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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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장 미지와의 조우7
“친구라!”
자신에게 진정한 친구가 있었던가?
호박색으로 빛나는 깜둥이의 눈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1억 년 전? 2억년전? 감도 잡히지 않는 아득한 과거의 생물이다. 편안히 누워서 꼬리를 살랑거리는 모습이 세월의 무게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수사자 3배쯤 되는 거체가 고양이처럼 느껴졌다.
저놈과 동시대에 살았던 에피듐의 후손이 자신이다. 원치 않았던 반쪽 후손이 되었지만, 불만은 없다. 파란트로푸스화되지 않았으면 분노를 씹으며 차가운 감방에 갇혀있을 인생이다.
낯선 환경이 친밀하게 느껴졌음은 파란트로푸스 유전자에 각인된 기억이다. 황과 암모니아가 섞인 대기와 50℃가 넘는 온도에 쉽게 적응했음도 파란트로푸스 아니 에피듐의 후예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생 인류의 기원은 길게 잡아야 20만 년이다. 이제 그조차도 믿을 수 없다. 1억년전에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지성체가 존재했다. 배우고 익힌 지학 관련 지식이 모두 헛소리가 되어 버렸다.
1억 년과 20만 년은 인식할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아우스토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로 명명된 루시가 서울 거리를 걷는 것과 비교도 안 될 존재가 자신이다. 또한 하루에도 수십번 어깨를 부딪히는 인간들과 같은 종이기도 하다.
철든 이후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수많은 서적을 뒤졌다. 국내엔 변변한 논문도 없었다. 혜영이 외국의 논문과 원서를 애써 구해주었다. 그 어디에도 단서는 없었다. 덕분에 영어 실력만 늘었다.
망망한 우주에 비하면 인류가 축적한 지식은 얼마나 천박한가! 바다에서 떠낸 한 바가지 물만도 못하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에 절로 숙연해졌다.
콘크레투스라는 까마득한 지질 시대의 존재가 체외 수정으로 만든 실패작, 에피듐이 파란트로푸스다. 5,000m 지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다니, 이 얼마나 환타직한 요지경인가!.
이해할 수 없는 난폭성, 인간을 수천 명 죽이고도 멀쩡한 정신, 막강해진 피지컬 능력, 그 모든 게 이해되었다. 사헬에서 열병으로 쓰러졌을 때는 위기였다.
콘크레투스가 유전자 조작을 가한 파란트로푸스는 뇌마저 근육으로 바꾸는 부작용이 있다. 뇌를 침습 당했으면 힘센 동네 바보형이 될뻔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차가운 이성을 가진 야만의 파란트로푸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정체성이다. 호모 사피엔스 에피듐 뮤턴트다.
혜영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면 석사 논문은 바로 통과될 것이다. 머리를 흔들었다. 가설을 세울 증거가 없다. 인간이 이곳 지저 세계에 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엄청난 혼란이 발생한다.
몇몇 강대국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호수의 괴물을 잡아갈 것이다. DNA를 채취하고, 신체 기관을 샅샅이 해부할 것이다. 인류를 위협할 변종 바이러스가 지상에 퍼질지도 모르고, 생체 무기화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곳은 자신의 반쪽인 파란트로푸스, 아니 에피듐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인간의 탐욕은 끝을 모른다.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비참하게 유린당하면 안 되는 곳이다. 블랙맘바는 영원히 입을 닫기로 결심했다.
-좋다. 남자 새끼는 주먹질로 친구가 된다고 했다. 기꺼이 친구가 되겠다.
-고맙다. 친구 동방불패, 왜 나를 공격했나? 나는 너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블랙맘바는 대답이 궁해졌다. 표범에 대한 안 좋은 기억때문이라 하기엔 모양이 빠졌다.
-미안하다. 위협을 느꼈다.
-이해한다. 두려움과 증오라는 감정이군.
