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53
x 253
제28장 나를 위해 종을 울린다4
천망회회 소이불실인가? 운명의 장난인가? 마수드 준장이 이끄는 제3공수여단은 하마 시에 네이팜탄을 퍼부은 부대다. 15,000명의 생령을 불로 심판한 제3공수여단은 물로 심판받았다. 종은 저절로 울리지 않는다. 누군가 종을 두드리고 누군가 듣는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
이것이 죽으므로 저것이 죽는다.
클로토는 운명의 실을 잦는다.
라케시스는 운명의 실을 감는다.
아트로포스는 베틀에 걸린 실을 잘라버린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음이 이와 같다. 그 뉘라서 복잡한 인간사를 두부 모 자르듯 이것이다 저것이다 재단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그 누구도 남을 위해 종을 울리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 종을 울린다. 우연과 상황 논리에 따라 미화되거나 폄하될 뿐이다.
대형 재해를 일으킨 장본인 역시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다. 세찬 물살이 의식을 잃은 블랙맘바를 끌고 쏜살같이 지하로 향했다. 블랙맘바의 불장난으로 인해 벌어진 단층 슬롯의 개구부는 붐과 암을 접은 중형 굴삭기가 드나들 정도로 넓었다. 콰르르- 카파루자 계곡을 치달려온 호숫물이 거대한 틈바구니로 소용돌이치며 빨려들어갔다.
블랙맘바는 45도로 경사진 거대한 직선 슬라이드 풀을 탔다. 수 천만 톤의 물이 시속 100km로 쏟아지는 굉음이 천지를 울렸다. 인간의 몽뚱이는 가랑잎이다. 팽이처럼 구르고 뒤집히며 시커먼 지하로 향했다.
지형이 복잡한 동굴이었으면 살아날 길이 없다. 동굴 굽이가 꺾일 때 동굴 벽에 처박혀 떡이 되거나 석순에 걸려 몸이 쪼개져 버린다. 직선으로 뻗은 매끈한 절리가 블랙맘바를 살렸다.
순조로운(?) 여행은 금방 끝났다. 콰콰콰- 굉량한 폭포 소리가 지하를 울렸다. 두께 200m 단층 기반암 아래 거대한 지하 공동이 입을 딱 벌리고 쏟아지는 호숫물을 받아냈다. 지각 운동으로 암석틈이 벌어지고, 석회석이 지하수에 녹아서 빠져나간 자리다. 콰르르- 블랙맘바를 싣고 맹진해온 호수물이 150m 아래 지하 호수로 자유 낙하했다.
푸악- 시커먼 허공이 인간 형상을 탁 뱉어냈다. 별로 아름답지 못한 포즈로 짧은 자유를 만끽한 물체가 속절없이 수면에 떨어졌다.
150m 높이에서 인간이 수면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수면과 접촉한 면적이 클 경우 땅바닥에 떨어진 충격과 동일한 데미지를 입는다. 물이 전단저항에는 약하지만 넓은 면적에서 표면 장력이 작용한다. 블랙맘바가 받은 충격은 인간이 개구리 뒷다리를 잡고 땅바닥에 내리쳤을 때 개구리가 받는 충격에 필적했다.
푸앙- 지하 호수에 내동댕이쳐진 물체가 물속 깊이 잠겨들었다.
“헉!”
신체가 으스러지는 충격이 정신을 되돌렸다. 본능적으로 손발을 휘저어 수면으로 떠올랐다. 뉴런이 현실을 접속했다.
“머꼬?”
천하의 블랙맘바가 영구처럼 중얼거렸다. 안갯속을 헤메던 정신이 차츰 깨어났다. 물속이다. 멍석말이를 당한 듯 온몸이 저리고 뻣뻣했다. 불빛 한 점 없는 절대의 어둠, 까마득한 허공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의 굉음, 피부를 파고드는 한기. 그야말로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다.
쓰라린 통증이 정신을 한 단계 더 깨웠다. 오른손으로 뒤통수를 더듬었다. 커다란 혹 두 개, 피딱지가 머리카락과 엉겨 눌어붙었다.
