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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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장 네오싸이코패스9
“고생할끼 머 있노. 사나 자식이 흉터 몇 개 생겼다고 뭔 대수고. 용병은 힘세고 싸움 잘하는 놈이 장땡인기라. 그거 내가 젤 잘하는 기다. 진급도 팍팍하고 돈도 왕창 벌어왔능기라. 용돈을 애끼지 말고 이쁜 옷도 사입고, 맛있는 것도 마이 무라.”
진순은 돈을 왕창 벌었다는 소리에 속으로 웃었다. 오빠는 당장 내일 밥 지을 쌀이 없어도 큰 소리를 뻥뻥치는 사람이다. 다섯 자매 학비를 부담했으니 저축도 별로 못했을 것이다.
오빠가 애써 번 돈을 아끼려고 열심히 아르바이트하고 있지만 넷이나 되는 동생들이 큰 부담이다.
“와! 정말이지? 당장 백화점에 가야겠네.”
진순이 호들갑을 떨었다. 오빠가 피값을 치르고 번 돈이다. 옷을 사입고, 외식을 하다니, 천벌을 받을 일이다.
“그래, 이자 짚은다리 악발이 진순의 불행끝, 미모의 간호사 진순의 행복 시작인기라.”
“그라마 머 하노. 오빠가 또 외국에 나갈 낀데.”
“아이다. 이자부터 기양 우리나라에 살끼다. 프랑스에는 필요할 때 출장 나가마 된다.”
“정말?”
“아야!”
놀란 진순이 귀이개로 무쌍의 귀를 폭 찔러버렸다. 파란트로푸스도 귀이개에는 버티지 못했다.
“어머! 미안 미안! 헤헤헤”
진순의 입이 벌어졌다. 오빠가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된단다. 한국에서 산단다. 기분이 풍선처럼 하늘로 둥둥 떠다녔다.
“진짜가? 외인부대에 안 돌아가고 우리나라에서 산단 말이제?”
“하모, 거기 쪼매 복잡하고 웃기는 과정을 거쳤지만 높은 사람들이 내한테 뚜디리 맞을까 봐 그렇게 해 준기라.”
“피이! 말도 안 돼.”
“어, 진짠데.”
무쌍은 억울했다. 하긴 진순이도 믿지 못할 일이긴 하다.
“진짜로 여서 산단 말이제?”
진순은 오빠가 누구를 패든 말든 관심도 없고 의미도 없다. 한국에서 산다는 말에만 필이 꽂혔다.
“아따 이자슥, 오빠 말을 디게 안 믿네. 여서 살다가 일이 생기마 출장 가마 되는 기라.”
“와, 따봉. 우야마 좋노. 만쉐이!”
진순이 두 팔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렀다.
“내 요짐 입시 공부한다.”
“오빠가 다시 공부한다꼬!”
진순의 얼굴에 온갖 감정이 버무려졌다. 지난날들이 알알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오빠가 당한 고난과 모든 사단이 장씨와 그녀의 친정 푼 어치들 때문이다. 이제야 뒤틀린 일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오빠, 잘 생각했어. 정말 고마워. 하늘에 계신 아저씨도 좋아 하실 거야. 그것들 그대로 둘거 아이제?”
진순의 눈이 시퍼렇게 번득였다.
“그것들!”
“오빠가 안 나서마 내가 그년들 대가리를 낫으로 칵 찍어 뿔 끼다.”
진순이 이빨을 뽀드득 갈았다.
오빠야말로 공부해야 할 사람이다. 누명을 씌워 앞길을 막은 인동댁 패거리와 김달수 검사와 장치수 패거리는 오빠의 원수인 동시에 자신의 원수다.
“허이고 이 자슥아, 니가 깡패가? 낫으로 대갈빡을 찍거러. 승질 쪼매 죽이고 살아라.”
“아이 오빠는, 내 승질이 우쨌다고 그카노.”
무쌍의 지청구에 진순이 삐친 표정을 지었다. 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중학교 때부터 자취방에 들러 밥과 빨래를 해준 진순이다. 모든 사건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다.
괄괄한 성격의 진순이 애면글면 속태웠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짠했다.
