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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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장 네오싸이코패스3
부드럽고 친근한 어조다. 선우현 본인도 자신의 성대를 통해 나온 소린지 의심스러웠다. 쭈뼛거리던 계집아이가 불어로 대답했다.
“위, 쀠-즈 부 제데?(네, 무슨 일이세요?)”
“오, 예!”
선우현은 쾌재를 불렀다. 부니 햇을 깊숙이 눌러쓴 보람이 있다. 뚜빌리스(악귀)로 불린 얼굴이다. 북한에서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에서도 얼굴만 내밀면 여자들이 자지러졌다. 루드리 에델만이 곰보에 칼자국이 종횡으로 난 얼굴을 예사로이 대했다. 선우현이 에델빠가 된 이유다.
“제 윈 께스띠옹 아 부 뽀제.(물어 볼게 있는데.) 우 솔레 사마리아 펨?(사마리아 농장이 어디 있지?)”
“보터 네!(당신 코앞!)”
“메흐씨, 메흐씨!”
행운은 계속되었다. 흑인 소녀가 바로 사마리아 농장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였다. 적당한 놈을 납치해서 정보를 얻는 수고를 덜었다. 밤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농장에 우물이 없니?”
계집아이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벌 받는 중이예요.”
“누구야? 이렇게 예쁜 너를 벌주는 놈이?”
계집아이의 입이 헤 벌어졌다. 여자는 남자보다 공감의 감정 이입이 백배는 빠르다. 공감이야말로 여자의 마음을 얻는 첩경이다.
“주인 나리요. 에델 남작님의 이야기를 하다가 들켰거든요.”
“으잉, 그게 어때서?”
“주인 나리는 남작님 이야기를 못하게 해요. 들키면 남자는 몽둥이로 맞아요. 여자는 하루 종일 물을 길어야 해요.”
“어허, 저런 나쁜 놈을 봤나?”
선우현이 격하게 편을 들어주자 계집아이의 얼굴이 활짝 풀렸다.
“이름이 뭐니?”
“아크라!”
“오, 아크라! 얼굴만큼이나 이름도 예쁘구나. 농장에서 일하는 남자가 몇이나 있니?”
뚜빌리스 선우현은 최선을 다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에델로부터 ‘여자를 상대하는 법 30가지’ 특강을 받았다. 첫 번째 가르침이 맞장구와 예쁘다는 찬양이다. 씹다 뱉은 만두도 기꺼이 예쁘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많아요. 아주 많아요.”
선우현은 요령부득의 대답에 기운이 쑥 빠졌다. 총을 가진 아저씨가 몇 명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차드 문맹률은 97%다. 국민들 모두가 문맹이라고 보면 된다. 숫자를 셀 줄 모르는 아이들도 많다.
‘직접 확인해봐야 겠슴둥.’
선우현은 물통을 대신 들고 아크라의 뒤를 따랐다. 삐딱하게 누운 어설픈 철조망 문이 앞을 막았다. 출입 통제용 프로텍터 바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있고, 경비원은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출입문을 통과해서 계속 걸었다. 좌우엔 탐스러운 목화 양탄자가 펼쳐졌다. 선우현은 긴장감 없이 풍경을 구경하며 느긋하니 걸었다.
10분쯤 지나서야 흰 대리석 건물이 나타났다. 로마네스크 풍으로 지은 아담한 2층 건물이다. 저택 외곽을 키 낮은 아카시아 나무 울타리가 둘러싸고 있다.
선우현의 매 눈이 잽싸게 사방을 훑었다. 저택 입구에 초소가 있다. 리엔필드 소총을 멘 놈 둘이 보초를 서고 있다. 리엔필드는 1930년대 영국 조병창에서 대량 생산된 소총이다. 구식이지만 위력은 현대 돌격소총보다 더 좋은 놈이다.
