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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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장 노동의 대가는 챙겨야지3
생체 시계를 통해서 15일까지 체크한 뒤로는 날짜를 카운터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긴 동굴은 켄터키주에 있는 매머드 동굴이다. 탐사된 길이만도 563km다. 망할놈의 동굴은 메머드 동굴보다 더 길었다.
calendar(달력)는 라틴어로 ‘흥미 있는 기록’이란 뜻이다. 고대인은 밤낮이 바뀌고, 사계절이 변하고, 해와 달이 바뀌는 현상이 엔간히 흥미 있었던 모양이다. 무엇인가 변화가 있어야 시간은 의미가 있다.
지하는 죽은 세계다. 해와 달도 없고, 비와 바람도 없고, 온도 변화조차 없다. 닫힌 어둠과 무거운 적막만 있을 뿐이다. 자신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호해졌다. 날짜도 시간도 의미가 없다. 멈춰버린 세계, 바로 동굴이다.
캐러밴에 나선 남자가 신기루에 홀려 사막의 외딴 고성에 갇혔다. 100년 후 용케 출구를 찾아 고향에 돌아왔다. 호호백발의 할머니가 말했다. 아빠, 70년이 지났는데도 얼굴이 옛날 그대로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정하던 남자의 얼굴이 급격히 늙어갔다. 머리털이 빠지고 주름살이 가득해진 남자가 푹 쓰러져 죽었다. 아랍의 전래 설화다.
남자가 흘러간 시간을 알지 못했다면 별 탈 없이 살아가지 않았을까 따위의 물음은 불필요하다. 관념이 실체에 앞선다는 의미다. 나무막대를 쥐여주고 숯불을 쥐고 있다고 강한 암시를 걸면 화상을 입는다.
예전에는 세상을 불사를 분노에 사로잡혀 날뛰었지만, 이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이다. 허기지고 지친 암담한 상황이다. 절망에 먹히는 순간이 죽음이다. 기적은 없다. ‘가능하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의지가 문제를 해결하는 키가 되었을 뿐이다.
시간의 흐름을 잊었다. 배고프면 공룡고기로 배를 채우고, 지치면 싸늘한 돌 바닥에 등을 붙였다. 지상의 복사열이 미치지 못하는 수평 동굴은 세계 어디나 15℃ 내외의 상온을 유지한다.
공룡 고기 신선도가 생각 이상으로 오래 유지되었지만 결국 부패하기 시작했다. 블랙맘바는 냄새가 나는 보스사우루스 뱃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최후의 만찬인가!”
10kg 남짓 남은 고기를 먹고 나면 눈을 부릅뜨고 벌레를 찾아다녀야 한다. 파란트로푸스 육체는 신진대사가 왕성한 만큼 많은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 출력 높은 자동차가 기름을 많이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블랙맘바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남은 고기를 먹어치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는 사치스런 생각이다.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했다. 200kg의 고기는 사라지고 물개 괴물의 가죽만 남았다. 최후의 식량이다.
부패가 시작된 맛없는 고기지만 그마저 끝장났다. 동굴 생태계는 허약하다. 동굴 속의 완벽한 어둠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생물은 많지 않다. 통로가 외부로 열려있는 동굴에는 박쥐라도 살지만, 깊은 동굴에는 진동굴성 생물 외에는 생명체가 없다.
기껏해야 톡토기, 갈루아벌레, 장님좀딱정벌레, 장님송장벌레, 장님굴노래기 같은 벌레들뿐이다. 하나같이 허여멀건 하고, 크기가 작고, 개체수도 적다.
두웅- 공간지각력이 발동되었다. 톡토기 서너 마리가 감각에 걸렸다. 쉬웅- 웅장타밀의 한 수가 펼쳐졌다. 손바닥이 번개같이 지면을 쓸어서 톡토기 다섯 마리를 잡았다. 천 년 전승의 오금공이 한낱 벌레잡이 용으로 추락했다.
진동굴성 생물은 크기도 작지만, 영양소도 별로 없다. 그저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나마 호소에서 장님 물고기라도 몇 마리 건져 먹는 날은 대박이다.
“흐흐흐, 뱃살 출렁이는 아줌마들에게 딱이구마. 살 빠지기 전에 죽어버리려나.”
