는 못된 중생과의 악연 등이 적층되어 살심이 뇌에 새겨졌다.
살기를 해소시킬 배출구가 절실한 시점에 헤밀턴 참사관이 찾아왔다. 인연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좋다. 단명할 상이 아니기에 제자의 엉덩이를 밀어 용병으로 떠나보냈다.
용병이야말로 합법적으로 살인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자리다. 제자는 혼탁한 살기를 배출하고 돌아왔다. 살기에 뇌를 침습당하면? 살기에 자아가 먹힌 존재, 천살성의 출현이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써늘해지는 일이다.
제자가 건강히 돌아왔으니 더 바랄게 없다. 눈동자 속에 깊숙이 자리한 선홍색 흔적을 두고 왈가왈부할 생각도 없다. 선홍색 맑은 혈기는 잔존 살기가 뇌 깊숙이 스며든 흔적이다. 잔존 살기를 흩트리는 방법은 환혼구타술밖에 없다.
‘저놈 몸뚱이에 구타술이 먹히려나?’
심히 의심스러웠다.
“사부님, 제자가 밥 마이 묵는 거 첨 봅니까?”
“이쿠! 놀래라. 깨죽이 맛있구나.”
생각에 잠겨있던 대우선사가 화들짝 놀라 숟가락을 죽그릇에 얼른 푹 담갔다.
“최고로 비싼 안심과 전복을 갈아서 만들었심더. 제자가 돌아오니까 좋지예?”
“요 녀석 봐라. 이젠 대놓고 육식을 시킨다고 나발을 부는구나.”
“헤헤헤, 예전에도 사부님이 아시면서 모른 척하셨잖아요. 막 나가기로 했심더. 오래 건강히 사셔야 합니데이.”
“이놈아, 내 나이가 쌀알 두 개여(米壽, 88세)여. 내일 모레면 아흔이다. 살만치 살았다.”
“철딱서니 없는 제자가 철들 때까지는 사시야지요. 아프리카에서 돈도 왕창 벌었심더. 사부께 맛있는 거 마이 해드릴 테니 실컷 자시고 방뒹굴하다가 돌아가시소.”
“오냐, 내 벼르빡에 똥칠할 때까지 살란다. 사부가 싸지른 똥 몇 번 치우면 얼릉 죽으라고 방자할 걸. 컬컬컬!”
“헹, 똥이 어때서요. 그나저나 공양주는 우야고 이래 지지리 궁상을 떨고 계십니까?”
“시주받은 쌀 알 한 줌 씹으면 일주일은 너끈하다. 곡주와 화식이 생각나면 산을 내려가면 되는데 공양주가 무슨 필요 있더냐. 공양주 보살이 월급을 달라 카더라. 땡중이 무신 돈이 있어 월급을 주겠노.”
“지가 매달 돈은 보내드렸다 아임니꺼.”
“이놈아, 그 돈이 니 돈이지 내 돈이가.”
“아이고, 잘 하셨심더. 그래서 밥도 굶고, 냉골에 주무싰구마요.”
무쌍은 머리를 싸쥐었다. 사부가 엉뚱한 말씀을 하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
“이놈아, 내가 이 나이에 지게 지고 산에 오르리?”
“그 많은 장작은 우야고요?”
“뭘 자꾸 따져 묻노? 이놈이 잘하면 사부를 치겠구먼. 장작은 요 아래 김영감과 박영감이 가져갔다. 그 시주들이 허리가 안 좋거든.”
무쌍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사부다운 행사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사부가 허락했다고 하지만 그 많은 장작을 몽땅 가져가다니 인심이 고약했다. 김영감 박영감은 육순이지만 사부는 구순이다. 더 늙은 사부는 어쩌란 말인가! 문둥이 콧구멍에 마늘 빼 먹을 인간들이다.
“아이고, 자알 하셨심더. 지가 매달 보내 드린 돈은 우야고요?”
“니가 돌아오마 대학교 보낼라꼬 적금 들었다.”
대우선사가 안자를 뒤져서 통장을 꺼냈다. 무쌍이 무심코 받아 펼쳤다. 정기적금통장이다. 송금한 돈이 그대로 적립되어 있다. 한화로 200만원이 넘는 돈이다. 무쌍은 기함을 했다.
“사부님, 한 푼도 안 쓰고, 이기 멈니꺼?”
“이놈아, 귀청 떨어지겠다. 뭐긴 뭐야 돈이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고등학교 중퇴로 끝낼 거여? 절간을 팔아서 대학을 보낼까 하던 중에 니놈이 불란서로 간 거여. 이만하면 절간은 안 팔아도 되겠지. 재산 굳었다. 헐헐헐!”
