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93
x 193
제24장 네오싸이코패스2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나물을 무쳤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귀향을 반겼다. 한국인이 한국인임을 느끼게 하는 정서는 무엇일까? 무쌍은 참기름이라고 단언했다. 참기름이 들어가지 않는 한식 요리는 많지 않다.
프랑스 요리는 자신이 아는 한 참기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올리브유가 그 자리를 대신 한달까. 참기름은 후각과 미각을 만족시키는 향신료다. 올리브유와 정향을 합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참기름 냄새에 회가 동한 듯 새끼 너구리가 킥킥거렸다. 무쌍이 돌아보자 빤히 쳐다보던 어미 너구리가 얼른 외면했다.
“배고푸제?”
뻔뻔한 너구리 년은 더 이상 뻔뻔하지 못했다. 새끼를 품은 채 눈치만 보았다.
“옜다. 이년아, 사부님이 인정했으니 나도 쫓아 내지 않으마. 새끼를 잘 키아라.”
시장에서 사 온 쇠고기 한 토막을 잘라 던져 주었다. 새끼 너구리가 고기 덩이에 접근하자 어미가 앞발로 뒤통수를 때렸다.
“그년 참 까칠하구마.”
모르는 사람이 주는 먹거리를 못 먹게 아이를 단속하는 애 엄마에 다름 아니다. 무쌍은 자연동화술을 시전했다. 자연동화술은 장시간 시전이 불가능하다.
사부처럼 공령에 들지 않는 한 인간이 인위적으로 자연체가 되기는 불가능이다. 사부의 박한 평가에 의하면 자연동화술은 흉내나 내는 좌도방문의 하급 술법에 불과하다.
“안 먹히네.”
자연동화술까지 펼치는 수고에 불구하고 너구리 년은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고기가 먹고 싶어 쩔쩔매는 새끼 두 마리를 탁탁 때려가며 인간의 눈치만 살폈다.
“헐!”
무쌍은 그제야 자신의 몸이 핏물로 젖어있음을 알았다. 기가 막히다 못해 슬퍼졌다.
‘피 비린내에 이토록 익숙해졌나!’
피에 절어있는 상태를 일상으로 여기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날마다 피를 덮어쓰다보니 땀 흘린 정도로 익숙해져 버렸다.
그럼, 사부님은?
피냄새를 풀풀 풍기며 법당에 들어가는 제자를 보기만 하셨단 말인가? 하긴 불상을 패서 군불을 때는 무신경한 분이니 피칠갑에 신경 쓸 분도 아니다. 제자나 스승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무쌍은 놀란 고라니처럼 펄쩍 공양간을 뛰쳐나갔다. 작은 방에서 행자복을 한 벌 꺼내들고는 계곡으로 달렸다.
공양 준비를 마칠 무렵 사부가 불렀다.
“무아야!”
“예, 갑니다.”
스승이 법명을 부를 때는 진중해야 했다. 법명을 부를 때는 가르침을 내릴 때다. 이놈 저놈 할 때가 편하다. 무쌍은 큰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윗목에 들어선 티브이에서 아나운서가 독립선언서를 읽듯이 뉴스를 진행 중이다. 오만한 표정의 대통령이 배경 화면으로 떠 있다. 남은 주변머리를 짧게 치고, 잔뜩 기합이 들어있다. 노려보는 갈고리 눈, 꾹 다문 입매, 포스가 철철 넘쳤다.
[……언론 기관의 자율적인 정화 활동을 통해 난립된 부실 언론 기업과 비위의 온상이 된 매체가 정리되는 큰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대통령 각하의 결단에 의해 건전 언론풍토가 형성되면서……]그 다음에는 새마을 사업에 따른 주택 개량 사업, 삼청교육대 운영을 통해 사회가 정화되었다는 해설이 뒤따랐다.
“저노무 새끼!”
무쌍의 눈에서 혈광이 번득였다. 자율 폐간이니 통폐합이니 모두 개소리다. 정치권력이 비판적인 입을 틀어막으려고 언론을 폭력적으로 통제한 사건을 치적이라고 떠들고 있다. 1980년에 전격적으로 끝난 사건을 재삼 꺼내서 찬양함은 최고 권력자에 대한 언론의 아부다.
멀쩡한 기와지붕을 벗겨서 양철판을 덮고, 돌담을 헐어내고 시멘트 블록을 쌓은 게 주택개량사업이다. 그 와중에 농민들은 경제적 고통은 물론 우풍에 시달려야 했다. 사업 시행을 통해 저질러진 비리도 한이 없다.
삼청교육대는 어떤가?
곤봉과 소총 개머리판으로 난타당한 더러운 기억이 떠올라 버렸다. 언론 통제로 눈과 귀가 가려진 국민은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해외에서 국내 실상을 더 잘 안다. 총구앞에 숨도 못쉬는 차드 국민들이 생각났다.
‘저 쉐이, 슬쩍 목을 따 버려!’
살인 욕구가 불쑥 머리를 들었다.
탕- “아서라.”
