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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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 시리아 루만 작전14
“잠깐, 인간이라면 누구나 측은지심이 있다. 인간이 인간을 아끼지 않으면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겠나? 내가 한 일은 당연한 일이다. 찬사받을 일이 아니다.”
더 듣고 있다간 낯가죽이 벗겨질 것 같았다. 민망해진 블랙맘바가 바크리의 말을 끊었다. 옴부티에게 단련되지 않았으면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바로 그겁니다. 우리 가족은 아무런 잘못 없이, 정교도라는 이유만으로 끝없이 핍박받았습니다. 뚜바이부르파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처음 본 이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예수님이 위대한 이유는 그분이 힘없고 외로운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뚜바이부르파님이 어떤 존재인지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당신에게 반했습니다.”
“어허, 이거 참…….”
바크리의 박력에 밀린 블랙맘바가 버벅거렸다. 자신은 종놈이 되기 싫어서 그토록 몸부림쳤는데, 자신의 종이 되겠다는 사람이 속출한다.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 수 있나!
“험!”
서재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주렴을 제치고 알리 노인이 들어섰다. 블랙맘바가 일어서서 얼른 자리를 권했다.
“대화 중에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유창한 프랑스어다. 블랙맘바는 눈만 끔벅거렸다.
“내 아내와 며느리를 사랑하지만, 여자들의 입은 믿을 게 못됩니다. 일부러 불어를 모른 체했습니다. 사도님께서 이해해 주십시오.”
블랙맘바는 쓴웃음을 지었다. 여자의 입이 갈대처럼 가볍다는 인식은 동서양 구분이 없는가 보다.
“이해한다. 그리고 나는 사도가 아니다.”
“죄송합니다. 불편하시면 소인도 자식놈처럼 뚜바이부르파님이라 부르겠습니다.”
“호칭은 아무래도 좋다. 가족이지만 대화를 엿듣는 행동은 점잖은 태도가 아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죄스런 일이지만 가족의 일이고, 사안이 중대한 만큼 듣게 되었습니다. 나는 세상 사람을 모두 불신해도 내 아들만은 믿습니다. 믿음도 튼튼하지만, 정의감과 충심이 남다른 아이입니다. 불의를 못 참고 의리를 앞세우는 성격 때문에 결국 사달이 벌어졌습니다. 누대를 이어온 재산과 명예를 잃고, 오지에 처박힌 이유는 부패한 정권과 세속화된 종파 때문입니다. 내 아들을 거두어주십시오. 아니 우리 정교도를 거두어 주십시오. 언제 샤비하 망종들이 들이닥쳐서 내 며느리를 능욕하고 손자들을 해칠지 모릅니다. 지금도 감시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아들과 손자만이라도 늑대들에게 쫓기지 않고, 인간답게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허, 이거 참!”
블랙맘바는 절로 탄식이 나왔다. 이 세상엔 힘겹게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자신의 노력만으로 어쩔 수 없는 환경이다. 그 때문에 옴부티와 에델을 사헬 동부로 보내지 않았던가.
사부님이 인연중중이라 했다. 새로운 인연이 자꾸 생긴다. 바크리는 자신을 비겁자라 했지만, 누구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다. 죽음을 감수하고 교도들을 보호한 사람이다. 가족을 사랑하기에 움직이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의인(義人)이라 한다. 그는 바크리 일족을 차드땅으로 옮길 결심을 했다.
“바크리, 나 동방불패는 아프리카 북부에 자치구를 준비 중이다.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는 땅, 열심히 일하면 잘사는 땅,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땅, 차별과 구분, 특권이 없는 땅을 준비 중이다. 따르겠나?”
“뚜바이부르파님을 따르겠습니다.”
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바크리와 알리 노인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나와 함께 하려면 명심해야 할 마음가짐이 있다.”
“경청하겠습니다.”
“바크리, 당신은 시리아 정교회 신도를 이끄는 부제다. 이스라엘을 보아라. 저들이 한뼘만 양보하면 팔레스타인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은 나라없는 설움을 겪을 만큼 겪었다. 누구보다 나라없는 설움을 아는 그들이 뿜어내는 오만하고 이기적인 행태와 특권의식을 보라. 당신은 자신의 종교, 본인이 속한 집단이 옳고, 다른 기독교와 이슬람이 틀렸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의 교리만이 옳다는 교조적 아집에 사로잡혀서 우월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는가? 지금까지 핍박받은 분노와 원한을 또 다른 약자에게 쏟아붓고자 하는 편협한 마음은 없는가? 그대의 영혼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가?”
바크리와 알리 노인은 눈이 부셨다. 식탁에서 함께 웃고 즐기던 청년이 아니다. 위엄이 줄줄이 뻗어나온다. 사자처럼 위엄있는 목소리가 말의 의미를 머릿속에 콱콱 틀어박았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가? 라는 마지막 말에 가슴이 덜컹했다. 언령이다.
