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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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장 네오싸이코패스11
“어머, 저 여자 아까징기 발라야겠다. 히히히!”
진순은 걱정하면서도 재미있어 죽는다. 조수석의 병사가 지프 휀다에 거치 된 도끼를 빼내 들었다.
진순의 눈이 커졌다. 두 사람이 거친 말다툼을 하고 한 사람이 도끼까지 집어들었다. 진순이 봐온 미군은 대체로 무식하고 상스럽다. 유혈사태가 벌어질 것 같아 걱정되었다.
다행히 도끼는 머리통이 아니라 유리창을 찍었다. 미 군용 지프의 실드는 복합방탄유리다. 소총탄에 뚫리지 않는다. 충격을 받은 실드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발생했다. 시야를 확보하려면 하얗게 변한 유리를 뜯어내는 수밖에 없다.
“갓 뗌, 갓 뗌!”
병사가 전면 실드를 사정없이 깨부수는 희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멀리서 보면 도끼로 차를 부수는 것처럼 보인다.
“오빠, 양키들이 와 저 카노? 차를 때리 부수네.”
“미쳤나 보지. 그러게 운전을 조심하지.”
얼척없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어머, 앞유리 두 개가 다 박살 났네.”
“어쩐지 운전을 험악하게 하더라니깐.”
무쌍은 시침을 뚝 땄다.
“오빠제?”
진순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돌아보았다. 멀쩡하게 잘 달리던 지프가 비틀거리다 가로수를 들이박을 리 없다. 오빠는 이유 없이 피해를 당하면 되갚고야 마는 쫀쫀한 면이 있다. 자신을 향해 지저분한 짓거리를 한 미군을 그냥 둘 사람이 아니다.
“글쎄요. 예쁜 여자에게 싸가지없이 구는 놈은 용서하지 마라고 불경에 나와있거든. 순이가 어디 보통 미인이가.”
“오호호호, 그건 그래. 점마들 뒤통수에 혹을 만들어주지 그랬어.”
능청스런 말에 진순이 깔깔거리고 웃었다.
‘허이고, 내가 점마들 뒤통수를 깠으마 듀라한 두 개체가 만들어지거든.’
무쌍이 식은땀을 흘렸다. 대낮에 그만한 일로 사람을 상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못 본 사이에 진순이 더 괄괄해졌다.
너덜거리는 유리창을 뜯어냈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갤갤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미제가 좋다고들 하지만 전능은 아닌 모양이다. 운전병이 보닛을 열고 한참 들여다 보더니 신경질적으로 꽝 닫았다.
약이 잔뜩 오른 미군 병사들이 지프를 차고 때리는 꼴 사나운 장면이 벌어졌다. 진순은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천박한 것들!”
무쌍의 얼굴에 경멸이 떠올랐다. 악연으로 얽힐 미군과의 최초 조우다.
중곡마을은 짚은다리에서 불과 4~500m 거리다. 무쌍은 백부에게 강제로 끌려갔던 신작로를 거슬러 걸었다. 뻐꾹- 뻐꾹- 때 이른 뻐꾸기 한 마리가 외로이 운다.
오목눈이 둥지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행복할까? 오목눈이가 지극정성으로 키운다니 자신보단 나을 것 같았다. 자신은 쪼아대는 오목눈이 둥지에 버려진 뻐꾸기 알이었다.
점순이도 뻐꾸기 새끼다. 향심여객은 여차장을 혹독하게 다루기로 유명한 운수회사다. 상무인 장상수는 장씨의 둘째 남동생이다.
여차장들 기숙사는 10평짜리 슬래브 방이다. 이 방에 20명이 함께 지낸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여차장들의 일당은 3,200원이다. 한달동안 만근하면 64,000원을 받는다.
장상수는 식대와 기숙사비로 25,000원을 공제했다. 버스 문짝에 매달려서 갖은 욕설을 들으며 배치기를 한 대가가 겨우 39,000원이다. 한창 배고플 나이에 주전부리 사먹고, 찍어바를 화장품 몇 개 사면 몇 푼 남겠는가.
