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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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장 네오싸이코패스8
무쌍이 장한가의 끝 구절을 힘없이 중얼거렸다. 간 곳 모르는 어머니, 백부와 장씨, 화자, 이유없이 멸시하고 조롱하던 친척들, 결국 자살해버린 강영숙, 야비한 7호 검사 김달수, 감방 내에서 행해진 굶주림과 폭행, 죽이진 말라며 비시시 웃던 대구 교도소 간수 놈, 무표정하게 선고를 내리던 판사 놈, 소총 개머리판과 곤봉을 휘두르던 정체 모를 놈들의 얼굴까지 주르륵 스쳐 갔다. 이곳도 저곳도 모두 짐승의 세상이다. 애써 고향에 돌아왔건만 답답한 가슴이 풀리지 않았다.
“어머니, 저는 그 옛날 말썽 피우고 종아리맞던 무쌍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무쌍은 진순에게 간단히 귀국 소식을 알리고 힘없이 전화 박스를 나섰다. 사부가 잡념 없이 정진하라 했건만 법당만 나서면 원한으로 가슴이 타올랐다. 이래서야 언제 몸에 밴 피냄새를 지울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저녁 늦은 시간에 연락을 받은 진순은 밤을 하얗게 새웠다. 그리움으로 몸부림치던 오빠가 드디어 돌아왔다. 걱정으로 숯이 된 가슴이 기대로 펄떡였다.
그녀는 첫 시내버스를 잡아타고 북부시외버스 터미널로 달렸다. 진순은 천생산의 아침 안개가 걷히기도 전에 일주문을 통과했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50억 인간은 각자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작위와 부작위의 관념이 시간의 가치를 가르기도 한다. 2년이란 세월은 노인에겐 별 의미 없는 시간일 수 있다.
2년은 20대 초반의 남자에게 긴 세월이다. 막 피어나는 여자에게는 더 긴 세월이다. 진순은 짚은다리에서 몸뻬를 걸치고 똥장군 리어카를 끌던 촌닭이 아니었다. 날씬한 체형에 밝은 회색 투피스와 진주색 하이힐을 코디한 그녀는 눈부신 젊음과 자태를 발산했다.
급한 발걸음이 암자 입구에서 딱 정지했다. 벌거벗은 상체를 내놓고 바지만 걸친 채 장작을 패는 남자, 굵은 통나무가 수박 쪼개듯 척척 쪼개졌다.
보기에도 겁나는 커다란 도끼를 회초리처럼 휘두를 남자는 오빠밖에 없다. 아니, 십 리 밖에서도 오빠를 알아 볼 수 있다. 오빠만의 냄새, 마약보다 백배 천배 중독성이 강한 페로몬이 풍기기 때문이다.
진순의 두 눈이 잔 근육이 꿈틀거리는 적갈색 잔등에 눌어붙었다.
‘오빠!’
그녀는 가빠지는 숨을 삼켰다. 조각 같은 육체, 신이 빚은 근육이다. 오빠는 더 멋있어졌다. 미스터코리아 대회에 나온 남자들의 근육이 대단하지만, 오빠와 비교하면 물풍선이다.
도끼가 오르내릴 때마다 섬세한 이두박근, 삼두박근이 승모근과 어울려 역동적으로 물결쳤다. 땀에 젖은 등이 햇빛에 반사되어 그녀의 눈을 어지럽혔다.
역삼각형 잔등의 척추골을 따라 땀방울이 또르륵 굴러내렸다. 햇빛 아래 환하게 빛나는 육체가 후광을 두른 듯 빛났다. 야성의 아름다움, 진짜 남자가 뿜어내는 카리스마다.
“아, 아!”
진순은 무심결에 신음을 뱉었다.
“왔나!”
무쌍이 돌아보았다. 입꼬리에서 시작된 미소가 뺨을 거쳐 눈꼬리에 주름을 만들었다. 편안한 미소, 이웃에 놀러 갔다 귀가한 누이동생을 맞이하는 듯한 잔잔한 미소다.
‘미친년!’
