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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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장 미지와의 조우1
“합!”
쩌렁한 기합이 급류가 쿵쾅대는 소리를 눌렀다. 포탄처럼 수면 밖으로 튀어나온 블랙맘바가 허공에서 운리번신의 한수를 빌어 테라스에 올라섰다.
“후우!”
탁해진 호흡을 길게 뱉어냈다. 고르곤의 탄력을 빌지 못했으면 성체 숫말의 힘으로도 불가능했을 탈출이다. 일상적인 근육 수축은 탄수화물과 지방을 태워 힘을 만들어 내지만, 폭발적인 근육 수축은 무산소 반응을 통해 축적된 ATP를 대량으로 소모한다. 에너지를 폭출시킨 상지근과 광배근이 푸들거렸다. 근막이 일부 파열되었다.
일순간에 뽑아낸 힘은 대형 트럭을 뒤집어 엎을 운동량이다. 웬만한 굵기의 등산용 로프였으면 역도를 견디지 못하고 끊어졌다. 채찍을 버리고 도주한 오셀롯이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아니 채찍을 챙긴 옴부티, 수선해서 전해준 에밀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다.
“흐미, 참기름뿌린 얼음판이구마.”
비틀하는 자세를 안정시키고 숨을 들이켰다. 테라스 폭이 손바닥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야안과 공간지각력을 발휘하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간신히 테라스에 발을 붙였지만, 끝이 아니다. 물에 젖은 수직 벽면이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미끄럽다. 천생산 계곡에서 지팡이에 맞아가며 중심잡기 조련을 받지 않았으면 발붙이기도 힘들다.
눈 아래 거센 물살이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빠르게 흘러갔다. 쇳덩이를 던져넣어도 휩쓸려 갈 만큼 유속이 빨랐다. 눈을 돌렸다. 계속 바라보다가는 물속에 떨어질 것 같았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체 손상 없이 탈출했음이 기적이다. 마음 속으로 조상과 월송산 뼈다귀에 감사를 드렸다. 사헬의 아즈라일, 중동의 뚜바이부르파도 자연의 횡포 앞에 납작 엎드렸다. 폭포가 천 미터일지 만 미터일지 어떻게 알겠는가. 현실화된 위험보다는 미지의 두려움이 주는 불안감이 더 큰 법이다.
얼음장 같은 급류를 벗어난 것으로 일단 첫 고비는 넘겼다. 이제부터 본 게임이다. 지하로 얼마나 깊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지상 탈출로가 있는지도 장담 못 한다. 한가지 희망은 공기가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지상으로 올라가려면 굳은 근육부터 풀어야 한다. 고르곤 편두를 동굴벽에 박아넣고 허리를 감아서 고정시켰다. 유마참장공으로 근육을 풀고, 공진파를 휘돌려 장기를 덥혔다. 심부 체온이 떨어지면 움직임이 둔해진다. 신체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 두어야 실낱같은 기회라도 잡을 수 있다.
노자 도덕경에 거거거중지 행행행리각(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이란 말이 나온다.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중에 깨닫게 된다는 의미다. 블랙맘바의 좌우명중 한가지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기회를 잡을 수 없고, 행동하지 않는 자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물속은 얼음처럼 차갑더니 대기는 한여름 날씨 이상으로 후덥지근했다. 루만 작전 당시 알레포의 기온은 18℃로 선선한 편이었다. 동굴 기온은 40℃를 상회했다. 지하로 내려가면 100m당 기온이 약 3℃ 올라간다. 대략 700m 지하라는 소리다.
지하 700m! 끔찍하다. 지상으로 올라가려면 수십 킬로를 헤매야 할지 모른다. 방태산에서 동굴 출구를 찾기위해 석달을 헤매지 않았던가. 갑갑한 노릇이다.
“7,000m도 아이고 그까짓 700m는 껌이지.”
블랙맘바는 늘 그렇듯 쿨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운다고 젖줄 놈도 없다. 어차피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을 징징거려봐야 힘만 빠진다.
