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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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3
블랙맘바는 자말을 옆구리에 끼고 산정으로 질주했다. 밤이 길면 꿈도 많다. 정리할 일은 빨리 정리해야 사달이 나지 않는다.
자이툰이 움찔했다. 검은 그림자가 땅속에서 솟아나듯 스윽 나타났다. 시커먼 물체가 탈곡 끝난 짚단처럼 자이툰의 발아래 툭 떨어졌다. 디시다사(아랍인이 입은 품넓은 바지)와 색바랜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아랍인이다.
“벌써?”
자이툰의 눈이 커졌다. 사라진 지 딱 10분만에 돌아왔다.
“혼자는 아닐 텐데……”
“다섯은 알라께 불려갔다.”
“허!”
자이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MP5는 소음 성능이 뛰어난 총이지만, 야간에는 300~400m 밖까지 들린다. 총성을 듣지 못했다. 최소한 500m밖의 적을 10분 만에 제거하고 한 놈을 납치해 왔다는 소리다. 불가능한 일이다.
자이툰은 의문을 지웠다. 보툴리눔 톡신 중독을 5분 만에 풀어버린 인간이다. 처음부터 상식을 벗어난 인간이었다. 정신 건강상 그런가보다 해야 한다.
블랙맘바는 자말을 던져놓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자이툰 앞에 넓적한 바위를 옮겨 놓고 털썩 앉았다.
“계속 이야기를 나눠 보자고.”
자이툰은 어이가 사라졌다. 쉐도우로 8년을 활동하는 동안 온갖 풍상을 겪었지만, 살인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늘 거리낌이 남았다.
눈앞의 인간은 직전에 사람 다섯을 죽인 자다. 이자의 머릿속엔 이미 그 사실이 잊혔다. 닭 한 마리를 죽여도 이럴 수는 없다. 핵폭탄을 든 세기의 사이코패스다. 자이툰은 가슴에 돌을 얹은 듯 답답해졌다.
DIA는 애초 소련의 핵 위협에 대항할 수단으로 1961년에 창설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양키의 엄살과 허풍은 예술 수준이다.
공군은 핵미사일 성능이 소련에 뒤진다고, 해군은 소련의 핵잠수함 위협이 증대되었다고, 육군은 소련 기갑군이 전차 주포용 핵포탄을 개발 중이라고 엄살을 떨었다.
결론은 육·해·공군의 통합 첩보 능력 강화 및 일원화였다. 메릴랜드 베데스다에 본부가 세워지고 대규모 스파이 양성 및 재훈련소가 세워졌다.
CIA가 정보 생산과 가공에 집중하는 반면 DIA는 필드 요원을 통한 파괴공작이 주력이다. 툭하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CIA와 달리 DIA는 물밑에서 움직인다. 비밀 공작 시 CIA로 위장하기도 한다. CIA 파괴 공작은 대부분이 DIA의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쉐도우는 DIA 핵심 필드 요원이다. 기간시설 파괴, 요인 암살을 주 임무로 하는 진짜배기 전통 첩보원이다. DGSE가 추정하는 쉐도우의 숫자는 대략 800명 수준이다.
특수부대에서 스카우트된 쉐도우 신입은 베데스다 재훈련소에서 3년간 재훈련을 거친다. 쉐도우 프로그램은 델타포스 양성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교관이 훈련생을 실제로 납치해서 극악한 고문을 가하고, 적국 스파이로 가장해서 미인계와 금전으로 유혹하기도 한다. KGB의 고문대응훈련을 능가하는 잔혹한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서 최고의 첩보원이자 살인병기인 쉐도우가 만들어진다.
“국가 기밀은 알려주지 못한다.”
“당연하다. DGSE에는 어떻게 끼어들었나?”