“바라 바라. 조카를 깜방에 처넣은 것도 부족해서 직일라꼬 깡패 새끼들 떼거리로 보낸 것들도 인간이가? 그것들은 인간이 아이다. 사람은 사람이고, 짐승은 짐승인기라.”
진순의 얼굴에 열기가 올랐다. 오빠는 스님 할배의 가르침을 받고부터 물렁해졌다. 안정을 찾고 예전의 다정한 오빠로 돌아와서 다행이지만 이럴때는 속이 터진다. 알아듣지 못할 부처님같은 말이나 하면서 설렁설렁 넘어가려는 꼴이 도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흐흐, 인간의 굴레를 벗은 인간은 짐승의 굴레를 씌울밖에. 덕분에 능력을 높이고 돈을 왕창 벌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무쌍이 중얼거렸다.
“오빠, 주문 좀 외우지 말거라. 우탁이네가 엄청시리 부자된 거 모르제?”
“울 아부지 땅까지 다 팔아서 운수 회사 차맀다 아이가. 내가 프랑스로 가기 전에도 돈을 깔꾸리로 끌었던 인간이다. 꼴에 회사 이름은 향심여객이두만.”
무쌍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백부가 어떤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 정도가 아이다. 몇 년 전에 섬유회사와 제약회사를 또 만들었는 기라. 돈을 삽으로 퍼 담는다 카더라. 이름이 향심섬유, 향심제약이라 카데.”
“흐흐흐, 향심이라! 그 인간이 생각하는 고향이 뭘까나? 이 오빠는 돈을 포크레인으로 퍼 담아 왔거든. 걱정을 말더라고.”
무쌍이 실실 웃었다. 지방에서 돈을 벌었으면 얼마나 벌었겠는가? 예전에는 향심여객 차고지에 늘어선 버스가 난공불락으로 보였다. 뭐 별것 아니다. 자신의 수중에 있는 돈이면 향심여객 수십 개를 사들이고 남는다.
진순이 피식 웃었다. 그녀의 성격은 화통하고 낙천적이다. 돈이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다. 오빠만 있으면 된다. 돈이야 벌면 된다. 건강하고 손발 멀쩡한데 무슨 걱정인가!
“오빠가 여서 할 일이 많다 아이가. 그 레종 머시기 군대에 계속 근무해야 되는 기가?”
“아이다. 여서 놀아도 봉급을 빵빵하게 준다. 내를 무서버하는 인간들이 많거든. 언간하마 높은 분들이 내를 부르지 않을끼다. 귀 좀 파라. 높으신 분들이 내 욕하는 갑다.”
“호호호, 오빠가 승질 내마 무섭긴 무섭제. 칼들고 도끼든 깡패 새끼 30명을 밟아버린 오빠를 누가 감당하겠노. 내일 아침은 머해 주까?”
진순은 전형적인 딸 부잣집 장녀다. 취학 전부터 부엌에 들어간 그녀의 요리 솜씨와 살림 솜씨는 엄마인 하동댁을 능가한다.
“사부님 계신데 고기 냄새 피우마 안된데이. 그냥 된장국이나 끓이고 나물 반찬 만들어라. 사부님은 부드러운 죽을 올려드리고.”
“오빠는 고기 묵어야 되는데.”
닭 열마리를 한끼로 먹고, 수육 5kg을 앉은 자리서 먹어치우는 오빠다. 진순은 당장이라도 핸드백을 들고 나설 태세다.
무쌍은 난감했다. 오빠를 위하는 일이면 염라대왕 코털을 뽑을 진순이다. 그대로 두면 시오리를 걸어나가 시내에서 고기를 한 보따리 사올 녀석이다.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순이 니 몸매가 엄청 좋아졌다. 키도 더 커지고, 피부가 예술이구마. 햇볕에 까맣게 타서 밭매던 진순이는 오데 갔노?”
진순의 얼굴이 타는 듯 붉어졌다.
“정말? 가슴도 더 커졌다.”
진순이 E컵 수준의 유방을 모아 올려서 하늘 높이 치켜세웠다.
“음, 확실히 커졌구마. 봉긋한 기 프랑스 여자들보다 더 보기 좋네.”