저택 우측에 경비 망루가 있다. 에델이 농장 넓이를 900만평이라고 했다. 차드의 치안 상태를 고려하면 경비대가 따로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선우현의 머리가 분주히 돌아갔다. 900만평이면 정사각형 한 변 길이가 5.5km다. 그야말로 억이 막힐 노릇이다. 군사 시설이라면 경비 망루가 최소 100개는 있어야 한다.
저택의 방은 대략 20개, 저택 왼쪽 차고지에 지프가 주차되어있다. 에델의 삼촌이란 개차반이 저택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저택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벽돌과 목재로 지은 바라크형 건물이 보였다. 인부 숙소로 짐작되었다. 침상 형이면 대략 80명이 기거할 규모다. 농장 규모로 볼 때 인부 숙소가 산재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너 뭐야?”
선우현이 한창 전장 분석을 할 때 꺼끌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소총을 거꾸로 멘 흑인 청년이다. 녀석이 건들건들 다가왔다. 술 냄새가 훅 끼쳤다. 보초가 선우현의 어깨를 탁 쳤다. 녀석의 행동을 예측했지만 멍청한 척 어깨를 내 주었다.
“아이고!”
선우현이 과장되게 비틀거리며 물통을 엎었다. 와중에도 눈알은 쉴 새 없이 사방을 관찰했다.
“따갈리 나빠! 저 아저씨가 물통을 들어주었단 말이야.”
계집아이가 청년에게 항의했다.
“저리 꺼져. 낯선 놈을 데려오면 안 돼.”
흑인 청년이 소녀를 휙 밀쳤다. 소녀가 흙바닥에 넘어졌다.
“너, 집사님에게 이를 거야.”
“흥, 그러던가.”
‘실세는 역시 총 든 놈들이구먼. 저 쉐이 목을 잘라 버릴까? 와킬이라면 바로 박살을 냈을 텐데.’
덩치 좋은 흑인 청년은 자신의 목숨이 절벽 끝에 걸려 있음을 알지 못했다. 턱을 치켜들고 잔뜩 위세를 부렸다.
“이봐, 당장 꺼져. 골통에 구멍을 뚫어줄까.”
철컥- 따갈리라는 흑인 청년이 노리쇠를 후퇴 전진시켰다.
“49호 종간나새끼, 잠시서껀 목을 붙여 두라우.”
선우현이 북한말로 투덜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와킬이 전투력을 상승시켜 주기 전이라도 허접한 경비대쯤이야 깜도 아니다. 더욱이 근무 중에 술까지 처먹을 정도로 기율이 엉망인 놈들이다.
종려나무 아래 번데기 같은 물체 속에서 팔이 쑥 나왔다. 찌이익 지퍼가 내려갔다. 번데기에서 성충이 빠져 나오듯 선우현이 침낭에서 꾸물거리며 기어나왔다.
그는 우화한 곤충처럼 머리를 부르르 털고 수통 물을 받아 눈을 씻었다. 수많은 별들이 하늘을 빼곡히 채웠다. 희뿌연 은하수가 천중을 가로지르고, 서쪽 하늘에 반으로 쪼갠 가락지가 걸려있다.
“피를 보기엔 더럽게 아름다운 밤이구먼!”
선우현은 침낭을 정리하고 백팩에서 분해 수납된 파무스를 꺼냈다.
“이거이 아임둥, 개간나 거지새끼들에게 파무스는 오버 스펙이지. 간만에 피 맛을 봐야겠슴둥.”
총열과 개머리판을 조립하던 선우현의 생각이 바뀌었다. 파무스를 백팩에 수납하고, 스페츠나쯔 대검을 왼팔 상박에 채웠다. 종아리와 허리에 고박된 글록을 확인하고, 탄창 4개를 잡낭에 수납했다. 상의 포켓에 든 피아노 강선과 표창 20개도 확인했다. 혼자 중얼거리는 버릇마저 블랙맘바를 닮아갔다.
“쇼타임임메. 닉 웨인라이트 에델이라고 했슴둥. 형을 죽인 쌍판 함 보자우.”
