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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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 시리아 루만 작전18
헬기가 출동하고 국경을 지키던 전차까지 출동했다. 곧 세상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바크리는 은근히 겁이 났다. 자신의 선택에 일족의 안전이 달려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뚜바이부르파시여, 우리를 평안의 땅으로 이끌어주소서.”
쿠우웅- 쿠우웅-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폭음과 섬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알레포 방향이다. 3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당시에 아사드는 무슬림형제단의 근거지로 의심되는 건물을 전투기와 전차를 동원해서 박살 냈다. 국제 사회에는 사망자가 3만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10만이 넘었다. 사망자 대부분이 죄 없는 일반인이다. 정교도 희생자도 1만이 넘었다.
또다시 아사드와 무슬림형제단의 혈투가 시작되었다. 아무리 테러범 소탕이라지만, 자국민의 거주지에 거침없이 대포를 쏘는 미친 놈이 아사드다.
아사드가 정교도 소탕에 나선다면? 생각만 해도 살이 떨렸다. 뚜바이부르파가 굴종하는 삶은 자유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지당한 말씀이다. 시리아라는 나라에 정이 뚝 떨어졌다. 뚜바이부르파가 말씀한 약속의 땅만이 희망이다.
“바크리 자디르, 뚜바이부르파께서 사원이 싫으면 제사장이 떠나야 한다고 했다.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삶은 내 대에서 끝장을 내 버려야 해.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면 갈 데까지 가봐야지.”
바크리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블랙맘바는 오불관언 깊은 잠에 빠졌다. 코까지 드렁드렁 골았다. 초식동물은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산다. 잠도 선잠을 잔다. 맹수는 쉴 수 있을 때 확실히 쉰다. 그래야 움직일 때 확실히 움직일 수 있다.
“아이참, 뚜비 아저씨는 왜 잠만 자는 거야?”
여섯 살배기 와엘은 심심했다. 와엘은 아저씨가 좋았다. 절룩이는 다리를 고쳐주고 아픈 머리도 고쳐주었다. 아저씨가 만들어 준 인형은 가지고 놀기도 좋다. 아저씨와 놀면 재미있는데 종일 잠만 자니까 재미가 없다.
와엘은 야생알파파를 한 줄기 꺽어들고 살금살금 침실로 들어갔다. 뚜바이부르파님을 깨우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엄명은 잊어버린지 오래다. 와엘이 커튼을 젖히고 살금살금 방에 들어섰다.
블랙맘바의 입꼬리에 슬며시 미소가 매달렸다. 와엘은 부드러운 알파파 대궁을 코에 밀어 넣고 살살 돌렸다. 드러렁- 코골이가 오히려 높아졌다.
“아이 참! 어쩌지.”
와엘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 고민에 빠졌다. 블랙맘바는 실눈을 뜨고 와엘을 살폈다. 얼마나 귀여운지 꼭 안아주고 싶다.
고민을 끝낸 와엘이 침대 헤드에 바동거리며 올랐다. 블랙맘바의 가슴에 펄쩍 뛰어내렸다.
“마-다- 후나-카?(뭐야?) 델라뚠!(적이다!)”
블랙맘바가 호들갑스런 비명을 질렀다.
“꺄하하, 뚜비는 잠꾸러기!”
“아이쿠, 공주님이 왜 이리 무거워.”
와엘을 번쩍 들어 올린 블랙맘바의 손이 아래로 축 처졌다. 와엘이 작은 주먹을 풍차 돌리듯 휘둘렀다.
“사람 살려!”
얼굴을 난타당한 블랙맘바가 비명을 질렀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지만 둘 다 개의치 않았다. 와엘의 오빠 둘까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블랙맘바의 귀를 당기고, 등에 달라붙고, 머리카락을 당겼다.
“야- 일라-히-, 우뜰루부- 알이쓰아-프.(아이고, 구급차 불러줘.)
블랙맘바가 엄살을 부렸다.
