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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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장 미지와의 조우3
“망할, 역시 재수 없는 호수였어.”
사타구니, 겨드랑이, 발가락 사이 등 민감한 부위에 울긋불긋 발진이 생겼다. 가려워 미칠 지경이다. 호수 자체에 독성이 있거나 미생물에 감염되었다. 박박 긁고 싶지만, 꾹 참았다. 구급 약품은 백팩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외부 요인에 의한 발진은 긁으면 확산한다. 뜨거운 물로 미끈거리는 몸을 씻어내고 싶지만 언감생심이다. 독소에 강한 신체를 믿어 볼 수밖에.
육지부도 기괴하긴 마찬가지다. 나무 한 그루 흙 한 줌 없다. 푸른 빛을 뿜는 바위가 전부다. 발을 딛고 있는 기반암도 푸르스름한 빛을 뿜는 바위다. 그나마 물결이 찰랑거리는 호수 언저리에 반짝이는 가루가 반지처럼 좁은 테를 형성하고 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옥의 아이콘으로 각인된 방태산 석회굴이 명함도 못 내밀만큼 끔찍한 곳이다. 구태의연한 묘사에 지친 소설가나 지옥으로 신도를 위협하는 목사가 이 자리에 서면 영감을 얻을 살풍경이다.
재수가 없어도 더럽게 없다. 수중 동굴의 폭류를 벗어나는가 했더니 더 끔찍한 지저 세계로 추락했다. 아니다. 산소가 풍부하고 흐릿하나마 빛이 있다. 군화 가죽만큼이나 질기지만, 호수에는 먹거리도 있다. 이만하면 지하 5,000m에 펼쳐진 세상치고는 우아하지 않은가!
보라, 사라진 시대의 장엄한 풍경을, 그 어떤 인간도 볼 수 없는 태고의 신비를 엿보는 행운을 얻었지 않는가. 홀로 거대한 신비 앞에 깨어 있지 않은가. 의식없는 세상속에 나만의 의식이 오롯이 깨어있지 않은가! 더 없는 행운에 그대는 기뻐하라.
자조적인 위안을 했지만, 한숨은 더 깊어졌다.
자신이 겪은 일들을 표현할 형용사가 없다. 드라마틱, 다이나믹, 어메이징, 버라이어티, 스펙터클…….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이 안 된다. 남들은 모험을 꿈꾸며 평범한 삶을 한탄하지만, 자신은 평범한 삶을 꿈꾸며 끝없이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 있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육지는 죽은 듯이 고요했다. 바람도 없고, 소음도 없다. 흙도 없고 풀 한 포기 없다. 하긴 흙이 있을 리 없다. 지각은 기본적으로 암석이다. 풍화작용으로 부스러진 암석에 무기물과 동식물의 썩은 유기물이 섞여 만들어진 물질이 흙이다.
풍화작용이 없는데 흙이 있을 리 없다. 흙이 없으면 당연히 식물이 없다. 공상 소설에 등장하는 수목이 우거진 지저 세계는 삽질일 뿐이다. 심해는 열수공을 기반으로 생태계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육지는 또 다른 문제다. 식물이 없으면 동물도 없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수중 괴물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다.
지상에는 빛을 뿜는 발광 암석만 가득하고, 허공에는 지름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에 이르는 발광체가 부유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공간이란 말인가!
지구 종말이란 소설에 등장하는 희미한 태양이 그리웠다. 태양이 없으니 증발이 없고, 대류 현상도 없다. 물에 젖은 몸도 마르지 않는다. 공기 유동이 없는 세상이 이처럼 답답할 줄은 몰랐다.
문득 스타인 백의 ‘분노의 포도’ 한 구절이 생각났다. [동은 터도 낮은 오지 않는다. 뿌연 하늘에 붉은 해가 나타난다. 밝지도 않다. 그저 희미하게 불그레한 동그라미가 떠 있을 뿐이다. 세상이 어슴푸레하다.]
스타인 백은 태양이 먼지에 가려진 서부를 어슴푸레한 세상이라고 묘사했다. 그가 이곳의 풍경을 보았으면 절대로 쓰지 않았을 표현이다.