사부가 죽비로 안자를 탁 내리쳤다. 무쌍은 급히 마음을 추슬렀다.
“무아야, 이곳은 사헬이 아니니라. 행여나 사건을 칠 요량이면 당장 떠나거라.”
“헤헤, 제자가 그럴 리야 있나요. 저 인간 쌍판이 보기 싫어서요.”
“어허, 그래도! 나름의 역할이 있는 인간이니라. 아니할 말로 네가 저 인간의 멱을 따 버리면 얼마나 큰 혼란이 오겠느냐. 강압적이지만 혼란은 통제하고 있지 않느냐. 세상이 혼란해지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힘없는 민초의 몫이니라.”
“야, 자중하겠심더.”
사부가 타심통을 얻었다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공기를 뭉쳐서 폭탄으로 만드는 사부가 무엇을 못하겠는가. 무쌍은 반박할 말이 하중도 모래알만큼 많았지만 꿀꺽 삼켰다.
사부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아서다. 하긴 차드의 끔찍한 실상에 비하면 한국은 살만한 나라다. 그래서 옴부티와 에델을 보내서 상처 난 양심에 처바를 연민이라는 연고를 준비 중이다.
“공양 준비는 다 되었느냐?”
“예, 조식이라 간단히 준비해 두었심더.”
“이놈아, 그 간단히가 나는 엄청 무섭다. 참기름 냄새가 등천을 하는구나.”
“헤헤, 소채 몇 가지만 준비했심더.”
“만능인 제자 놈이 있으니 좋긴 좋구나. 나도 저 인간은 지겨워. 땡초가 중생을 미워하니 성불은 틀렸어. 헐헐헐!”
대우선사가 티브이를 끄면서 헐헐거렸다.
“무아야, 오늘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명심 봉행하겠심더.”
“이놈아, 제발 문자 쫌 쓰지 말거라. 어린놈이 징그럽게 시리. 거울을 들여다 보거라.”
사부가 소름을 터는 시늉을 하며 작은 거울을 내밀었다.
“무엇이 보이느냐?”
“억수로 잘생긴 놈이 씩 웃고 있는데요.”
“흠, 그만하면 인물이야 나쁘지 않지. 촐싹거려 문제지. 눈을 보거라 눈동자 깊숙이 어린 맑은 혈기가 보이느냐?”
무쌍은 흠칫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차드 작전을 마치고 후송된 병원에서 알았다. 눈동자 안쪽에서 이글거리는 혈기가 보였다.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뇌로 본 것이다.
“알고 있심더. 살인의 업이겠지 예.”
“아미타불! 사바세계는 그 나름의 법칙과 흐름이 있다. 전쟁도 사바세계를 유지하는 한 축이다. 땡중인 내가 목탁 두드리듯이 용병 신분인 너는 방아쇠를 당겨야겠지. 고리타분하게 불살계를 설할 생각은 없느니라.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악을 악으로 눌렀으니 선악을 따질 수야 없겠지. 인간의 선악은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일고의 가치도 없느니라.”
“영혼의 무게가 걱정되십니까?”
“험, 살인은 새로운 업을 쌓는 법이다. 카르마는 윤회의 틀 속에 무게를 더 하느니라. 카르마가 무거워지면 혼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무거운 혼은 벌레가 되고 축생이 되느니라. 부처는 한없이 가벼워진 혼이 이를 수 있는 자리니라. 오늘부터 심신을 정갈히 하고 죽은 자를 위해 발원하거라. 카르마에 눌린 혼백을 씻어 내거라. 피에 찌든 네 영혼을 씻어내거라.”
“제자는 사부님의 말씀을 기꺼이 따르겠심더,”
“보아라. 저 뻔뻔한 년도 네가 풍기는 피냄새에 떨고 있지 않느냐. 네가 존재감을 지워도 새끼를 기르는 년이라 살기에 반응하고 있다. 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백이 살기에 찌들어 혼탁해졌느니라. 혼탁한 백을 방치하면 혼을 침습해서 카르마의 무게가 늘어난다. 한 달간 정심으로 천수경을 독송하고, 영가 발원으로 죽은 혼백을 위로하거라.”
“예, 명심봉행하겠심더.”
무쌍은 스승의 말씀을 백번 수긍했다. 자신의 손에 죽은 사람이 몇이던가. 사부님을 만난 뒤로는 오케오필라 스마라그디나들의 엄청난 선물이 씁쓸하기만 했다.
사람 백정이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는가!
시모 훼이훼는 자신의 조국을 지키고자 소련군을 죽였지만 자신은 돈을 받은 대가로 수많은 인간을 죽였다. 죽은 자들은 자신과 아무런 접점이 없는 인간들이다.
일개인이 천명 단위의 제노사이드를 행한 적이 있던가? 사부의 말씀대로 천살성의 현신이다.
개인의 경험과 행동은 백에 집결된다. 백이 피에 젖었다. 자신도 진한 피비린내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예불을 마치고 공양간으로 들어갔다. 너구리 가족이 사라졌다. 만만한 늙은 인간 덕분에 편히 지내다 무서운 놈이 나타나자 피신한 모양이다. 은근히 왕따 당한 기분이 들었다.
