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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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2
‘아직도 죽지 않았나? 앉은 채로 죽었나?’
자이툰은 흐릿해지는 눈으로 희생자를 바라보았다.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은 이상한 자세로 앉아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 그는 상대의 죽음을 의심치 않았다. 0.1초 내에 사지가 마비가 시작되고, 10초 이내에 숨이 끊어진다.
자이툰은 몹시 아쉬웠다. 실낱같은 빈틈을 파고들어 피스켓 카우를 찔러넣었다. 완벽한 타이밍과 완벽한 정신상태였다. 쉐도우는 최면술과 약물을 사용해서 심장 박동까지 죽이는 훈련을 받는다.
충분히 조심했지만 역시 엄청난 인간이다. 가장 평온한 상태에서 친구 등을 치는 기분으로 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반격을 받았다. 사망 여부를 확인하고 싶지만 마비가 풀리지 않았다. 워낙 무서운 놈이라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다.
카파루자 계곡은 게릴라 본거지가 들어서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일대의 산악은 암석으로 덮여있다. 초목이 거의 자라지 못하는 민둥산이다. 건조하고 부영양이 없는 푸슬푸슬한 토사 탓이다.
덕분에 적대 세력이 기습하기 어렵고, 주변을 감시하기에도 좋다. 외부 세력이 훈련소를 타격하려면 험준한 산악을 5~6km 도보 행군해야 한다. 그동안에 대응 준비를 하거나 도주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
1,000명이 식수와 생활용수로 너끈히 쓸 만큼 충분한 물이 바위틈에서 흘러나온다. 계곡 깊숙이 폭포가 있다. 시리아 정부가 설치해준 수력발전기가 전기를 공급한다. 시리아 산간지역에서 전기를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카파루자는 은혜로운 땅이다.
계곡 양쪽 사면의 절벽이 캐노피를 형성하고 있다. 공중 정찰을 피할 수 있고, 장거리 야포 공격도 캐노피가 감당한다.
절벽에 십여 개의 자연 동굴이 있다. 동굴은 비상시 은신처로 유용하다. 바위에 필요한 만큼 굴을 뚫어서 거주지로 활용할 수도 있다.
아부디날은 이 모든 은혜로운 조건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문제는 식량이다. 산에 과일나무 한그루 자라지 못한다. 농사를 지을 만한 땅도 없다. 보급이 끊어지면 굶어야 하는 척박한 곳이다.
루만 동쪽 감시 초소, 검은 두건을 쓴 자말이 야시경을 내리고, 동료를 툭 쳤다. 검은 두건은 5인 소조의 리더 표식이다.
“바르자니, 동쪽 언덕에 사람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진짜?”
“순식간에 사라져버려서 확신은 못 해. 경비대장이 집중 감시를 지시한 킨달 B 지역이다.”
“배가 고파서 헛것을 본 거 아니냐?”
“젠장, 배가 고프긴 고프다.”
자말이 꾸르륵 소리를 내는 배를 슬슬 문질렀다. 하루 세끼 배급되던 식사가 두 끼로 줄더니, 급기야 오늘은 한끼밖에 못 먹었다.
지난달까지 시리아가 병참 지원을 빵빵하게 해주었다. 알레포에서 출발한 병참 트럭이 산 아래 접견소까지 운행한다. 접견소에 부려진 물품은 5km 떨어진 본부까지 당나귀로 운반한다.
이틀에 한 번 들어오던 병참 트럭이 지난달 후반부터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내일도 트럭이 오지 않으면 하릴없이 놀고 있는 당나귀를 잡아먹어야 할 판이다.
ANO를 지원하는 무카바라트는 근래 몇 달간 무슬림형제단의 준동에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블랙맘바가 사건을 치는 바람에 시리아가 벌컥 뒤집혔다. 알레포 무카바라트 본부가 ANO 식탁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자말은 계속 배를 곪아야 할 처지다.
“자말, 대장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
“젠장, 확실치도 않은데 이야기했다가 걷어차이면 나만 손해라고.”
자말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전투라면 신물이 났다. 알레포 대학 재학 중에 범아랍주의에 매료되어 ANO에 몸을 담았다. 신이 원하는 옳은 일을 한다는 자부심은 겨우 일 년 만에 끝장났다.
