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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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은혜는 열배로, 원한은 백배로4
처녀 넷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대학생이 된 연순과 계순, 고등학교 다니는 말순, 중학생인 또순이다. 처녀 넷이 안고, 비비고, 물고, 뽀뽀하고, 난리다. 식겁을 한 무쌍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스톱, 스토옵!”
말만 한 처녀 넷의 묵직한 유방 세례에 식은땀이 쭉 흘렀다.
“야야, 그 먼디서 얼매나 고상했노. 시상에 인물 보래이. 헌헌장부가 되었구마. 안 그래도 니가 다녀갔다고 덕산댁이 살짝 말해 주더라.”
인정 많고 눈물 많은 하동 아지메다. 소매를 잡고 놓을 줄 몰랐다. 아니 아들이나 진배없는 무쌍이니 애틋한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고생은요, 외국에서 잘 먹고 잘 놀다 왔심더. 벨 일은 없었습니까?”
“우리야 사는 게 맨날 그렇지. 어여 들어가자.”
네 자매가 무쌍을 잡아끌고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진순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저게 오빠의 힘이다. 존재만으로 기쁨을 주는 사람이 오빠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여전히 짚은다리 무쌍으로 남은 오빠다. 그것이 바로 오빠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증거다.
“배고프제? 큰 애가 니 점심도 못 먹었다 카더라. 말순아, 달가리 뽑아 온나. 연순이는 물 끓이고 닭 잡아라. 계순이는 찌짐 붙이라. 우순아, 얼릉 물 끓여라.”
하동 아지메가 딸들에게 일사불란한 지시를 내렸다. 사헬에서 어리바리하던 깨비텐은 명함도 못 내밀 지휘관이다.
득달같이 달려간 말순이 봉새기에서 달걀 두 개를 꺼냈다. 배시시 웃으며 내미는 달걀 두 개, 온기가 가시지 않은 달걀만큼이나 따뜻한 정이 흘렀다. 이것이 가족이다.
달걀 아래위를 검지로 콕 찍어서 홀짝 빨아 마셨다. 고소함과 비릿함이 어울린 독특한 풍미가 입안에 맴돌았다. 캐비어나 트뤼플르(송로버섯 전채요리) 전채 요리도 이보다 귀중할 수는 없다.
여자가 여섯인 하동댁의 부엌살림은 과연 대단했다. 순식간에 잔칫상에 버금갈 식단이 차려졌다. 하얀 쌀밥과 시래깃국, 각종 나물 무침, 잡채, 된장찌개, 두부찌짐과 묵무침, 제대로 된 집밥이다. 갑자기 목이 메었다. 제대로 된 밥상을 받아 본 게 언제든가?
식당에서 먹는 프랑스 요리는 맛과 격조가 있다. 그뿐이다. 정이 없다. 역시 자신의 뿌리는 돌덩이만 지천인 짚은다리다.
진순이 큼직한 양은 솥을 통째로 들고왔다. 푹 곤 닭백숙이 가득하다. 구수한 냄새에 허기가 맹렬히 몰려들었다. 오전에 먹은 꿩 한 마리는 흔적도 없이 분해 흡수된 지 오래다.
자매 넷이 상머리에 앉아 질문을 쏟아냈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사회학적 질문부터 돈을 많이 벌었느냐는 경제적 질문, 피부가 어찌 이리 매끄럽고 단단하냐는 생물학적 질문까지 끝이 없었다.
진순이 동생들은 매운 손만큼이나 입도 매웠다. 이중 교차 사격으로 쏟아지는 질문에 뇌가 다운되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이 가스나들이 오빠 밥도 못 먹게 하는구마. 입! 입! 입!”
하동댁이 특유의 포스로 입을 외치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자신은 흉내도 못 낼 포스다. 가족의 모습이다. 흐뭇한 미소가 절로 새어 나왔다.
[블랙맘바, 가족을 만들어라. 지치고 마모된 영혼이 쉴 곳은 사랑하는 여자의 육체가 아니라 가족의 품이다.]샤트르가 죽기 전 했던 말이다.
‘샤트르 당신 말이 맞았소.’