행자승으로 돌아온 무쌍의 하루는 단조로웠다. 새벽 4시면 일어나서 오금36로세와 오금연단법을 수련한다. 수련이 끝나면 계곡에 뛰어들어 땀을 씻어내고 명상에 들어간다. 6시에 아침 예불을 드리고, 영가발원 독송을 한다. 아침 공양후에 두 시간 오금공 수련을 한다. 수련이 끝나면 약초와 산나물을 채취했다. 점심 공양 후에는 입시 공부를 한다. 다행히 대입 검정고시는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마쳤다. 오후 6시에 저녁 공양을 하고, 7시에 저녁 예불을 드린다. 저녁 예불이 끝나면 두 시간 동안 영가 발원 예불을 올린다. 법당에서 나오면 자정까지 공부하고 잠자리에 든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가로운 일상이다.
무쌍은 본고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예비고사는 학력고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골치 아프네.’
학력고사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간다니, 본고사 위주로 공부하던 그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대통령이 교육부에 압력을 행사해서 본고사를 없앴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대통령 아들이 본고사를 볼 수 없는 돌대가리라고 했다. 무쌍은 실소했다. 낭설이지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무지막지한 인간이다.
그는 학원 교재를 두 종류 구입하는 것으로 대입 준비를 마쳤다. 수험 준비는 교재를 이것저것 보는 것보다 한 가지 교재를 여러 번 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본래 공부 못하는 놈이 참고서가 많은 법이다.
어머니를 당장 찾겠다고 나서지도 못했다. 사부가 시키는 일은 항상 이유가 있다. 벌써 14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한 달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사부가 말했다. 어머니는 살아계신다고.
사부의 말씀은 당연히 믿는다. 아니 당연히 살아계셔야 한다. 피에 찌든 몸으로 어머니를 찾아 나서기도 상그러웠다.
차드 오리앙탈주 도바, 사행천인 펜데강이 만든 기름진 평야를 끼고 있는 목화 주산지다. 가젤은 선우현을 펜데강이 만든 우각 호변에 내려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항했다.
“휘유!”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눈앞에 펼쳐진 장대한 흰 물결, 목화밭이다. 폭설이 내린 듯 어디를 봐도 흰색이다. 지평선까지 흰색으로 덮였다. 나무도 다르다. 목화는 줄기가 억세지만 한해살이 식물이다. 이건 숫제 나무다. 키가 2미터에 가깝다.
고향인 개성에도 목화밭이 많다. 주로 산을 개간한 다락 밭에 목화를 심는다. 기껏해야 30평이고 100평이 넘지 못하는 작은 밭이 7부 능선까지 올라간다. 8월이면 온 산이 하얀색으로 변하곤 했다.
선우현은 팔목 굵기인 목화나무를 쓰다듬으며 감회에 젖었다. 선우현이 본 목화는 인도면이다. 여러해살이풀로 섬유가 짧고 거칠지만 매우 질기다. 북한에서는 아시아면, 한국에서는 육지면을 주로 재배한다. 모두 한해살이 종류다.
장대한 풍경에 감탄도 잠깐이다. 와킬이 맡긴 일을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할지 난감했다. 와킬은 잘 처리하라고만 했다. 잘이라니, 도대체 ‘잘’이란 말의 개념을 잡기 힘들었다. 와킬의 명령을 보란 듯이 잘 해 치우고 싶은데 그놈의 잘이 문제다.
“옴부티를 붙여주면 좋지 않았슴둥. 싹 죽여 버려?”
그건 아니다. 와킬의 방식이 아니다. 협상? 그것도 아니다. 홀로 보낸 와킬의 내심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아하!”
끙끙대던 선우현이 엉터리 도사 귀신 든 소리를 냈다.
‘이거이 믿고 있으니끼니 내 방식대로 처리하라는 거이 아니겠슴둥!’
에델을 옴부티와 묶어 보낸 이유도 알만했다. 필요할 때는 피를 보라는 소리다. 선우현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일일이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수동적인 삶이었음을 깨달았다.
“젊은 나이에 이처럼 생각이 깊다니 과연 와킬임메. 내래 선우현이 감탄했슴메. 에델양의 일이니 잘 처리하겠슴둥.”
블랙맘마가 귀찮아서 던진 한 마디에 선우현은 감탄하고 감격했다. 우상은 일단 만들어지면 절로 색깔이 입혀지고 몸집을 불려가는 법이다.
“슬슬 움직여 볼까. 주 장관도 한 통속이랬지. 그거야 와킬이 와서 꾹 눌러주면 될거임둥.”
마침 자그마한 계집 아이가 우각호로 다가왔다. 카키색 반바지에 헐렁한 셔츠를 입었다. 발은 맨발이다. 양손에 자신의 몸집에 필적할 물통 두 개를 들었다.
“봉주흐 엉성떼!”
소녀가 멈칫거렸다. 낯선 남자의 등장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뿌베-부 메데, 씰 부 쁠레?(나 좀 도와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