서부 개척 당시 이주 백인들은 수천 년간 살아온 인디언을 쫓아버렸다. 무주공산이 된 시원하게 펼쳐진 대지에 말뚝만 박으면 자신의 땅이 되었다. 백인들은 초지를 갈아엎고 조방 농업을 시작했다. 흙을 잡고 있던 풀뿌리가 사라지자 대지가 수분을 잡지 못했다.
생태계 균형이 무너지자 괴멸적인 파괴가 나타났다. 수분을 잃은 대지가 바람에 한 꺼풀씩 날려가기 시작했다. 수 미터의 표층 흙이 바람에 날아가고, 기반암이 드러났다. 결국, 굶주린 농부들은 도시 빈민으로 흘러들었다. 분노의 포도는 끝이 없는 인간의 이기심이 주제지만, 대지의 소중함을 날카롭게 메타포했다.
지구는 사과 껍질처럼 얇은 지각에 둘러싸여 있다. 두꺼운 곳도 수십km에 불과하다. 지각 표면을 덮은 흙은 수십cm에서 수십m에 불과하다. 분노의 포도에 묘사되었듯이 아차 하면 유실되고 기반암이 드러난다.
육지부의 모든 생물이 종이짝처럼 얇고 허약한 흙에 기대어 살아간다. 인간은 생육의 기반인 허약한 종이짝을 너무 쉽게 훼손한다. 스스로 목을 조르는 행위다. 물론 블랙맘바는 작중 인물의 고통과 분노에 공감하지 않았다. 원주인인 인디언을 학살하고 쫓아낸 백인들의 삽질을 비웃었다.
분노의 포도가 기억에 떠오른 이유는 지저 세계의 흐릿한 풍경 때문이다. 차드 북부에 자치구를 설계하면서 농경 방법을 고민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분노의 포도에는 붉은 해라도 있지만, 이곳엔 아무것도 없다. 블랙맘바는 일만 마일 떨어진 사마리아 농장에서 분노의 포도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꿈에도 몰랐다.
선물 꾸러미를 받으면 풀어보기 전에 이리저리 추측해 보는 재미가 있다. 흔들어 보거나 무게를 가늠해서 내용물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추정 실체와 개념의 합치다. 그러나 수십, 수백 킬로일지 모르는 지저 세계는 흔들어 볼 수도 없고, 무게를 가늠해 볼 수도 없다. 기명된 개념도 없다. 정보가 전무하다. 답답할 뿐이다. 힘이 쭉 빠졌다. 끝없이 넓은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회의가 생겼다.
나무가 없는데 산소가 풍부하다 못해 넘친다고? 수천 미터 땅속의 지하가 밝다고? 펄펄 끓어야 할 호수가 상온이라고? 의문만 끝없이 이어졌다.
블랙맘바는 또 다른 이유로 혼란을 겪고 있다. 놀람은 있을지언정 정신적 혼란이 없다. 육체는 견딘다 치지만 정신은 혼란에 빠져야 당연하다. 사유와 인식의 엄청난 괴리에 불구하고 고향에 온 듯한 안온함마저 느껴졌다. 50℃가 넘는 열기와 구성이 달라진 대기도 그리 곤란하지 않았다.
‘파란트로푸스 인자 탓인가?’
본인의 다급한 사정도 잊고 생각에 잠겼다. 파란트로푸스화된 11살 당시 잠만 들면 악몽에 시달렸다. 거대한 괴수와 싸우고, 돌로 지은 거대한 구조물을 차지하려고 인간이 아닌 이족 보행 생명체와 싸우기도 했다.
한 달간 계속된 꿈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무엇인가 잃어버린 고리가 있는 것 같다. 꿈속 세계의 배경에서 뜨거운 태양, 무성한 수목, 폭우와 번개, 화산폭발을 빼면 현재의 지저 세계와 비슷하다.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지웠다. 비슷하든 다르든 무슨 상관인가? 죽은 세상에서 살 것도 아니잖은가. 당면 문제는 황당한 지저 세계의 정보와 지상으로 탈출이다.
블랙맘바는 열심히 머릿속을 뒤졌다. 자신의 신체 변화를 이해하려고 중학교 시절부터 수많은 의학 서적과 생물학 서적을 읽었다. 얼치기 교사 수준은 된다.
