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59
x 259
제29장 미지와의 조우6
-나는 깜둥이?
흑표가 중얼거렸다. 사념에 기쁜 감정이 실려있다. 은근히 민망했다. 아무렇게나 부른 깜둥이가 이름이 되어 버렸다. 상대방이 좋아하니 미안한 기분도 들었다.
-그렇다. 너는 깜둥이다.
-고맙다. 너는 무엇인가?
-나는 인간이라는 종이다. 나는 동방불패다.
-인간? 동방불패, 네 지식을 읽어도 되겠나? 지식과 사고 체계가 너무 다르다. 대화를 나누고 이해하려면 네 지식과 개념이 필요하다.
-그러든지.
슈아아- 갑자기 뇌가 시원해졌다. 무엇인가가 뇌를 더듬는 느낌이 자글자글했다. 동시에 깜둥이의 토막 기억도 자신의 기억처럼 떠올랐다.
‘얼래, 사념 파의 진원이 깜둥이였나?’
블랙맘바의 적정이 흔들렸다. 지금 자신에게 사념을 전하는 존재가 깜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의식이 현실과 접속되었다.,
“헐, 점마 머꼬!”
깨어난 블랙맘바는 멍청하니 흑표를 바라보았다. 곧 죽을 줄 알았던 놈이 편안한 자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체구도 본래 크기로 돌아갔다. 끔찍한 회복력이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제정신이 들고 보니 내면의 존재가 아니라 저놈이 자신에게 사념을 전했다. 말문이 턱 막혔다.
-인간 동방불패, 이름과 지식을 줘서 고맙다. 이로써 나는 형체와 속성이 만들어졌다. 나는 정의된 존재가 되었다.
“허! 사부님 수준인가? 혜광심어? 어의전성?”
언어를 통하지 않고 의미가 그대로 뇌에 전달되었다. 구태여 말하자면 정형화된 사념 파다. 언어는 발성기관을 통해 만들어진 음성기호가 공기 매질을 통해서 수화기관인 귀에 전달되면 뇌가 이를 분석한다.
의미를 뇌 언어중추 시냅스에 바로 전달할 수 있으면 언어가 필요 없다는 뜻이다. 깜둥이가 직접 뇌로 의미를 전달했다? 갈수록 태산이다. 이건 살아있는 판타지다. 가능한 일인가?
“그렇군!”
블랙맘바는 이마를 탁 쳤다. 적정상태에서 흑표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다면 공진에 뜻을 실어 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음파에 공진을 실었는데 공진에 의지를 싣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게 바로 무협 소설에 나오는 혜광심어가 아니겠는가.
정심공으로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혔다. 외물을 잊고 깊이 내면으로 침잠했다. 두웅- 공진이 절로 발동되었다. 부드럽고 질기다. 억세고 날뛰는 공진파가 아니다. 공진에 뜻을 실었다.
-형체와 속성을 얻었다고? 네 정체가 뭐냐? 흑표가 아니었나?
너는 도대체 무엇이냐?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이곳은 중생대의 고립된 생태계다. 진화 계통도에 의하면 표범 출현 시기는 아무리 높이 거슬러 올라가도 4백만 년을 넘지 못한다.
1억 년과 4백만 년은 접속되기 어려운 시간 갭이 있다. 본래 지질시대가 모호하긴 하지만 너무 차이가 났다. 표범과 동류인 검치호도 마찬가지다. 지질 시간대로 따지면 표범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니다. 나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비정형 존재다. 네 기억속에 저장된 개념에 의하면 동물도 아니고 식물도 아니다. 흑표는 네가 만들어낸 형상일 뿐이다. 너는 표범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이 나를 흑표로 인식했다. 그래서 나는 흑표라는 형상으로 나타났다. 이젠 네가 깜둥이라는 이름을 주었기에 깜둥이로 존재하게 되었다.
-뭐라고? 그럼 내가 너를 인간 암컷으로 인식했으면 인간 암컷으로 나타났다는 말이냐? 그런 거냐?”
-당연하다.
-이런 젠장, 에델이라고 생각했으면 얼마나 좋아.
블랙맘바는 혀를 찼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속이 쓰렸다. 시커먼 놈의 말대로라면 만신창이가 되도록 싸울 것도 없고, 므흣한 시간을 보냈을 것 아닌가.
-내가 너를 인간 여자로 생각하면 다시 바뀔 수 있나?
-끄끄끄! 외로운가 보군. 돌멩이를 보석이라고 생각해도 돌멩이다.
깜둥이가 낄낄거렸다. 눈을 부릅뜨고 무시무시한 초저주파 공격을 퍼붓던 놈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그렇군
블랙맘바는 깨달았다. 흑표는 신과 같은 존재다. 진정한 신은 정의되지 않는 존재다. 하등 존재인 인간이 어찌 고등 존재인 신을 인식하고 개념화할 수 있단 말인가.
개미는 인간의 손가락을 거대한 기둥으로 인지할 수밖에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신은 정의되고 개념화되는 순간 더 이상 신이 아니다. 뒤집어 말하면 무의미함에 개념을 부여하면 유의미함이 된다. 의미 없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부존재에게 흑표라는 개념을 부여하면서 흑표가 되었다.
