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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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은혜는 열배로, 원한은 백배로3
“조또, 내가 앓느니 죽는다.”
익숙한 것이 사라졌을 때는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짚은다리는 돌이 많은 만큼 물이 맑고 풍부하다. 물 맑은 고향에서 물을 사용할 수 없다니 얼척이 없다.
같은 물이지만 사헬과 짚은다리는 다르다. 한쪽은 생명인 반면 다른쪽은 공기처럼 당연히 존재한다. 심적 타격은 짚은다리가 훨씬 심했다.
등가 법칙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댐을 만들어서 홍수를 조절하고, 공단을 만들어 일자리를 제공했지만, 환경이 파괴되었다.
“강물이 똥물이 되었으니 그것들도 사라졌으려나?”
문득 어스름한 초저녁 물안개가 자욱이 깔리면 강물 속에서 기포처럼 솟아나던 군인들이 생각났다. 대오를 맞추어 의미 없이 행군하던 그것들도 사라졌을지 궁금했다. 낙동강 전투당시 강물속에 던져넣은 시체들이다. 자신이 죽인 프롤리나트 병사들도 떼 지어 사헬을 베회할지도……
“규화계나 만들어 볼까.”
검지 끝으로 장끼의 배를 스윽 그었다. 예리한 칼로 자른 듯 배가 쩍 갈라졌다. 내장을 몽땅 들어내고 진흙을 두껍게 발랐다.
진순이 마른 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피우고, 진흙 바른 꿩을 모닥불 속에 던져 넣었다. 두 사람은 불가에 앉아 꾸덕꾸덕 말라가는 진흙 덩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침묵이 흘렀다.
“오빠, 이자 그것들 우예 해야 안 되나.”
진순이 밑도 끝도 없이 불쑥 말했다. 고유명사를 대명사로 지칭했지만, 무쌍이 알아듣지 못할 리 없다.
“법적으로 처리하기가 곤란타. 내가 너무 성급했어. 그때는 눈이 뒤집혔다고 해야 하나.”
“강영숙이 유서도 있고, 그것들 자술서를 확보해 두었는데도 고소가 힘들단 말이가. 더러운 누명은 벗어야제. 그 망할 년이 자살했응께 어려울라나?”
진순은 집요했다. 정의심 강한 오빠의 심리를 이용해서 함정에 밀어 넣은 교활한 인간들이다. 그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꼴을 보자니 사흘 전에 먹은 밥알이 곤두섰다.
“거기 말이다. 법적인 처리는 곤란타. 내가 앞뒤 재지 못하고 그것들을 납치해서 뚜디리 팬 기 문젠기라. 강간 누명이야 벗을 수 있지만, 납치와 폭행죄로 다시 구속될걸.”
혼자라면 뒤집어엎어 버릴 수도 있지만, 이 기사 놈을 납치할 때 도와준 상한이와 홍기, 문식이가 문제다. 장씨 일가는 얼씨구나 하고 검찰과 경찰에 박혀있는 일족을 동원해서 설레발을 칠 것이다. 자신이야 별것 아니지만, 주위 사람이 피해를 당할 우려가 있다.
“오빠가 덮어쓴 누명은 우야고?”
“흐흐, 그때야 군바리들이 워낙 설치는 바람에 우짜지 못했지만, 이제부터 슬슬 시작해 봐야지.”
“우얄라 카노?”
“칼로 사람을 찌르면 찌른 사람에게 죄를 물어야제. 물론 도구가 된 하수인 찌꺼기도 그냥은 못 두지. 대충 정리하고 손도끼 패거리가 남았던가. 그런데 말이야 전쟁터를 전전하다 보이끼네 그게 또 벨 거 아이더라꼬.”
“벨 거 아이라꼬! 오빠 인생을 망쳐놓았는데 벨 거 아이라꼬?”
진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임마, 당한 놈은 내다. 니가 더 승질을 내노. 오빠 인생이 망쳐지긴 뭘 망쳐져. 그 여편네 덕분에 외국물도 먹고 돈도 왕창 벌었으니 오히려 잘됐구마.”