‘정신을 잃었었구마.’
뒤통수를 치고 지나간 거대한 쇠뭉치가 생각났다. 머리가 박살 나야 마땅할 타격이다. 사헬에서 후블러브를 복용하고 철두가 된 덕분에 살았다.
어둠, 굉음, 텁텁한 공기, 고립감이 불안감을 키웠다. 불안은 인식이 시간과 공간을 정리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개체보존 기전이다. 개체의 자아가 위치를 설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감을 느낀다. 시간의 공포, 장소의 공포다. 인간은 불안감을 두가지 행태로 해소한다. 일탈과 현상의 재인식이다. 블랙맘바는 물론 후자에 속한다.
유마참장공으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솨아아- 박하향이 뇌를 한 바퀴 돌아 척수로 향했다. 머리가 차가워지고 등줄기가 뜨거워졌다. 척수가 빛나는 알갱이를 수없이 방출했다. 빨라진 혈류가 에너지와 산소를 퍼 날랐다. 굳은 몸이 풀어지고, 청각도 제자리를 찾았다.
감각이 다소 회복되자 야안이 발동되었다. 어둠 속에 파랗게 빛나는 구슬 두 개가 타올랐다. 수면에 둥둥 떠다니는 푸른 빛 덩이가 광원 역할을 해 주었다. 지하에 서식하는 발광 박테리아 군체다. 증폭률 낮은 야시경을 들여다 보듯 어슴프레한 녹색의 세계가 펼쳐졌다.
위치의 재인식이다. 불안감이 사라지고 용기가 불끈 솟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과 달리 동굴 내부는 후덥지근했다.
“여기가 어디지?”
짐작도 되지 않는 생소한 장소다. 댐이 붕괴하고 커다란 쇳덩이에 뒷통수를 맞은 순간까지만 기명 되어 있다. 뉴런과 시냅스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맹렬히 접속하고 이탈했다.
“지하 동굴이다.”
정보를 취합 대조한 뇌가 연산을 끝내고 결론을 내렸다. 과정과 경과가 생략되었지만, 지하 동굴로 빨려들어왔다. 즉시 신체 점검에 들어갔다. 뒤통수에 큰 타격을 받은 외에는 자잘한 타박상과 찰과상이 전부다.
“꼬라지하고는! 쯧쯧.”
행색을 살펴본 블랙맘바가 혀를 찼다. 상체가 벌거숭이다. 전투복 상의와 방탄복, 리넨 속옷까지 몽땅 사라졌다. 백팩과 헬멧이 사라졌다. 발목에 찬 글록도 홀스트째 사라졌다. 바지는 갈가리 찢어져 허벅지 윗부분만 남았다. 그나마 성기를 덜렁거리지 않아 다행이다.
백팩에 들어있는 무기와 식량도 당연히 사라졌다. 남은 무기라곤 팔목에 감긴 비갑, 왼쪽 가슴에 장착된 쿠크리, 손에 들린 고르곤이 전부다. 화약 무기를 몽땅 분실하고, 냉병기만 남았다. 개조 드라구노프가 가슴 아팠다.
왼손이 끔찍한 폭류에 불구하고 고르곤을 꽉 쥐고 있다. 얼마나 강하게 쥐었는지 특수 수지와 천연고무를 합성해서 만든 손잡이에 손가락 자국이 남았다. 댐이 터지며 쏟아져 나온 호숫물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했다. BMW 바이크보다 더 빠른 폭류속에서 고르곤을 놓치지 않은 손이 기특했다. 툴툴 웃음이 나왔다. 자신은 천상 전사다.
무엇인가 다리를 툭 쳤다. 생기가 없는 물체라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아직도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물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걸리적거리는 물체를 건져냈다.
“젠장!”
뼈란 뼈는 다 부러져서 흐물거리는 시체다. 눈알이 빠져나간 퀭한 구멍 두 개가 원망하듯이 노려보고 있다. 손에 잡힌 시체를 휙 집어던졌다. 안력을 돋우었다. 지하 공동에 둥둥 떠다니는 수많은 물체가 보였다. 탄화되었거나 찢어진 시체다. 수백 구, 아니 셀 수도 없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계속 시체를 토해냈다.