다다다다- 선우현은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한 걸음 보폭이 무려 2미터에 가까웠다. 그는 달라진 신체에 잔뜩 고무되었다. 촌각에 사마리아 농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니지. 와킬은 항상 정면에서 깨부수었어.’
울타리를 뛰어넘으려던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저택 정문으로 향했다. 블랙맘바 트라우마가 골수에 스며든 선우현이다.
경비원은 둘이다. 한 놈은 초소 안에 잠들어 있고, 한 놈은 초소바깥에 잠들어 있다.
뿌득- 초소 벽에 기대어 잠들어 있던 경비원의 목이 한 바퀴 휙 돌아갔다. 기괴한 모습이 된 경비원을 팽개치고 초소로 들어갔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든 경비원의 머리칼을 잡아당겨 고권으로 울대를 후렸다.
“큽!” 난데없는 봉변을 당한 경비원의 눈이 터질 듯이 붉어졌다.
“소리 내면 바로 죽인다.”
경비원이 방아깨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뻑- 선우현이 손바닥으로 뒷목을 내리쳤다. 기도가 열린 경비원이 가쁜 숨을 들이켰다. 얼굴을 확인한 선우현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이거, 따갈리라는 49호 종간나새끼 아임메! 잘 걸렸슴둥. 저거 보여?”
선우현이 목이 반대로 돌아간 경비원을 가리켰다. 길게 빠져 나온 혀가 흐릿한 외등 불빛에 녹색으로 빛났다.
“으어어!”
경비원은 딱할 정도로 와들와들 떨었다. 선우현은 투기가 푹 가라앉았다. 총을 들었을 뿐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그냥 농투산이다.
“무장 병력이 몇이냐?”
“스물 셋입니다.”
“어디 있나?”
“인부 숙소 뒤쪽에 경비 숙소가 있습니다.”
“인부는 몇이냐?”
“농장 내에 거주하는 인부는 120명입니다. 수확 철이라 외부에서 사오백 명이 들어옵니다.”
“농장주는 저택에 있나?”
“예? 예, 2층 오른쪽에서 세 번째 방입니다.”
겁에 질린 경비원은 묻지도 않은 정보까지 불었다.
‘뭐가 이렇게 쉬워?’
선우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주특기인 손가락을 꺾을 필요도 없다.
빠각-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다. 선우현은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타앙- 초소 유리창이 박살났다. 선우현의 볼을 스친 총탄이 초소 벽에 퍽 박혔다. 경비원의 얼굴이 풀리는 순간 검은 선이 번쩍했다.
푸악- 초소를 이탈한 선우현이 배수로로 굴러들어갔다. 대검에 목젖이 잘린 따갈리가 털썩 무너졌다. 탕 탕- 울타리 쪽으로 치달리는 선우현의 뒤를 총탄이 뒤쫓았다.
“내미럴, 어쩐지 너무 쉬웠슴메. 내래 황새를 따라가기엔 멀었슴메.”
선우현은 블랙맘바처럼 행동한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간단히 끝낼 일을 크게 만들었다.
“와아, 침입자다.”
“잡아라!”
탕 탕 탕-
막사에서 경비원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총탄이 무더기로 날아들었다. 다행이라면 경비원들의 사격술이 형편없었다.
선우현은 배수로를 건너뛰어 목화밭으로 스며들었다. 소란은 점점 커졌다. 저택을 둘러싼 아크등에 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무시기 모양 사납게 되었지만 이거이 내 전문임둥. 오랜만에 피 맛을 진하게 보자우.”
선우현이 비시시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뭐야?”
총성에 놀란 닉 웨인라이트 에델이 벌떡 일어났다. 그 서슬에 끼고 자던 여자가 침대 아래로 쿵 떨어졌다.
“주인님, 용서해 주세요.”
겨우 십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겨우 젖가슴이 부풀기 시작한 소녀가 벌거벗은 채 무릎을 꿇었다.
“비켜!”
닉은 소녀를 걷어차고 옷을 걸쳤다. 황급히 인터폰을 들고 초소와 연결된 0번을 눌렀다. 발신음만 계속 울렸다. 경비대 숙소와 연결된 1번을 눌렀다.
