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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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은혜는 열배로, 원한은 백배로1
무쌍의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덕산댁은 숨을 죽이고, 진순은 주먹을 꼭 쥐고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오빠가 이처럼 힘들어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뭔지 모르지만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명색이 간호학과 3학년이다. 추간판 중핵 중앙 탈출증은 보전 치료도 어렵다. 수술해도 완치를 장담하지 못한다. 종내 하반신이 마비되어서 자력 보행이 불가능해진다. 삼출 아재가 남은 생을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두웅- 다시 공진파가 방사되었다.
“허, 이거야 원! 이렇게 잔인한 놈들이 있나.”
무쌍이 혀를 찼다. 무릎의 반달연골과 슬개대퇴골이 박살 났다. 부서진 뼈가 부정 교합된 상태에서 보철물을 끼워 넣어 고정시켰다.
이래서야 손 쓸 도리가 없다. 무고한 사람을 이 꼴로 만든 놈들도 나쁜 놈들이고, 치료한 의사 놈도 천하의 잡놈이다. 아니면 돌팔이거나.
무쌍은 마지막으로 굳어있는 근육과 힘줄을 공진으로 한차례 흔들어주고 치료를 끝냈다.
“아이고, 힘들어!”
무쌍이 한숨을 돌리자 진순이 재빨리 이마에 흥건한 땀을 훔쳐주었다. 숨죽이고 있던 덕산댁의 눈이 기대로 반짝였다.
“아재, 일어나 보입시다.”
무쌍이 삼출 아재의 등을 받쳐 상체를 일으켰다.
“아구구, 야야 택도 없다. 내가 3년을 이래 누워 보냈능기라.”
“됩니다. 절 믿고 일어나 보이소.”
“허, 참!”
삼출 아재가 끙하고 힘을 썼다. 무쌍이 완강한 힘으로 받쳐 주었다.
“어, 안 아푸다! 이기 웬일이고?”
위태롭게 일어선 삼출 아재의 얼굴이 우는 듯 웃는 듯 찡그려졌다.
“경순 아부지요. 정말 안 아픈기요?”
덕산댁이 버럭 소리 질렀다.
“임자, 귓고마리 터지겠구마. 개안타 카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을 떼시소.”
삼출 아재가 부축을 받아 발을 떼었다. 한발, 두 발, 세발.
“저, 저거 저거!”
놀란 덕산댁이 말을 잊지 못했다. 놀라기는 진순도 마찬가지다.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가 발을 움직였다. 아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섯 걸음을 뗀 다음 삼출 아재를 자리에 앉혔다. 진순이 잽싸게 등을 이불로 받쳤다.
“어 내가 앉았다. 앉았어. 아니 걸었다. 걸었어.”
삼출 아재가 횡설수설했다.
“아지메!”
“오이야, 그래, 그래.”
“아재 허리는 이자부터 개안을 낌니다. 무릎은 부서진 뼈가 잘못 붙어서 치료가 안 됩니다.”
“아이고, 우야꼬! 시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니 아부지 어메가 그래 좋은 사람이디마는 니를 보내서 우리를 살리주는구마. 흑흑! 이 은혜를 우찌 갚누.”
덕산댁이 어쩔 줄 모르고 설레발을 쳤다.
“은혜는 무신 은혜요. 잘 들으시소. 치료는 됐지만, 인대와 근육이 약해져서 두 세달 지나야 척추에 힘이 들어갈낌니더. 침대를 사시소. 주무실 때 한 근쯤 되는 아령을 아재 발목에 매달아 놓으시소. 매일 조금씩 자주 걷게 하시고요. 한 두 달만 지나마 목발을 짚고 혼자 걸을 수는 있을 낍니더.”
“아이고 시상에, 그기 어디고.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데이. 감사합니데이!”
덕산댁이 사방에 손을 모아 절했다.
“임자, 쌍이에게 고맙다 케야지 부처님 하느님은 와 찾노. 이노무 세상에는 하느님도 없고 부처님도 없는 기라. 쌍이가 부처님이고 하느님인 기라.”