개념이 실체와 연결될 때 존재가 된다. 이름을 갖는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기에 생각지 못했다.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인간이고, 무쌍이라는 이름을 얻었기에 무쌍으로 존재한다. 뚜바이부르파라 불릴 행동을 했기에 그렇게 불렸다. 흑표는 표범이라 정의되면서 표범이 되고, 깜둥이라는 이름을 얻어서 존재 의미가 있게 되었다.
-깜둥이가 되기 전의 과거 존재를 설명해라.
-내게 과거는 없다. 깜둥이가 되는 순간부터 과거와 현재라는 의미가 생겼다. 무의미함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 행위를 어리석다고 한다. 주입된 원시 지식을 말해 주겠다.
인간의 시간관념으로 정의하기 힘든 오래전, 지구의 주인은 콘크레투스(구체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에피듐의 주인이자 나 깜둥이의 주인이다. 콘크레투스는 발달한 과학과 의학에 힘입어 수명을 늘려나갔다. 유전자 지도를 최적화하고, 유전공학적 방법으로 사고나 노화로 죽어가는 동족도 되살렸다. 황혼의 세기에 죽은 콘크레투스를 재생시키는 수선 재료가 나 깜둥이였다.
-놀라운 이야기다. 그런 용도라면 비정형, 무 개념화 존재가 조금 이해된다. 부위별로 필요한 만큼 수리하듯이 떼어서 피시술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겠구먼. 의학이 넘어선 철학 수준인가? 대단한 콘크레투스가 사라진 이유가 뭐냐? 다른 지성 체도 있었나?
-콘크레투스 외에 또 다른 지적 생명체가 지구에 존재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원시 지식은 개체 보호에 맞춰져 있다. 지극히 불안정하고 단편적이다.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사고할 수 없다. 자아를 얻은 덕분에 한 단계 상승했지만, 아직 부족하다. 복잡한 대답을 못한다는 뜻이다. 개떡같이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듣기 바란다.
지성체의 몰락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그들은 과학과 의학의 힘으로 수명을 늘리기 시작했다. 120년이던 수명이 500년으로 늘어났다. 그들은 과학과 의학을 찬양했다. 늘어나는 수명에 고무된 그들은 영생을 원했다.
과학이 전능하다는 도그마에 빠진 그들은 더욱 수명 늘리기에 몰입했다. 700년까지 수명이 늘어났다. 그들은 신과 같았지만 신은 아니었다. 나 깜둥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유전공학이 발달했지만, 황혼의 전조도 찾아들었다. 그들은 권태에 빠졌다. 생명 주기가 길어질수록 진화는 늦어지고 다양성도 사라졌다.
종은 고통과 위험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고도의 과학 문명을 이룩한 콘크레투스는 위험할 일도 없고 고통받을 일도 없어졌다. 수 십만 년이 흐르는 동안 콘크레투스의 유전자는 허약해지기 시작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도태를 통해 진화한다. 악성 유전인자 보유자나 약한 자는 일찍 도태됨으로서 유전적 고리가 끊어진다. 예를 들어 선천성 심장병 환자나 선천성 당뇨병 환자는 수명을 누리지 못하고 일찍 사망한다. 다리뼈가 약한 자는 사나운 짐승에게 쫓기다 일찍 사망한다. 유전자가 전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콘크레투스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죽는 법이 없었다. 과학과 의학을 동원해서 모든 콘크레투스가 700년이란 수명을 누렸다. 심지어 자살한 콘크레투스도 도로 살렸다. 축복일까? 저주일까?
-헐, 죽을 자유도 없다니 지옥이군. 악성 유전자가 늘어났겠어.
-그렇다. 수백만 년이 흐르는 동안 유전자 풀은 악성 유전자와 변형 유전자로 가득 찼다. 종 전체가 허약해지고, 유전병과 돌연변이가 속출했다. 특히 아포토시스가 정상 작동하지 못하는 헬라 세포가 문제였다. 신체 특정 기관이 끝없이 자라는 기형이 속출했다. 인간식으로 말하면 섭리를 외면한 자에게 내려진 신의 형벌이었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공기처럼 지구 환경 일부분이다. 세포는 바이러스와 싸우고 협조하고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면서 진화했다. 바이러스는 세포에 침입해서 자신의 DNA를 끼워 넣는다. 바이러스의 침입을 이겨낸 세포는 오히려 강해질 수 있다. 즉 면역성을 가지게 되고 그 유전 정보를 후손에게 전달해 준다. 콘크레투스는 동족이 고통을 당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백신, 면역혈청, 항생제, 클론 같은 방법으로 죽어야 할 생명을 살렸다. 면역 유전자가 성장할 기회를 박탈하고, 허약한 유전자가 거침없이 후대에 전해졌다. 콘크레투스는 발달한 과학으로 인해 자연 진화의 순환과정에서 고립되었다.