동굴은 용암 동굴과 석회 동굴이 짬뽕 된 형태다. 석회 동굴의 존재는 예전에 이곳이 바다였다는 증거다. 태고에 바다가 융기했다. 화산이 터져 용암이 흘렀다. 그 후 대지진으로 지층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자연의 장엄한 역동성에 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강한 신체를 얻고, 무예 몇 조각 얻어 배운 자신은 하루살이에 불과했다. 인간이 하루살이라면 자신은 모기쯤 되려나!
겨우 10m를 전진하자 동굴 테라스가 뚝 끊어졌다.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벽면이 120도 오버행을 형성했다. 최근에 또 한 번 지각이 뒤틀렸다는 의미다.
매끈거리는 동굴 벽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다. 두웅- 공간지각력이 발동되었다. 체력이 소진된 탓인지 범위가 넓어지지 않았다. 머리가 깨어지라고 집중했다. 겨우 100m가 한계다.
전면 70m 밖의 공기가 역전되고 있다. 공기가 섞인다면 다른 공간이 있다는 의미다. 방태산 동굴에서 출구를 찾아 헤맸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수면에서 천장까지 높이가 겨우 1.5m다. 카파루자 절벽에서 써먹었던 진자 이동을 할 수 없다.
탁- 자신의 이마를 쳤다. 그동안 고르곤 만 사용하느라 쿠크리를 잊었다. 홀드에서 쿠크리를 뽑았다. 사헬에서 수많은 피를 먹은 연푸른 칼날이 요요했다. 왜 자기를 잊었느냐는 투정이다.
“이 자식아, 첩이 생기면 조강지처는 뒷전으로 밀리는 기다. 요로코롬 어려울 땐 조강지처가 생각나거든.”
실없는 소리를 주절거렸다. 방태산 동굴에 갇혔을 때 끊임없이 혼자 묻고 대답했다. 목소리를 달리해서 대화하기도 했다. 붕괴되는 정신을 다잡았던 버릇이 계속 남았다. 고립된 상황에서 썩 괜찮은 처방이기도 했다.
고르곤을 허리에 감고 왼손에 표창 다섯 개를 뽑아들었다. 재질이 텅스텐 합금강이지만, 젓가락처럼 가늘어서 체중을 지탱하려면 다섯 개는 필요했다.
퍽- 쿠크리가 동굴 벽에 깊숙이 박혔다. 쿠크리로 체중을 지탱하고 팔을 뻗어 왼손의 표창 묶음을 동굴 벽에 박았다. 다음엔 표창에 체중을 걸고 쿠크리를 박았다. 원숭이가 정글짐 타듯 번갈아 양손을 움직여 동굴 벽을 타고 전진했다.
말이 쉽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움직임이다. 기력을 모아 단단한 암석에 앙카 볼트 박듯이 칼을 박아넣고, 한쪽 팔과 어깨 근육으로 몸을 튕겨 올려 표창을 박고, 바위에 박힌 칼을 뽑아 같은 동작을 되풀이 해야 한다. 엄청난 기력을 소모하는 작업이다. 땀이 비오듯이 흘렀다. 후덥지근한 기온도 한몫했다.
“새끼 동굴이 있어야 해. 석회 동굴은 반드시 새끼 동굴이 있거든. 충분히 고생했다구. 난 땅강아지가 아니란 말이야. 난 보상을 받아야 해. 태양이 빛나는 풀밭에서 진수성찬을 먹을 거야. 김치찌개, 된장찌개, 부대찌개 다 먹을 거라고. 여자도 안고 새끼도 까야된단 말이야.”
블랙맘바는 끊임없이 주절거렸다. 깊은 우물도 계속 물을 퍼내면 바닥이 드러난다. 람보르기니도 휘발유를 넣지 않으면 달리지 못한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사기적인 체력도 바닥이 났다. 한시라도 주절거리지 않으면 쿵쾅거리는 급류로 떨어질 것 같았다.
“유레카!”