삼출 아재가 웃음 섞인 지청구를 놓았다. 주름진 두 눈에서 회한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이고 아재요, 큰일 날 말씀 하지 마시소. 스승님이 아시마 저는 맞아 죽심더. 담달에 한 번 더 올낌니더. 지가 아재를 치료했단 이야기는 절대로 하마 안됩니데이.”
무쌍이 새삼 주의를 주었다.
“하모, 무신 뜻인지 알겄다.”
삼출 내외는 방아깨비처럼 머리를 끄덕였다. 무쌍은 밥을 먹고 가라는 간곡한 청을 뿌리치고 짚은다리를 나섰다. 얼쩡거리다 반갑지도 않은 친척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오빠, 씰데없는 짓 하마 안 된데이.”
진순이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터무니없는 무모함을 지겹게 겪었다. 태산처럼 진중한 사람이 때로는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여서 사람을 식겁시킨다.
“알따 임마. 내도 조용히 살고 싶다.”
무쌍이 쓴웃음을 지었다. 진순의 마음고생을 익히 알고 있다.
“오빠, 아저씨는 우예 된 기고? 책에 나오는 기공술이가?”
“기공술은 잘 모리겠고, 형태공명장(形態共鳴場)이다. 사부님은 공진파라 칭하신다.”
“형태공명장? 거기 머꼬?”
“설명하기 힘들다. 사부님의 가르침을 따르다 보이끼네 그래 됐다.”
무쌍은 얼버무렸다. 사람을 많이 죽이다 보니 발전한 능력이라 할 것인가? 피바다를 헤엄치다 생긴 능력이라 할 것인가?
“여튼 오빠는 신기해. 내중에 학을 타고 하늘로 뿅 사라질까 겁나네.”
진순은 묻고 싶은 말이 태산이지만 입을 다물었다. 오빠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순아, 잠깐 읍내 나가자.”
“머할라꼬?”
“당장 등기를 확인해야 겄다.”
마음이 급했다. 중곡마 집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행복의 표징이다. 절대 타인의 손에 넘겨 줄 수 없다. 집을 사려고 했더니 본인이 집주인이란다. 그야말로 개 풀 뜯는 소리다. 백부와 장씨가 워낙 이상한 종자들이라 희한한 짓거리를 한다는 의심이 잔뜩 들었다.
등기부를 확인한 무쌍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유주가 박진보에서 박인보로 변경되었다가 6년 전에 박무쌍으로 변경되었다.
무쌍은 기억을 더듬어 지적도에서 아버지의 논을 찾았다. 지적번호를 확인해 등기부를 떼었다. 비슷한 시기에 자신의 이름이 소유자로 등재되어 있다.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다.
“오빠, 우예 된기고?”
“글씨, 낸들 아나.”
“우탁이 아부지가 개과천선 한 거 아이가?”
“아놔 이 사람아, 개입에 상아 날 소리 하지 말게나. 선할 선(善)이 아니라 옴 붙을 선(癬)이면 모르지.”
진순이 쓴웃음을 베어 물었다. 맞다. 그 인간들은 옴 오를까 겁나는 인간들이다.
무쌍은 등기부를 다시 확인했다. 영곡마을 10마지기 논, 그리고 짚은다리 강변 밭 다섯 마지기가 자신의 이름으로 올라있다.
등기가 변경된 시점은 고등학교 다닐 때다. 그때 지구가 개벽할 일이라도 생겼나? 초신성이 폭발해서 방사능이 쏟아졌나?
백부와 백모가 개과천선해서 집과 토지를 조카에게 돌려주었다고?
머리를 흔들었다. 천만의 말씀이다. 차라리 여우가 여자로 변신하고, 호랑이가 사슴과 어깨동무를 하고 놀러 간다는 말보다 더 믿기 어려운 소설이다.
현실은 현실이지 동화가 아니다. 여우는 여전히 여우고, 호랑이는 사슴을 잡아먹는다. 개과천선이란 말은 백부 내외와 백 촌이 넘는 말이다. 이래저래 백부를 만나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오빠, 당장 우탁이네 대문을 걷어차고 들어가지 않을 거면 머릿속에서 싹 털어내 삐라. 미녀앞에서 고뇌하는 로댕은 밥맛인거 알지?”