무차별적인 파괴와 이유 없는 살인에 지칠 대로 지쳤다. 쫓기는 불안한 생활, 산속에서 모기와 독충에 시달리는 생활도 지쳤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자말, 어떻게 할 거야?”
바르자니가 재촉했다. 자말은 쓸데없는 소리를 한 자신의 입을 때리고 싶었다. 아니 시리아에서 보급해준 야시경을 패대기치고 싶었다.
그는 왼쪽 허벅지에 들어있는 총알을 오른손 엄지로 이리저리 밀었다. 초조해지면 허벅지에 박혀있는 총알을 만지는 버릇이 생겼다.
파리에서 경찰 간부의 집을 폭파하고 도주할 때 총알을 맞았다. 총알이 허벅지에 박혔지만 도주하느라 적출하지 못했다. 20일 만에 훈련소에 돌아왔다.
웃기게도 허벅지에 총알이 박힌 채 총상이 아물어 붙었다. 신체 일부가 되어버린 총알은 별다른 불편을 주지 않았다. ANO 지도부는 자말을 알라의 가호를 받는 전사라고 선전했다. 그는 기적의 총알 덕분에 조장 감투도 썼다.
조직에 몸담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 바르자니는 아부니달 추종자다. 아니, 아부니달을 신으로 아는 인간이다. 거절했다간 사상불순자로 고발당하기 십상이다.
사상불순자로 찍히면 징벌방에 갇힌다. 절벽을 뚫어 만든 징벌방 공간은 겨우 두 사람이 몸을 눕힐 수 있다. 그곳에서 며칠을 굶으며 독충과 싸워야 한다.
“확실치는 않아, 대장 잠 깨우지 말고 우리 조만 데리고 가자고.”
결론을 내린 자말이 조원 다섯을 깨워서 루만을 빠져나갔다. 자말은 킨달 B 지역이라 명명한 동쪽 언덕을 조심스럽게 올랐다. 이로써 자말의 30년 인생은 결정되었다.
파란트로푸스의 신체는 위대했다. 아까운 피를 한 바가지 뽑아낸 대가로 마비되었던 근육이 스르르 풀렸다.
‘아부지, 사부님, 세상에 믿을 놈은 없는기라요.’
블랙맘바는 아버지와 사부를 원망했다. 아버지는 니가 솔직해야 남도 솔직해진다셨다. 사부는 의심거리를 찾지 말고, 믿을 거리를 찾아라고 늘 말씀하셨다. 턱도 없는 말씀이다. 그가 노는 세상은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된다.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흐미 아까운 거, 세상에, 이런 악독한 독이 있었나?”
한숨 돌린 블랙맘바가 이마에 배인 진땀을 닦았다. 자이툰이 기묘한 무기로 옆구리를 찌르고, 놈의 손을 뭉개고 잘라버리기까지 2초도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 독은 잠복기가 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류는 물론이고, 테트로도톡신도 확산에 시간이 걸린다. 웬만한 독은 자신을 중독시킬 수 없다. 확산하는 순간에 중화되어 버린다. 파란트로푸스화 할 때 감염된 엑시타 바이러스의 부작용(?)이다.
이번에 당한 독은 중화될 틈도 없이 확산하였다. 해독에 5분이나 걸렸다. 공진파를 얻지 못했으면 사기적인 독 내성에 불구하고 사투를 벌였을 만큼 끔찍했다.
“크크크, 아직도 견디다니 대단하군.”
자이툰이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킬킬거렸다. 그는 경인 할 인내심을 발휘했다. 금이 간 목뼈를 추슬러 토브 자락을 이빨로 찢었다. 입과 발을 이용해서 양손을 지혈했다.
자이툰이 입은 데미지는 쇼크사 수준이다. 대단한 체력과 정신력이다. 양손을 토브로 동여맨 모습에 블랙맘바도 감탄했다.
굳어있던 블랙맘바가 움직였다. 띵한 머리를 한 차례 흔들고, 땅에 떨어진 흉기를 집었다. 코브라 독에 중독된 라텔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는 모습과 흡사했다.
“헉, 어떻게?”
