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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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20
“헐!”
절벽을 오르던 블랙맘바가 움찔했다. 번쩍하는 섬광에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우르르- 충격파가 밀려들었다. 절벽이 출렁했다. 하마터면 추락할 뻔 했다. 도마뱀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계곡 아래쪽을 내려다 보았다.
검붉은 버섯구름이 솟구쳐 올랐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대기가 기감에 잡혔다. 불꽃이 쉭쉭거리며 산소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불이다. 세상을 삼킬듯한 불꽃이다. 미성숙 청년기를 살라버린 어리석은 열정처럼 타오른다.
“혜영!”
망연한 부름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비진도의 크리스마스이브, 절절끓던 민박집 구들장, 그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른 여체, 특별함을 숨기고 평범하게 살고자 악을 쓰던 시절에 희망의 요람이 되어준 그녀다.
님은 가버리고 운명이 아수라의 길에 밀어 넣었다. 아니 운명따윈 없다. 자신이 스스로 아수라의 길을 걷고 있다.
아수라와 인간의 사랑? 소설 제목으로나 어울릴 소리다. 피에 절은 손으로 백설같은 그녀의 몸을 안을 수 있을까? 머리를 흔들었다. 무쌍의 정체성을 아수라가 차지하는 만큼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이젠 그녀가 돌아온다 해도 안아줄 자신이 없다. 남자는 여자가 첫사랑이기를 바라고, 여자는 남자가 마지막 사랑이기를 바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첫사랑은 태평양을 건너가버렸다. 자신은 인도양을 넘어 아수라의 길을 걷고 있다.
고즈넉한 히라니와 정원이 보이는 적산가옥 2층 침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으면 혜영이 턴테이블에 바늘을 올린다. 폴짝 뛰어올라 허벅지에 타고 앉아 고양이처럼 갸르릉거린다. 세서리오 에볼라의 애절한 베사메무초 가사가 가슴을 적신다.
깨 땡고 미에도 아 빠르데르뗴(당신을 잃을까 두려워요)
뻬르데르뗴 데스뿌에스(앞으로도 두려워요)
끼에로 페네르떼 무이 세르까(아주 가까이 당신을 갖고 싶어요)
사랑이 멀어지면 유행가 가사가 귀에 들어온다더니…….
“잘살고 있어야 해. 좋은 사람 만나고.”
후끈하니 익은 대기와 달리 싸늘한 바람이 가슴을 스쳐 갔다. 뜨거운 불꽃속에 차가운 이별이 흘러간다.
“어이쿠!”
퍽퍽- 후드득- 하늘로 솟구쳐 오른 흙과 돌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머리와 등판을 두드리는 쇄설물이 의식을 현실로 돌려놓았다. 식겁한 블랙맘바는 재빨리 헬멧을 덮어썼다. 사랑도 회한도 개체보호 본능엔 미치지 못했다.
불꽃은 여전히 기세 좋게 타오르고 있다. 임시변통으로 사용한 LPG 증기운 폭발이 이토록 강력할 줄은 몰랐다. 압축용기 자체의 폭발보다 밀폐된 장소의 포화 증기운 폭발이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 탄화수소와 결합하면 프로판 가스의 폭발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어설픈 실력에 우연이 겹쳐서 신의 한 수가 된 셈이다.
블랙맘바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목구멍에 가시 걸린 듯 찝찝함이 사라졌다. 사람을 죽이는데 좋은 방법 나쁜 방법의 의미가 있을까? 총으로 쏴 죽이면 칼로 찔러 죽이는 것보다 덜 잔인하고, 목을 잘라 죽이면 심장을 찔러 죽이는 것보다 더 잔인하다는 식의 평가는 의미가 없다. 인간이 자의적으로 만든 법적, 도덕적 잣대일 뿐이다. 살해 의사를 굳힌 이상 상대를 고통없이 최대한 빨리 죽이는 것이 진정한 자비다.