근무 시간도 살인적이다.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오후 11시쯤에 승차가 끝난다. 한창 잠이 많을 나이다. 틈만 있으면 출입문 손잡이를 잡고 꾸벅꾸벅 존다.
여차장들은 한탕씩 뛸 때마다 몸 수색을 받는다. 검사실 직원들은 검사를 핑계로 젖가슴과 엉덩이를 주무르기 다반사다. 의심이 간다는 이유로 상무실에 보내면 장상수가 기다린다.
일단 상무실에 들어가면 팬티까지 홀딱 벗긴다. 그다음에 어떤 인격 모독이나 육체적 모독이 벌어질지 상상에 맡긴다.
백부와 장씨는 그렇게 번 돈으로 섬유회사를 차리고 제약회사까지 차린 모양이다. 점순이는 뻐꾸기 둥지에 버려진 오목눈이 알일지도…….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노?”
“응? 으응, 점순이.”
“으이그 또 오지랖. 하긴 삼출 아재가 오빠에게 해 준 건 없어도 마음은 마이 썼제. 그 아재 마이 아푸다. 황소에 받치가꼬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카더라. 주장이 그래되가꼬 집안이 말이 아인기라. 점순이도 입학했다가 차장으로 간기라.
“어린 기 고상이 많겠구마.”
“디기 힘든 갑더라. 저번에 만났는데 죽고 싶다 카더라. 일이 힘든 것보다 툭하마 삥땅 검사한닥고 옷을 벗긴다 카더라. 도와주고 싶은데 내 코도 석 자 아이가. 졸업하마 꼭 도와줄라 칸다.”
“진순아. 졸업하마 간호사 될끼가?”
“하모, 내 꿈이 병들고 힘든 사람 보살펴 주는 기다. 오빠도 환잔기라. 마음이 아픈 환자라 내가 꼭 필요하거든. 히히히!”
물끄러미 진순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열정에 불타는 자세, 거침없는 행동,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씨까지 루드리 에델을 빼닮았다.
“짐승도 많지만 인간도 많구마. 뻐꾸기 둥지에 버려진 오목눈이 알을 모아볼까.”
“또 또 주문을 왼다.”
알아듣지 못할 말에 진순이 눈을 흘겼다.
두러두런 이야기하는 사이에 옛집에 도착했다. 대문을 마주한 무쌍은 만감이 교차했다. 여덟 살까지 부족함없이 부모님과 살던 보금자리다. 세월이 흐르고 풍경도 변했다.
대문밖에 서면 훤하게 보이던 낙동강과 푸른 버들 숲이 보이지 않았다. 들판을 뚝 잘라 7m 높이의 왕복 4차선 고속도로가 시야를 막아 버렸다.
시원한 강바람과 물새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그 자리를 아스팔트와 타이어 마찰음이 채웠다. 아버지, 어머니, 이강철, 함께 놀던 불알친구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나무로 만든 허술한 삽작이 철문으로 바뀌었다. 철문은 하늘색 칠이 벗겨져 곳곳이 녹슬었다. 유일하게 행복했던 유년시절이 단절되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부지, 쌍이가 왔심더. 15년만에 아들이 찾아왔심더. 쪼매 힘들었지만 아부지가 지켜주신 덕분에 이렇게 돌아왔심더.’
돌담을 어루만지는 무쌍의 눈에 설핏 물기가 고였다.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직접 쌓은 담이다. 아버지를 돕겠다고 낑낑거리며 돌을 날랐던 기억이 아스라했다.
“오빠, 우얄라 카노? 집은 옛날 그대로네.”
진순이 암담해진 무쌍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다시 사들여야지.”
“집을 산다꼬?”
진순의 눈이 둥그레졌다.
“백부가 지 멋대로 팔아묵었다 아이가. 엄마가 돌아올 집이다. 당연히 사들여야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 영글고 자신이 태어난 집이다. 세 식구가 오손도손 살던 행복한 보금자리다. 오늘의 외출 목적이 집을 되사는 것이다.