“아아, 생령을 너무 많이 해친 응보인가!”
지하 깊숙이 처박힌 신세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가하게 한탄할 계제가 아니다. 쿠르르- 호숫물이 요동쳤다. 소용돌이가 일며 무섭게 한 방향으로 빨려들어갔다. 수압이 약한 부분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출구를 찾았다.
와류를 벗어나려고 손발을 휘저었지만, 턱도 없다. 물은 블랙맘바의 영역이 아니다. 쿠르르- 입을 딱 벌린 시커먼 공동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옥행 입구다.
“니기미 조또!”
정신없이 손발을 놀렸다. 흐름을 거스르기엔 미약한 몸부림이다. 동굴이 바로 눈앞에 닥쳤다. 슁- 고르곤을 휘둘러 동굴 입구에 튀어나온 바위를 감았다.
“이런, 빌어먹을!”
또다시 욕설이 튀어나왔다. 간발의 차로 한 바퀴밖에 감지 못했다. 한 바퀴로는 매듭을 지을 수 없다. 고르곤이 허무하게 풀려버렸다. 시커먼 공동이 블랙맘바를 꿀꺽 삼켰다.
‘동방불패는 개뿔이, 꼴좋다. 깝죽거리다가 지옥행 열차를 타는구마. 크크크!’
웃음이 나왔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지만, 급류는 호랑이가 아니다. 호랑이야 한 대 치면 윽하고 죽겠지만,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급류는 대책이 없다.
죽는다는 두려움 따위는 없다. 사부가 말씀하시기를 할 일이 많은 놈은 쉽게 죽지 않는다고 하셨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대로 계속 끌려들어 가면 쥘 베른의 소설처럼 120km 아래 이상한 지저 세계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물론 쥘 베른은 지각이 가장 두꺼운 히말라야도 70km가 채 못된다는 사실은 몰랐다. 120km 지하는 기이한 생물이 사는 별세계가 아니라 바위가 녹아 흐르는 멘틀이다. 멘틀까지 끌려들어 가서 뼈까지 녹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는 고르곤을 휘두를 찬스만 노렸다.
“억!”
첨벙- 놀란 블랙맘바가 머리를 물속에 박았다. 갑자기 동굴 천장이 낮아졌다. 하마터면 종유석과 박치기를 할 뻔했다. 급경사 석회굴이다. 동굴 천장에 종유석이 창날처럼 솟아있다.
그는 관광객이 아니다. 지옥 열차를 탄 초청받지 못한 손님이다. 종유석은 구경거리가 아니라 목숨을 위협하는 흉기다. 시속 100km 가까운 속도로 종유석과 충돌했다간 철두공도 버티지 못한다. 뇌수를 쏟지 않으려면 장애물 경주를 하듯 종유석을 피해야 한다. 블랙맘바는 방아깨비처럼 물속에 머리를 처박았다가 쳐드는 동작을 되풀이했다.
“윽!”
물속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놀란 블랙맘바가 바닥에 솟아있는 석순을 주먹으로 갈겨서 부러뜨렸다. 하마터면 배가 갈라질 뻔했다. 동굴 바닥에 송곳같은 석순 천지다. 시속 100km 급류에 휩쓸려가면서 바닥의 석순과 천장의 종유석을 피해야 하는 개 같은 상황이다.
동굴이라면 이가 갈렸다. 방태산 동굴에 갇혀 꼬박 7개월 동안 암흑속에서 살았다. 썩은 뱀 고기와 지네로 연명한 하루하루가 악몽이었다. 덕분에 야안과 초감각을 얻어서 위험을 헤쳐나가고 있으니 인생사 새옹지마다.
블랙맘바는 수시로 고르곤을 휘둘러 종유석을 감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물살이 너무 빨라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기회를 잡으면 종유석과 석순이 생명을 위협했다.
생사를 건 악전고투가 계속되었다. 종교가 있었으면 기도를 했겠지만 태생이 땡중도 못되는 처지다. 육두 문자만 연신 쏟아냈다. 천생산에서 중심 잡기 수련을 하지 않았으면 벌써 골로갔다.