“흐흐흐, 그 바보들! DGSE는 미테랑이 SDECE를 개편 확장한 뒤로 늘 실적에 쫓겼지. 오피서들이 슬리퍼 숫자를 늘리려고 혈안이 되었더군. 오피서의 능력 평가 시 배점이 제일 높은 항목이 현지 포섭 정보원의 숫자거든. 공원 화장실에서 아사드 욕을 몇 번 했더니 금방 입질이 오더라고.”
“쯧, 무게만 잡는 띨띨한 새끼들! 거름망도 있을 텐데.”
“작년에 실수하는 바람에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하지 못했다. 오피서가 봐 주더 군. 자신이 거느린 정보요원이 가짜라 판명되면 경력에 문제가 되거든. 거짓말탐지기를 속이는 정도야 별것 아니야. 멍청한 기계는 자신의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는 진정한 첩보원은 가려내지 못해. 쉐도우는 다 통과할걸.”
“망할 새끼들, 잘난척하더니 구멍이 숭숭 뚫렸구마.”
블랙맘바가 혀를 찼다. DGSE 요원들은 인종적인 우월감과 문화적인 오만함에 빠져있다. 그들은 아랍인이나 유색 인종을 아이 다루듯 다룰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자이툰을 걸러내지 못한 이유다..
“당신 속셈은 뭔가? 왜 나를 공격했나?”
자이툰의 검붉은 얼굴이 회백색으로 탈색되었다. 어설픈 지혈로 절단된 동맥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블랙맘바가 백팩에서 폭탄 부착용 테이프를 꺼내서 양 팔목을 단단히 감았다.
“고맙군.”
자이툰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미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근육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내 임무는 아사드 보호다. 당신 같은 존재 말살이지. 아메리카는 미테랑을 믿지 않는다. 도덕 정치라는 모호한 이념을 내세우고, 역외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양아치 짓거리를 하고 있거든. NSA는 프랑스가 아사드를 제거하고 시리아를 다시 삼키려는 속셈이라고 판단했다.”
“악의 축을 보호한다?”
블랙맘바의 표정이 황당해졌다. 미국이 시리아를 악의 축으로 매도한 지 오래다.
“아마추어처럼 왜 이러시나. 악의 축이 어디 있나. 힘센 놈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내는 허상이지. 아사드는 사실상 아메리카의 VIP다. 중동 지역 대다수 국가가 수니파 정권이다. 수니파가 장악한 이슬람 국가들의 목표는 타도 이스라엘이다. 알다시피 미국은 유대인이 움직인다. 아사드는 아메리카, 아니 유대인이 수니파 정권을 견제하려는 대항마다.”
“그래도 논거가 부족하다. 미국은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다. 아사드는 감시와 폭력을 통치 수단으로 삼는 독재자다. 자국민 수만명을 죽인 악당을 미국이 보호한다고?”
“아사드가 독재를 하든 말든 중요치 않다. 아사드가 무너지면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위험해진다. 이슬람의형제들은 무장 조직원만 이만 명이다. 전체 조직원은 수십만이고, 잠재적 지지자는 일억에 달한다. 그들로 인해 언젠가 중동은 피에 젖게 된다. 아사드가 무너지면 시리아는 물론이고, 중동 전체가 극단적 원리주의자들의 손에 들어갈 우려가 있다. 젠장 펀디 만의 랍스터가 보이는군. 헉헉.”
자이툰이 헐떡거렸다. 혈액이 부족해지면 세포가 산소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무기력해지고 헛것을 보게 된다.
블랙맘바가 수통의 물을 기울여 자이툰의 입에 흘려 넣었다.
“아메리카는 ANO가 프랑스를 마구 흔들어 주기를 바란다. 아사드는 건재해야 한다. 당신은 아사드 정권을 혐오하고 있다. 지금 아사드를 흔들면 안 된다.”
“물론 아메리카의 시각이고, 당신 입장이겠지?”
“흐흐, 그렇다. 나는 프랑스가 공정여단이나 지젠느 10개 팀쯤 보낼 줄 알았다. 당신 혼자 나타났을 때 기가 막혔다. 혼자서 무얼 할 수 있겠나? 천지 분간 못 하고 날뛰다 죽을 불쌍한 인생으로 여겼다.