무쌍은 식식대는 진순의 등을 토닥였다.
“그때는 장씨 모녀를 죽일 작정까지 했었지. 화자를 묻을라꼬 땅 파다가 사부님께 들키가꼬 엄청 맞았다 아이가. 그런데 몇 번 죽다 살아 났디마는 그 까짓거 벨 거 아이더라. 아부지도 패륜을 달가워할 것 같지는 않고 말이야.”
“아이고 보살 나셨네.”
무쌍의 얼굴에 진짜 보살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알기엔 태양을 직시할 수 있는 동물은 카멜레온이 유일하거든. 한평생 살아가면서 하늘을 직시할 수 있을 만큼 떳떳한 인간은 없는 기라. 중생은 죄를 짓고 살아가기에 중생인 기라. 내한테 복수하고 싶은 사람도 수없이 많을걸.”
“우와, 내 오빠 맞아? 스님 할부지가 위대하신 분은 맞네. 뒤끝 작렬하는 울 오빠를 관음보살과 맞짱뜨게 만들었어. 그래서? 응무소주 이생기심하면서 기양 잊고 산다꼬?”
진순의 비아냥에 흐릿하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초겨울 무서리처럼 차가운 미소다.
“그럴 수야 없지. 일단 백부라는 사람과 그 마녀가 부처님처럼 섬기는 돈을 탈탈 털어낼 생각이다.”
“바람직하긴 한데……. 너무 약한 복수가 아닐까?”
진순이 머리를 외로 꼬았다. 돈이야 벌면 된다. 그게 무슨 큰 복수가 되겠는가. 외국에 다녀오더니 확실히 사람이 물렁물렁해졌다.
“흐흐흐, 돈에 대한 관념이 우리와 다른 인간들이다. 니한테 가장 소중한 기 머꼬?”
“당근 오빠와 우리 가족이 제일 소중하지. 비교 대상이 없으니 절대적으로 소중하다고 해야 하나?”“바로 그거다. 누가 오빠와 가족을 네게서 빼앗아 가면 순이 니는 어떻게 될까?”
“미치겠지. 아! 그렇구나.”
진순이 땡중 도 터지는 소리를 냈다.
오빠를 잃는다? 생각조차 끔찍하다. 살아갈 의미가 사라진다. 돈을 신으로 여기는 사람이니 돈을 말려 버리면 그거야말로 끔찍한 고통이 될 것이다. 오빠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장씨 일가가 갑자기 불쌍해졌다.
“와, 오빠 사악하다.”
진순이 호들갑을 떨었다. 오빠는 당하고 참을 사람이 아니다. 아니다. 역시 오빠는 고단수다.
“후후후! 객쩍은 소리 말고 요기만 하고 아부지 산소에 들르자.”
중언부언하는 사이에 진흙이 벽돌색으로 변했다. 무쌍이 진흙을 툭툭 깨어냈다. 진흙에 달라붙은 깃털이 비닐 포장지 뜯기듯 뽑혀 나왔다.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하얀 알몸이 드러났다. 소금과 후추를 골고루 뿌린 다음 칡 이파리로 감쌌다. 다시 겉을 진흙으로 감싸서 모닥불에 올려놓았다.
늘 산을 타는 심마니들은 산에서 대충 배를 채우기 일쑤다. 그들은 소금, 후추, 고춧가루 같은 기본양념은 휴대한다. 무쌍도 마찬가지다. 어릴때부터 기본 양념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 버릇이 지금도 여전했다.
“동생아, 오빠 능력의 한계구나. 요기나 하자.”
진흙을 깨어내자 구수한 냄새가 확 퍼졌다. 진순은 흐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오빠는 마술사다. 단 한 사람의 관객을 위해 공연하는 마술사다. 행복감에 정신이 둥둥 떠다녔다.
“고마워 오빠, 선조가 의주로 몽진할 때 오빠가 있었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 양반이 도망가기 바빠서 생쌀을 씹으며 토꼈다 카더만.”