-왜 강력한 이빨을 사용하지 않았나? 표범은 가장 강한 무기가 이빨이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군. 나는 표범이 아니었다. 네가 개념을 주입함으로써 비정형 비자아체인 아드라스에서 의지체인 표범으로 형상이 고정되었다. 그것이 콘크레투스가 원하는 아드라스의 용도다. 반죽해 놓은 밀가루로 경단을 만들든, 국수를 뽑든, 만두피를 만들든 주인의 마음이다. 아드라스는 반죽해놓은 밀가루 같은 것이다.
-그것참, 이해는 되는데 적응이 안 되네.
블랙맘바는 알쏭달쏭했다. 천박한 지식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는 즉흥적으로 전공을 생물학으로 정했다. 그러고 보니 예비고사가 곧 닥치는 판에 자신은 지저 동굴에서 구르고 있다.
-인간 동방불패, 지금까지 네게서 전이 받은 지식과 개념을 바탕으로 설명했다. 그 정도가 한계다. 나는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진 생물체다. 네 덕분에 자아를 갖게 되면서 학습 능력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면 훨씬 잘할 수 있다. 진화는 위대하다. 돌대가리 에피듐의 후손이 이처럼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깜둥이가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내 지식을 훔쳐가서 그 지식을 바탕으로 대화하는 네가 더 놀랍다. 콘크레투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았으면 좋을 텐데.
블랙맘바는 수명을 700년까지 늘리고, 깜둥이 같은 존재를 만든 고대인의 과학이 탐났다.
-훔쳤다는 표현은 좋지 않다. 너는 지식을 가져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자세한 설명을 하기엔 내가 주입받은 원시 지식이 너무 천박하다.
-원시 지식이 뭐냐?
-콘크레투스가 저놈들 같은 미물 방어용으로 나를 만들고 공격과 방어 기술을 주입했다. 과학과 의학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나는 황혼의 세기 마지막에 저딴 미물들을 감시하고 방어하는 용도로만 쓰였다.
블랙맘바는 머리를 끄덕였다. 깜둥이가 지키고 있으면 티라노사우루스가 몰려와도 문제없다. 앞발치기 한 방에 목이 부러지고, 초저주파 공격에 몸통이 박살난다.
-너는 도대체 몇 년이나 살았나?
-몇 년이란 개념으로 설명이 곤란하다. 이곳은 시간 개념이 없다. 호수에 덩치 큰 놈이 있다. 그놈이 160만 번째 새끼다.
-헐! 160만 번째 새끼?
블랙맘바가 휘청했다.
‘내가 밀양 박씨 64세손이던가?’
깜둥이가 말하는 덩치 큰놈이 호수 생태계의 보스인 모양이다. 대형 공룡의 수명을 대충 100년으로 잡고 성체 기간을 절반으로 계산하면 대략 8천만 년이다. 1억년 나이차가 나는 친구다. 8천만년이란 세월에 무게에 현기증이 몰려왔다.
-다른 존재와도 대화할 수 있나?
-불가능하다. 너와 나는 동류이기에 대화와 지식 전승이 가능하다. 콘크레투스의 유일한 흔적이겠지.
블랙맘바는 오셀롯도 있다는 말을 꿀꺽 삼켰다. 녀석이 에피듐인지 다른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다.
-너는 형상을 바꾸어서 내 탐지를 피했다. 방법이 뭐냐?
-위기 대응 매뉴얼에 따랐을 뿐이다. 내 형체를 구성하는 세포는 두 종류다. 핵 세포가 비핵세포를 통제한다. 핵세포가 비핵세포의 모든 색소를 소거시키면 가시광선이 투과한다. 한 단계 더 높여서 세포를 구성하는 분자를 격자형 그물망으로 배치하면 적외선도 투과한다. 그렇게 하려면 체표면적을 넓혀야 하고 부하가 걸린다.