해골이 파란 눈을 번득이며 킬킬거렸다. 허기를 견디지 못한 블랙맘바는 물개 괴물의 가죽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질기기가 군화 가죽보다 더했다. 차라리 군화를 뜯어먹고 싶었다.
“퉤퉤, 불행하다고 징징거릴 때도 행복했었군. 크크크!”
블랙맘바는 억센 털을 뱉어내며 툴툴 웃었다. 물개 가죽이라도 남아서 다행이다. [인간은 행복하려고 살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 행복해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절실히 가슴에 와 닿았다.
현대 문명과 지상 생활이 얼마나 편하고 행복했던가! 맑은 물과 맑은 공기, 푸른 초목, 스위치만 누르면 쏟아지는 조명, 지갑만 열면 테이블에 올려지는 조리된 음식……. 바닥이라고 여길 때도 진짜 바닥이 아니었다.
“니미 조또!”
블랙맘바는 방원 십여 미터의 작은 호수를 두고 망연자실했다. 동굴이 막혔다. 샅샅이 뒤졌지만 빠져나갈 틈이 없다. 공진 파를 방사해도 빈 공간이 잡히지 않았다. 동굴이 막히는 경우는 허다히 있었다. 수십 번 막혔지만, 조사하면 어디엔가 기생 동굴이 나타났다. 좁은 구멍을 억수갑으로 넓혀서 빠져나온 횟수만 열 번이 넘는다.
“안돼!”
온갖 음차원의 감정이 실린 고함이 동굴을 드르릉 울렸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럴 수는 없다. 마음이 급해졌다. 해거름에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선 시골 아낙네처럼 진동한동 뛰어다녔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공간지각력을 방사하고, 공진 파로 더듬었다. 결국, 기생굴을 찾지못했다.
“젠장 악운도 운이라는데 여기 까진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껴두었던 가죽을 오징어처럼 쭉쭉 찢어서 입에 처넣었다. 오래도록 꼭꼭 씹어서 죽처럼 만들어 위장에 집어넣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배가 고파지면 이성을 잃게 되고 사나워진다.
“조또, 운이 없으마 내가 직접 운을 만들어 주꾸마.”
이빨을 물고 벌떡 일어났다. 블랙맘바 사전에 포기, 좌절, 절망은 없다. 아홉 살 나이에 시작된 지옥 같은 생활을 5년이나 견뎌내지 않았던가.
“뚫어 볼까?”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동굴 천장을 쳐다보았다. 200m? 300m? 무지막지한 체력이 있고, 억수갑이 있다. 동굴 천장을 파내면 시간이 걸릴 뿐, 언젠가는 지상으로 나갈 수 있다.
문제는 식량이다. 깜둥이처럼 필요 원소를 직접 합성하면 모를까, 인간인 자신은 먹어야 산다. 지상까지 구멍을 뚫기 전에 굶어 죽을 공산이 컸다. 무대뽀로 밀어붙이기엔 너무 무식한 방법이다.
‘잠깐, 호수가 있다는 말은 어디선가 물이 공급되었다는 소리 아이가?’
번득 생각이 떠올랐다. 동굴 속 어디에도 수원이 없다면 호수 속에 지하수 유입구가 있을지 모른다. 풍-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몸은 호수에 뛰어들었다.
싸늘한 호수는 예상외로 깊었다. 물속에서 버틸 수 있는 한계는 12분, 직경 10m에 불과한 호수는 서너 번 자맥질하면 샅샅이 조사할 수 있다.
“얼래, 이게 뭐야?”
손에 들고 있던 발광체의 빛이 강해졌다. 물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른다. 빛이 있으면 구멍을 찾기가 훨씬 쉬워진다. 빠져나갈 구멍이 중요하지 이상한 금속의 빛이 중요한 게 아니다. 블랙맘바는 기특한 금속을 들고 차근차근 호안을 조사했다.
‘있다!’ 폐가 펄떡거릴 즈음 호안에 뚫린 시커먼 통로를 발견했다. 개구부 크기는 몸을 욱여넣으면 어렵사리 들어갈 만했다. 기쁨이 신경망을 치달려서 온 몸을 한 바퀴 돌았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호수에서 빠져나온 블랙맘바는 금속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금속이 무엇엔가 반응했다. 여태 별생각 없이 건전지 떨어지기 직전의 후레시로 써 먹어왔다. 분명 이력이 있는 놈이다.
