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98
x 198
제24장 네오싸이코패스7
단상에 올라간 선우현이 목소리를 잔뜩 깔았다.
“바키, 킨구레, 수쿨리, 음비쿠, 송고이……나미르의 이름으로 너희를 백인장으로 임명한다. 백인장으로 선출되지 못한 대표들을 십인장에 임명한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대답은 충성이다.”
선우현은 백인장과 십인장에게 경례 동작을 가르쳤다. 스무 번쯤 반복하자 비슷하게 각이 나왔다.
“집사, 십인장 완장을 가져오라.”
“충성!”
학습 효과가 확실했다. 충성을 외치지 않아도 될 부분에서도 충성이 튀어나왔다. 선우현은 백인장에게 십인장 완장을 분배해 주었다.
“백인장은 지금 즉시 십인장에게 완장을 채워주도록. 앞으로 모든 작업 단위는 십인대를 기준으로 한다. 백인장은 십인장의 실적이 부진할 경우 천인장에게 보고하고 완장을 회수한다. 알겠나?”
“충성!”
선우현은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백인장 14명은 자신이 감시할 수 있지만 십인 장까지 감시할 수는 없다.
선우현은 권력에 취했다. 자신의 명령 한마디에 통제되는 인간의 물결, 권력의 상징인 완장을 맘대로 수여할 수 있는 진짜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취해버렸다. 그는 완장이 무구한 인간을 괴물로 만들 수 있음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무지한 인간에게 채워진 완장의 위력을 과소평가했다.
“지금부터 백인대, 십인대별로 정렬한다. 십인대 앞에 십인장이 서고, 백인대 앞에 백인장이 선다. 정렬!”
“충성!”
다소간의 혼란과 고함 끝에 오와 열을 맞춘 행렬이 잔디밭을 덮었다.
“모두 잘 들어라. 너희의 노임은 월 10프랑으로 알고 있다. 나 나미르는 아즈라엘 님과 에델양의 대리인 권한으로 이번 달부터 노임을 20프랑으로 인상한다.”
폭탄선언이 떨어졌다. 선우현은 사회주의식 보편적인 복지, 소위 퍼주기가 단번에 우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와!”
“만세!”
인부들이 환성을 질렀다.
“백인장의 노임은 50프랑, 십인장의 노임은 30프랑이다. 단, 작업 실적을 평가해서 연속 꼴찌를 하거나 꼴찌를 세 번 하면 백인장을 해임하겠다.”
“와!”
백인장과 십인장 들은 졸지에 떨어진 감투와 엄청난 노임에 환성을 질렀다.
“집사, 시간을 한 달 주겠다. 인부 숙소에 식당을 만들어라. 농장 인부들 모두가 편히 식사할 수 있는 규모로 만들어라.”
“충성!” 순식간에 자동응답기가 된 집사다.
“내일부터 오전 작업 후 휴식시간을 한 시간 부여한다. 식사하고 편히 쉬어라. 농장에서 준비되는 대로 너희에게 하루 세끼 식사를 제공하겠다.”
“와!”
“충성!”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럴만했다. 닉이 농장주가 되면서 두 끼 제공되던 식사가 한 끼로 줄었다. 인부들은 아침을 거르거나 자신이 알아서 챙겨 먹어야 했다. 대부분이 피지 않은 목화 꽃봉오리를 따 먹는 것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배탈이 나고 기생충에 감염되는 인부들이 늘어났다. 자연히 작업능률이 떨어졌다. 생산 수율을 높이기 위해 인부를 혹사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선우현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농장 인부들은 에델 박사가 살아 있을 때도 두 끼니를 먹었다. 차드 국민 중에 하루 세끼를 찾아 먹는 부류는 국민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세 끼 음식 제공은 그야말로 폭탄 선언이다.
‘내래 와킬의 하인임메. 쩨쩨하게 굴 수야 없지비.’