“뚜바이부르파님, 나 바크리는 이교도란 말만 들어도 공황 증세가 나타납니다. 증오와 편견이 범벅된 이교도란 말 속에는 말살이란 의미가 항상 붙어 다녔습니다. 이슬람도 기독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와께서 태양을 기브온 위에 멈추게 하여 여호수아가 아모리 사람을 전멸시키게 했다. 여호수아 10장의 내용입니다. 독선이고 지독한 이기주의입니다. 신이 어찌 인간의 다툼에 끼어들어 다른 인간을 전멸시킨단 말입니까. 진정 사실이라면 그 신은 이스라엘만의 신이지요. 그야말로 인간이 위로를 얻으려고 신을 창조한 격입니다. 정녕 신이 그러하다면 저 바크리는 신을 버리겠습니다. 뚜바이부르파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삼겠습니다. 뚜바이부르파님은 신의 사도가 아니라 화신이고 인간입니다. 나 바크리는 더 이상 신에게 매달리지 않겠습니다. 뚜바이부르파님의 끝없는 욕심에 편승하겠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 구별없는 세상, 특권없는 세상을 내 스스로 만들겠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편안히 쉴수 있는 세상, 같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을 제 아들딸에게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사나이가 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늙은 몸이지만 뚜바이부르파님의 욕심이 이루어지도록 뼈가 부러지라 일하고 싶습니다.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재산이 있든 없든, 마음에 벽을 세우지 않겠습니다.”
바크리와 알리 노인의 눈이 열정으로 활활 타올랐다.
“나는 삶이 인간의 조건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오,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밑에 인간없다. 이미 어르신이 나를 가족이라 하지 않았나. 종이니 하인이니 끔찍한 말은 더 이상 하지 않도록 하라. 알리 자디르, 바크리 자디르, 형제여 잘 부탁한다.”
블랙맘바가 일어서서 허리를 숙였다. 알리와 바크리가 벌떡 일어나서 블랙맘바의 손을 잡고 꿇어앉았다.
“오오, 감사합니다. 일족을 대신해서, 형제들을 대신해서 뚜바이부르파님께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즐겁게 뚜바이부르파님의 종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알리 자디르, 바크리 자디르, 이로써 당신을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
블랙맘바는 오체투지를 한 알리와 바크리를 일으켰다. 이로써 역사와 종교에 밝은 인재를 얻었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바크리는 옴부티와 쌍벽을 이룰, 어쩌면 옴부티 이상인 집사감이다. 자치구를 만들려면 인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문득 쫄따구가 걱정되었다. 선우현은 직선적이고 과시하기 좋아하는 성격이다. 에밀처럼 멍청하지는 않지만, 남에게 사기당하기 딱좋은 스타일이다.
인간은 직접 큰일에 부딪혀보고 난관을 겪는 가운데 성장한다. 바로 자신의 모습이다. 일부러 선우현만 사마리아 농장으로 보냈다.
그래도 걱정이다. 정신 차리라고 수차례 밟아주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잘하고 있겠지.’
멀리 아프리카에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아크라를 불러 귀를 후비게 했다.
“이거이 와킬이 내래 욕하는 거지비. 큰일 났슴둥. 옴부티에게 뒈지게 혼나게 생겼슴둥.”
남자의 걱정만큼이나 귀가 더 가려워졌다.
“바크리, 당신의 사촌 모하메드를 만나야겠다.”
“모하메드가 뚜바이부르파님을 만나면 무척 기뻐할 겁니다. 밤이 되어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내가 움직이면 어떤가?”
“무카바라트의 감시체계는 조밀합니다. 곳곳에 무카바라트와 샤비하가 감시의 눈길을 번득입니다. 이방인은 바로 포착됩니다. 정보원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허, 이런 산간 마을까지 그렇게 감시하나?”
“보기보단 거주민의 숫자가 많습니다. 마단끼 호수 주변에 샬란과 코베리카를 비롯한 5개 마을이 있습니다. 대략 2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무카바라트는 130명, 샤비하와 정보원은 대략 10%인 2천명이라 보시면 됩니다.”
“헐!”
블랙맘바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폭력배와 정보원이 인구의 10%나 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알 카포네가 설치던 시절의 시카고도 그 정도는 아니다.
“이곳 코베리카 지역을 담당하는 무카바라트가 악질입니다. 아자르라는 쿠르드 족인데 칼을 잘 씁니다.”
“칼을 잘 쓴다고?”
강하 지점에 묻어버린 남자 둘이 생각났다. 중년 남자의 칼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혹시 아자르라는 놈이 토브를 걸치고 다니는 중년 남자 아닌가? 눈썹 위에 검은 사마귀가 있더군.”
“헉, 바로 그놈입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블랙맘바가 빙긋이 웃었다. 새벽에 죽여버린 놈이 바로 그놈이라니 세상이 좁긴 좁다.
“오늘 새벽녘에 그놈과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젊은 놈을 만났다. 놈들은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한다.”