“안 알일하-히!(그만두지 못해!)”
기겁한 바크리의 부인이 달려왔다. 블랙맘바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부인은 어쩔 줄 모르고 발만 굴렀다.
“저분의 본모습이다.”
바크리가 아내의 어깨를 툭 치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찾아온 행운, 뚜바이부르파는 무겁고 칙칙한 집안을 아이들의 자랑한 웃음으로 채웠다. 저분이 사도가 아니라면 누가 사도란 말인가!
“바크리, 항복이 뭐냐?”
“델리띠실란입니다.”
블랙맘바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델리띠실란하고 외쳤다. 바크리 부인은 그만 깔깔 웃고 말았다. 아이들을 말리러 온 노부부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헐헐 웃었다.
“믿을 수 없어요.”
“우리가 따라야 할 분이다. 사자 같은 위엄과 무력을 갖추고도 선하고 순수한 위대한 영혼이시다. 나는 뚜바이부르파님을 주인으로 모셨다.”
“언제나 당신의 결정을 존중해요.”
바크리의 부인이 활짝 웃었다.
아이들과 장난을 치던 블랙맘바의 눈이 번쩍했다. 유적에 접근하는 인물이 있다. 조심스러운 움직임, 정제된 호흡, 목적이 있는 인물이다. 유적에는 조난신호발신기가 작동되고 있다. 탄약창을 박살 내고 귀가할 때 장치해 두었다.
“아나 아-씨프. 아나 마슈굴-룬 아싸이어트 알아-나 깔릴-란.(미안해, 아저씨가 조금 바쁘거든.)”
아이들을 떼놓고 바크리를 불렀다.
“바크리!”
“네, 바크리 여기 있습니다.”
“손님이 있다. 잠깐 다녀오겠다.”
“저녁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알겠다.”
바크리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행동거지와 태도가 옴부티를 빼 닮았다. 쓸만한 사람이다. 블랙맘바는 토브를 걸치고, 케피에를 눌러썼다.
“쎄 빠지게 달려가는 구마.”
쿠릉 쿠릉- 2km밖에 전차가 줄지어 달려가고 있다. 무장 병력을 빼곡히 태운 트럭 십여대가 뒤따랐다. 공로가 먼지로 부옇게 뒤덮였다. 주민들이 몰려나와 기갑 대열을 구경하고 있다.
“어, 저런!”
어제 새벽에 본 소년이 양 떼를 몰고 도로를 건너고 있다. 전차는 속력을 늦추지 않았다. 소년이 정신없이 장대를 휘둘러 양을 도로 밖으로 밀어냈다.
“망할 새끼들!”
기어코 양 두 마리가 캐터필러에 깔렸다. 기갑 중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갔다. 울고 있는 소년이 애처러웠다.
어릴 적에 신작로를 달리는 미군 지프에 치인 친구 장석이 생각났다. 장석이 죽었지만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했다. 조사를 나온 경찰은 아이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장석이 아버지를 야단쳤다. 더러운 세상은 여기에도 있다.
“국경에서 기갑 대대를 빼냈구마. 탄약창이 아사리 났으니 머리 뚜껑이 열릴 만도 하제. 박터지게 싸워 보더라고.”
블랙맘바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서로 맹렬히 치고받을수록 자신에게 유리하다.
유적은 바크리의 집에서 겨우 3~400m 거리에 있다. 바람만 불면 음산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옛날부터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 때문에 주변에 인가가 없다.
성채 기단은 장대했지만, 석축은 흔적만 남았다. 주민들이 성채를 쌓은 돌을 빼내어 사용했기 때문이다.
을씨년스런 성채 위로 저녁노을이 자욱이 퍼졌다. 황갈색 폐허에 내려앉은 붉은 노을은 흩어진 3천 년 세월이다. 옛사람이 지키고자 애쓴 그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묻혔다. 햇빛에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시간속에 녹아버렸다. 얻은쪽도 잃은쪽도 한 줌 흙으로 돌아갔다.