선우현은 막 퍼줬다. 그의 계산은 간단했다. 사회주의 실패는 개인의 성취 욕구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자신부터 불만에 차 있지 않았던가? 마지 못해 눈치를 보며 일하는 자와 자기 일처럼 일하는 자의 성과는 천양지차다.
“너희 기본 노임은 20프랑이다. 매달 각 백인대와 십인대의 실적을 평가해서 성과급을 추가로 지급하겠다. 평가 항목은 작업 실적과 충성도 두 가지다. 실적 1위 백인대는 1,500프랑, 2위는 1,000프랑, 3위는 500프랑을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십인대의 성과금은 더 크다. 실적 1위 십인대는 200프랑, 2위 십인대는 100프랑, 3위 십인대는 50프랑을 지급한다.”
“우와!”
사마리아 농장이 떠나갈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선우현의 입꼬리가 비죽이 올라갔다. 와킬은 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어렴풋이 와킬의 생각이 읽혔다.
10전의 비용을 들여 10전의 이득을 얻을 것이냐, 20전의 비용을 들여 40전의 이득을 얻을 것이냐? 블랙맘바가 했던 이야기다.
‘이건 와킬의 시험이다.’
와킬은 억압을 싫어하고 노력에 따른 대가를 중시한다. 인간적인 대우와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아프리카를 바꿀 것이라 했다.
‘내래 옴부티보다 쓸모 있음을 보여 주가 써.’
선우현의 눈이 불타올랐다.
“그기 젬베(괭이 비슷한 아프리카 농기구)를 들고 있는 녀석”
갑자기 지적을 받은 인부가 어리바리했다.
“그래, 너 말이다. 이름이 뭐냐?”
“스푸디입니다요.”
“소속이 어디냐?”
스푸디가 난감한 얼굴로 십인장을 바라보았다. 백인장이 후다닥 달려가서 소속을 알려주었다.
“제5 백인대 3 십인대 소속 스푸디입니다.”
“오! 잘했다.”
선우현이 일 프랑짜리 동전을 스푸디에게 던졌다.
“스푸디 네가 속한 제5 백인대가 일 등을 하고 3 십인대가 일 등을 하면 너는 얼마를 받게 되나?”
끙끙거리던 스푸디가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55프랑입니다요.”
“오, 잘했다.”
선우현이 다시 일 프랑을 던져 주었다.
“그렇다. 너희 중에 최고로 잘한 십인대 열 명은 55프랑까지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와아아!”
실제적인 금액을 알려주자 떠나갈듯한 함성이 울렸다.
“조용, 최고로 못한 백인대와 십인대는 기본 노임에서 각각 2프랑과 3프랑을 빼고 지급하겠다. 스푸디가 속한 백인대도 꼴찌, 십인대도 꼴찌를 하면 스푸디 너는 15프랑을 받게 된다.”
스푸디의 얼굴이 쭈그러졌다. 55프랑과 15프랑은 차이가 너무 크다. 55프랑을 받으면 가족들과 고기를 사 먹을 수도 있다. 스푸디의 얼굴이 욕망으로 불탔다.
선우현의 입꼬리가 또다시 비시시 올라갔다. 전형적인 당근과 채찍 작전이다.
“집사 바룽고를 농장의 총 책임자인 천인장으로 임명한다. 각 백인장과 십인장은 바룽고의 지시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고 평가를 받는다. 바룽고 앞으로.”
선우현은 검은 완장을 바룽고의 왼팔에 채웠다.
“검은색은 고귀함과 동시에 죽음을 의미한다. 천인장에게 농장 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을 부여한다. 천인장은 모두가 행복한 사마리아 농장을 만들어 주기 바란다.”
선우현은 말을 멈추고 눈에서 불을 뿜을 듯이 집중하는 인부들을 둘러보았다. 바로 이것이다.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기 때문에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빠른 발전을 하는 이유다.
“충성스런 자는 상을 받고, 죄를 지으면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 바룽고, 아즈라엘 님의 전사이자 에델양의 대리인인 나 나미르에게 충성하겠나?”