“응, 그 그래.”
진순의 박력에 밀린 무쌍이 하중도로 향했다.
경부고속도로는 들판과 동네를 가른 완강한 장벽이다. 강변으로 나가려면 컴컴한 고속도로 통행 박스를 지나야 한다.
“이기 머꼬?”
무쌍은 변해 버린 샛강 풍경에 깜짝 놀랐다. 유유히 흘러가던 넓은 강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강폭이 절반으로 줄고 강물도 혼탁해졌다. 토사가 밀려든 상류 유입구는 폭이 십 미터도 되지 않았다. 호수 비슷해져 버렸다.
“어른들 말로는 안동댐이 완공되면서 수량이 줄고, 구미 공단 건설로 토사가 밀려들었다 카더라. 고속도로 탓을 하는 사람도 있더라.”
“이런 젠장! 강을 빙신으로 만들었구마.”
“구미 공단에서 폐수가 흘러들어서 물고기가 둥둥 떠다니고, 철새가 떼로 죽고 난리가 아인기라. 이자 고기 잡는 사람도 없다.”
그러고 보니 수면에 배를 뒤집은 물고기가 보인다. 무성했던 말풀도 보이지 않는다.
“저런 망할! 잉어, 붕어, 뱀장어, 피라미, 쏘가리, 가물치가 몽땅 안녕이란 말이가. 허이고, 조개도 못 먹고, 말풀도 못 건져 먹겠네.”
무쌍이 안타까워했다. 유년기의 아련한 추억이 깃든 샛강이 망가져 버렸다.
“중금속에 오염된 물고기 잡아먹으마 클 난다. 일본에서도 메틸수은이 오염된 물고기를 잡아먹은 사람들이 미나마타병으로 난리가 났능기라.”
“에이 지랄!”
무쌍이 원망스런 눈으로 구미 공단을 흘겨 보았다. 지하자원도 없고, 뛰어난 관광자원도 없는 나라다. 공장을 건설해서 수출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다. 차드와 달리 한국은 국가 발전의 선순환을 탄 나라다.
구미 공단이 들어서면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얻고 자식을 학교에 보냈다. 고등교육을 받은 양질의 인재들이 국가를 발전시킨다. 물려받은 농토 없는 상철 형도 공단이 없었으면 허송세월했을 사람이다.
그러나 아쉽기 이를 데 없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진짜로 변해버렸다. 그것도 아주 고약하게 변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안타까웠다.
상류로 타고 올라가 봇도랑을 건널 필요도 없어졌다. 진순을 업고 허벅지 깊이의 물을 건너 버들 숲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버들숲은 예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겉옷을 벗어 진순에게 깔아주고 아름드리 버드나무 아래 사지를 쭉 뻗고 누웠다. 켜켜이 쌓인 버들잎이 등을 푹신하게 받쳐주었다.
진녹색 버들잎이 사월 말이면 어린애 손바닥만큼 커진다. 작은 이파리 사이로 흰 구름 떠가는 파란 하늘이 보였다. 한 달만 지나면 녹음이 우거져서 하늘이 보이지 않게 된다.
버드나무 사이로 흐르는 바람의 속삭임, 버들잎이 흔들리는 소리, 여뀌와 망초가 흔들리는 소리, 수면을 맴도는 물새 울음소리, 물고기가 첨벙이는 소리, 폭신한 진순의 허벅지, 고향이다.
살을 태울 듯 이글거리는 태양도 없고, 눈을 못 뜨게 만드는 모래 바람도 없다. 떼로 몰려오는 파리, 모기도 없다. 총성도 없고 포성도 없다. 천국이다.
“집에 아지메가 계실랑가?”
“토욜이라 가시나들도 다 있을끼다.”
“선물을 못 샀는데 우야제?”
“오빠가 건강하게 돌아 온기 제일 큰 선물인 기라. 오빠가 아빠 대신이다 아이가. 산소도 들러야제.”
“당근이지. 앞으로 열흘은 꼼짝 못 하고 매일 다섯시간을 법당에서 염불 외고 명상해야 하거든.”