“싫다 임마, 내는 조선이란 나라도 싫고, 그 인간은 더욱 싫거든. 내가 호종했으면 그 인간을 임진강에 발로 차넣을 끼다.”
무쌍이 부르르 떨었다. 조선 왕조 자체가 싫지만, 인조, 선조, 고종은 생각만 해도 벼룩이 떼로 달라붙은 듯 스멀거렸다. 무능과 어리석음, 소아적인 근시안과 시기심의 아이콘이 선조다.
백성을 버리고 야반도주한 인간, 임진강에서 화석정을 불 질러 뱃길을 밝힌 인간, 외로이 싸우는 이순신을 질투해서 역적으로 몰아간 인간, 전장에 코끝도 비치지 않은 인간이 선조다. 선무공신첩을 내릴 때 이순신을 칭하여 [경을 애도하는 감회는 언제나 그리움에 맴돌 것이로다. 좌의정으로 품계를 높여 그 밝은 영혼을 더욱 위로하고, 사당을 열어 제사를 올려 그 보답을 다 하고자 한다. -중략- 오직 그대 혼령은 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고로 이에 교시하노니 마땅히 자세히 알지니라.]라고 하였다.
나의 특별한 은총? 기가 막히다 못해 밥알이 곤두설 노릇이다. 임금이란 자가 이토록 우매했으니 백성만 가엽게 되었다.
“에구, 또 또 승질!”
진순이 꿩 다리를 북 찢어서 무쌍의 입에 턱 물렸다. 그대로 두면 한바탕 역사 설교를 들어야 한다. 오빠는 다 좋은데 나라 걱정이 너무 많다.
역사 설교는 지겹다. 옛날에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혼자 도망갔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당장 월세가 문제고, 등록금이 문제인데.
“그 자식, 차암!”
무쌍이 흐뭇한 눈으로 진순을 바라보았다. 맨손으로 고기를 북북 찢는 모습이 그럴 수 없이 자연스럽다. 에델이 조신한 인텔리 미인이라면 진순은 순백의 자연미인이다. ‘헛!’ 흠칫했다. 에델이 생각나다니.
“우와 쥑인다. 넘 맛있다.”
당황한 무쌍이 설레발을 쳤다. 남녀관계에는 순진하다 못해 바보스러운 무쌍이다.
빠드득- 빠드득-
“에고, 뼈를 묵지 말라 캐도 맨날 씹어 묵네. 조류 뼈는 가늘고 단단해서 위험하다니깐.”
파란트로푸스의 이빨이 하이에나 이빨보다 더 단단하고, 소화액이 악어에 필적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진순이다.
“잔소리쟁이, 입 닥치셔!”
쫑알대는 진순에게 꿩 다리를 턱 물렸다.
영곡마을 아버지 산소는 말끔했다. 봉분이 뗏장으로 빈틈없이 덮여있다. 잡초도 별로 없다. 묘터도 정기적으로 벌초한 흔적이 역력했다. 아까시나무나 칡덩굴도 침습하지 못했다. 매년 벌초를 깔끔하게 했다는 뜻이다.
‘누굴까?’
벌초할 사람이 없다. 짚은다리 친척들? 손에 장을 지진다. 시기심 덩어리인 그들이 아버지 산소를 벌초했다면 일억을 사례비로 줄 용의가 있다.
하동 아지메? 아니다. 여자 대부분은 남자와 달리 벌초에 관심이 없다. 조상묘를 벌초해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강하지 못하다. 아버지의 옛 친구분이 찾아와 벌초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토지 소유권이 돌아오고 묘소가 관리되고 있다?
두 가지 희박한 가능성이 있다. 생존한 엄마가 소유권을 회복했거나, 백부가 미쳐서 집과 토지를 돌려준 경우다.
첫 번째는 그야말로 희망 사항이다. 엄마가 돌아왔으면 하동 아지메가 모를 리 없다. 두 분은 친자매나 진배없으니 말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더 희박한 가정이다. 백부와 백모가 변하느니 짚은다리가 바다로 변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어쨌든 키는 백부가 쥐고 있는 셈이다. 참회계와 천도재를 마치는 길로 백부부터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왔다.