대우선사가 입술에 묻은 죽을 혀로 핥으며 헐헐거렸다.
“사부님!”
무쌍은 목이 메어 뒷말을 잇지 못했다. 스승은 저장이나 저축이란 걸 몰랐다. 시주 받은 음식은 거지에게 주고, 곡식과 돈은 필요한 사람에게 그냥 줘 버린다. 탁발해온 음식도 산짐승에게 뿌리는 스승이다. 당장 당신의 끼니가 없어도, 쌀 한 톨 없어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사부다.
그런 스승이 제자를 대학교 보내겠다고 적금을 부었다. 천지가 개벽할 노릇이다. 외물에 마음을 두지 않는 사부의 유일한 집착이 바로 나였던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갑자기 탐욕스런 백부와 이악스런 장씨가 스쳐갔다. 조카를 강제로 끌고가서 노예로 부린 인간들, 월송산 뼈다귀를 만나지 못했으면 혹사와 구타를 이기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아버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순간에도 아들과 아내를 걱정하며 눈을 감지 못하던 아버지, 아버지의 검은 얼굴이 깡마른 사부의 얼굴에 겹쳤다.
“무아야, 운명은 노력하는 만큼 개척되느니라. 많은 것을 보고 배우 거라.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보는 만큼 행 할 수 있느니라. 공부를 계속하거라.”
“사부님 말씀에 따르겠심더.”
샤트르와 함께 지내면서 지식의 빈곤을 절실히 느꼈다. 스승의 바람이 자신의 바램이다.
“그런데 말임다. 사부님의 경지가 공령이 맞지요?”
“이놈아, 그게 무에 중요하냐? 두부를 만드는 중에 얻은 콩비지에 다름 아니다.”
“헐!”
지고한 공령지경이 콩비지라, 역시 사부님답다. 공령지경은 천지자연과 소통하는 단계다. 좌도방에서도 접신이나 차력을 통해 일시적으로 이매망량과 소통하지만 공령과는 격이 다른 잡술일 뿐이다. 공령은 오로지 정신수련과 자아성찰을 통해서 닿을 수 있는 지고의 경지다.
세속의 인연과 오욕칠정을 끊어야 등선과 해탈을 얻는다는 이야기는 그냥 매설일 뿐이다. 인간이 나무토막이나 바위덩어리가 되어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공령은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공령에 이르면 신통력을 절로 얻지만 그야말로 부산물일 뿐이라는 말씀이다.
“늙은 스승이야 말 할 거리도 아니고 니놈이 많이 변했구나. 이야기를 풀어 놓거라.”
“사부님, 간간이 보이던 천지의 영이 더 이상 보이지 않심더.”
대우선사가 무릎을 탁 쳤다.
“오호, 잘 되었다. 좌도방문의 이능은 수도자가 용맹 정진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신통과는 다르느니라. 너는 강한 육신에 정신이 종속되어 이 능력을 얻었느니라. 네 정신력이 이능을 감당하지 못하면 정신분열을 일으키거나 희대의 살인마가 될 위험이 상존해 있었다.”
“야. 제자가 이미 수차례 경험했던 일입니다. 분노하거나 격동하면 머릿속에서 북소리가 울리며 눈앞이 핏빛으로 변합니다. 일시적으로 제 자아를 잃어버립니다.”
“네가 화자라는 여아를 생매장시키려고 할 때도 그러했느니라. 고대 제왕들의 이해 할 수 없는 살육과 광기가 무엇이더냐? 피로 전승되는 이 능력이 나약한 정신을 삼킨 결과다.”
무쌍은 숟가락을 놓고 사부의 가르침을 경청했다. 피로 전승된다는 사부의 말씀은 특이 유전자의 대물림이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다.
“제자도 그와 같습니까?”
“아니다. 네 경우는 이 능력이 육체에 체화되었다. 내가 정심법으로 봉인한 탓에 광기가 무의식 깊숙이 가라앉았다. 이는 저급한 령에 빙의된 무속인 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우다. 근자에 네 감각이 특별해 지지 않았느냐?”
역시 스승이다. 눈으로 본 듯이 자신의 변화를 짚어냈다. 평범함 속에서 진리를 관통하는 비범한 스승이다.
“야, 날붙이는 물론이고, 총기에 조준을 당하면 그 부분이 눌리는 감각이 느껴집니다. 상대방의 다음 동작이 훤히 보이기도 하구요.”
“체화된 이능이 초상감각으로 전이된 현상이다. 이는 네놈이 정신 수련을 등한시하고 육체 수련만 한 탓이다. 정신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면 신통을 얻었을 게다. 쯧쯧,”
대우선사가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순리가 아닌 역리로 얻은 능력은 그 또한 업으로 쌓인다.