“하루에 다섯 시간씩이나? 스님 할부지 너무 하시다.”
진순이 입을 삐죽거렸다.
“떽, 사부님은 주책없는 듯 보이지만 혜안을 얻은 분이야.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
“혜안이 머꼬?”
“육안은 그냥 일반 시각이다. 천안은 신통의 눈으로 막힌 곳이나 먼 곳을 보는 눈이다. 천리안쯤 되겠지. 혜안은 진리의 본체를 보는 눈이다. 예를 들어 진순이 니가 아무리 조신한 척해도 왈가닥이라는 본체가 빤히 보이는 거지. 속으로는 혀를 끌끌 차실걸.”
“흥이다. 스님 할부지가 내를 얼매나 좋아한다고. 혜안말고 또 있어?”
“법안이 있고 불안이 있는데 나도 잘 모린다.”
“오빠가 삼출 아재를 치료한 신통력과 관계있는 기가?”
“신통은 무슨 신통, 내는 어쩌다 천안 비슷한 능력을 얻었을 뿐인 기라. 좌도방으로 빠졌다고 야단만 맞았다.”
무쌍이 펄쩍 뛰었다. 사부님의 신통에 비하면 자신의 능력은 조족지혈이다.
“근데 말이야, 제자에게 억수로 빡빡한 사부님이 니한테는 헐렁하시데. 사부님을 우예 홀랑 삶았노?”
“솔직히 말하까?”
“임마, 니가 솔직안하믄 우얄끼고. 주리를 틀기전에 토설해라.”
“스님 할부지가 말하지 말랬는디.”
“이 자슥이 마.”
무쌍이 주먹을 치켜들고 흔들었다.
“세상에! 바위를 부수는 주먹으로 미녀를 칠라 카네. 야만인을 사랑하는 조진순이 불쌍타.”
“그러니까 빨리 불어. 여자 입은 원래 마른 갈대처럼 가벼운 거야.”
굳이 들을 이야기도 아니지만, 남녀의 대화는 원래 그렇다. 별 시답지 않은 화제로 시간을 채운다.
“스님 할부지가 말씀하시기를 오빠는 살기가 너무 강하데. 천살성인가 뭔가 하는 기운이 골수에 스밌다 카더라.”
“그거 무협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사부님이 니한테 뻥친기다.”
“뻥인지 뻥튀긴지 몰라. 내가 물의 기운을 타고났데나. 겁화를 누를라카마 내가 오빠 곁에 있어야 된다 카시더라.”
“하이고, 이거야 원! 사부가 노망드싰구마. 진짜로 믿는 거는 아이제?”
“당연히 진짜로 믿지. 혜안을 얻은 스님 할부지 말을 믿지 않으마 누구 말을 믿노.”
“아이구, 두야!”
그렇지 않아도 찰거머리가 된 진순인데 사부님까지 바람을 넣었다. 멀쩡한 처자를 처녀 귀신 만들게 생겼다. 진순이 주름살진 무쌍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오빠 너무 걱정 말거라, 스님 할부지가 말씀하시기를 오빠 나이가 백 살이 되마 살기가 흩어진다 카시더라. 이제부터 팔십 년만 붙어 있으께. 히히히”
진순이 혀를 날름 내밀었다.
“하하하! 졌다 졌어. 미인은 억지를 부려도 다 용서된다 카더라. 니 맘대로 하세요.”
80년이란 소리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녀가 옆에 있어 주겠다는데 씹다 버린 껌 취급하네. 아이고 자존심 상해라. 하늘에 계신 아저씨 당신 아들 좀 때리 주이소.”
진순이 눈에 침을 찍어 바르고 통곡하는 시늉을 했다.
“이놈 자식, 사부님을 우려먹더니 가마이 있는 아부지는 와 끌어내리노.”
북두 갈고리 같은 손이 진순의 머리를 흩트렸다.
“헤헤, 오빠하고 버들 숲에 오는 꿈을 얼마나 많이 꾸었는지 몰라. 오빠가 무사히 돌아와서 너무 좋아.”
진순은 ‘사랑해 오빠’라는 말을 꿀꺽 삼켰다. 아마도 영원히 삼켜야 할 말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