“헉!”
“그럴 수가! 콜록콜록.”
부자가 동시에 놀란 숨을 뱉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노인은 사레가 들렸다. 바크리와 노인이 팔을 번쩍 치켜들었고 쿵 바닥에 엎드렸다.
“뚜바이부르파님을 찬양할지어다. 뚜바이부르파님이 이 땅에 임하사 악인이 지옥에 떨어졌도다. 샤비하를 사주해서 아마드를 납치한 놈이 아자르 그놈입니다. 젊은 놈은 디아브라는 놈인데 샤비하 멤버입니다. 아자르에게 체포 당한 뒤로 소식이 끊어진 일족도 수십명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일족을 불쌍히 여기사 사도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딸을 살려주시고 아들의 원수를 갚아주었습니다. 큰 은혜를 어찌 갚을지 모르겠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신 이여, 찬미 받으소서!”
“어휴, 적응이 안 되네. 아마드를 유괴해서 살해한 놈이라니,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구먼. 바크리, 가족 간엔 은혜란 말을 쓰지 않는다.”
“오 주여, 뚜바이부르파님에게 은혜를 내려 주소서.”
또 은혜다. 블랙맘바는 포기했다. 신을 버리겠다고 선언한 바크리도 오랜 습관은 어쩔 수 없어 보였다.
“어서 모하메드를 데려오너라. 이 소식을 들으면 미칠 듯이 좋아하겠구나. 디아브 그놈이 바셀을 욕보인 놈이 아니더냐.”
알리 바크리가 아들을 재촉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뚜바이부르파님은 잠시 쉬고 계십시오.”
부다당- 부서지는 듯한 바이크 소음이 울렸다.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토브를 걸친 호리호리한 40대 남자가 나타났다. 서재에 들어선 남자가 대뜸 무릎을 꿇었다. 친애하는 사촌 바크리에게 대략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모하메드는 거침이 없었다.
“뚜바이부르파님을 찬양할지어다. 모하메드 자디르입니다.”
“모하메드, 일행이 있나?”
“어 없습니다.”
눈치 빠른 모하메드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500m밖에 두 사람이 있다. 미행당했군.”
“500m요? 그럴 수가?”
“죄송합니다. 어떻게 하죠?”
모하메드는 의문이 담긴 놀람이고, 바크리는 조심성 부족을 자책했다.
두웅- 공간지각력을 발휘했다. 500m 밖 구릉위에 망원경을 든 형체가 떠올랐다. 거리가 먼 탓에 심상이 선명하게 형성되지 못했다.
“두 놈이다. 승용차 크기의 바위 뒤에 있다. 바위 옆에 커다란 나무가 있다.”
“헉, 바타타 따스호르(감자 바위)!”
모하메드는 기겁했다. 뚜바이부르파가 말한 바위는 감자처럼 생긴 바위다. 바위 옆에 거대한 유칼립 나무가 서있다. 어릴 때 또래들과 어울려 놀던 곳이다. 바크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육화한 사도님이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모하메드의 얼굴이 노래졌다. 자신의 부주의로 삼촌네 가족이 큰일 나게 생겼다. 모하메드는 죽고만 싶었다.
“걱정할 것 없다. 차라리 잘 되었다. 놈들을 잡아서 바크리의 원수 놈들 신상을 털어야겠다.”
블랙맘바가 빙그레 웃었다. 바크리의 얼굴이 밝아졌지만, 모하메드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알레포는 다마스쿠스에 이어 시리아 제2의 도시다. 북부 지역에서 유전이 개발되면서 그 중요성은 더 커졌다. 알레포에서 50km 떨어진 샬란도 무카바라트의 집중 감시 구역에 들어가 있다. 더욱이 샬란에는 탄약 생산 공장이 있다. 정규군 1개 소대가 이 공장을 경비한다.
무카바라트가 무서운 이유는 그들이 공권력을 불법으로 휘둘러도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멀쩡한 사람을 죽여놓고 증거를 조작해서 스파이로 만드는 일은 다반사다.
“바크리, 근처에 심문할만한 장소가 있나?”
“집 뒤쪽으로 300m만 올라가면 재스민이 우거진 언덕이 나옵니다. 언덕 위에 메소포타미아 시대로 추정되는 유적이 있습니다.
“유적이면 관광객이 있지 않을까?”
“웬걸요. 벽돌로 쌓은 성채가 무너지고 음습한 지하통로가 있어서 악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아무도 접근하지 않습니다.”
“딱 좋다. 두 사람은 유적 입구에서 기다리도록.”
“헉!”
“뭐야?”
바크리와 모하메드는 신을 찾을 정신도 없을 만큼 놀랐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뚜바이부르파가 사라졌다. 함께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눈앞에서 갑자기 없어져 버렸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바크리가 비시시 웃으며 모하메드를 쳐다보았다. 내 말이 사실이지? 하는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