“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위험인물로 판단했다는 뜻인가?”
“그렇다. 당신이 무카바라트를 처리할 때 심장마비에 걸릴뻔했다. 200m 밖에서 수류탄을 초소에 던져넣을 때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자이툰, 당신은 단순한 스파이가 아니라 컨설턴트였군. 에이전트가 당신처럼 폭넓은 시야와 정세 분석 능력을 보유할 수는 없지. 당신은 내가 아는 한 최고의 첩보원이다.”
“최고는 개뿔, 손 한번 못 쓰고 이꼴이 되었는데.”
자이툰이 툴툴 웃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
“나는 동방불패, 한국인이다.”
“오, 한국인 오리엔탈 인빈서빌리티! 좋구먼. 멍청한 개구리 소굴에 몸을 담기엔 너무 아까워. 동방불패, 아메리카와 함께할 생각없나? 아메리카는 인재를 아낀다. 당신이 받는 대가의 열배 백배를 줄 수 있다.”
“나는 동방불패다.”
자긍심이 넘치는 말이다. 자이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진짜 사나이다. 금전만능주의 세상에서 명예와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인간은 많지 않다.
“당신은 친구가 되면 더없이 든든하지만 적이 되면 너무 위험한 존재다. 내 조국이 당신과 부딪치지 않기만을 바라야겠구먼. 아사드를 지금 죽이면 엄청난 혼란이 벌어진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수백만, 수천만의 난민이 발생한다.”
블랙맘바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아까부터 아사드 암살을 언급하나? 아사드는 내 표적이 아니다. 나는 ANO만 지우고 사라진다.”
“뭐! ANO만이 당신의 표적이라고?”
자이툰의 눈이 커졌다. ANO는 아사드가 키우는 숨은 칼이다. 그는 동방불패의 최종 표적이 아사드인 줄만 알았다. 동방불패가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고, 그럴 인간도 아니다.
“크크크! 한순간의 판단 잘못으로 생명을 잃다니, 이것이 스파이의 숙명이겠지.”
“미국이 테러단체를 직접 돕지는 않을 테고, 시리아 사태 개입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자이툰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CIA와 DIA가 협조해서 상당히 깊이 개입하고 있다. CIA는 정보 공작과 무기를 공급하고, DIA는 아사드의 신변 보호와 암살자 제거를 맡고 있다. 실제적인 작전은 말할 수 없다.”
자이툰이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말할 수 없다는 표시다.
“음, 양키의 개입이라!”
블랙맘바가 무거운 신음을 뱉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소련과 미국이 세계 양대 강국이라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국력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가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하여 보유한 총체적 능력을 말한다.
미국은 정치, 군사, 경제, 기술의 총합에서 소련을 서너 배 압도한다. 미국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소련을 십 배 능가한다. 사단 규모의 역외 상륙 능력을 갖춘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미국은 악당 두목으로서 소련이 필요할 뿐이다.
최강국 미국이 끼어들었다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무지막지한 정보력과 자본력, 첨단 무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힌다.
‘망할 노무 시키, 모른 거야? 알고도 말하지 않은 거야?’
DGSE 녀석들에 대한 감정이 푹푹 쌓였다.
자이툰이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신사적으로 대해 주어서 고맙다. 작은 선물을 주지. DGSE 정보부 중동 과장이 KGB 몰이다. CIA 몰도 당연히 있을 거야. 당신은 핵폭탄보다 더 위험하다. 동방불패란 존재를 알려야 하는데……너무 괴롭고 힘들다. 약속대로 그만 끝내 다오. 제기랄, 뉴저지에서 딸 아이가 기다리는데…….”
블랙맘바는 자이툰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고 임무를 사랑하고, 정신력이 굳건한 사나이다. 쫄따구로 거두고 싶지만, 회유될 사람도 아니고 이미 늦었다. 고통을 덜어주는 자비가 필요한 시간이다.