담 너머로 집안을 살펴보았다.
집은 예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에 어린애 옷과 작업복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대문을 두드리려던 무쌍이 손을 멈추었다.
15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할 것인가, 강제로 뺏긴 집이니 내놓으라 할 것인가. 다짜고짜 팔아라 할것인가.
진짜 이유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도움은커녕 쑥덕거리고, 엄마를 울리던 친척들이다. 명색이 친척 어른이기에 마주치면 인사를 해야 한다. 경추가 부러질지언정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다.
무쌍은 완강히 버티는 대문을 포기하고 예전 태풍에 무너진 뒷 담장 쪽으로 돌아갔다. 무너진 뒷담을 타 넘으려면 복숭아밭을 지나가야 한다. 복숭아밭 울타리인 탱자나무는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무성히 자랐다. 3m가 넘는 높이에 참새도 드나들기 힘들 정도로 빽빽하게 엉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에 탱자나무를 잘라 활을 만들었던 기억이 났다. 조잡한 활을 들고 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아들, 이기 머꼬. 참새가 니를 잡을라 칼끼다. 이래 만들마 안된다. 아부지가 대나무 뿌리로 만들어 주꾸마. 대신에 사람을 쏘면 안된데이.
-하모. 토끼 잡아오마 볶아 조야 돼.
-그라제, 엄마 몰래 우리끼리 볶아 묵으까?
-안 돼, 몸이 약한 엄마가 마이 묵어야 돼.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휙 뛰어넘었다. 복숭아밭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다. 망초와 환삼덩굴이 엉켜서 걷기도 힘들었다. 사람 손이 가지 않은 지 오래다. 가지 치기가 안 된 복숭아 나무는 제멋대로 가지를 뻗었다.
무너진 담장은 십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하긴 담장 너머는 복숭아밭이다. 애써 고칠 필요도 없다. 집안에서 인기척을 느낀 무쌍은 얼른 울타리를 넘어서 나왔다. 예전에 자기 집이었지 지금은 아니다. 사람이 거주하는 곳을 통보도 없이 들어갈 수는 없다.
“집안에 사는 사람이 있데이.”
“내가 촌에 있을 때는 비어있었는데……”
진순이 대문을 두들겼다.
몇 번을 두들기고서야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쪽문이 열리고 훌렁 까진 앞이마가 불쑥 나타났다.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다.
“누구십니꺼?”
“어, 상철이 헤임 아인교?”
무쌍이 반색했다.
“누고?”
남자가 경계하는 눈초리로 무쌍을 쳐다보았다.
“헤임요, 나 무쌍이 아인교.”
“머라꼬? 니가 무쌍이라꼬? 공부 잘하고 쌈 잘하는 진보 아재 외아들 박무쌍?”
쪽문을 열고 나온 젊은이가 무쌍의 얼굴을 요모조모 살펴보다가 펄쩍 뛰었다.
“조또, 진짜데이. 이기 얼마 만이고, 십오 년만이구마. 너무 마이 빈해가꼬 둘 다 몬 알아 본 기라. 니는 하동 아지메 딸이제? 아지메를 빼 닮았구마.”
“야가 진순이 아인교. 헤임도 마이 빈했구마. 순아, 중곡마에 살던 상철이 헤임이다. 공부하기 싫다꼬 소죽 솥 아궁이에 책가방을 불질러뿌고 오익(청소년의 가출을 뜻하는 경상도 은어)타디마는 벌씨로 서른이구마.”
“임마, 니는 우탁이가 쭉쭉 빠는 석빙고 아이스케키가 먹고 싶어서 침을 질질 흘맀다 아이가.”
“허이고, 형은 소풍 가서 사이다 절반만 마시고 남겨온 거 기억나나? 상진이하고 김빠진 사이다를 서로 마실라꼬 다투다가 깨 먹고는 잉잉 울었거든. 김빠진 사이다가 머 좋다고 동생 한 모금 마시게 해주지 말이야. 쯧쯧!”
