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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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은혜는 열배로, 원한은 백배로2
휘익 불어온 강바람이 버들잎을 우수수 흔들었다. 햇빛이 언뜻언뜻 레이져처럼 얼굴로 쏘아져 내렸다. 진순이 쟈켓을 벗어 얼굴을 가려 주었다.
“니는 와 영양가 없는 오빠를 좋아 하노?”
무쌍이 눈을 감은 채 웅얼거리듯이 물었다. 진순은 시쳇말로 킹카다. 늘씬한 기럭지에 이목구비가 균형 잡힌 미인이다. 게다가 성격도 시원시원하다. 눈깔이 제대로 붙은 놈이면 침을 바가지로 흘릴 인물이다.
“좋아하는데 무신 이유가 있노. 세상에 남자는 많지만, 오빠는 둘이 아인 기라. 내는 평생 오빠 밥해주고 속옷 빨아 줄란다.”
“야 임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덜 말어. 처녀 귀신 될라 카나.”
무쌍이 버럭 했다.
“흥, 처녀 귀신이 어때서? 처녀로 늙는 사람 많다. 수녀는 하느님, 비구니는 부처님 모신다 아이가. 내는 평생 오빠 곁에서 잔소리 하민서 살테니 암말 말어.”
“허이고!”
할 말이 없어졌다. 대학교 들어가서 쓸만한 남자를 사귀기를 바랐지만 틀렸다.
“니 정도 모찌방이마 머스마들이 한 트럭은 들이댈낀데 여태 머했노?”
“미팅 자리에 몇 번 끌리 나갔는데 머스마들이 마카 얼라 같은 기라. 수컷 냄새나는 놈이 없어. 얼띠기 양아치 아이마 엄마 치마꼬리에 매달린 찌질이라 때리 치아뿟다.”
“에휴, 쪼매 진지한 시각으로 보마 다를 끼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면 시각이 편협해지거든. 상냥함이 유약함으로, 배려심이 이중인격으로, 진중함을 우유부단함으로 보게되는 관점의 차이 말이다.”
진순은 머리를 흔들었다. 꿩대신닭은 가능하지만 꿩대신 까마귀는 곤란하지 않은가. 치유 불능인 옴부티 변종 바이러스다.
“오빠가 보기에 내가 맹해 보일지 몰라도 내도 그리 띨한 년은 아인기라. 직관과 보편의 개념은 구별할 줄 알아. 하여튼 오빠가 잘난 탓에 시집가긴 틀리삣다.”
“내가 잘난 게 머가 있노.”
진순이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머리 좋고, 힘 좋고, 정많고, 의지 강하고, 착하고, 주먹 세고, 이젠 돈까지 잘 벌거든. 열 손가락이 부족하겠구마.”
“헛 참! 니가 눈에 찌짐을 붙이도 여러 장 붙있구마.”
무쌍은 혀를 찼다.
“평생 찌짐 붙이고 살마 아무 문제 없능기라. 사실에 가려진 진실은 거짓과 다를 바 없다 아이가.”
“하이고 니 팔뚝 굵다. 대학물 먹더니 입심이 마이 늘었데이.”
“오빠가 내를 쪼맨치라도 부담스럽게 생각하마 내는 슬퍼할끼다. 가정부도 좋고, 찬모도 좋아. 내가 일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잖아.”
진순의 표정이 처연해졌다. 오빠가 외국으로 떠나던 그 날 몰래 공항에 나갔다. 비행 시간도 모르면서 무조건 나갔다. 밤늦은 시간까지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며 울었다.
책을 펼치면 책 속에서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에서
강물을 보고 있으면 강물에서
오빠 얼굴은 늘 그곳에 있었어.
볼 수만 있고 손댈 수 없는 모습이었어
이제 손을 뻗으면 오빠 얼굴이 닿을 텐데
행여나 오빠가 멀어질까 두려워 손을 감추었어.
한 번만 말해 주세요. 감춘 손을 내밀어도 좋다고
아녜요. 아무 말씀 마세요. 이대로 그림자가 될래요.
책을 덮어도
구름이 하늘을 가려도
바람이 강물을 흔들어도
오빠 얼굴은 그곳에 있어요
어제도 오늘도 기다리고 있어요
한 번만 손을 내밀어 주면 안 될까요.