다이아몬드는 투명하고 단단하지만 흑연은 검고 무르다. 같은 탄소로 구성된 물질의 물성이 원소 배열 방법에 따라 이처럼 달라진다. 내 경우에는 핵 세포가 비핵세포를 통제해서 신체를 구성하는 분자 구조를 변경한다. 비핵세포가 적층 구조로 조밀해지면 작아지고 단단해진다. 비핵세포가 넓게 퍼지면 커지고 투명해진다.
나는 식물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다. 동물 특유의 생명 파장이 없다. 세포의 적층 구조를 풀어버리면 투명해지는 대신 자장 방어막을 사용하지 못한다. 은신하는 쪽을 택했다가 친구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다.
-허, 놀랍다. 색소 세포를 제거하면 망막이 투명해져서 상이 맺히지 않을 텐데. 뱃속에 든 음식물은 어떻게 하나?
놀라운 생체 과학이다. 현대 인류는 꿈도 못 꿀 수준이다. 콘크레투스의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깜둥이다.
-나는 눈으로 보지 않는다. 내 눈도 친구가 형상화한 것이다. 나는 눈이란 기관이 필요치 않았다. 친구처럼 위장에 음식물을 채울 이유도 없다. 대기 속의 원소를 핵세포가 합성해서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투명화에 제약 요소가 없다.
-대단하구마.
블랙맘바는 진정으로 감탄했다. 깜둥이의 세포는 직접 원소를 합성해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생체 공장이다. 동물도 아니고 식물도 아닌 제3의 계통이다. 기가 막힌 놈을 친구로 얻었다. 사부님께서 고난 중에 인연을 얻을 것이라 하시더니 바로 이놈이다.
-너와 대화하기 힘들다. 인간은 잠을 자야 활동할 수 있다.
-이해하고 있다. 친구는 등을 지켜준다고 네 지식에 있다. 내가 지켜주겠다.
-헐, 정말 내 지식과 생각을 가져갔군. 도플갱어인 셈인가?
블랙맘바는 대화를 끊고 적정에서 깨어났다. 오랜 대화가 쉽지 않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지속적인 진공파 방사는 뇌에 부하가 걸린다. 처음이 어렵다. 곧 익숙해지게 된다.
눈앞에서 깜둥이가 흐물흐물 변신했다. 주르륵 바닥 위에 퍼지더니 이불처럼 변했다.
-돌 바닥에서 잠들면 입 돌아간다. 내 위에서 자라.
“헐!”
그야말로 헐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깜둥이는 제대로 자신의 기억과 지식을 가져갔다.
자말은 카파루자 계곡의 킨달 D 지점에서 3일을 기다렸다. 그는 달아오른 철판에 올려진 개미처럼 허둥거렸다. 주인은 16km에 이르는 계곡을 폐허로 만들고 사라져버렸다.
시리아군이 어제부터 개떼처럼 몰려들었다. 당연했다. 주인은 제대로 사건을 쳤다. 아사드가 받은 타격은 계산을 뽑을 수 없는 수준이다. 눈이 뒤집힌 아사드가 가만 있을 리 없다.
주인을 기다려야 하지만 더 이상 수색대의 눈을 피하기 어려웠다. 자말은 배낭에서 달러와 서류를 챙겼다. 비디오테이프와 잡동사니도 몽땅 챙겼다. 금괴만 너구리 굴 깊숙이 밀어넣고 너구리 똥과 흙으로 덮었다. 자말은 뚜바이부르파가 사라진 지점을 향해 세 번 절했다.
“주인님, 상황이 여의치 못해 기다리지 못하고 떠납니다. 귀환하는 주인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하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모님을 모시고 명하신 대로 카르자이 마을로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자말은 밤을 기다려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테러리스트로 8년을 살아온 그는 그림자처럼 수색대의 눈을 피해서 북쪽으로 사라졌다.
꾸어어- 꿰에엑- 거창한 괴음에 잠이 깼다. 푸른빛을 뿜는 바위와 유동 없는 공기, 끝없이 펼쳐진 호수와 부유하는 발광 군집체, 변함없는 지저 세계다.