“충성!”
바룽고가 농장이 떠나가라 구호를 붙였다. 역시 바룽고의 눈치와 순발력은 대단했다.
“이즈라엘님은 너희의 주인이시며, 에델 아가씨는 사마리아 농장의 진정한 주인이다. 알았나?”
“충성!”
“임시 농장주인 나미르에게 충성하겠나?”
“충성!”
“나 나미르는 아즈라엘 님으로부터 받은 권한으로 너희를 보호하고 배불리 먹여줄 것이다. 너희는 무엇으로 보답할 것이냐?”
“아즈라엘 님께 충성을!”
바룽고 집사가 재빨리 대답했다.
“아즈라엘 님께 충성을!”
인부들이 후렴을 넣었다.
선우현의 입가에 만족한 미소가 감돌았다. 완장과 식사, 노임을 무기로 단 한 시간 만에 인부들을 장악하고 조직화했다. 이만하면 큰 성과를 얻은 셈이다.
“바키, 제1 백인대를 끌고 전투지역을 수색하라. 시체와 무기를 수거한다. 나머지 백인대는 정상적인 일과를 시작한다. 실시!”
“충성!”
이젠 무조건 충성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인부들은 어떻게 할깝쇼?”
바룽고가 물었다.
“정상적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출근하는 대로 이곳에 집합시켜라. 외부에서 들어 온 인부들도 집사가 관리한다.”
“시체는 어떻게 할깝쇼?”
“목화밭 적당한 곳에 구덩이를 파고 몽땅 묻어라. 내년에 목화가 아주 탐스럽게 피겠지.”
“충성!”
“바룽고, 의사를 불러라. 닉과 은두마를 치료하고, 음식도 충분히 공급해 주도록. 잠시 쉬겠다.”
“목욕물과 옷을 준비하겠습니다.”
“집사, 나는 농장일을 자세히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할 일이 태산이지 않나? 내 시중을 들 필요 없다.”
“넵, 충성!”
바룽고가 휘적휘적 걸어가는 선우현의 등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우멍한 눈이 야망으로 불타올랐다.
“으흐흐흐, 옴부티 당신이 나를 뇌까지 근육이 들어찬 놈이라고 했겠다. 와킬의 몸빵이나 하라고? 나도 한다면 하는 놈임메.”
선우현은 뿌듯한 가슴을 안고 저택으로 들어갔다. 20대 초에 일찍이 자본주의 체제를 동경했던 선우현이다. 공화국을 떠나 다른 세계를 떠도는 동안 나름의 안목도 생겼다.
사악한 괴물도 사람이고 무구한 인간도 사람이다. 선우현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완장 질의 마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무구한 인간이 괴물이 될 만큼……
***
비가 새는 법당 지붕 위 기와를 교체하고, 전파가 자주 끊기는 티브이와 냉장고를 교체했다. 공양 간을 입식 부엌으로 바꾸고,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개수했다. 작업은 놀랍도록 빨리 진행되었다.
기와 교체 작업은 지붕에 진흙과 기와를 올리는 작업이 공정의 90%다. 무쌍은 인부들을 부르기 전에 필요한 진흙과 기와를 미리 지붕 위에 올려 둔다.
수십 장의 기와를 들고 슬쩍 발을 구르면 지붕 위다. 그에겐 하등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부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대우선사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간혹 의미 모를 미소만 지었다. 천성사 개조 작업이 보름 만에 끝났다. 영가 발원 공양은 아직 열흘이 남았다.
장보기를 끝낸 무쌍의 눈에 공중전화 박스가 들어왔다. 그는 충동적으로 공중전화기 슬롯에 50원짜리 동전을 투입했다. 다이얼을 돌리던 손가락이 뚝 멎었다. 혜영의 본가 전화번호다.
“후우!”