너무 큰 욕심일까요. 하늘이 노할까요
꿈이면 깨지 말고 꿈이 아니면 잠들 수 없는데
내일도 글피도 십 년도 백년도 저는 이곳에 있어요.
밤길을 하염없이 걸으며 미친년처럼 불렀던 자작 노래다. 그리울 때마다 흥얼거리다 보니 마음이 아프면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이 녀석을 우짜노!’
무쌍의 표정이 암담해졌다. 피처럼 붉은 고백이다. 처절하고 아름다운, 붉은 속살을 드러낸 운율이 가슴을 저리게 했다. 별 볼 일 없는 남자를 이토록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랑에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유는 순수의 모독이다.
“햇빛은 높낮이가 없건만 풀대궁은 크고 작구나.”
한탄이 새어 나왔다.
사헬의 아즈라일, 수천 명의 생목숨을 지워버린 죽음의 천사, 진순이 블랙맘바의 정체를 알아도 변함이 없을까?
당연히 변함이 없을 것이다. 몹시 슬퍼하겠지만.
영혼이 순수한 아이,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자신이 가증스러웠다. 이천 명이 넘는 사람을 죽이고도 가위도 눌리지 않는 아수라가 바로 자신이다. 꿈에 나타나는 놈도 없다. 사부님이 말씀하신 네오싸이코패스가 바로 자신이다. 내가 이런 사랑을 받을 놈인가?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질긴 목숨 살아있어 이곳에 왔다네
소풍 오듯이 엄마 손길 따라왔다네
인심은 달라져도 진심은 금강이라
사랑은 석양에 지고, 정은 끝이 없어라.
기억이 있어 이곳에 왔다네
먼먼 길을 돌아 외길따라 왔다네
이곳에 오면 찌든 영혼이 씻어질까?
피 묻은 손으로 사랑이 가당할까?
삼도천 건너 이곳에 왔다네
나 살자고 남을 죽였다네
살아있기에 이곳에 왔다네.
피 묻은 손에 행복이 쥐어질까?
잔잔한 중저음 음성이 버들 숲에 울렸다. 슬픔과 아픔이 뒤범벅된 처연한 가락이다. 진순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오빠의 슬픔과 고독에 비하면 자신의 그리움과 아픔은 속 좁은 여자의 투정에 불과하다.
“오빠, 고마해라. 눈물 난다.”
진순의 눈에서 넘쳐난 눈물이 무쌍의 얼굴에 후드득 떨어졌다. 십 년 전 오빠등에 업혀서 클레멘타인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 오늘은 그 날보다 더 슬프다.
정의롭고 자부심 강한 오빠가 강간폭행범이 되었을 때 그 심정이 어땠을까. 심신이 피폐해졌을 때 사랑하는 여자까지 훌쩍 떠나 버렸다. 홀로 세상과 맞서던 오빠는 견디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다.
그녀도 용병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 고향을 떠난 그곳도 지옥이다. 신체에 새겨진 수많은 흉터가 말해준다.
진순은 허벅지에 올려진 갸름한 얼굴을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빰에 남겨진 십자 흉터가 자꾸만 눈에 거슬렸다. 상처가 생길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수많은 상처만큼이나 많은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먼 이역만리 타국에서 얼마나 고통과 외로움에 시달렸을까.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오빠가 서럽고, 운명에 떼밀리는 오빠가 서럽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은 사람, 너무나 강하기에 여린 남자, 떠나간 여자를 잊지 못하는 바보스러운 남자. 한줌의 정에 매달려 모진 학대속에서도 혹 덩어리인 다섯 자매를 보살펴 준 마음 여린 오빠다.
“오빠, 용병이란 직업이 전쟁터에 나가는 직업 아이가. 하느님도 벼락을 잘못 때려서 멀쩡한 사람 잡는다. 군인이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는 거야 불가항력 아이가.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라. 천도재도 맨날 올린다 아이가.”
“……”
무쌍의 눈이 커졌다. 제법 말발이 세다. 역시 대학물을 먹어야 하나 보다.