멘토였던 샤트르가 새삼 그리웠다.
‘이 자식은 간호원에게 홀딱 빨리지 않고 제대로 즐기고 있으려나?’
은근히 에밀이 걱정되었다.
무쌍의 먹성을 잘 아는 하동댁이다. 큰 장닭과 찹쌀 한 되를 넣은 닭 백숙 한 솥, 쌀 한되와 차조 한 홉을 넣어 지은 밥이 한 솥이다.
“쌍아, 천천히 무라. 체하겠다.”
하동댁이 볼이 미어터지도록 밥을 퍼넣는 무쌍을 타박했다.
“오빠는 돼지.”
“으흐흐, 또순아 니가 십 년 전에도 그말을 했거던.”
“흥, 오빠는 머리 나쁜 돼지. 내 이름이 우순이라고 십이 년 전에 이미 말했거든요.”
“조 조 버르장머리없는 년, 오빠가 좋다 좋다 카이끼네 말뽄새가 거기 머꼬? 연순아, 빗자루 꽁새기 어디 있노?”
하동댁이 시퍼렇게 화를 냈다. 무쌍이 애들을 너무 귀여워하다 보니 지집애들이 위아래를 모르고 까불어 댄다.
“헤헤, 오빠 개안치 그지. 오빠가 돼지보다 더 마이 묵자나 그쵸.”
우순이 얼른 무쌍의 등에 숨어서 쫑알거렸다.
“또순이 말이 사실이긴 하지.”
“아오, 나 미쳐. 우순 이라니까.”
“오빠도 알고 있어. 또순아.”
“아악! 너무해.”
아직 치기를 벗어나지 못한 우순이 무쌍을 당하기엔 턱도 없다. 식사 자리가 용병대 식당만큼이나 소란스러워졌다.
“아지메, 옛날에 불독에게 맞아서 갈비뼈 뿌라졌을 때 닭백숙 보내준 거 기억나지요?.”
“그 숭악스런 일을 머할라꼬 기억하노. 지금도 그것들 생각하마 살이 벌벌 떨린데이.”
하동댁이 혀를 찼다. 참 어려운 시절이었다. 남편이 사고로 죽는 바람에 그나마 몰래 내 주던 무쌍의 육성회비를 내주지 못했다. 그 때문엔 교감 놈의 발에 차여 갈비뼈가 세 개나 부러졌다.
조카를 소 부리듯 일을 시키면서 육성회비는커녕 연필 한 자루 사주지 않은 못된 인간들, 생각만 해도 살이 벌벌 떨렀다.
“프랑스에도 코코뱅이라 카는 닭백숙 비슷한 요리가 있거든요. 닭고기에 양파, 마늘, 햄, 버섯등을 넣고 포도주로 조려내는 요린데 우리 돈으로 삼만원쯤 해요.”
“세상에 음식 한 가지에 삼만 원이나?”
하동댁이 화들짝 놀랐다.
“프랑스는 잘사는 나라라 요리도 비싼 편이거든요. 코코뱅을 먹을때마다 아지메가 보내준 닭백숙이 생각나는 기라요.”
“우야노! 그때는 숭악한 인간들 밑에서 니가 못 죽어서 살았제. 그 고생을 하고 컸으마 쪼매 핀해져도 되는데, 만리타향에 가서 총들고 싸운다 카이끼네 내가 억장이 무너지는 기라.”
하동 아지메가 옷고름을 들어 눈물을 찍어냈다. 옆에서 닭살을 뜯어주던 진순의 눈에도 눈물이 돌았다. 어린 동생들이야 잘 모르지만, 오빠의 고단한 삶이 새삼 서럽고 안타까웠다.
“아지메, 옛날 아부지 집과 토지가 지 앞으로 바뀌어 있던데 혹시 아는 거 있심니꺼?”
“고레? 시상에 우예 그런 일이 다 있노? 내는 모린다. 옛날에 니 백부가 팔아서 버스 샀다 아이가. 형부 귀신이 돌리 났나?”
