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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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장 네오싸이코패스12
“하여튼 잘 모리겠다. 헤임이 살던 대로 기양 사소. 집세는 낼 필요 없고, 집이나 잘 관리해 주소. 복숭아밭도 손 좀 보고.”
“진짜 그래도 되겄나? 내가 오 년을 여서 살았으니까 밀린 집세가 180만 원이나 되는데.”
상철은 반색했다. 5년 동안 저축해준 월세가 무려 180만 원이다. 졸지에 거금이 굳게 생겼다. 인보 아저씨는 돈 문제에 관한 한 바늘 꽂을 자리도 없는 사람이다. 무쌍이 나타나면 지급할 월세를 매달 적금 넣듯이 통장에 넣어두었다.
“옛날에 헤임한테 사과도 마이 얻어먹었다 아인교. 헤임네 달구새끼도 세 마리나 잡아먹었거든. 그걸로 퉁 칩시다. 월세 줬거니 하고 딸아 맛있는거 사주고, 형수 선물이나 해 주소. 집 관리가 부실하마 월세를 소급해서 받을 끼요.”
“우와, 이 자슥 외국에 산다 카디마는 억수로 통이 커졌네. 말만 들어도 고맙긴 한데 형이 되가꼬 그랄수는 없능기라. 집세는 절반을 내고, 내가 니 집하고 너거 아부지 묘를 관리해 주꾸마. 통장 번호 도고.”
“어허, 그랄 필요 없다니까.”
“임마, 벼룩도 낯짝이 있다 아이가.”
결국, 월세를 절반으로 깎고, 상철이 임대 물건의 관리 책임을 지는 것으로 하고 계약서를 새로 썼다. 누적된 월세는 영곡마을 아버지 묘를 영구히 관리해 주는 걸로 퉁쳤다.
양쪽 모두 만족했다. 시골에서나 가능한 거래다. 입을 삐죽거리던 진순도 종내 웃고 말았다. 오빠다운 처사다. 집과 아저씨 묘가 돈 뭉치보다 백배 소중한 것이다.
“근데 말이다. 그때 니가 진짜 일제 라디오를 훔칬나?”
“오빠가 훔친 거 아이라요. 우탁이 아부지가 노름하고 들어오는 길에 훔칬다 아인교. 경자네 아줌마가 우탁이 아부지 돌아간 시간까지 말했다 아인교. 경찰이 들이닥치니까 겁이 나가꼬 오빠에게 옴팡 덮어씌웠다 아인교.”
진순이 발칵 했다. ~아인교를 연발하는 것으로 짜증을 표현했다.
“그렇제. 우덜도 무쌍이가 그런 짓을 할리 없다 켔다. 그란데 니 백부, 백모, 화자, 우탁이가 다 나서서 니가 도둑질했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능기라.”
“다 지난 이바구 아인교. 헤임 나 갈라요.”
“아이구, 내 입이 주책없는 기라. 그기 언제 이바군데 꺼내 가꼬는……애엄마가 곧 올 텐데 밥이라도 묵고 가라.”
“바쁜 일이 있다 아인교. 담에 또 오께.”
무쌍은 만류하는 상철을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 없는 집에 앉아 있자니 마음만 더 심란해졌다.
집을 나선 무쌍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무슨 도깨비놀음인지 알 도리가 없다.
“순아, 니는 뭐 아는 거 없나?”
“내는 암것도 모린다. 대구로 이사 가고는 그 집 식구들 한번도 못 봤다.”
“알따, 일단 삼출 아재에게 가 보자. 마이 다칬다 까이끼네 함 들다 바야지.”
편견없이 대해준 유일한 친척이 삼출 아재 내외분이다. 재종숙모에게 따뜻한 밥도 얻어먹고, 헌 옷도 얻어 입었다. 작은 은혜도 결코 잊는 법이 없는 무쌍이다. 자신의 일도 바쁘지만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삼출 아재는 논이 스무 마지기에 밭이 다섯 마지기다. 그 정도면 먹고 사는 데는 어려움이 없는 살림이다. 동네 고샅을 오르면서 마을 사람 몇몇을 만났지만 아무도 무쌍을 알아보지 못했다.