정신이 번쩍 든 진순은 자신의 두 눈을 주먹으로 때리고 싶었다. 오빠의 육체에 홀리다니 미쳤다.
“오빠!”
진순이 달려들었다. 하이힐 한 짝이 벗겨지자 다른쪽도 벗어던졌다.
“오빠, 으흑흑!”
진순은 무쌍이 도망갈세라 허리를 힘껏 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이쿠, 다 큰 처녀가 애처럼 울기는.”
무쌍이 손바닥으로 진순의 엉덩이를 탁탁 때렸다.
‘응!’ 그는 흠칫했다.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생경했다.
‘허, 이 녀석도 다 컸구먼.’
성숙한 여인의 향기와 싱그러운 샴푸 냄새가 어울려 코를 간질였다. 장씨 몰래 누룽지를 챙겨오던 계집애가 어느새 성숙한 여인으로 변신했다. 술로 세월을 보내던 그를 말없이 챙겨주던 여고생이 여인이 되었다.
“걱정 마이 했제?”
“오빠 미워, 내 속이 숯덩이가 되었단 말이야.”
진순이 주먹으로 무쌍의 가슴을 펑펑 때렸다. 무쌍이 빙그레 웃으며 꼭 안아주었다. 유일하게 남은 친인이다.
“임마, 니는 오빠가 얼매나 강한지 잘 안다 아이가. 씰데없이 걱정하덜 말고 쓸만한 바지나 한 놈 만들어.”
진순이 흰 창이 뒤집힐 정도로 눈을 흘겼다. 남의 속도 모르고 허파 뒤집는 소리를 하는 오빠가 너무 얄미웠다.
“흥, 쓸만한 바지가 오데 있다고. 오빠 반푼이라도 되마 모가지 끌고 오지. 잘난 오빠를 둔 탓에 청춘 사업이 틀려먹었거든. 이런 몸이 놀고 있다는게 말이 돼?”
진순이 은근슬쩍 가슴을 밀었다. 진순의 가슴은 여고 입학할 때 이미 혜영을 능가했다. 풍만한 유방이 압박하자 무쌍은 진땀을 흘렸다.
“임마, 화장 지워진다.”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벌거벗은 상체다. 가슴에 얼굴을 묻은 진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강렬한 살 내음에 취해버렸다.
강렬한 수컷의 페로몬에 중독된 뇌가 신체 통제력을 상실했다. 다리가 꼬이고 청각 기능이 마비되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현실을 잊어버렸다.
외부 정보 유입을 차단당한 뇌가 보유(保有)된 기억을 재인(在認)시켰다. 시간이 되감겼다.
짚은다리에서 샛강으로 흘러드는 개울이 있다. 평소엔 발목이 잠길 정도로 자작하니 흘러가지만, 장마가 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호호탕탕 흘러가는 개울물은 열 살짜리 계집아이의 배꼽을 넘는다. 개울에 막혀 발을 동동 구르면 오빠가 나타났다. 말없이 등을 내밀던 오빠, 한 살 차이지만 오빠의 등은 바위처럼 단단했다.
오빠는 돌멩이가 떠내려갈 정도로 세차게 흐르는 개울을 끄떡없이 건넜다. 사실 개울물 따위는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 오빠에게 업히는 것이 좋아 기다렸다. 개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오빠가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오빠가 나타나면 잔뜩 불쌍한 표정으로 쿨적거렸다. 말없이 내미는 듬직한 등, 폴짝 올라타서 등에 볼을 붙이면 잠이 솔솔 왔다. 오빠 냄새가 좋았다. 봇도랑의 물이 무릎 아래로 내려가면 속이 상했다. 앙큼한 소녀는 그렇게 해마다 여름 장마를 기다렸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났다. ‘오빠의 향기’, 꿈속에서조차 잠을 깨게 만든 오빠의 냄새다. 행복했다. 너무나 행복했다.
“어험, 너무 오래 붙어 있는 거 아니냐. 늙은 고목에 꽃이 필 지경이구나.”
보유된 기억을 뒤지던 정신이 현실을 인식했다.
“옴마야!”