하동댁의 눈이 둥그레졌다. 무쌍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하동 아지메가 모른다면 백부가 몰래 소유권 이전을 했다는 이야기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무쌍은 네 자매에게 두 시간 동안 심문을 당하고서야 풀려났다.
“오빠가 예정 없이 오니라꼬 선물을 준비 못 했거든. 대신에 용돈을 주꾸마.”
“꺄아, 오빠 만세!”
말순이와 우순이는 십만 원이란 거액의 용돈을 받고 입이 찢어졌다.
“연순이와 계순이는 데이트 비용도 필요하고 화장품도 필요하제.”
“하모요 오빠”
“마니 마니 필요해요.”
연순과 계순이 턱을 바짝 치켜들었다. 진순은 미소를 짓고 하동댁은 아이고 저것들 하며 채 머리를 흔들었다.
“엤다. 옷도 사고 화장품도 사라.”
지갑에서 빳빳한 수표를 뽑아 둘에게 나누어 주었다.
“꺄오오!”
처녀들의 환성이 마당을 울렸다.
“허이고 야야, 우짤라고 그래 많은 돈을 가시나들한테 주노. 이 일을 우짜마 좋노.”
삼십만 원이면 웬만한 대기업체 직원의 두 달 치 봉급이다. 하동댁이 놀랄만 했다.
“쓸라고 번다 아임니꺼. 내 동생들이 기죽어 지내마 오빠 체면이 아니지요.”
푸짐한 용돈을 받은 자매들이 희희낙락했다.
“오빠가 뼈 빠지게 번 돈이다. 아껴쓰라 이것들아.”
하동댁이 딸내미들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무쌍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녁 예불땜에 가봐야 되겠심더.”
“옹야. 늦으마 안되제.”
무쌍이 배웅 나온 하동댁에게 통장을 내밀었다.
“이기 머꼬?”
“아지메, 다섯 놈 등록금 통장임니더. 사립 대학 한 학기 등록금이 사십만 원 정도 하지예. 이천만원입니다. 동생들 학비로 쓰고, 소를 몇 마리 사서 키우시소.”
하동댁이 기함을 했다.
“시상에, 그 큰돈을 내가 우예 받노. 안된다. 니가 피 흘리가꼬 번 돈인데 말도 안되는 소리다. 돌아가신 형부가 내를 욕할끼다.”
무쌍이 놀라는 하동댁의 손에 통장을 쥐어 주었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손이 멧돼지 바위처럼 거칠었다.
“아부지도 좋아하실 낍니더. 지가 더러운 일을 당해서 대학을 못 갔다 아임니꺼. 세상에 나가보니 우얐뜬동 배워야 사람 구실을 하겠습디다. 점마들 공부시키시소. 딸아이도 배워야 하는 세상입니다.”
“아이다, 니가 고향을 떠나서 얼매나 고상해서 번 돈이고. 벌씨로 받은 돈만 해도 억이 멕힌다. 내가 아이다 시퍼민서도 저것들 대학 보내느라 그 돈을 썼고 마는. 민구시러버서 이 돈은 몬 받는다.”
평생을 순박하게 살아온 하동댁이다. 어른이 되어서 염치없고 명분 없는 돈을 받을 수 없다.
“아지메, 저 돈 마이 벌었심더. 사람 사이 정을 우예 돈 몇 푼에 비기겠습니까. 이깟 종이 쪼가리보다 말순이가 준 따뜻한 달가리가 백배는 더 가치 있는 기라요. 돈은 필요한 사람이 쓰야 돈인 기라요.”
하동댁이 끝내 거부하자 진순이 통장을 받았다.
“엄마, 오빠 마음 핀하게 해 드리라.”
“내사마 모리겄다. 니들이 마이 배웠응께 알아서 하던둥. 근디 자고 가마 안되나. 스님이 마이 머라 카시나?”
“하루라도 예불 빼묵으마 다리 몽뎅이 뿌지린다 캅디더.”
“에휴, 스님이 그래 무서버가꼬 우야노. 순이 니는 오빠 바래다주고 오니라.”
무쌍이 하동댁을 꼭 안았다.
“아지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데이. 엄마가 돌아오시마 반겨 맞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지요.”