공기 냄새가 달라졌다. 3m 높이에 시커먼 공동이 입을 딱 벌리고 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벽에 박힌 표창을 잡고 철봉 체조하듯이 휘돌아 공동 속으로 튀어 들어갔다.
“억!”
허당이다. 겨우 한 뼘이나 될 테라스 뒤쪽은 수직갱이다. 수직갱 너머로 동굴이 이어지고 있다. 식겁한 블랙맘바가 엄지발가락에 부러져라 힘을 주었다. 늦었다. 관성을 이기지 못한 신체가 급격히 시커먼 구멍으로 밀려갔다.
“하 앗!”
슈앙- 고르곤이 반대쪽 동굴 벽을 향해 공간을 단축했다. 남은 기력을 몽땅 짜냈다.
“씨바알~”
꼭 한 뼘이 모자랐다. 고르곤의 길이가 6m다. 팔 길이를 감안하면 수직갱 지름이 7m 이상이라는 소리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갑자기 아랫도리가 허전해지고, 세상이 조용해졌다.
“아아악!”
비명이 길게 메아리쳤다.
블랙맘바는 사지를 활짝 펼치고 최대한 안정된 활공자세를 잡았다. 어차피 죽지 않으면 산다. 죽을 때 죽더라도 죽음을 기정사실로 해서 심력을 소모할 이유가 없다.
슈아앙- 세찬 바람이 귓가를 칼날처럼 스쳐 갔다. 되지엠 랩에서 수없이 경험한 자유 낙하다. 그때는 빙빙 돌기도 하고, 이쪽저쪽으로 방향도 바꾸고, 동료들과 손을 잡기도 했다. 지금은 가속도를 늘춰보려고 악을 쓰는 중이다. 차이는 딱 두 가지다. 낙하산이 없다는 것, 하늘이 아니라 땅속으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면 무덤 한 자락을 얻을 수 있지만, 땅속으로 떨어지면 묻히지도 못한다. 죽더라도 해골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도록 하고 싶지는 않다.
용을 써봐야 물리법칙은 어쩔 수 없다. 가속도가 붙자 볼살이 바람에 밀리기 시작했다. 자유 낙하 시 최초 1초는 5m/sec, 2초 후 14m/sec, 3초 후 23m/sec, 4초 후 32m/sec, 5초 후 41m/sec로 가속이 붙는다. 12초 후 중력 가속도와 공기 저항이 상쇄되면 53m/sec 속도로 등속 하강한다. 초당 53m면 대략 시속 190km다. 벌거벗은 몸으로 고글도 없이 190km 속력으로 추락하고 있다.
카운터를 시작했다. 브라이들 손잡이가 없는데 카운터를 해 봐야 무슨 소용일까. 반복 훈련이 만들어낸 습관이 별 의미도 없는 카운터를 하게 만들었다.
추락하는 와중에도 수차례 고르곤을 벽면에 날렸다. 낙하 속도를 감소시키려는 기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편두의 표창이 암벽에 꽂혀도 낙하 중량을 이기지 못했다. 매번 퍼석하고 암벽이 부스러졌다.
야안도 절대의 어둠에는 소용없다. 눈이 시퍼렇게 빛나고 있지만, 시각 정보는 전무했다. 속절없이 암흑속으로 끝없이 떨어질 뿐이다. 두웅- 쇠해진 기력에 불구하고 공간지각력을 발휘했다.
“씨바알, 내가 무협소설 주인공이냐고오~ 난 기연이 필요 없단 말이다.”