철컥-
“은두마입니다.”
“총성은 뭐야?”
“침입자입니다. 경비원들이 뒤를 쫓고 있습니다.”
“몇이나 침입했나?”
“걱정 마십시오. 한 명입니다.”
“한 명?”
닉은 안도의 한 숨을 내 쉬었다. 프롤리나트가 북쪽으로 물러났지만 도바의 치안도 개판이다. 굶주린 주민들이 툭하면 폭도로 돌변한다. 자신의 농장에도 주민들이 몰려와 식량을 애걸하고, 도둑이 몇 차례 들기도 했다. 그는 자경대와 별도로 무장 경비원을 고용했다.
“도둑이냐?”
“걱정 마십쇼. 쥐새끼에 불과합니다.”
“좋아, 코퉁 라(coton rat, 목화쥐, 피지 않은 목화 봉오리를 파먹는다.)를 살려둘 필요는 없지. 자경대도 동원해서 사살하고 보고해.”
닉은 수화기를 꽝 내려놓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망할 놈의 아프리카!”
법도 규칙도 없는 야만의 땅, 더럽고 냄새나는 인간들, 들끓는 파리와 모기, 집안에 기어들어오는 온갖 벌레와 곤충, 그는 지긋지긋했다.
농장을 팔아버리고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불안한 정정으로 인해 팔리지 않았다. 몬산토에 지분 50%를 넘기는 협상도 진행 중이다.
“쥐새끼는 잡아 죽이면 그만이지.”
혼란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플랜테이션 농장주는 왕이다. 노동자를 맘대로 부릴 수 있고, 죽여도 그만이다. 닉은 다시 침대로 들어갔다. 흑인 소녀가 눈치를 보며 품으로 파고들었다. 닉은 쥐새끼가 아니라 사나운 늑대가 뛰어들었음을 꿈에도 몰랐다.
“무캄파, 쥐새끼가 목화밭에 숨었다. 자경단 집합시키고, 저택 옥상에 두 놈 올려 보내서 서치라이트 켜라. 지금부터 쥐잡기에 들어간다.”
은두마가 기세 좋게 소리쳤다. 소총을 든 경비원 23명에 더하여 자경단 30명이 벌목도와 도끼, 창으로 무장하고 목화밭으로 돌격했다. 저택 옥상에 설치된 강력한 서치라이트 두 대가 목화밭을 뒤졌다.
“흙이 좋군!”
선우현은 목화밭 고랑에 드러누워 검은 사질 부엽토가 주는 푹신함을 찬양했다. 공화국의 토지는 연작으로 지력이 떨어진데다 비료마저 부족했다.
이 넓은 땅에 벼를 심으면 소출이 얼마나 나올까? 선우현은 열심히 암산했다. 300평당 350kg을 생산할 수 있다. 900만평이면 무려 일만 톤이 생산된다.
공화국의 식량 사정은 차츰 어려워지고 있다. 이 땅은 목화가 아니라 모내기를 해야 할 땅이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선우현은 실소가 나왔다. 자신은 남조선 반동을 주인으로 모신 프랑스인이다. 공화국은 이제 남의 나라다. 더러운 기억만 가득한 나라다.
처벅 처벅- 흙투성이 맨발이 한가한 생각을 끊었다. 경비원이 총신으로 무성한 목화 가지를 헤치며 접근했다. 선우현의 전투 감각이 시퍼렇게 일어났다. 츄릿- 귀를 기울여도 듣지 못할 파공성이 울렸다.
“끄으!” 미약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선우현이 손잡이를 탁 잡아챘다. 핏- 허공에 뿜어진 핏물이 하얀 목화송이를 붉게 물들였다. 목이 절반으로 잘린 경비원이 풀썩 무너졌다. 살인 무기는 말단에 앙증맞은 수리검이 달린 피아노 강선이다.
사사삭- 선우현이 빽빽한 목화나무 사이를 유령처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