블랙맘바는 눈곱 낀 눈으로 호수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덩치 두 놈이 힘겨루기하는 중이다. 폭군 크로노사우르스와 바다의 황제라 불리는 틸로사우루스다. 두 놈은 목이 짧고 아가리가 큰 대형 도마뱀류로 몸 길이만 20m에 달한다.
“젠장, 공룡 괴성이 자명종이라니 기가 막히는군.”
-어이 친구 잘 잤나?
매트가 꿈틀했다. 화들짝 놀란 블랙맘바가 펄쩍 뛰었다. 매트가 꾸물꾸물하더니 깜둥이가 나타났다. 참으로 적응하기 쉽지 않은 친구다.
-친구, 육지에 물이 있나?
-없다. 호수에 물 많다.
-망할 놈
블랙맘바는 타는 목을 움켜쥐고 눈을 흘겼다. 진순이가 만든 수정과를 벌컥벌컥 마셨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친구, 난 지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방법이 없겠나?
죽은듯한 지저에 더 머무르다간 돌아버릴 것 같다.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싶은 욕구가 식욕을 앞섰다. 역시 자신은 현대인이다.
일단 90초 낙하한 4,400m 높이의 동공만 벗어나면 동굴은 빠져나갈 수 있다. 카파루자 댐에서 쏟아져 나온 호숫물도 다 빠져나갔을 것이다.
-곤란하다. 몇백 미터라면 내 몸을 밧줄로 만들면 되지만 공동 천장 높이는 4,000m가 넘는다.
-저놈들을 잡아서 힘줄을 뽑아내서 연결하면 되지 않을까?
블랙맘바가 피를 폭포처럼 쏟으며 드잡이질 중인 괴물을 가리켰다. 어제부터 온갖 방법을 고민했다. 호수의 공룡을 잡아 열기구를 만들어 볼까. 화산 지역을 찾아서 상승기류를 타 볼까. 익룡을 찾아볼까. 전부 삽질이다. 현실성있는 수단이 없다.
-너 바보냐? 저놈들을 수백 마리 잡아서 해체하고 힘줄을 뽑아서 4,000m 밧줄을 만들려면…….
-됐어 임마. 나도 알아. 답답해서 해 본 소리다.
-몸으로 때워라.
-몸으로 때운다면?
블랙맘바의 눈이 번쩍했다. 몸으로 때우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전공이다.
-내가 이곳으로 밀려들어 온 구멍이 있다. 수직갱이지만 친구의 능력이면 올라갈 수 있다.
“4,000m 수직갱이라~”
벽호주벽을 시전해서 절벽을 타면 분당 30~50m를 등반할 수 있다. 한나절이면 가능하다. 막대한 체력이 소모되겠지만, 파란트로푸스의 체력은 마르지 않는 우물이다.
-친구 잠시 기다려라
깜둥이가 번득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불투명한 비닐봉지 같은 물체가 툭 떨어졌다.
-콘크레투스의 유물이 남아있으면 좋을 텐데 아무것도 없다. 뒤집어진 지각과 화산 분출물이 덮어버렸다. 이곳에도 몇 가지 기계류가 떨어졌지만, 시간이 먼지로 만들었다. 유일하게 남은 물건이다.
-비니루 봉다리로 우짜라고?
-물에 적셔서 양쪽 손에 끼워라
비닐봉지처럼 생긴 물체를 호숫물에 적셔서 손에 끼웠다.
“얼래?”
비닐봉지가 서서히 손 모양대로 줄어들더니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표시도 나지 않았다.
-역시 너는 에피듐이다. 그 물건은 콘크레투스의 유전자를 보유한 자에게만 반응한다. 바닥을 찔러라
블랙맘바가 손날을 세워 둘 바닥을 찔렀다. 퓩- 손이 돌 바닥을 파고 쑥 들어갔다. 소음이 크지도 않았다. 마치 스티로폼을 뚫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