비죽이 자빠진 삽짝을 제치고 마당에 들어섰다. 마당에서 작두로 여물을 썰던 재종숙모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두 사람이 손발을 맞춰서 해야 할 일을 혼자서 줄똥을 싸고 있다. 아재가 자리보전하고 딸 둘은 돈 번다고 외지에 나가 있다. 누군가 도와주러 오련만 집안이 절간이다.
“찐순이 아이가. 젊은 분은 누고?”
“아지메, 별고 없었십니꺼. 무쌍입니다.”
무쌍이 허리를 숙였다. 재종숙모가 어리벙벙한 표정이 되었다가 불에 데인 듯 화들짝했다.
“오메야! 쌍이?”
“야, 아지메가 옷을 챙겨주던 쌍입니다.”
“어이구 이놈아, 살아있었구마.”
재종숙모가 달려들어 손을 잡고 끌었다.
“어여 들어가자. 니 아재가 저래 눕고는 사람 사는 기 아이다.”
“와 혼자 여물을 썹니까?”
“니가 잘 알자녀. 동네 인심이 야박해서 품앗이해 줄 사람이 없으니께 농사도 안 도와주는 기라.”
재종숙모가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집안 살림이 엉망이다. 짚은다리는 한국 전쟁 전부터 친척끼리 좌우익으로 나뉘어 다툼이 심했다. 세월이 흘러도 서로간에 쌓인 앙금이 뿌리깊이 남았다.
“순아, 소죽 안치고 들어가자.”
5월이면 버들숲에 소를 풀어놓거나 꼴을 뜯어다 먹이지, 짚을 썰어 먹이지는 않는다. 꼴을 뜯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아지메, 낫하고 망태 주소.”
“아이고, 머하거러. 우신에 짚을 멕이마 되는 기라.”
재종숙모의 만류에 무쌍은 작두를 잡았다. 한 손으로 짚단을 먹이고 다른 손으로 작두를 눌렀다.
퍽- 서걱- 퍽- 서걱- 혼자서 순식간에 짚단 한 아름을 잘라버리는 신기에 덕산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집안 텃밭에도 잡초가 수북했다. 심었던 고추는 녹아버리고, 잡초만 제 세상을 만났다.
무쌍이 쇠죽솥에 물을 길어붓고 장작을 모두는 동안에 진순이 덕산댁의 몸빼 바지를 빌려입고 낫을 잡았다. 쉭- 쉭- 낫이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에 손이 풀을 걷어간다.
진순의 솜씨도 만만치 않다. 순식간에 꼴을 한 아름 뜯었다. 짚과 꼴을 가마솥에 채우고 쌀겨를 설렁설렁 뿌렸다.
“아따 맛있겠다.”
헌걸지게 한마디 던지고는 솥뚜껑을 탕 닫았다.
무쌍이 비시시 웃었다. 언제나 시원시원한 진순이다.
“허이고 시상에, 어릴 때도 어른보다 일을 더 잘 하디마는 이자는 귀신이구마. 진순이하고 짝 맞추면 딱이다 딱이여.”
덕산댁의 주책에 진순이 답지않게 몸을 외로 꼬고 얼굴을 붉혔다.
‘허이구 저 여시바라.!’
무쌍이 속으로 혀를 찼다. 사부님 앞에서는 거리낌없이 굴더니 친척 어른 앞에서는 조신하기 짝이없다.
“아재를 보입시다.”
“오이야! 어여 들어가자.”
아랫목에 기진한 남자가 두꺼운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 오랫동안 자리보전한 환자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경순 아부지요. 누가 왔는지 눈 떠 보소.”
“임자, 누가 왔나?”
그렁그렁한 울림이 목구멍을 겨우 빠져나왔다. 기흉 증상이다.
“기흉이제?”
진순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교때부터 의학 서적을 탐독한 오빠다.
“아재, 접니다. 무쌍입니다.”
“시상에, 쌍이가 왔구나. 얼굴 함 보자.”
눈꺼풀이 밀려 올라갔다. 탁한 눈이 초점을 잡지 못하고 떠돌았다.