“오이야, 그렇고말고. 언니가 돌아오마 따듯한 밥해줄 사람이 있어야제. 예불 늦으마 스님께 혼날라. 얼릉 가 봐라.”
무쌍의 훤칠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하동댁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늘씬한 큰 딸과 너무 잘 어울린다.
“언니, 자들이 서로 좋다카마 내는 좋심더. 쌍이가 저리 훌륭히 컸는데, 언니는 어느 하늘 아래 있는지……”
하동댁이 돌아서며 소매로 눈물을 찍어냈다.
한 달간의 영가 발원을 끝낸 무쌍은 곧바로 운전면허시험장에 들렀다. BMW 바이크를 타려면 소형 면허를 별도로 취득해야 했다. 125CC 이하 운행은 자동차 면허로 가능하지만 가물치는 1200CC 대형이다.
프랑스 운전면허증은 국내 면허로 쉽게 전환되었다. 번역 공증과 사진 제출, 발행 비용 납부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면허까지 준비했지만, 가물치는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답답해진 그는 국산 자동차를 한 대 샀다. 스승을 모시고 다니려면 승용차가 필요했다. 스승님이 건강하지만 연치가 구순에 이르렀다. 아무리 신통을 얻은 스승이지만 신체 마모는 어쩌지 못한다. 자신처럼 신체가 개조되지 않은 다음에야 정해진 하드웨어적 노화는 어쩔 수 없다.
중고 포니를 사들인 일주일 후, 무쌍은 뜻밖의 선물에 펄쩍 뛰었다. 헤밀턴이 피아트 판다를 선물로 보냈다. 피아트사에서 1982년에 출시한 850CC 엔진을 얹은 신형 판다다.
놀란 무쌍이 헤밀턴 참사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헤밀턴은 껄껄 웃었다.
-천성사 고갯길을 오르내리려면 소형차가 적당해서 판다를 골랐네. 제법 비싸지만, 자네가 선물한 발터PPK 가치에 비하면 절반 도 안 된다네. 멍크, 이 거래, 아니 선물 교환은 절대로 취소할 수 없네.
헤밀턴이 단호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무쌍은 실소했다. 반군 사령부에서 장난삼아 걷어 온 깃발이 은장 권총으로 바뀌더니 이젠 명차로 바뀌었다. 다음에는 승용차가 장갑차로 바뀔지도 몰랐다. 안데르센 동화같은 진행에 헛웃음이 나왔다.
무쌍은 헤밀턴에게 이렇게 말했다.
“댕큐, 재화의 가치는 사용자의 효용가치와 비례하죠. 나도 절대 취소할 수 없어요.”
장탄수 7발, 자살용으로나 적당한 권총 한 자루는 아무것도 아니다. 총기의 가치는 효율적인 살상력에 달려있다. 아름다운 외관, 역사적 가치, 골동품적 가치 따위는 일고의 고려 사항이 아니다.
같은 가치관의 연장선에서 연녹색의 피아트 판다는 그를 열광시켰다. 스승님의 발이 될 차량이다. 연비 좋고, 날렵한 외관도 좋다. 뒷좌석을 접어서 침대나 화물 적재용으로 쓸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효율성이란 측면에서 포니와 비교불허다.
이튿날, 무쌍은 입이 찢어졌다. 약초와 버섯을 채집해서 돌아오니 오매불망 기다리던 가물치가 떡하니 암자 마당에 서 있다. 머피의 법칙과 샐리의 법칙이 뒤섞였다. 국산 포니를 산 일주일 후에 피아트 판다가 오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서 가물치가 도착했다.
귀국한 지 한 달하고도 보름만이다. 국내 탁송 처는 프랑스 대사관이다. 첨부된 외교 행낭에는 친절한 사과문까지 동봉되어 있었다.
가혹한 환경에 시달린 부품을 교체하고, 전체적인 수리를 하느라 특송이 늦었다는 내용이다. 그러고 보니 삐까번쩍하다. 수리가 아니라 아예 새것이다.
사과문이야 있든 없든 상관없다. 비싼 수리비를 당국이 부담했다는 사실에 흐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