“에이, 너무 나무래지 마시소. 군복 입은 놈이 한가히 정신 수련을 할 틈이 오데 있십니꺼. 쎄가 빠지게 몸띠나 강화시켜야지요.”“그도 그렇다. 어쨌든 얻어맞고 다니지는 않겠구나. 헐헐 선재로다.”
“정법사 사조님의 무예를 이어받은 놈이 얻어맞고 다니면 조사님이 무덤에서 뛰쳐 나올낍니더.”
“허허허, 천하에 너를 팰 놈이 어디 있다고 그러느냐. 객쩍은 소리 말아라.”
대우선사는 흑임자죽을 깨끗이 비우고 발우에 물을 부었다.
‘엉! 세탁기냐?’
무쌍의 눈이 커졌다. 발우속의 물이 빙빙 돌았다. 대우선사가 그릇을 부신 물을 후루룩 마셨다. 발우가 혀로 핥은 듯 깨끗했다.
자신도 공진을 운용할 수 있지만 사부처럼 정밀하게 통제하지 못한다. 예전에는 사부가 능력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 능력을 보이심은 제자의 수준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경운기를 모는 농부가 비행기를 손 댈 수는 없는 법이다.
“대단하십니다.”
“별거 아니다. 목탁을 열심히 두드리다 얻어진 잔재주일 뿐이다. 이 년 만에 제자의 공양을 받으니 속이 든든하구나.”
“사부님과 함께하는 공양은 된장찌개만 올려도 만찬이다 아입니꺼. 비싼 불란서 정찬보다 훨씬 맛있심더.”
“에끼놈, 객쩍은 소리 말거라. 쉰내 나는 늙은이와 먹는 밥상이 무예 그리 맛이 있겠느냐. 반찬이라곤 김치 한조각과 소채 두 가지 뿐이거늘.”
“헤헤, 공양은 입이 아니라 마음으로 먹는다고 사부님이 말씀하셨지 않심니꺼.”
무쌍이 한 조각남은 김치로 발우를 싹싹 닦았다. 김치를 날름 입에 넣고 개다리소반을 들고 나갔다. 설거지 같지도 않은 설거지를 후딱 해치운 무쌍이 아궁이 불을 살피고 방으로 들어섰다.
텅텅텅-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 한 번씩 껌벅이는 전등불, 밤에만 우는 쏙독새의 쓸쓸한 울음소리, 뎅그렁 풍경을 울리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간만에 불길을 받아 뜨뜻한 아랫목, 늙은 스승과 제자가 포단을 펴고 앉았다.
“아무리 지가 군인이지만 사람을 너무 많이 직있심더. 사헬이라 카는 황량한 지역에서……”
“어허, 저런!”
“그래가꼬 모래 속에 목만 내놓고 숨었는데 파리란 놈이 구멍이란 구멍은 다 파고 들어가고……”
“허허, 그럴 수가! 나무아미타불”
삭정이처럼 마른 노승과 깍짓동 같은 행자승이 든 방은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간간히 나직한 염불 소리와 탄식, 낮은 웃음이 문밖으로 삐져나왔다.
희붐한 안개가 흐르는 여명, 무쌍은 한차례 오금36로세 시연으로 몸을 풀고 계곡에 뛰어 들었다. 외기 변화가 신체에 영향을 별로 미치지 못할 뿐, 느끼는 감각은 일반인보다 훨씬 예민하다. 경칩이 지난 지 오래지만 계곡물은 살갗을 뜯어낼 듯이 차가웠다.
차고 맑은 물이다. 지옥에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사헬의 뜨거운 태양아래서 이 계곡물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물도, 공기도 신토불이가 좋은 것이여. 신토불이, 신토불이~”
무쌍은 목만 물밖에 내놓고 서늘한 수기를 즐겼다.
“헛!” 푸악- 갑자기 무쌍이 바닥을 걷어차고 벼락같이 위치를 옮겼다. 무쌍이 빠져나간 자리에 펑하고 바위가 틀어박혔다. 무려 가마솥 크기의 바위다. 소(沼)바닥이 보일만큼 역도가 실렸다.
“이기 무신 날벼락이고!”
놀란 무쌍이 두리번거릴 때, 쑤와와-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한 파공성이 울렸다. 무쌍의 눈이 잔뜩 커졌다. 자갈 무더기가 사헬의 메뚜기 떼처럼 하늘을 뒤덮었다.
“으갸갸갸!”
놀란 무쌍이 다시 한 번 계곡 바닥을 차고 청파보를 극성으로 시전했다. 첨벙 첨벙- 자갈 대부분이 계곡물에 떨어졌지만 일부가 방향을 바꾸어 뒤를 쫓았다.
“억, 추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