진순이 준비해온 제수를 진설했다. 참배를 마치고 무덤에 막걸리를 뿌린 다음 담배에 불을 댕겨 향로석에 올려 놓았다.
“아부지가 담배를 억수로 좋아했지예. 이기 코히바 지골로라카는 물 건너 온 비싼 담배라요. 일찍 돌아가셔서 억수로 억울하지요. 살아 계셨으마 아들이 세상에서 젤로 좋은 담배를 한 바 소쿠리 사다 드릴낀데 말임더. 하긴 아부지가 살아계셨으마 사건을 치고 외국으로 도망갈 일도 없었겠지요.”
무쌍이 상석 앞에 털푸덕 앉아서 사설을 늘어놓았다. 무덤에서 내려다보면 영곡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기슭 마을 앞으로 전답이 펼쳐지고 위쪽에 저수지가 있다.
아버지가 농약을 뿌리다 중독된 논도 보였다. 아버지가 일하는 동안 옆 개울에서 가재와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행복과 서러움, 고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아부지, 약속대로 돈을 마이 벌어 왔심더. 아부지는 아들 혼자 잘 묵고 잘 살기를 바라지는 않겠지요.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힘든 사람을 도와줄라 캅니다. 오지랖 넓다고 하지 마이소. 인간이 오래 살아야 백 년 아입니까.”
10년 전, 큰집을 떠나던 날 아버지 무덤을 찾았었다. 가재를 구워 올리고, 발 고랑 내 나는 고무신에 물을 받아 상석에 올렸다. 아버지에게 돈을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차려드리겠다고 했다.
약속대로 돈을 많이 벌어왔다. 아버지가 용병이 된 아들을 반겨 주실까?
알 수 없다.
마음 한구석에 꾹꾹 눌러 두었던 엄마의 얼굴이 불쑥 떠올랐다. 엄마가 사라진 지 14년이 지났다. 엄마 나이가 사십다섯인지 사십여섯인지조차 헷갈렸다.
거대한 흐름 속에 묻힌 자신은 초라했다. 살아남기에 급급해서 적극적으로 찾아볼 시도를 못 했다. 인연의 흐름을 억지로 비틀고 거부하지 말라는 스승의 말씀도 다리를 잡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젠 미성년자도 아니고 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국의 조폭을 통일해서 엄마를 찾아볼까 하는 실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단 공부를 해야지.’
피 묻은 손으로 다시 책을 잡는다는 게 웃기지만 인간 사회는 그렇게 굴러왔다. 살인 자체를 매도한다면 영웅시되는 징키스칸, 한니발, 케사르, 알렉산더, 나폴레옹같은 인간들이야 말로 엄청난 죄인이다.
그들이 희생시킨 인간의 숫자에 비하면 자신이 죽인 숫자는 새 발의 피다. 국가라는 괴물은 이해관계에 따라 극악한 범죄도 면죄부를 던져 준다.
일본의 더러운 전범들조차 도조 히데키를 비롯해서 겨우 7명이 사형당했다.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히로히토 일왕은 책임을 묻지도 지지도 않았다. 더러우면 더러운대로 깨끗하면 깨끗한 대로, 그것이 사바세계다.
자신을 보라. 수천 명을 죽였다고 훈장과 엄청난 돈을 포상받았다. 세상은 그렇다. 좌절하든 도전을 하든 모두 자신의 책임이요 자신의 인생이다.
“아부지, 편히 계시소. 그동안 외국에서 쌈질하느라고 못 왔심더. 자주는 못 옵니데이. 지도 공부하고 먹고 살라카마 바쁘거든요. 엄마는 꼭 찾아 오겠심더. 잘 계시소.”
작별 인사를 마친 무쌍이 건들건들 산에서 내려갔다. 진순은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 말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귀신같이 구별하는 진순이다.
덜렁덜렁 대문을 들어서는 무쌍을 괴성이 맞았다.
“꺄아, 오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