발광 박테리아가 생육하려면 염화나트륨이 필요하다. 수면과 허공에 부유하는 빛나리 물체는 염호를 생존 기반으로 살아가는 발광 박테리아거나 공생 생물일 가능성이 높다. 바다에 존재하는 발광 어류가 발광 박테리아 공생체다.
육지에서 빛을 뿜는 암석은 월장석 종류일 가능성이 높다. 저처럼 밝게 빛나는 월장석은 들어 본 적도 없지만 말이다. 지저 세계의 현재 밝기는 에스트로노미컬 트와이라트(천문 박명, 태양고도가 지평선 아래 12∼18°가 될 때까지 하늘에 남아 있는 박명. 어두컴컴하다.)수준이다.
호숫물을 손으로 떠서 맛보았다. 수중에서 떠오를 때 짠물임을 알았지만 직접 확인해 보았다. 농도가 연하지만 짠물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더니, 빛을 얻고 물을 잃었다. 거대한 호수를 두고 목말라 죽게 생겼다. 죽기 싫으면 부작용을 무릅쓰고 끈적한 녹색 피를 마셔야 한다.
반짝이는 모래 한 움큼을 집어들었다. 검은 모래는 운모, 투명한 모래는 석영이다. 그 외에 몇 가지 알 수 없는 광물도 모두 반사율이 좋다.
“킴벌라이트?”
킴벌라이트는 다이아몬드 덕분에 유명해진 광물이다. 킴벌라이트 파이프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킴벌라이트의 구성 광물은 금운모, 타이타늄 철석, 크로뮴 철석, 인회석, 자철석등이다. 주로 반짝이는 광물이다.
“헛, 활화산이 있나?”
갑자기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문제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다. 킴벌라이트는 지각과 맨틀 경계층에서 생성된다. 킴벌라이트와 다이아몬드는 화산 폭발에 의해서만 지상에 등장한다. 지저 세계에 화산이 있다는 소리다.
그러고 보니 구리 한 냄새가 후각에 잡혔다. 대기 중에 황과 암모니아가 섞여 있다.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소리다.
“니미 떠그랄, 이번엔 용암에 휩쓸릴 차례냐!”
버럭 소리 질렀다. 신의 장난이라면 너무 심하다. 기우일지 모르지만, 경험에 의하면 나쁜 예감은 빗겨가는 법이 없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고 했더니 아직 바닥이 남았다.
“저건 머꼬?”
호면을 따라 거뭇거뭇한 크고 작은 바위가 수없이 널려있다. 마치 콩을 뿌린 타작마당 같았다. 익숙지 못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최대한 정보를 모아야 한다.
슁- 고르곤이 항아리 크기의 바위를 휘감았다. 여러 가지로 편리하게 쓰이는 채찍이다. 보기와 달리 무게감이 없다. 힘없이 끌려온 물체는 바위가 아니다. 해면처럼 퍼석한 모래 알갱이 덩어리다. 손으로 툭 치자 퍼석하고 부서졌다. 끈적한 물질이 손에 묻었다.
“스트로마톨라이트!”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새나왔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시아노박테리아의 끈끈한 석회질 성분이 물에 떠다니는 흙과 모래 입자를 집적시켜 층층이 자라난 퇴적물이다. 시아노박테리아는 수십억 년 전부터 지구 상에 번성한 광합성 박테리아로 지구에 산소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의문이 풀렸다. 시아노박테리아 또는 비슷한 미생물이 월장석 빛을 흡수해서 광합성을 했다. 산소 포화도가 높은 이유는 시아노박테리아가 수억 년간 산소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끈적한 호숫물은 번성한 시아노박테리아 때문이다. 푸른 빛을 흡수해서 광합성을 하려면 시아노박테리아는 붉을 색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밝은 태양 아래 호숫물을 보면 피빛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선캄브리아기부터 중생대의 지구 생태계가 유지된 지저 세계다. 육지부에 물과 바람이 없으므로 육상 식물이 등장하기는 불가능한 환경이다. 지상의 식물 씨앗이 자신처럼 우연한 기회에 유입되더라도 생육할 가능성이 없다.
반면에 유기질이 풍부한 해양 생태계는 왕성하게 발달했다. 산소 포화도가 높은 만큼 거대한 수중 동물이 존재한다. 어쩌면 몸길이 30m짜리 메갈로돈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응!’