블랙맘바는 다급해졌다. 이대로 떨어지면 빈대떡을 면할 길 없다. 카운터 48, 추락 거리 2,200m 지점에서 변화가 생겼다. 지름 7~8m의 수직갱이 끝났다. 20m, 50m, 100m, 공간지각력이 끝없이 범위를 넓혀갔다. 거대한 공동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카운터 50, 칠흑 같은 어둠속에 쟁반 크기의 거울이 나타났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쟁반이 순식간에 멍석으로 변했다. 무엇인가 보인다는 것은 광원이 있다는 뜻이다. 수천 미터 지하에 광원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공간지각력으로 파악된 물체는 형상과 거리뿐, 질감과 내재한 의미를 알 수 없다. 시각에 비해 정보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의미다. 관안을 끌어올렸다. 집채만큼 커진 활꼴 거울이 카메라 줌처럼 쓰윽 당겨졌다. 빛나는 부분이 가위로 오려내서 허공에 띄운 것처럼 보였다. 거대한 짐승의 눈같기도 하고, 지상의 상현달 같기도 했다.
“호수다!”
블랙맘바는 미칠 듯이 기뻤다. 콩알만 한 희망이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 거울이 급격히 커졌다. 관안을 발휘하지 않아도 야안에 호수가 잡혔다. 주변도 어슴푸레 밝아졌다.
카운터 70, 대략 3,400m 추락했다. 수면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무협소설을 보면 허공을 가로지르고, 유유히 걷는 별 요상한 신법이 있다. 천마행공, 팔보등공, 천상제등 별별 신법이 그럴듯한 설명도 없이 등장한다. 무협은 무협일 뿐이다. 중력가속도가 붙은 물체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수단은 없다.
카운터 90에 입수 자세를 취했다. 거대한 호수가 바로 눈앞에 다가섰다. 신체 데미지를 최소화하려면 입수 면적을 최소화시켜서 쐐기처럼 물을 쪼개고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다. 두 팔을 귀 옆으로 올려서 머리위에서 손바닥을 붙였다. 나머지는 강력한 신체와 운을 믿을 수밖에 없다. 한 자루 송곳이 빗살처럼 떨어져 내렸다.
쉐액- 2초 후, 푸아앙- 착수했다. ‘크윽!’ 블랙맘바는 이빨을 악물고 신음을 삼켰다. 땅바닥에 떨어진 것과 진배없다. 끔찍한 충격이 내장을 뒤흔들었다. 뼈마디가 분해되고 근육이 뜯기는 통증에 신경이 아우성을 쳤다.
착수 즉시 무릎을 바짝 당겨 가슴에 붙이고 팔을 활짝 벌렸다. 침강하던 신체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갑작스런 부하를 감당하느라 뼈마디가 삐걱거렸다. 호수가 얕으면 바닥에 충돌한다. 머리가 박살 나는 것보다는 관절이 상하고 근육이 파열되는 게 낫다.
다행히 호수는 충분히 깊었다. 중력 가속도와 물의 저항이 상쇄되는 순간에 빙글 몸을 돌려 수면으로 솟아올랐다. 수면에 가까워지자 시커먼 물이 푸르스름하게 변했다. 투과되는 빛이 있다.
푸악- 찌든 얼굴이 물 밖으로 솟아 올랐다. 시퍼렇게 변색된 피부, 선홍색으로 물든 눈동자, 악문 이빨 사이로 배어 나오는 핏물, 줄줄흐르는 코피, 물속에서 나온 야차, 아니 아수라다.
후아, 후아- 블랙맘바는 정신없이 밀도 낮은 공기를 들이켰다. 쪼그라든 폐가 터질 것 같았다. 쉼 없이 혹사당한 근육이 푸들푸들 떨렸다. 작동을 멈춘 폐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흡 흡 흡- 호- 흡 흡 흡- 호-
일단 숨을 돌리고, 단흡장호의 기식법으로 들어갔다. 쏴아아 산소가 급격히 밀려들었다.
“이거 대단하구마.”
감탄사가 나왔다. 공기 밀도가 낮은 데 반해 산소 포화도는 대단히 높았다. 지상의 1.5배는 될듯했다. 들끓던 혈액이 제자리를 찾고, 푸들 거리던 근육도 안정을 찾았다. 신체가 안정되자 주변 사물이 눈에 들어왔다. 약 300m앞에 푸르스름하니 빛나는 육지가 보였다. 뒤를 돌아보자 수평선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