“오빠, 마이 지쳤제?”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노. 정신적 피로가 컸지만, 정신적 위로를 받기도 했지. 사막의 밤은 무섭도록 적막하고, 무섭도록 아름답다. 지평선에서 지평선까지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을 뒤덮는다. 별빛 쏟아지는 모래 언덕이 신기루처럼 물결친다. 낙타 방울 소리 아득히 들리면 사막의 달이 둥실 떠 오른다. 세상에 홀로선 방랑자의 고독이 전사의 가슴을 채운다.”
“와! 문학이다. 문학. 샹그릴라가? 무릉도원이가?”
무쌍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헬이 샹그릴라면 한국은 도솔천이다. 말에 따라 인간의 인식은 백팔십도 달라진다.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복면 쓴 사막 부족이 낙타를 타고 달리는 곳,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이 굶주림에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파리떼를 쫓는 곳이다.”
진순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아프리카는 사막과 정글, 그리고 야생 동물이 우글우글한 초원이다. 뿌리라는 영화에서 본 시커먼 쿤타 킨테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프리카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말라리라, 황열병,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같은 온갖 종류의 병명이 떠올랐다. 무쌍 역시 챠드에 파견되기 전에는 진순의 수준과 다를 바 없었다.
“내가 작전에 투입된 차드는 남과 북이 나뉘어 내전 중이었걸랑. 차드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축복받은 땅인 기라. 낮에는 얼굴이 익을 정도로 덥고, 밤에는 얼어 죽을 것 같은 끔찍한 땅이다. 모래바람이 끝없이 불고, 파리떼와 모기떼가 밤낮없이 피를 쪽쪽 빠는 나라다. 파리도 우리나라 파리와 달라. 말벌같은 놈이 주둥이를 처박고 피를 쭉 빨면 식겁을 하는기라. 물도 마음놓고 못 마신다. 석회질에 기생충이 득시글거린다. 그나마도 수년간 계속된 가뭄으로 강도 말라붙고, 호수도 말라붙었다. 삼일간 물한 모금 마시지 못할때도 있었거든. 낙타 목을 칼로 찔러서 피를 받아 묵기까지 했다. 그곳이 차드 북부 사헬이다.”
“엄마야! 아까는 환상적이더니 지옥이란 소리네. 오빠 무사히 돌아와 줘서 너무 고마워.”
“세상이 그런 거 아이가. 도회지 사람이 시골에 가마 목가적이고 낭만적이라 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 사막은 환상적이고 아름답지만 죽음이기도 하지. 그 혹독한 땅에서도 인간은 끈질기게 살아가더라.”
“여기도 별다를 것 없어. 지옥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불쌍한 사람이 많아. 내도 오빠가 없었으면 학교는커녕 염색 공단에서 독한 화공 약품에 찌들리고 있을끼라.”
“니는 강단이 있어서 내가 없어도 잘 해 나갈 끼다.”
진순은 머리를 흔들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 오빠처럼 온갖 난관을 이겨내고 홀로 서는 사람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다. 오빠가 도움을 주지 않았으면 연순이와 계순이도 점순이처럼 여차장 노릇을 할 것이다.”
“오빠, 배고프다. 옛날처럼 현지 조달해서 배를 채워볼까?.”
진순은 화제를 바꾸어 침울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임마, 샛강 꼬라지를 바라. 저렇게 더런 물에 사는 물고기를 우예 잡아 묵겠노.”
맑은 강물이 흐르던 샛강은 공장 폐수 거품이 둥둥 떠다니는 호수로 변해 버렸다. 어린 시절에 배를 채웠던 그 흔한 조개도 안녕이다.
“청명 밑이라 밭에서 거둘 남새도 없어. 오빠만 옆에 있으면 내는 배부르거든. 우리 그냥 걷자.”
무쌍이 비틀했다. 배가 부르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웬지 다른 의미로 들려 머리끝이 쭈뼛했다.
하중도 모래사장은 웬만한 해수욕장이 명함도 못 내밀만큼 넓다. 바닷가처럼 조개껍데기와 예쁜 조약돌도 많다. 진순이 하이힐을 벗어들고 모래밭을 울새처럼 깡충거렸다.
세찬 강바람에 흩날리는 긴 생머리, 팔랑거리는 청남색 플리츠 미디 서커트, 뒤집히는 치마를 수습하느라 바쁜 두 손.