그물처럼 펼쳐둔 공간지각력 한 자락이 출렁했다. 위치와 형태가 기명 되기 전에 감지된 물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상에 생물이 있다면 놀라운 일이다. 그 생물이 순간 이동을 한다면 더 놀라운 일이다.
공진파를 방사했다. 찌이잉- 엑티브 탐신음에 무엇인가 걸렸다가 스르륵 빠져나갔다. 점입가경이다. 스텔스 동물이 아니고는 공진파에서 벗어날 수 없다. 프랑스 과학원과 병기창이 한창 스텔스 기술을 개발하던 시기다. 클로드 과장에게서 스텔스 기술의 개념에 대해 들었다.
‘내가 잘못 파악했나?’
고개를 갸우뚱했다. 신체가 막대한 타격을 계속 받고,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 만큼 초상 감각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측의 대기가 살짝 흔들렸다. 블랙맘바의 시선이 돌아갔다.
“허억!”
기겁한 블랙맘바가 뱀에 물린 듯 20m를 펄쩍 뛰어 물러났다.
“흐 흑표!”
말을 잊지 못했다. 중생대 지저 세계에 표범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하시시에 취했거나 열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저놈은 분명히 표범이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다시 보았다. 시베리아 호랑이보다 한 둘레 큰 흑표범이 겨우 10m 떨어진 바위에 거짓말처럼 우뚝 서 있다. 고개를 너부죽이 숙여서 내려보는 모습이 오만하기 이를 데 없다.
블랙맘바의 뇌가 새로운 적을 분석했다. 체장 3m, 어깨높이 1.5m, 꼬리 길이 1.5m, 체중은 400~500kg, 창날 같은 이빨과 붉은 눈동자. 지상의 그 어떤 생명체도 따르지 못할 압도감을 풀풀 풍겼다. 호수에서 처치한 크로노사우루스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사헬에서 오셀롯을 만났을 때처럼 서늘한 한기가 척추를 타고 흘렀다.
‘역시 문제가 있나?’
블랙맘바가 눈을 깜박였다. 심상에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았다. 공간지각력은 보이지 않는 생물체를 심상으로 형태를 만들어 내는 공능이다. 막강한 전투력의 베이스가 본체를 파악하고 강약을 판명할 수 있는 이미지 형성이다.
오셀롯의 심상 이미지는 사악함과 거대한 폭력성이다. 꿈속에서 자신과 난투를 벌인 괴물도 그러했다. 이놈은 물과 같다. 악의도 선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압도적인 존재의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몸이 짜부라질 듯 거대한 압박감만 느껴졌다.
“옴마니반메홈! 오옴!”
묵직한 육자진언에 대기가 출렁했다. 흑표가 움찔했다. 진언에 실린 공진파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불쾌한 압박감이 툭 끊어졌다.
표범이라면 이가 갈린다. 방태산 동굴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뺨에 남겨진 세 줄기 발톱 자국의 범인이 표범이다. 등에도 표범의 발톱이 남긴 깊숙한 흉터가 밭고랑처럼 그어져 있다. 놈을 죽이기까지 전신이 걸레처럼 찢어지고, 내장이 흘러나왔다. 지금이야 한 입 거리에 불과하지만 허약한 당시엔 힘겨운 상대였다.
표범을 때려죽인 존재가 허약하다면 이상하지만 현재의 무력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표범 트라우마가 되살아났다. 만만치 않아 보이지만 그래 봐야 표범일 뿐이다.
“죽인다!”
살기와 악의가 폭증했다. 파악- 바위를 박차고 쇄도했다. 쉬앙- 고르곤이 번개같이 흑표를 덮쳤다. 흑표가 고개를 살짝 틀어 피하는 순간 손목을 움직여 편두 방향을 바꾸었다.
오망성 표창이 뱀처럼 방향을 바꾸어 머리를 직격했다. 크룩- 흑표는 예상치 못한 콤보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뻑- 박 터지는 소리가 났다. 쿠악- 비명이 터지고, 거체가 우당탕 돌 바닥을 굴렀다.
“점마 머꼬?”
블랙맘바가 화들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