화들짝 놀란 진순이 그제야 팔을 풀었다.
“헐헐, 순이 왔구나. 그 둔탱이 놈 어디가 좋아서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거냐?”
“스님 할아버지 미워!”
얼굴이 빨개진 진순이 눈을 하얗게 흘겼다.
“헐헐헐!”
대우 스님은 그저 헐헐거렸다.
“어머, 오빠!”
진순은 그제야 무쌍의 얼굴에 새로 생긴 흉터를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눈이 무쌍의 상체를 바쁘게 뛰어다녔다.
“세상에! 어쩜 좋아.”
본래 흉터가 많던 몸이다. 이제는 본래의 피부가 보이지 않을 만큼 흉터로 도배되었다. 그나마 무식한 회복력 덕분에 켈로이드(창상이 치료되는 과정에서 피부의 결합조직이 병적으로 증식한 현상. 상처 부위가 단단한 융기를 만들고, 표피가 얇아져서 광택을 띠며 불그스름하게 보이는 양성종양.)가 생기지 않았다. 적갈색 피부에 회백색 흔적으로 남았다.
진순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으흑흑, 오빠가 몸을 찢어서 번 돈으로 내는 학교를 핀하게 다닜어. 나도 동생들도 오빠 피를 팔아 공부했어. 우야마 좋노.”
진순의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었다. 어릴 때는 백부와 백모에게 맞아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커서는 온갖 사고를 당해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외국에 취직했다더니 이번에는 상처로 도배했다. 가슴이 찢어졌다.
“얌마, 그기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거 아이가. 니들이 공부 잘하는 것이 오빠가 돈을 버는 보람인기라. 뚝 그쳐라. 사부님 보기 민망하구마.”
북두 갈고리 같은 손이 진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 도대체 우예 된 기고?”
“그 자슥, 개안타 카이끼네 자꾸 카네. 나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지냈능기라.”
대우선사가 나섰다. 그대로 두면 제자 놈과 함께 밥을 굶게 생겼다.
“순아, 그놈은 저승사자도 피해 가는 놈이다. 걱정말고 공양이나 짓거라. 저놈이 솜씨가 있으마 머하노. 솥뚜껑 같은 손보다야 고운 처자 손이 백번 낫지.”
“야, 스님!”
진순이 눈물을 훔치고 공양 간으로 들어갔다. 대우선사가 무쌍을 나무랐다.
“이놈아, 심성 여린 여아에게 흉측한 몰골을 보여서 어쩌겠다는 거냐. 총알에 뻥뻥 뚫리고 날붙이에 찢긴 상처를 보고 얼마나 놀랐겠노. 네놈 지각 능력이면 일주문에 오기도 전에 알았을 거 아니냐.”
무쌍이 머리를 득득 긁으며 옷을 입었다.
“히히, 그러게요. 지가 얼릉 옷을 입어야 했는디 말임더.”
대우선사가 어깨 총상을 손가락으로 눌러 확인했다.
“맹관총창이군. 피부 이식을 하지 않고도 조직이 깔끔하게 재생되었어. 역시 네놈 몸띠 하나는 국보급이구마. 내상은 입지 않았더냐?”
“하이고 일찍도 물어 보심다. 까딱 없심더. 사부님이 하도 옹차게 굴려놔서 몸땡이는 금강이다 아임니꺼.”
“니놈이 지금 스승을 원망하는 폼세구나. 사제간에 빡세게 정을 한번 나눠볼까?”
“아구야, 또 추뢰술로 두들기고, 공진폭으로 날릴라 카십니꺼. 진순이도 있는디 함 봐 주이소.”
대우선사가 비시시 웃으며 지팡이를 치켜들자 무쌍이 머리를 감싸 쥐고 도망갔다.
“호호호!, 스님 할배, 지대로 혼내 주시소.”
공양간 문설주에서 진순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라제. 자고로 여자를 애태우는 놈치고 잘 된 놈이 없어. 저놈 잘 챙겨주거라.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니라. 부처님도 새끼를 많이 까라고 자주 말씀하셨느니라. 늙은이는 제자놈 업이나 조금 씻어 볼까. 헐헐헐!”