무쌍은 십 년 전의 의식에 머물러 있지만 진순은 아니다.
“흐으!”
진순이 묘한 신음을 내며 몸을 떨었다. 말 한마디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상의를 벗어젖히고, 블라우스를 훌떡 걷어올렸다. 새하얀 속살이 나오자 무쌍이 식겁을 했다.
“야 임마, 니 머하노!”
얼른 팔을 뻗어 뒤집어지는 블라우스를 끌어내렸다.
“가심(가슴) 보여 줄라 칸다.”
진순의 태연한 대답에 무쌍은 RPG에 직격당한 얼굴이 되었다.
“참아라. 니 오빠 코피 터지는 거 볼라 카나.”
“내는 십 년 전부터 오빠 거다. 오빠가 맨날 얼라 취급하이끼내 이참에 학실히 보여 줄란다.”
“임마, 친척끼리 무신~”
“허이고, 104촌도 친척이가?”
진순이 픽 웃었다.
“아이고 졌다 졌어. 그래 학실하다 학실해. 니 가심 억수로 크다.”
무쌍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호호호!”
진순이 목젖이 보이도록 깔깔거렸다. 오빠의 애인이 미국으로 떠난 뒤로 처음 웃어보는 통쾌한 웃음이다. 오빠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른들로부터 짐승이 된 군인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변함없이 순진한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진순의 손이 무쌍의 가슴을 더듬었다. 단단한 근육 위로 지렁이처럼 기어간 흉터들이 손에 걸렸다. 명색이 간호학을 전공하는 그녀다.
얼마나 끔찍한 전투를 벌였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오빠는 지옥 속에서 돈을 벌어 그녀와 동생들을 공부시켰다.흉터가 손 끝에 걸릴 때마다 가슴이 저렸다.
솨아아 바람 소리가 한 차례 들렸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이 뎅그렁뎅그렁 울렸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오빠, 바깥에 비 온다.”
“따뜻한 구들 목이 있고, 사랑하는 동생이 있고, 흐드러진 봄비가 내리니 부족한 기 없구마.”
“또 동생을 강조하는 기가. 내도 여자다.”
진순이 눈을 흘기며 농반진반 항의했다. 무쌍이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소동파의 우중작시자유시(雨中作示子由詩)에 야우대상(夜雨對牀)이란 구절이 있다. 침상을 나란히 놓고 누워서 밤빗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침상을 나란히 놓았으니 부부가 아니라 형제의 정을 표현한 것이다. 나는 평생을 니하고 나란히 누워 밤빗소리를 듣고 싶다.”
처연한 목소리다.
“오빠아!”
진순은 말 속에 담긴 깊은 슬픔을 느꼈다. 억울하고 슬프지만, 오빠는 자신을 여자가 아닌 동생으로만 여긴다. 오빠는 가족이 없다. 오빠의 간절한 바람은 여자가 아니라 가족이다.
‘그래, 어쩌면 그것이 더 나을지도……. 자식에게 신경쓸 필요없이 평생 오빠를 보살펴 줄 수 있잖아. 조진순, 욕심내마 오빠가 불편해지는 거 알제? 그래도 오빠의 여자가 되고 싶다.’
진순의 가슴이 쩍 벌어졌다. 골을 따라 눈물이 짚은다리 개울물처럼 흘러갔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자 삼 학년이가?”
무쌍이 불쑥 물었다.
“응, 연순이하구 계순이도 대학 들어갔어. 걔들도 오빠 보고 싶다꼬 난리도 아인기라.”
“코 찔찔 흘리던 가시나들이 벌씨로 대학을 다닌다꼬. 허이고, 세월이 흐르긴 흘렀구마. 델꼬 오지 그랬노.”
“만다꼬 델꼬 오노. 그 가시나들 델꼬 오마 오빠하고 이야기할 틈도 없을 낀데. 그것들 전부 여시가 되었능기라. 오빠 붙들고 난리 블루스를 치마 내가 식은밥 된다 카이.”
“역쉬 이놈의 인기는 끝이 없구마. 클클클!”
무쌍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췟, 인기는 개뿔이. 여자 속이나 태우는 못된 오빠는 썩 물러가라.”