자이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죽은 놈이 움직였다. 시체가 움직이면 인간이 아니라 좀비다. 깊이 찌르지 못했지만 보툴리눔 톡신(Botulinum toxin)이 주입되었다. DIA 의료정보실이 존슨앤존슨사와 협력해서 정제한 보툴리눔 톡신 F형은 잠복기가 없다.
체내로 투입되면 즉각 신경계 시냅스를 무서운 속도로 파괴한다. 순식간에 신체가 마비된다. 무력화된 인간은 10초 이내에 사망한다. 근육마비가 아니라 신경이 마비되므로 건전지 빼낸 장난감 꼴이 된다.
보툴리눔 톡신의 독성은 가공하다. 코끼리도 30초면 숨이 끊어진다. 100g으로 전 세계 인구 50억을 죽일 수 있는 현존 최강의 독이다. 여자들이 회춘의 상징으로 여기는 보톡스는 보툴리눔 톡신 A, B형을 몇 십억분의 일로 희석한 약품이다.
보툴리눔 톡신에 중독된 인간이 태연히 움직이다니……. 꿈이라면 몹시 나쁜 꿈이고, 현실이라면 인간이 아니라 좀비라는 소리다.
블랙맘바는 입이 떡 벌어진 자이툰을 힐끔 쳐다보고는 손에 들린 도구로 눈길을 돌렸다. 전투력을 상실한 놈은 관심 밖이다. 살인에 특화된 도구다. 보는 것만으로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손잡이를 중심으로 뒤쪽에 둥근 망치가 달려있고, 앞쪽은 좌우에 칼날이 달린 송곳이 장착되었다. 손잡이 위쪽에 뽕이 달린 금속성 실이 수납되어있다. 손잡이 아래쪽에 작은 버튼 두 개가 달려있다. 전체 길이는 25cm 남짓했다. 되지엠 랩의 대테러 교육시간에 그림으로 본 기억이 났다.
“피스켓 카우?”
생각이 났다. 2차대전 당시 SOE(영국 특수작전집행부)가 제작해서 첩보원에게 지급한 다중 살인 도구다. 당시 SOE 장비 연구반의 찰스 스미스가 개발했다.
SOE는 피스켓 카우, 메리켄 사크같은 살해용 첩보 도구를 통칭해서 큐 키트(Q Kit)라 불렀다. 개발자 찰스 스미스는 007시리즈 영화에 등장하는 Q의 모델이다.
실물을 직접보기는 처음이다. 손에 들린 흉기는 당시의 피스켓 카우보다 훨씬 정교하고 세련되었다.
“악랄하네. 망치 머리로 두개골을 부수고, 금속 실은 목을 조르고, 송곳칼은 급소를 찌르는 용도겠지. 사각 버튼은 독액 주입용, 둥근 버튼은 송곳 수납과 돌출용이네. 앞쪽에 붙은 작은 고리는 뭐지?”
블랙맘바가 자이툰을 향해 송곳을 겨누었다.
“헛!”
놀란 자이툰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 나왔다.
“아하, 독액이 주입된 송곳을 발사하는 버튼이구나.”
블랙맘바가 놀리듯이 빙글거리며 둥근 버튼을 눌렀다. 손가락 길이의 송곳이 소리도 없이 손잡이 속으로 수납되었다.
“자이툰, 손이 으스러지고 팔목이 잘린 상황에서 비명을 삼키다니 대단한 인내력이다. 멍청한척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당신 정도의 인물을 양성하려면 DIA, KGB, 모사드 정도는 되어야겠지. 꼴 같지 않게 CIA는 들먹이지 마라. 그놈들은 모략과 공작에 능할 뿐 당신같은 전통적인 정예 첩보원은 없어.”
블랙맘바가 왔다 갔다 걸으며 빙글거렸다. 굳었던 신체를 풀어주는 중이다.
“다 당신 도대체 뭐야? 어째서 죽지 않는 거야? 인간은 맞나? 개구리 새끼들이 이상한 인간 실험을 한다더니 당신인가?”
자이툰이 대답은 않고 의문사를 마구 쏟아냈다. 슁- 고르곤이 쭉 뻗었다. 최고의 가속 스피드를 내는 사이클로이드 편법을 터득한 블랙맘바다. 편두에 달린 오망성 표창이 공간을 단축했다.
“크윽!”
자이툰의 오른발 엄지발가락이 박살 났다.