법당으로 향하는 스님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얼굴이 붉어진 진순이 무쌍의 뒷등에서 얼른 눈을 뗐다. 새끼를 많이 까라는 스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 울렸다.
저녁 예불을 마친 무쌍은 진순의 무릎을 베고 누워 망중한을 즐겼다. 핸드빽에서 귀이개를 찾아든 진순이 무쌍의 머리를 허벅지 위에 올렸다. 혜영이 떠나고 반 폐인이 되어 방황할 때는 진순이 귀를 후벼주면 겨우 잠들곤 했다.
“으응, 시원타. 귓구멍이 와 이래 가렵노. 언 놈이 내 욕을 하는 모양인디, 필립 장군이가 보니파스 부장이가? 늙은 오케오필라 스마라그디나들이가? 상한이 자슥이 연락을 끊었다고 욕을 하나? 쫄따구 이 자식이 내 욕을 하나? 암만해도 쫄따구가 내 욕을 하는 갑다.”
무쌍이 중얼거렸다.
“무신 소린지 모리겠다. 근데 귓밥이 와이래 많노.”
진순은 귀속에서 파낸 이물질이 산처럼 쌓였다.
“으응 거기 말이다. 사헬이라 카는 사막 비스무리한 곳에서 한 달 넘게 돌아 댕깄거던. 온종일 돌아 댕기도 사람도 없고, 물도 없는 곳인기라. 모래 바람만 맨날 불어 제끼는데 구멍이란 구멍에는 모래가 다 파고 들어가뿐다. 먹을 기 없어서 엄마는 앙상한데 얼라는 늘어진 어미 젖을 죽어라 물고 빨아대더라. 툭하마 게릴라들이 습격해서 죽이고 강간하고 애를 삶아 먹고…….”
“옴마야!”
“엇, 이런!”
무쌍은 생각 없이 주절대던 자신의 입을 때렸다. 진순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아니다.
“오빠, 솔직히 말해 바라. 외국에서 머했노?”
“오빠는 군인이다.”
“군인?”
진순의 눈이 잔뜩 커졌다. 군인이라니 이게 무슨 밤 도깨비 무논 건너가는 소린가! 취직했다더니 웬 군인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정확히는 프랑스 외인부대 용병이다.”
진순이 군인과 용병의 차이를 알 리 없다. 오빠가 군인이란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인민군의 만행, 국방군의 보복행위, 죽창을 든 빨치산 전설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오빠, 그거 치아라.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아이가.”
진순의 커다란 눈이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오빠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자신의 삶도 희망도 끝이다.
“남자는 남자의 일이 있다. 누군가는 일해야 가족이 먹고살고, 누군가는 총을 잡아야 가족과 국민을 지킬 수 있다. 외국에 나가서야 알았다. 내 몸의 바탕은 이 땅의 흙이고, 내 정신의 바탕은 이 땅의 물이다.”
“어, 오빠 이상해졌다. 더러운 꼬락서니 보기 싫어서 우리나라를 떠났다 아이가.”
진순의 눈이 똥그래졌다. 시원스럽게 큰 눈망울이 더 커졌다.
‘이 녀석, 미인이네.’
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사실 진순은 어디 내놔도 빠질 얼굴이 아니다. 170cm에 가까운 늘씬한 키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건강미가 넘친다.
“높은 곳만을 보면 천정이 보이지 않고, 낮은 곳을 보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우물 속에 있으면 우물 크기의 하늘만 보이는 기라.”
“부처님 소리 하는 거 보이끼네 스님 할배 바이러스가 옮았구마. 이기 머꼬? 흉터로 빤한 자리가 없구마. 오빠 몸띠가 무신 캔버스가? 이렇게 될라카마 얼매나 고생했겠노. 살아온기 부처님 덕분이구마.”
무쌍은 속으로 웃었다. 회교도들은 만사가 알라 덕분이고, 기독교도는 예수님 덕분이다. 진순은 부처님 덕분이란다. 인간이 자신을 위로하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만든 발명품이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