본전도 못 찾은 상철이 얼른 무쌍의 손을 잡아끌었다.
“야야, 쪽팔리는 이바구는 와 하노. 얼릉 들어가자. 순이 니는 엄청시리 예쁘졌데이.”
“원래 예뻤걸랑. 근디 오빠는 결혼했나 보네.”
“옹야, 공단에서 조립부 아가씨 꼬시가꼬 작년에 후딱 결혼해뿟다. 집사람은 얼라 델꼬 보건소 갔다.”
무쌍의 입꼬리가 비죽이 올라갔다. 뜻밖에 어릴 적 동네 형을 만났다. 두 사람은 어릴때 함께 어울려 서리하던 사이다. 역시 고향이다. 시골에서 다섯 살 상간은 선후배 간 구분은 있어도 친구 개념이다.
덕분에 집 안 구석구석을 편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내부 구조는 15년 전 그대로다. 안방도 그대로고, 이강철이 하숙하던 건넌방도 그대로다. 아버지와 노씨 아저씨가 함께 짠 부엌문도 그대로다. 무쌍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대청마루 뒷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휙 몰려들었다. 여름철에 배를 까놓고 낮잠자던 대청이다. 동네 애들에게 따온 구슬과 딱지를 챙기던 곳이다. 엄마가 살얼음이 낀 식혜와 고욤을 내 주던 곳이다.
대청마루는 그대로건만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다. 어른이 된 어린 아들만 먼 길을 돌아 다시 대청마루에 앉았다. 줄줄이 떠오르는 기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눈치가 빤한 진순이 무쌍의 손을 꼭 잡았다.
상철은 타성바지다. 친척이 아니라서 오히려 부담이 없다. 나이 차가 많은 만큼 두 사람의 접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자연히 무쌍이 떠난 후의 신변 잡사로 화제가 모였다.
“얼라는 몇인데?”
“딸아 하나 있다. 니는 오데 사는데 연락 한번 없었노?”
“지금은 프랑스에 있다 아인교. 잠시 귀국한 기다.”
“와! 프랑스라꼬, 유럽에 있다카는 프랑스 말이가?”
“야!”
“우예 촌놈이 그까지 갔노. 그서 머하노?”
“군바리 아인교.”
“와 프랑스 군인이란 말인가. 희안하데이. 니는 옛날부터 쪼매 이상한 놈이기는 했제. 그나저나 니가 왔으니께 집세를 조야지.”
“집세? 무슨 집세 말인교?”
무쌍이 뜨악해서 반문했다.
“무신 소리하노. 이 집 주인이 니 아이가. 니 백부가 5년 전에 대리로 월세 계약서를 썼능기라. 월세는 니 오마 한꺼번에 주라 카더라.”
상철이 오히려 뜨악해서 반문했다.
‘이기 무신 도깨비 개울 건너가는 소리고?’
무쌍은 성난 황소 뿔에 받친 얼굴이 되었다. 그가 열 살 때 백부가 도씨에게 집을 팔았다. 도씨가 대처로 나가면서 빈집으로 남았다.
“내는 객지에 나가 있었다 아인교. 계약서 있으마 갖고 오소.”
“씨바, 이기 먼 소리고. 니 백부가 사기 친 거 아이가. 쫌 있어 바라.”
상철이 월세 계약서를 들고 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보증금 없이 월세 삼만원, 월세는 박무쌍에게 일시불로 지불하고, 재계약을 한다는 내용이다.
임대인란에 적힌 박무쌍이라는 이름 아래 대리인 박인보라고 뚜렷이 적혀 있었다. 5년 전이면 얼추 구치소에 갇혀 있을때다. 장씨가 흉계를 꾸며 조카를 함정에 밀어넣을때 백부는 집을 돌려주었단 말인가?
백부가 또 무슨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지 심사가 복잡해졌다.
“어휴, 남이면 기양 패 죽이고 싶구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