그러나 세균을 살포하고, 가스를 살포하는 살인행위는 그러한 구분과 차원이 다르다. 총을 든 자는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원한을 뿌린 자는 복수를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생화학 무기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괭이를 메고 들판을 걷는 농부, 멍키스패너로 볼트를 죄는 노동자, 열심히 수학 문제를 푸는 학생, 밥주걱을 들고 밥을 푸는 주부……. 모두 죽는다. 그들은 죽을 준비가 된 자도 아니고, 비참하게 죽을 이유도 없다. 블랙맘바가 독재자, 게릴라, 테러리스트를 증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 저 정도마 독가스고 세균이고 싸그리 작살났겠제. 아사드가 쪼매 속이 쓰리겠구마.”
세균이든 독가스든 대기까지 태우는 불 폭풍에 견딜 리 만무하다. 격납고 동굴이 있던 절벽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다.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쪼매가 아니다. 카파루자 격납고에 보관된 탄저균, 사린 가스, VX 가스는 아사드가 이집트와 북한의 지원을 받아 5년에 걸쳐 집적한 물자다. 5년이란 시간과 물경 3억 불이 불장난 한방에 증발되었다. 아사드가 지대공 미사일 배치, 생화학 무기 생산 집적, ANO양성등 카파루자 계곡에 쏟아부은 예산이 10억 달러다.
프랑스가 얻는 실익을 감안하면 미테랑의 말대로 수당 3억 프랑은 껌값인 셈이다. 물론 블랙맘바가 작전 중에 사망하면 3억 프랑도 굳는다. 미테랑과 보니파스는 현명했다. 이래저래 손해볼 일이 없다. 툭하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뒤통수를 얻어맞는 한국의 위정자와 다른 대목이다.
불꽃이 빠르게 사그라졌다. 인화물이 없는 탓이다. 3km 아래쪽 계곡이 어두컴컴해졌다. 폭발 분진과 절벽 붕괴가 발생시킨 분진이 햇빛을 가렸다. 어설픈 폭탄마 블랙맘바의 불장난이 수천 년 잠들어있던 카파루자 계곡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고래로 모진 놈 옆에 있다간 덤으로 박살나는 법이다. 자연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작전은 불꽃놀이의 연속이다. 어릴 적에 불장난하면 오줌 싼다고 야단치던 엄마가 생각났다. 잃어버린 유년의 행복에 가슴이 저렸다.
“어머니, 살아만 계세요. 천명이고 이천 명이고 동원해서 반드시 찾아서 모실게요.”
눈꼬리에 맺힌 수분을 손가락으로 슥 찍어냈다. 만부막적의 동방불패 블랙맘바, 그도 한 여자의 자식이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이다.
스나이퍼는 감정 수습에 능하다. 블랙맘바는 유년기부터 감정을 억누르는 생활에 익숙해진 인간이다. 순식간에 감상을 털어내고 현실로 돌아왔다.
“좋군! 아직 본게임이 남았거든.”
덤덤한 코멘트를 남긴 블랙맘바가 오르던 절벽을 마저 올랐다. 거창한 사명감으로 한 일이 아니다. 임무의 한 부분일 뿐이다. 3개 목표중 한 개를 처리했을 뿐이다. 아직 두 개가 남았다. 이미 끝난 독가스와 세균 문제는 뇌리에서 깨끗이 증발되었다.
동방에서 온 독한 놈, 동방불패가 아사드 집권이래 최대의 타격이 될 작전에 돌입했다. 아사드가 땅을 칠 일이 남았다.
“뭐야?”
굉음에 놀란 라티푸 준장이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제3공수와 통화도 못 한 상태다.
“부관, 무슨 소린가?”
“저어 그게~”
부관인들 알 리 없다. 대답을 못 하고 눈만 굴렸다.
“정찰대는 내려보냈나?”