스러져가는 노을이 더욱 진한 빛을 뿌렸다. 노을 속에 들어간 구름 몇조각이 벌겋게 불타 올랐다.
“좋구나!”
형언못할 감동이 밀려들었다. 까마득한 과거의 흔적과 자연의 앙상블이다. 인간끼리 싸우든 죽이든 자연은 그 자리에 있고,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승자도 패자도 흔적만 남은 성채처럼 세월에 묻혔다.
조난신호발신기는 접근 불가능한 절벽 오버행에 끼워놓았다. 발신기 주변을 빙빙 도는 남자가 보였다. 끝내 발신기를 찾지 못한 남자가 포기하고 매복했다. 영리한 인간이다.
남자는 자신의 옷차림과 비슷했다. 토브를 걸치고 케피에 대신 챙이 넓은 사냥용 모자를 눌러썼다. 얼굴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인간이다. 슬그머니 배후를 점한 블랙맘바가 암호를 불렀다.
“올해 올리브 농사가 어떤가?”
“허윽!”
놀란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첫인상을 수정했다. 소심한 인간이다. 옴부티는 위협사격을 받고도 태연했다.
“올해 올리브 농사가 어떤가?”
다시 한 번 물었다.
“가 가뭄으로 단맛이 강해지고 신맛이 약해졌다.”
“가뭄이 심하다. 유프라테스 강 수위가 줄었나?”“45프로나 내려갔다. 다음 달이면 2프로 더 내려갈 것 같다.”
남자의 눈이 이리저리 불안하게 굴러다녔다. 찰리 채플린을 패러디한듯한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45% 내려 갔다고 했으니 목적지가 45km떨어져 있다. 2%는 안내인이 혼자라는 이야기다.
“어제 새벽녘의 신호를 받지 못했나?”
“받았다. 나는 어제 이미 이곳에 도착했다.”
“어제?”
블랙맘바의 눈이 번쩍했다. 칼날처럼 푹 쑤셔 드는 안광이다. 안내인이 흠칫하며 한걸음 물러났다.
‘이놈 이상하다.’
블랙맘바의 눈썹이 꿈틀했다. 의도적으로 살기를 뿜지 않아도 자신의 안광을 맞받으면 누구나 놀란다. 이놈은 어수룩한척하지만, 눈빛이 별로 흔들리지 않았다.
“왜 이제 나타났나?”
망설이던 안내인이 대답했다.
“당신의 행적이 극히 의심스러웠다.
“의심?”
“나는 어제 접선지인 엔다하 언덕에서 출발해서 06시에 코베리카 마을에 도착했다. 당신은 조난신호발신기를 켜지 않았다. 나는 찬바람을 맞으며 주변을 수색했다. 22시간 만에 조난발신기가 다시 신호를 보냈다.”
“그래서 내가 의심스럽다?”
“……”
블랙맘바의 눈이 스산해졌다. 간혹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오버하는 놈이 있다. 이놈은 자신의 위치를 DGSE 작전부장쯤으로 착각하는 놈이다.
SPY 세계에 적성이 맞지 않는 녀석이다. 이런 유형은 불평불만이 쌓이고, 상대방의 역 포섭에 잘 걸린다. DGSE가 슬리퍼를 잘못 골랐다. 이니면 고도의 전문 훈련을 받은 이중스파이일 가능성도 있다.
두웅- 공간지각력이 발동되었다. 서늘한 기운이 안내인의 뇌를 스악 훑고 지나갔다. 뇌파가 안정적이다. 사부님이라면 타심통으로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지만, 자신은 뇌파와 신체 긴장도를 읽는 정도다.
‘하긴 DGSE가 거짓말탐지기까지 사용해서 걸렀으니 믿어야겠지.’
블랙맘바는 의심을 지웠다.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인간의 뇌는 창조력이 있다. 의심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뇌가 스토리를 스스로 창조해 낸다. 소위 망상증 환자다.