“에잉 알았다. 운동이나 할란다.”
“가긴 어딜 가노. 미녀 허벅지가 그리도 값싸게 보이더뇨.”
무쌍이 머리를 들자 진순이 꾹 눌러 제자리로 돌렸다.
“진순아, 나는 당장이라도 엄마를 찾고 싶다.”
“당근이지. 이제 수배된 몸도 아니고, 집행유예 기간도 지났잖아.”
“흐흐흐!”
무쌍이 묘한 웃음을 흘렸다. 사헬의 칸마가 한국에서는 전과자 신세다. 웃음이 툴툴 나왔다. 집행유예 기간에 통금이라도 걸릴까 봐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경범죄라도 걸리면 무조건 삼청교육대에 끌려간다. 원수를 눈앞에 두고도 손을 대지 못했다.
“사부님이 한 달간 영가 발원을 올리라고 엄명을 내렸거든.”
“췌, 하나 있는 제자를 못살게 구는 심술쟁이 스님 할배.”
“커험!”
“엄마야! 놀래라.”
큰 방에서 대우선사의 마른기침이 크게 울렸다. 놀란 진순이 화들짝 했다.
“낄낄, 사부님은 십 리 밖의 이야기 소리도 다 듣는데이. 당신을 욕하는 소리는 백 리 밖에서도 들을 걸.”
무쌍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다.
“커허험!”
마른기침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무쌍의 목이 쑥 들어갔다. 진순이 소리를 낮춰 끼득거렸다.
“사부님의 의중은 영가 발원이 아니다. 윤회 중생을 의미 없다 하는 분이다. 업장소멸에 연연하실 분이 아니다.”
“그라마 머꼬?”
“제자가 날뛸까 봐 저어하시는 거지. 한 달간 끓어오르는 피를 식히라는 의미다.”
“에효, 스님이나 오빠나 너무 복잡하게 사는 거 아이가. 인생 뭐 있어. 닥치면 쳐내고, 막히면 뚫는 거지.”
“흐흐, 그래 니가 젤이다. 백 년도 못사는 인생, 고민만 하다가 세월을 보낼 순 없제.”
무쌍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무쌍은 진순의 무릎을 밴 채로 잠들었다. 어린애처럼 색색 곱게 잠들었다. 내려다보는 진순의 눈이 애잔함으로 물들었다. 누가 뭐래도 가슴에 한가득 슬픔이 들어찬 사람이다.
‘인 선생!’
오빠가 사랑했던 여자다. 오빠가 유일하게 행복했던 2년의 세월,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야망을 쫓아 훌쩍 떠났다. 어린애에게 사탕을 줬다가 뺐듯이 그렇게 떠나버렸다.
‘이기적인 년!’
뽀드득- 이빨 갈리는 소리다. 진순은 눈을 꾹 감았다. 그 년의 사정을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버릴 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자신이라면?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못한다. 오빠를 위해 십 년쯤 외국에 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나이도 많은 년이 정에 목마른 오빠를 농락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진순은 눈을 감았다. 시간은 십수 년을 거슬러 올라갔다. 들국화가 이울어진 짚은다리앞 낙동강 하중도, 늦가을 쌀쌀한 바람이 갈대와 여뀌를 서걱이고 지나갔다.
무성한 갯버들 아래 오빠가 잠들어 있었다. 얼굴이 푸르딩딩하니 부었다. 입술이 터지고 코피가 말라붙었다. 반쯤 채운 꼴망태와 낫이 보였다.
큰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은 흔적이다. 진순은 엉엉 울었다. 맨날 오빠를 때리는 인동댁 아저씨가 너무 미웠다. 오빠가 불쌍해서 울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싫어서 또 울었다. 오빠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 주고 싶었다.
어린 계집애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오빠에게 받기만 했다. 힘든 일을 대신 해주고, 남새를 가져다주고, 장작을 패주고, 통시를 쳐내 주고, 깊은 개울을 업어서 건네주었다.
나이 들어서는 동생 넷까지 오빠에게 부담되었다. 자매 다섯이 오빠의 피를 팔아 공부했다. 그렇게 자신은 받기만 했다. 그렇게 십수 년을 가슴앓이만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