“자이툰, 당신이 처한 상황을 망각하면 내가 슬퍼져. 나는 슬퍼지면 사지를 뜯어내는 좋지 못한 버릇이 있다고 말했을걸. 나는 묻고 당신은 대답한다. 성실히 대답하면 깨끗이 죽여서 묻어 주겠다.”
자이툰의 눈이 암담해졌다. 바늘도 들어가지 않을 놈이다. 저놈은 자신을 풍뎅이 모가지를 뜯어내듯, 잠자리 날개를 뜯어내듯 해체하고도 남을 놈이다. 저 괴물을 상대로 생명을 건질 가능성은 일 푼도 없다. 35년 인생은 여기서 끝이다.
자이툰은 이슬람 신도다.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신체가 훼손되면 영혼이 돌아갈 집이 없어진다. 밝은 세상을 두고 자한남(jahannam, 지옥, 고난의 땅)을 헤매고 싶지 않았다.
“부활의 날에 두고 맹세하사, 나무라는 영혼을 두고 맹세하나니……. 하느님은 인간의 뼈를 모으시리라. 그날에, 인간의 혀, 손, 발은 그것들이 저지른 대로 증언할 것이며, 그 날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시리라.”
자이툰은 코란의 한 구절을 암송했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좋다. 내가 살아날 가능성은 보툴리눔 톡신에 중독된 당신이 멀쩡한 것만큼이나 확률이 낮겠지. 조직 내 비밀이 아니면 대답하겠다. 깨끗이 죽여다오.”
“남자다운 놈이군. 이름은 어차피 의미가 없다. 소속은?”
“DIA(미국 국방정보국, Defense Intelligence Agency) 중동지역본부 쉐도우 3호다.”
“DIA 쉐도우?”
블랙맘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이툰이 DIA 쉐도우 요원이라면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설명된다.
“잠깐!”
블랙맘바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중독으로 인해 감각이 둔해졌다. 적은 이미 250m까지 접근했다. 백팩에서 MP5sd3를 꺼냈다. 총신이 짧은 MP5는 분해 없이 백팩에 수납이 가능하다.
“자이툰, 당신의 의도가 헛되지 않았어. 손님이 찾아왔거든. 잠시 기다리라고.”
스스스슷- 블랙맘바가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관목숲으로 스며들어 갔다.
“흐으~시체가 쌓이겠군.”
자이툰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인간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저 존재를 끝장내려면 대포로 두들기는 수밖에 없다. 구식 칼라시니코프나 든 테러범 따위는 그냥 죽은 목숨이다.
블랙맘바는 거대한 사암 바위에 도마뱀처럼 딱 달라붙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나, 둘, 셋, 모두 여섯이군. 왜 저놈들만 왔지?’
두 명씩 조를 이룬 세팀이 전부다. 공각지각술을 풀어놓아도 더 이상 잡히는 기척이 없다.
“예쁜이 성능을 시험해 볼 기회인가?”
중얼거리던 블랙맘바가 흠칫했다. 인간을 한낱 총기 시험용으로 여기다니, 사부가 알면 목탁이 깨지라고 머리를 두들길 일이다.
‘후, 한 달이나 법당에 처박혀 쉰내 나는 염불을 한 노력이 도로아미타불이구나.’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일단 이놈들을 빨리 처리하고 본거지를 박살 내야 한다.
거리 180m, MP5를 사용하기엔 먼 거리지만 개의치 않았다. 인간의 두개골은 방탄복이 아니다. 파라블럼탄이 뚫고 들어가서 뇌를 휘젓기에 충분한 거리다.
퍼퍽- 퍼퍽- 퍼퍽- 더블텝 3연타다. 부챗살처럼 퍼져서 언덕을 오르던 5명이 거의 동시에 무너졌다.
“야 일리히 학깐 하다!(앗,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자말은 기겁했다. 함께 오르던 동료 다섯이 일시에 저격당했다. 자말의 뇌가 연산 능력을 상실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살려줘! 알라시여 죄 많은 이 놈을 불쌍히 여기소서.”
“명이 긴 놈이군. 생존력이 좋은 놈이라고 해야 하나?”
퍽- 망치 비슷한 물건이 뒤통수를 때렸다. 자말의 의식이 까무룩 어둠 속으로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