“헌헌장부가 되었구마. 몰라 보겠데이. 진보 헤임과 형수가 억수로 좋아하겠구마.”
“우짜다 이래 됐십니꺼?”
“황소가 받았다.”
“좀 보입시더.”
무쌍이 이불을 후딱 제쳤다. 퀴퀴한 악취가 코를 쥐어박았다. 어지간한 진순도 고개를 돌렸다. 무쌍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와 이카노. 냄새가 마이 날 낀데.”
무쌍은 대답 없이 옷을 젖히고 몸을 찬찬히 살폈다.
“어떤 놈입니까?”
무쌍의 목소리에 서늘한 한기가 실렸다. 소뿔에 받친 상처가 아니라 몽둥이에 맞아 골병이 든 몸이다. 몽둥이질이라면 사부 다음으로 자신이다. 관안에 잡힌 피하 출혈 흔적은 가로 둔기에 의한 흔적이다. 수십 년이 흘르지 않는한 귀신을 속여도 자신을 속이지 못한다.
“무신 소리하노. 그런일 없다.”
삼출 아재가 단호하게 부인했다.
“말씀하시소, 어떤 놈이 아재를 몽둥이로 타작하듯이 때맀십니꺼?
“경순 아부지요. 쌍이에게는 말해 주이소. 내도 입때껏 입도 뻥긋 못하고 억장이 무너져서 죽겄소.”
머뭇거리던 삼출 아재가 입을 열었다.
“그래 내도 이대로는 억울해서 기양은 못 죽겠다. 사북 사태 아나?”
“모립니다.”
“4년전, 전두환이가 시끄럽게 설칠 때다. 가을걷이 끝내놓고 애들 학비라도 쪼매 벌어볼라꼬 사북 탄광에 갔던 기라.”
“으음! 막장에 들어갔십니꺼? 너무 위험할낀데요.”
무쌍이 침음했다. 부지런한 사람은 농한기가 되면 탄광이나 산판에 들어간다. 자식들 학비를 벌고, 나이든 부모님 여행을 보내주고, 고생한 부인에게 반지를 선물하기도 한다. 투박하지만 정이 깊은 남정네도 많았다.
“아이다. 사북에 있는 지장산 버럭 선탄반에서 일했거든. 여러 가지로 불편했지만, 그럭저럭 돈 버는 재미로 몇 달을 보냈다. 4월에 광부들이 데모를 했어. 어용노조가 탄전측과 짜고 임금협상을 이상하게 했나 봐. 내야 뭘 아나. 기양 사택에 머물러 있었지. 사실 사택은 사람 살 곳이 못되고, 고생에 비해서 임금도 너무 박하긴 했어. 광부들이 데모를 할만했능기라. 계엄분소란 곳에서 나온 사람이 데모중인 광부를 자동차로 밀어버렸데. 둘이 죽고, 셋이 크게 다쳤다 카더라. 그때부터 난리가 났지러. 광부 수천 명이 들고 일어나서 경찰서까지 점령했능기라. 내는 데모에 끼어들지 않았어. 우리같은 따까리 후산부야 뭘 알아야 면장을 하지.”
“괘씸죄에 걸렸네요. 잡혀간 광부가 아재를 끌어들였겠네요.”
“우예 그리 잘 아노. 역시 똑똑하데이. 광부 대표와 정부가 협상해 가꼬 데모가 끝났거든. 그런데 뒤늦게 군인들이 몰려오데. 정선경찰서에 합동수사본인가 뭔가를 차려서 광부를 마구잡이로 체포해서 끌고 갔어. 나는 영문도 모리고 잡히간기라.”
쿨럭- 쿨럭- 삼출 아재가 밭은기침을 뱉어냈다.
“아재 쪼매 쉬시소.”
“아이다. 분하고 억울해서 니한테 말이라도 하고 죽을란다. 내는 지역개발대책회의에서 보자고 해서 그냥 따라 간기라. 경찰서에 들어서자마자 수갑을 채워서 지하실로 끌고 가데. 지하실에 벌집처럼 칸막이 방을 잔뜩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몽둥이로 때리고 군홧발로 걷어차고 물속에 밀어넣고, 온갖 고문을 다 받았능기라. 그서 무릎이 부서지고 허리뼈가 부러진기라. 삼일을 굶기면서 때리더락꼬. 4일째 풀리 났어. 찦차로 실어다 거기 병원에서 대충 치료해주고, 집으로 데려다 준기라.”