석순과 종유석보다 더 위험한 요소가 동굴 굽이다. 타이밍을 잡아 흐름을 타지 못하면 동굴벽에 개구리처럼 패대기쳐진다. 동굴이 꺾어질때마다 모골이 송연했다. 차라리 시리아군 전체를 상대로 싸우는 쪽이 백번 낫다.
블랙맘바는 십 대 시절에 종유굴에 갇혀 7개월을 온전히 버텨낸 악바리다. 절망적인 상황에 불구하고 악착같이 저항했다. 작은 종유석과 석순은 깨부수고 큰 종유석은 피했다. 동굴이 꺾어지면 궁신탄영으로 물을 박차고 흐름에 섞여들었다. 입에선 연신 씨바 조또가 나왔다.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다.
사실 블랙맘바는 불평할 입장이 아니다. 그는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댐을 터뜨린 장본인이다. 멀쩡한 종유굴도 그가 저지른 불장난으로 인해 수중 동굴이 되었다. 자업자득이다. 동굴속에 텁텁한 공기라도 흐르고 있음이 천행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도 아니다. 지하로 끌려들어 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공기가 사라지는 순간 죽는다. 벌써 산소 밀도가 희박해지기 시작했다.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강력한 파란트로푸스의 체력도 무한하지는 않았다. 데미지 누적, 체력 소모, 얼음장 같은 수온, 3단 콤보가 빠르게 기력을 소모시켰다. 굶주리고 지친 인간이 토끼굴로 빨려 들어가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허기가 졌다. 무심코 등을 더듬었다. 백팩이 있을 리 없다. 깜박깜박 졸음이 닥쳤다. 산소 부족이다. 뜨거운 혜영의 몸, 변함없이 해바라기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진순, 사랑스러운 에델이 스쳐갔다. 내팽개쳐 둔 황금도 생각났다.
‘젠장, 살아야 황금이지.’
다정한 엄마, 자상한 아버지가 떠올랐다. 목이 메었다. 죽음에 임해서 겨우 여덟 살짜리 아들에게 엄마를 지켜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아버지다. 아버지 생각만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도록 부동의 중심이 되어준 아버지다. 자신은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
어머니, 불쌍한 내 어머니! 한줄기 눈물이 볼을 적셨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아버지 유언을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 유언을 지키지 못하면 사나이 무쌍이 아니다.
“나는 동방불패다. 박진보의 아들 박무쌍이다.”
거창한 고함이 쾅쾅대는 물소리를 눌렀다. 잠이 휙 달아났다. 잠들면 죽는다. 남은 기력을 짜냈다. 유마참장공을 시전해서 체온 저하를 막았다.
콰콰콰- 폭포 소리다. 거리를 감지할 수 없지만 그리 멀지 않다. 위기다. 폭포에 휩쓸려 들어가면 진짜로 죽는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온갖 생각이 증발했다. 배고픔도 목마름도 잊혔다. 당면한 문제는 생존이다.
그 순간, 세찬 흐름이 주춤했다. 동굴이 갑자기 넓어졌다. 2~3m 남짓한 동굴 폭이 4~5m로 넓어졌다. 천장도 2m로 확 높아졌다. 마지막 찬스다.
“동굴 테라스다.”
마침 거울처럼 매끄러운 벽면에 용케 발을 디딜 턱이 보였다. 동굴 테라스는 현재 동굴이 과거에 물이 흘러갔다는 표시다. 동굴의 형태로 볼 때 다른 가지 굴이 있다는 이야기다. 츄잉- 고르곤이 동굴 벽에 삐죽이 내민 동굴방패를 향해 날아갔다. 편두의 오망성 표창이 동굴방패 첨두를 휘리릭 감았다. 채찍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합!”
근육을 폭발시켰다. 발끝에 걸린 석순을 박차고 용등호약으로 몸을 뽑아 올렸다. 뿌득- 디딤돌이 된 허벅지 두께의 석순이 뭉청 부러졌다. 푸악- 강력한 추진력은 받은 신체가 포탄처럼 수면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