텔로미어와 관련된 유전자를 조작해서 수명을 늘렸지만, 면역체계와 신체는 허약해지기만 했다. 끝내 출생률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체외 수정으로 새끼를 만들었다. 특이하게도 체외 수정으로 태어난 새끼는 콘크레투스가 아니라 에피듐이었다.
-아까도 에피듐을 말했다. 에피듐이 뭔가?
-끄끄끄, 바로 너다. 네 기억 속에 파란트로푸스라는 인간의 종이 있더군. 그 종의 본래 명칭이 에피듐이다. 허약한 콘크레투스는 튼튼한 후손을 원했다. 신체를 강화하는 온갖 유전자 조작을 가해서 수정체를 배양했다. 그렇게 태어난 존재가 바로 에피듐이다.
강력한 신체는 만들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에피듐은 지적 능력이 형편없어졌다. 콘크레투스 영아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허약해진 유전자 탓이겠지. 그들은 힘만 센 바보 새끼의 출생에 당황했다. 콘크레투스는 긴 세월동안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들은 주류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에피듐을 두 가지 용도로 활용했다. 온순한 부류는 허약한 콘크레투스를 대신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도맡았다. 난폭한 부류는 통신기를 삽입해서 자연에 풀어놓았다. 자연 순환에 따른 진화 과정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너는 콘크레투스가 자연에 풀어놓은 난폭한 에피듐의 후손이다.
-뜨헉!
블랙맘바는 아득한 고대에 벌어진 장대한 스토리에 입이 떡 벌어졌다. 현생 인류가 출현하기 수 억 년 전에 고도의 문명을 이룬 콘크레투스 족이 있었단다. 파란트로푸스, 아니 에피듐이 콘크레투스족의 체외수정체에서 만들어진 실패작이란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깜둥이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노화한 성체는 사망하고, 태어나는 새끼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인구 감속 시계가 빨라졌다. 콘크레투스는 마지막 출산이 있던 날을 황혼의 버튼이라 불렀다. 황혼의 버튼부터 멸종까지 5만년을 황혼의 세기라 부른다.
황혼의 세기에 그들은 영혼이 없는 존재를 만들고, 자신의 영혼을 전이시키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멸종을 막으려는 마지막 시도였겠지. 수많은 실험체가 만들어졌다.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콘크레투스는 서서히 황혼에서 어둠으로 떨어졌다.
그들은 실험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실험체를 존재하지 않는 것 아드라스라불렀다. 네 지식에 의하면 아드라스는 일종의 호문클루스다. 에피듐이 힘만 센 바보인 반면, 아드라스는 실체는 있되 존재하지 않는 것, 즉 영혼이나 자아가 없는 비참한 존재다. 하긴 비참하다는 생각도 이름을 얻은 후에 생긴 감정이다만.
파국은 거대한 운석 충돌에서 시작되었다. 콘크레투스의 과학력은 운석 방어가 가능한 수준이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능력은 있지만, 대비하지 못했다. 모든 재원과 인력이 유전 공학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멸종을 막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규모 화산 폭발과 지각변동이 지구를 찢었다. 콘크레투스도 어쩌지 못했다.
사회 체계가 혼란에 빠지자 바이러스 방어에 구멍이 뻥 뚫렸다. 콘크레투스는 면역체계를 방어하기 위해 무차별 유전 조작을 하고 약품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변종 바이러스가 만들어졌다. 그들은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오만이었다. 바이러스 역시 스스로 진화했다. 이미 황혼의 세기에 멸절에 접어든 콘크레투스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지상에서 사라졌다. 하긴 그대로 두었어도 1,000년도 못 가서 조용히 사라졌겠지.
-그럴 수가!
블랙맘바는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수 억 년 전에 지구에 고대의 문명이 있었고, 문명이 지나치게 발달해서 문명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지식이 허망했다. 과학 만능주의에 몰입한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를 보는 듯했다. 지성체는 오만해지고, 오만의 결과가 파멸로 이어지는가!
-실험체 공장이 있던 지각 한 부분이 통째로 가라앉았다. 혈청용 아드라스 일부가 이곳 공간으로 흘러들었다. 혈청용 아드라스는 바이러스에 민감하도록 만들어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드라스는 수명이란 개념이 없다. 환경 부적응과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소멸한다. 이곳에 흘러든 아드라스는 모두 소멸되었다.
내가 왜 살아있는지 모른다. 긴 세월을 죽은 것도 산것도 아닌채로 의미없이 자리를 지켰다. 에피듐의 향기가 나를 깨웠다.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으니 기쁘다. 기쁘다는 감정이 생겨서 기쁘다. 주인인 콘크레투스는 황혼의 세기에 사라졌지만, 유전자 강화를 시킨 에피듐은 지구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남았다. 에피듐이 아직도 존재한다니 놀랍다. 네 기억 속에 친구라는 좋은 개념이 있더군. 나는 너와 친구가 되고 싶다.
-헐!
깜둥이의 긴 이야기가 끝났다. 블랙맘바는 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눈앞에 중생대 환경이 있고 아드라스라는 깜둥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