“예, 준비 중입니다.”
라티푸가 폭발했다.
“이 새끼야, 무슨 준비가 삼박사일이냐. 타크피르를 받고 싶나?”
“아닙니다. 각하!”
화들짝 놀란 부관이 팽이처럼 사령관실을 뛰쳐나갔다. ‘타크피르’란 배교자나 이단으로 간주하는 것, 또는 그로 인해 참살하는 것을 말한다. 이슬람은 타크피르란 말을 듣는것 자체가 공포다.
서남아시아,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시리아 등에는 타크피르 문화가 만연해 있다. 바로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다. 이들은 서로 타크피르로 매도하며 끊임없이 피를 부르고 있다. 끊이지 않는 유혈 테러와 계획적인 홀로코스트의 배경엔 특권의식, 구분의식이 뿌리박힌 타크피르 문화가 있다.
코란을 관통하는 주제는 평화와 관용이다. 이슬람 지도자들도 늘 평화와 관용을 소리높여 외친다. 현실은 시궁창이다.
아프리카에서 부족 홀로코스트가 진행되고 있다면 서남아시아에서는 종파 홀로코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인간을 행복하게 해야 할 종교가 인간을 고통으로 밀어 넣고 있다. 블랙맘바가 이들의 이중성과 편협함을 비웃는 이유다.
라티푸는 인터폰을 눌러 경비대장을 호출했다.
“사령관이다. 카피르(불신앙인)가 잠입할 가능성이 있다. 쌀라-싸 경계를 발동하라.”
-옙, 알겠습니다.
애앵- 애앵- 사이렌이 적막한 계곡을 찢었다. 북부방공사령부가 화들짝 깨어났다. 군홧발 소리가 바쁘게 울리고, 탄창이 보급되고, 참호에 기관총이 거치 되었다.
“니미 조또, 호떡집에 불났나?”
사이렌이 울리고 군인들이 앞에총 자세로 달리고 있다. 권총을 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지휘관도 보인다. 블랙맘바는 태연했다.
지근거리에서 지축이 흔들리는 폭음이 울렸다. 비상이 걸리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진작 비상을 걸지 않은 무신경함이 되레 놀라웠다.
절벽에 올라서자 식생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사방이 온갖 냄새로 가득했다. 너무나 익숙한 냄새다. 광합성 중인 나무가 뿜는 숲의 향기다. 월송산 억새가 몸을 비벼 내는 탄내다. 비에 젖은 바위가 뿜는 비릿한 냄새다. 산새와 도마뱀, 설치류, 작은 곤충이 어우러진 냄새다.
폐가 터지라고 공기를 들이마셨다. 며칠 동안 황량한 대지가 뿜는 메마른 공기, 불길이 태운 탄내 나는 공기만 마셔왔다. 신선한 공기가 세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유감스럽게도 분지 쪽에서 날아온 알싸한 화약 냄새가 공기 중에 섞여 들어왔다. 인간은 유일하게 자연과 섞이지 못하는 존재, 이질적인 존재, 불필요한 존재다.
분지로 눈길을 돌렸다. 한눈에 분지가 들어왔다.
“대단하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블랙맘바가 대공 미사일 기지를 목격하기는 처음이다. 타원형 분지의 장경이 1.3km다. 분지 중앙에 직사각 형태의 미사일 기지가 자리 잡고 있다. 400m×700m 섹터가 4개로 나뉘어 있다.
우측 상단에 미사일 사이트와 막사, 하단에 정비창과 격납고가 있다. 좌측 상단에 레이더 사이트, 하단에 경비대 숙소가 보였다.
“머가 저케 많노?”
미사일 사이트가 설렁탕집 수저통처럼 빽빽했다. 무려 120기다. 평소 생각해왔던 이미지와 완전히 달랐다. 좁은 구역에 빽빽이 들어선 미사일 숲에 기가 질렸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요량이 서지 않았다.