딸을 조국에 두고 만리타향에서 신체가 훼손된 채 죽어가는 남자다. 죽음 속에 삶이 있고 삶속에 죽음이 있다는 사부님의 말씀이 가슴을 적셨다. 그는 선 듯 손을 쓰지 못하고 처연한 눈길로 자이툰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걷혔다. 곧 보름달이 될 상현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푸르스름한 달빛 아래 황무지가 민낯을 드러냈다. 능선이 첩첩이 연결된 고원, 나무 한 그루 없는 바위산과 돌너덜, 잡목과 풀만 우거진 메마른 곳이다.
“끄응!”
자말이 깨어났다.
“피- 아이이 마카-닌 나흐누 알안-?(내가 왜 여기 있지?)”
머리가 빙빙 돌고 시야가 흐릿했다. 뒷머리에서 무거운 통증이 밀려들었다.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찢어지거나 깨진 상처 없이 멀쩡했다. 그런데 너무 아프다.
“마-다- 후나-카?(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척추를 타고 달리는 통증이 정신을 되돌렸다. 몽롱하던 정신이 가닥을 잡았다. 일시에 머리가 터져나가던 동료들, 시커먼 그림자가 덮치면서 정신을 잃었다. 자말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았다. 손발이 구속되지 않았지만 포로다.
‘죽었구나!’
자말은 절망했다.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무참히 목이 잘리는 상상이 머리를 꽉 채웠다. 아니면 나무에 매달아 놓고 껍질을 벗기거나 불로 태워 죽이는 방법도 있다.
ANO가 신성 모독자를 처단한 방법이다. 이교도는 모두 신성 모독자다. 이슬람의 정신을 배신한 아사드도 처단해야 할 더러운 종자다.
이교도에게 포로로 잡히면 무조건 자결하라고 교육받았다. 총도 없고, 옆구리에 차고 있던 칸자르도 사라졌다. 죽으려면 혀를 깨물어야 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훤한 달빛 아래 마주앉은 두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남자는 양손이 없다. 한눈에 보아도 고문받는 중이다. 손목을 지혈한 천이 피에 흠뻑 젖었다. 달빛에 검게 보이지만 손목을 잘라 본 경험이 있어 알 수있다.
맞은 편에 꼿꼿이 앉은 남자, 자말은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동료 다섯의 머리를 박살 내고, 호랑이처럼 덮치던 그림자가 머리에 떠올랐다.
저자다. 자말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자신을 납치해 온 남자가 바로 저자다. 살려면 도망쳐야 한다. 고문을 해봤기에 고문이 너무 두려웠다.
“스토끄!”
막 다리에 힘을 모으던 자말이 펄쩍 뛰었다. 귀속에서 포탄이 터졌다. 귀가 윙 울렸다. 아니 머리가 윙윙 울렸다. 그는 자벌레처럼 웅크리고 머리를 감쌌다.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훅!”
놀란 자말이 숨을 들이켰다. 맹수처럼 시퍼런 빛을 뿜는 눈이 허공에 떠 있다. 사지에 맥이 탁 풀렸다. 도주는 꿈도 못꿀 상대다.
남자는 별 관심 없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잘 가라!”
블랙맘바의 손바닥이 자이툰의 가슴에 붙었다 떨어졌다. 퍽 소리가 났다. 심장이 박살 난 자이툰이 모로 털썩 쓰러졌다.
“으윽!”
자말이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쓰러진 남자의 입에서 검은 액체가 벌컥벌컥 뿜어졌다. 무서운 인간, 아니 무서운 존재다.
블랙맘바는 우울한 얼굴로 땅을 팠다. 아사드 보호 임무를 맡은 DIA 쉐도우 자이툰은 카파루자 계곡의 이름없는 언덕에 묻혔다. 무덤 앞 비목에 두 줄이 새겨졌다.
[평화를 위해 폭력을 휘두른 사나이 자이툰, 여기에 잠들다. 그는 누구를 위해 종을 울렸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