긴 한숨이 새 나왔다. 머리는 잊었지만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다. 다이얼에서 손가락을 뽑은 무쌍이 숫자판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절실히 전화해야 할 곳이 없다.
무쌍의 인간관계는 그리 넓지 않다. 새로이 빚어지는 인간관계 자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백부 집에서 보낸 5년간의 노예 생활, 반 집성촌인 짚은다리 친척들로부터 받은 인간적인 모멸감, 어린 그를 등치고 이용한 인간들, 아름답지 못한 추억으로 인한 일종의 트라우마다.
그러한 성향은 산사 생활을 통해 더 심해졌다. 타인의 삶에 끼어들기 싫어하고 자신의 삶에 끼어드는 타인을 용납하지 못했다. 대우선사가 등 떠밀어 외국에 보낸 이유 속에 무쌍의 탈속(脫俗) 성향도 한 몫했다.
따르르- 따르르-
진순이에게 연락하고 싶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다. 절실하지 않지만 늘 마음에 걸리는 곳이 있다.
-인제 지서 박무호 경장입니다.
5년 만에 들어보는 묵직한 목소리다. 무호 형과 함께했던 아침가리 골의 나날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형, 나 무쌍인디요.”
-뭐? 이시키 너 어디야?
전화선을 타고 거칠고 탁한 음성이 귓구멍을 쥐어박았다.
“며칠 전에 귀국했어요.”
-귀국? 너 외국에 나갔었냐?
‘아차!’
한국을 떠날 때 무호 형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야기가 복잡해지게 생겼다.
“별거 아임니다. 기양 일이 있어 나갔다 온 겁니다.”
잠시 후 다소 힘 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미나는 잘 자라고 있다. 올해에 입학했다. 너를 너무 그리워해서 문제지만 별문제는 없다. 박 할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다른 어르신은 별일 없으시다.
무쌍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 경장이다. 잡설을 제하고 필요한 정보만 제공했다.
“미나 양육에 돈은 부족하지 않습니까?”
-이 자슥이 별소리를 다 하는구먼. 니가 고추 팔아서 주고 간 돈이 기백이다. 아무 염려 말아라. 미나 바꾸어 주랴?
“치우시소. 멀쩡히 잘 있는 애 평지풍파 만들라 캅니까.”
-그렇긴 하지. 계집애가 엔간히 너를 따랐어야지.
방태산 동굴에서 생사결을 치루던 적면 5호의 마지막 슬픈 눈동자를 외면 못 해 거둔 아이가 미나다. 형편이 여의치 못해 무호 형에게 양육을 맡겼다.
미나와 어르신들 근황을 알고 나니 별로 할 말이 없다. 한쪽은 원래 말이 없는 놈이고 다른 쪽도 산적처럼 무뚝뚝한 인간이다.
“조만간에 곧 찾아가겠심더.”
-알았다. 니 마음이 추슬러질 때까지 알아서 해라.
무호 형은 자신이 아직도 여자 문제로 힘들어하는 줄 알고 있다.
전화를 끊은 무쌍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무호 형의 안부는 물론 형수의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이건 쿨한 정도가 아니라 감정이 마모된 현상이다. 정신이 피폐했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미나!
자신을 빠빠라 부르는 아이, 난봉꾼이 정신지체자인 이숙자를 건드려 태어난 아이, 아비가 걸리적거린다고 애 엄마를 죽이고 버린 아이다.
법은 멀고 돈은 가까웠다. 아니 돈 앞에 법도 소용없었다. 관절을 박살내서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도록 만들었다. 그래봐야 무슨 소용인가. 미나는 천애 고아가 되어 버린 것을.
문득 부평초처럼 뿌리 없이 떠도는 자신의 신세가 비감해졌다.
“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천장지구유시진 차한면면무절기, 천지가 영원하다 해도 다 할 때가 있건만, 마음속에 품은 한은 끝이 없어라!) 더러운 것들, 인간의 조건을 포기했다면 짐승의 조건을 제시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