겐트리 로드에 장착된 거대한 미사일이 직사각형 형태로 포진해 있다. 직립형이 삼 분의 일, 삼분의 이는 45도 각도로 거치되어 있다. 방향은 대분분이 터키다. 미사일 후방에는 삼각형꼴의 B200 요요 레이더가 떡 버티고 서있다.
카파루자 계곡에는 트레일러가 들어올 수 없다. 후방에 도로가 숨겨져 있거나 엄청난 물량을 일일이 항공 수송했다는 이야기다. 아사드가 카파루자 계곡에 쏟은 예산이 얼마나 될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프랑스와 터키에 이를 갈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S-25 베르쿠트는 본격적인 지대공 미사일 시대를 연 선구자로 1952년부터 배치되기 시작했다. 베르쿠트는 레이더와 씨커의 기술적 문제로 유연성과 기동성이 부족하다. 사이트를 직사각형으로 배치한 이유는 360도 전방위 공역 표적 확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동쪽에서 접근하는 항공기를 잡으려면 탄두 방향이 동쪽으로 향해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제한적인 방공 섹터는 방공망 구성에 큰 핸디캡이 된다.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항공기가 레이더에 잡혀도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는 소리다.
소련은 고성능 대공포로 구멍 난 방공 섹터를 메꾸려 했다. 결과적으로 삽질이 되었다. 전투 항공기 고도가 끝없이 올라가 버린 것이다. 아무리 성능 좋은 고사포라도 10km상공의 전폭기 꽁무니를 걷어차지는 못한다. 소련군이 서둘러 S-75 드비나를 개발한 이유다.
베르크트는 장점도 있다. 탄두 중량과 요격 고도에 비해 발사 중량이 가볍다. 드비나가 발사 중량 2,300kg인 반면 베르쿠트는 570kg에 불과하다. 겐트리 로드 역시 경량이다. 아사드 입장에서 고고도 정찰기를 격추할 이유는 없다. 공역을 넘어오는 터키와 프랑스 전투기가 표적인만큼 중고도 경량 미사일인 베르쿠트가 카파루자에 적합했을 것이다.
소련은 베르쿠트 배치 후 S-75와 부끄 미사일을 연달아 개발했다. 애물단지가 된 11,000기의 베르쿠트는 북한, 동구권, 시리아, 이집트에 헐값으로 넘어갔다. 소비에트 연방에는 비교적 중요도가 떨어지는 지역의 방공 사이트에만 재고가 남았다. 미국과 러시아가 신무기 개발에 유리한 점이다.
베르쿠트는 일부 방공 섹터만 방어 가능하므로 다량의 미사일 사이트가 필요하다. 공역 확보를 위해 베르쿠트와 1:1로 요요 밴드를 연동해서 전투 정보를 획득한다.
요요의 탐지 정보는 레이더 사이트의 B-200 레이더 및 A-11 / A-12 안테나와 연동된다. 더블 릴레이를 거쳐야 하는 만큼 중추인 B-200 레이더만 박살 내면 거대한 미사일 사이트가 먹통이 된다. 물론 일시적 효과에 불과하다.프랑스 당국이 바라는 바도 아니다.
블랙맘바가 미사일 사이트, 그것도 소련의 미사일 체계를 알 리 만무했다. 그 부분은 폭탄마 장쒼의 영역이다. 새삼 전역한 장쒼이 그리웠다.
“니미 조또, 싸그리 불지르마 끝판이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그는 모조리 폭파하면 된다고만 생각했다. 스트렐라같은 딱총이 아니라 명색이 지대공 미사일이다. 덩치 큰 사냥감은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잔뜩 날이 선 기지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 스스스슥- 바위 아래 서 있던 블랙맘바가 땅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땅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다음 구멍이 메꿔지고 낙엽이 날아와 쌓였다. 한 숨 때리고 밤이 되기를 기다릴 심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