“입만 벙긋해도 다시 잡아가서 때려죽인다고 협박했지요?”
“잘 아네. 내는 너무 무서운 기라. 기양 황소 뿔에 받쳤다카고 이카고 있는 기다. 내 분해서 못 죽는다.”
“고문받을 때 들은 이야기는 없십니꺼?”
“각하께서 엄중하게 처리하라 켔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제. 그라고 지들끼리 하는 말 중에 광부 스무 명이 죽고, 백명이 병신되었다 카데. 내가 얼매나 겁이 났겠노.”
“이름 기억나는 놈 없십니꺼?”
“기억나지러, 내를 주로 고문한 놈의 이름이 김영노여. 그라고 유영출이란 놈과 장 계장이라 불리는 놈이 있었어.”
무쌍이 머리를 끄덕였다. 사북사태가 뭔지 모르지만, 대사관을 움직이면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있다. 번거로움을 감수하면 자신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 합수부와 중앙정보부를 뒤져보면 금방 나온다.
“보상은 못 받았십니꺼?”
“보상이 머꼬, 빨갱이 새끼를 쥑이지 않은 것만도 은혜를 베풀었다 카더라.”
삼출 아재의 눈이 분노로 흔들렸다. 속절없이 당한 힘없는 민초의 아픔이다.
“망할 노무 새끼들, 치료는 우예 했십니꺼?”
“벵원에 2년을 입원했다 아이가. 논 열 마지기가 치료비로 들어갔다. 핵교 댕기던 딸애들이 공단에 들어가고 차장질을 하고……. 어허허!”
삼출 아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통한의 눈물이다. 정당성 없는 권력의 희생자가 여기도 있다. 삼청교육대에 잡혀가서 무릎이 부서진 현동이가 생각났다. 통금에 걸렸고, 머리가 길다는 이유였다.
“허, 역시 이놈의 나라는 달라진 게 없어. 존만이 목을 뚝 따 뿌까.”
무쌍의 눈에 혈광이 어렸다. 우박처럼 쏟아지던 곤봉과 개머리판이 생각났다. 국민을 지켜야 할 공권력이 국민을 때려잡는 몽둥이가 되었다. 그 정점에 체육관 대통령이 있다. 자신이나 삼출 아재처럼 억울하게 피눈물 흘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무쌍은 갈등에 휩싸였다. 사부님이 절대 안 된다고 엄명을 내렸지만 속에 천불이 났다. 차라리 마음이 시키는 대로 설칠 수 있는 야만의 땅, 차드가 그리웠다.
“오빠!”
“응, 으응 그래. 알았다.”
진순이 일깨워주지 않아도 안다. 이미 확립된 질서를 뒤집기에는 너무나 많은 무리가 따른다.
“다친 곳은 어딥니까?”
“무릎 한쪽을 못 쓰고, 허리가 아파서 굴신을 몬한다. 벵원에서도 더 이상 치료할끼 없다 카더라.”
“야야, 우야마 좋노. 저래가꼬 꼼짝을 못한다 아이가.”
재종숙모가 눈물을 질금거렸다.
무쌍은 삼출 아재를 반드시 눕히고 왼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무릎 연골이 부서졌다는 다리다. 고통스러워 한다. 다시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악!”
새된 비명이 튀어나왔다.
“추간판 중핵 중앙 탈출인갑다.”
진순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입을 달싹거리다 말았다. 오빠가 하는 일은 그냥 두고 보면 된다.
“아지메, 지금부터 아무것도 못 보았습니데이.”
덕산댁은 무슨 소린지 몰라 눈을 끔벅였다.
“오빠가 아재를 치료해 볼라 카네요. 못 본 걸로 하라는 뜻이라예.”
“옹야. 쪼매만 좋아질 수 있으마 뭔 짓을 못하겠노.”
덕산댁은 정 많은 무쌍이 안마를 해주려나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