“건방진 놈, 네놈은 자기 일을 하면 된다. 언제부터 현지 슬리퍼가 컨설턴트의 공작 활동을 간섭하게 되었나?”
블랙맘바의 일갈은 당연하다. 스파이는 오피서(공작담당관), 에이전트(첩보원), 컷오프(오피서와 에이전트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휴민트)로 나눌 수 있다.
블랙맘바처럼 파괴, 말살을 주 임무로 하는 스파이를 컨설턴트로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컨설턴트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공작에 대한 전권을 행사한다. 슬리퍼와 몰은 현지 첩보원이다. 비정규직인 셈이다. 남자의 언행은 임시 직원이 사장에게 대드는 격이다.
“그 그건~”
블랙맘바의 질책에 남자가 우물쭈물했다.
“모자를 벗어라.”
안내인이 순순히 모자를 벗었다. 흑인에 가까운 피부색을 가진 중년 아랍인이다.
“차량이 있나?”
“없다. 걸어서 간다.”
“쎄 모베!”
혼자 움직이면 45km 아니라 450km라도 별문제가 안 된다. 덜 떨어져 보이는 이놈을 데리고 도보로 45km를 이동하면 꼬박 하루가 날아간다.
시리아는 프랑스의 안마당이다. 비록 사이가 나쁘지만 오랜 세월 반식민지로 관리해 온 나라다. 같은 입장인 한국엔 현재도 똑똑한 친일파가 넘쳐난다. 이따위 멍청한 안내인이라니, 한숨이 나왔다. 안내인이 주위를 돌아보고 물었다.
“당신 혼자인가?”
“문제 있나?”
이런 질문도 슬리퍼가 할 질문이 아니다. 블랙맘바는 이런 멍청이를 파트너로 붙인 보니파스가 한심했다. 물론 실무는 과장급 이하에서 진행했겠지만.
블랙맘바가 질문을 질문으로 받자 안내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렇군!”
무엇이 그렇다는 건지 모를 말이다. 점점 짜증이 났다. 블랙맘바는 이놈을 유적 지하에 처넣어버리고 모하메드를 안내인으로 대동할지 심각히 고민했다.
“별칭은?”
“자이툰!”
“올리브라고? 큭!”
자이툰은 올리브 열매를 뜻한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이마가 좁은데다 하관이 쪽 빨았다. 그야말로 올리브와 난형난제다.
올리브 열매는 건강식 재료와 기름으로 쓰임새가 많지만, 승리와 평화의 상징인 가지와 잎보다 푸대접을 받는다. 남자의 얼굴상도 올리브지만 존재감도 올리브다. 자신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훗날 한국에서 아랍권에 군대를 파견하면 자이툰 부대라고 이름을 붙여야겠어. 삽질한다는 의미에서 말이야.’
“시간이 없다.”
자이툰이 재촉했다.
“자이툰. 시간이 없는 놈이 바이크도 없이 왔나? 난 네놈을 기다리느라 이미 하루를 허비했다.”
“무카바라트의 눈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다.”
말을 나누면 나눌수록 짜증나는 놈이다.
“여기서 기다려라.”
블랙맘바는 바크리의 집으로 내려갔다.
“모하메드, 바이크를 구할 수 있나?”
“문제없습니다만, 제3 분소에 성능좋은 바이크가 몇 대 있습니다.”
모하메드가 한술 더 떴다.
“뚜룩질을 해도 무슬림형제단에 팔밀이를 하면 된다?”
“그렇고 말고요.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경비도 엉망입니다. 슬쩍해 올까요?”
모하메드가 싱글거렸다. 수니파 무슬림과 정교도의 분위기가 하룻만에 바뀌었다. 수니파는 지금 숨도 못쉬고 바짝 엎드려있다. 블랙맘바를 만나고부터 모하메드의 간뗑이가 부었다.
“밤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
“고물이긴 하지만 소인의 바이크를 쓰시지요.”
블랙맘바가 품속에서 프랑화 한 뭉치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