달빛 여행, 아니 이별 여행이 된 비진도의 혜영이 오버랩되었다. 쏟아질 듯 반짝이던 별무리, 세상을 날려버릴 듯 세찬 해풍, 추위에 파랗게 변한 입술, 차가운 손을 가슴속에 불쑥 집어넣고 깔깔거리던 그녀, 열정적으로 분신을 빨아들이던 그녀, 아스라이 구름 속으로 사라지던 비행기, 볼을 척척히 적시던 남자의 눈물, 세찬 강바람이 해풍이 되어 구멍난 가슴을 휭하니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사랑은 한번이면 족한 기라.’
한차례 흔들린 마음이 제자리를 찾았다.
퀘퀘퀘- 요란한 꿩 소리가 그를 현실로 돌려놓았다. 하중도 관목숲은 물새와 철새 천국이다. 꿩이나 참새 같은 텃새도 많이 서식한다.
4월은 꿩이 한창 짝짓기할 철이다. 장끼 한 놈이 저공비행을 하며 울자 숲속 여기저기서 요란한 꿩 소리가 울렸다.
장끼란 놈은 까투리에게 위세를 보이느라 어리석은 짓을 자주 한다. 녀석은 존재감을 보이려고 숲이 떠나가라 울면서 저공비행을 한다.
저공비행을 하면 기류를 타지 못하므로 비행 거리가 짧아진다. 잠깐 날고 착륙하는 행동이 되풀이된다. 솔개나 매같은 맹금류는 물론, 삵이나 여우같은 지상 동물에게도 장끼가 쉽게 잡히는 이유다.
‘꿩 구이 좋지!’
반들반들한 조약돌을 몇 개 주워들었다. 덩치 큰 장끼가 표적이다. 무쌍이 소리 없이 숲속으로 스며들었다. 진순은 함께걷던 무쌍이 사라져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시무시한 포식자가 노리는 줄도 모르고 장끼가 경쟁적으로 법석을 떨었다. 퀘퀘퀘퀘- 요란한 울음과 함께 덩치 좋은 장끼가 까투리 옆에 내려 앉았다. 10미터 앞이다. 눈감고 던져도 명중시킬 거리다.
핏- 손을 떠난 무정한 조약돌이 정확히 머리를 때렸다. 까투리 앞에서 목을 쭉 뽑고 위세를 떨던 놈이 픽 고꾸라졌다. 화려한 깃털을 뽐내던 또 한 마리가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고 포식자에게 당했다.
사라졌던 무쌍이 관목숲에서 커다란 장끼 두 마리를 손에 들고 나왔다.
“오데 갔다 왔노? 어, 꽁(꿩)을 우예 잡았노?”
어리둥절해진 진순이 물었다.
“배고픈 내 동생을 위해서 자진 납세하라 켔다. 지들끼리 의논하디마는 두 놈을 밀어내더라고. 평소에 까투리를 독점하던 양아치라나. 긍게 꿩도 아랫도리 함부로 휘두르는 놈은 끝이 좋지 않은가 보더라.”
“호호호, 에이, 순 엉터리.”
진순이 배를 잡고 웃었다. 어릴 때도 희한한 재주를 부리던 오빠다. 4학년 때부터 힘이 세지기 시작한 오빠는 노루와 토끼도 잘 잡았다. 꿩 두 마리 잡는 정도야 놀랄 일도 아니다.
“남새는 머가 있으까?”
“봄동, 쑥갓, 풋마늘 대는 밭에 있을걸. 시금치도 있겠다. 근데 씻을 물이 없다.”
“하하하!”
무쌍이 크게 웃었다. 하비브 저택을 역공하려고 출동 준비를 마쳤을때다. 장쒼이 차량이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뺨을 맞은듯 벙찐 대원들이 얼굴이 생각났다. 얼마나 황당했던가.
엄동설한에도 남새가 있다. 땅을 파고 저장해 둔 배추와 무가 있고, 움파가 있다. 4월 말이면 제법 먹을 게 있어 그리 곤궁하지 않다. 문제는 세척할 맑은 물이 없다는 것이다. 출동 준비를 마치고 보니 이동할 차량이 없던 그때와 진배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