스나이퍼의 눈은 일반인과 다르다. 관찰력이 다르고, 물체를 특징짓는 특수한 능력이 있다. 밥 먹고 하는 일이 표적의 크기를 가늠하기 때문이다.
사다리꼴 형상의 물체는 상부에 불꽃 형상의 지름 5mm 구멍이 뚫려있다. 좁은 쪽은 두께 1mm, 폭 5mm, 넓은 쪽은 두께 10mm, 폭 10mm다. 길이는 80mm다. 잘못 만들어진 도끼 형상이다. 몇 번을 들여다봐도 공작이 들어간 인공물이다. 그런데 정교한 인공물이 수백 미터 지하에 묻혀있을 이유가 없다. 손으로 쓰다듬었다. 비단결처럼 매끄럽다.
“이것 봐라?”
금속이 따뜻했다. 분명히 서늘한 느낌을 주던 물체다.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물체를 불알 밑 사타구니에 끼웠다. 인체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 그곳이다.
“헐! 웃기는 놈일세.”
물체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불알이 쭉 오그라 붙을 정도로 차갑다. 외부 온도가 높으면 차가워지고, 외부 온도가 낮으면 따뜻해지는 금속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기사(奇事)다.
지하에 처박힌 후로 온통 어이없고 비상식적인 사건의 연속이다. 자신이 이 자리에 존재하는 자체가 비상식적이긴 하다. 들여다본다고 알 수도 없다.
“때가 되면 알겠지?”
금속을 입에 물고 호수에 뛰어들었다. 우상방으로 비스듬히 뚫린 수중 통로는 어깨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좁았다. 벽면에 억수갑을 찍어서 몸을 끌어올렸다. 12분 이내에 빠져나가지 못하면 꼼짝없이 바위틈에 끼인 채 익사당한다.
푸악- 검은 머리가 공간에 불쑥 나타났다. 다행히 수중통로는 그리 길지 않았다. 머리를 내민 곳은 또 다른 공동이다. 통로가 연결된 수평 동굴이 아니다.
흡 호호호- 흡 호호호- 격해진 호흡을 다스리고 재빨리 통로를 찾았다. 없다. 공동은 그리 넓지 않았다. 곳곳에 절리가 발달하였지만 빠져나갈 만한 틈이 없다. 그나마 공기가 있어 다행이다.
“조또, 파야 하면 파야지.”
무대뽀 정신이 폭발했다.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분노의 주먹을 날렸다. 꽝- 포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쩌적하고 천정에 금이 갔다. 금 간 틈바구니에 팔꿈치까지 손을 쑤셔 넣고 불끈 힘을 썼다. 쿵- 앉은뱅이 책상 크기의 판판한 돌덩이가 뚝 떨어졌다.
준편마암이다. 준 편마암은 퇴적 점판암이 고열과 압력을 받아 변성된 단단한 암석이다. 퇴적 지형이라는 소리다. 두 손이 포크레인 버킷처럼 천장의 준편마암을 푹푹 뜯어냈다.
3m쯤 파내자 힘이 쭉 빠졌다. 억수갑이 피부 위로 솟아나왔다. 과도한 부하를 받았다는 뜻이다. 물에 적시려면 다시 좁은 통로를 지나서 수중 동굴로 돌아가야 한다. 좁은 동굴은 지긋지긋했다.
“이건 어떨까?”
발광 금속을 꺼내 들었다. 천장에 쿡 찔러보았다. 별다른 저항 없이 쑥 들어갔다. 영화에나 등장하는 초진동 블레이드라면 가능한 일이다. 동력원도 없는 물건이 초진동을 일으킬 수는 없다.
“요상한 물건일세.”
눈앞에 들이대고 요모조모 살펴보아도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꼬르륵- 음식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배가 찢어질 듯 쓰렸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지 몇 날이 지났는지 모른다.
금속을 천정에 쿡 박고는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거짓말처럼 깊이 50mm 원이 그려졌다. 이건 칼로 두부를 자르는 것과 진배없다. 틈서리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뜯어냈다. 작업 효율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빙고!”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금속으로 바위를 이리저리 휘저어놓고 시루떡 떼듯이 뚝뚝 뜯어내면 된다. 5m쯤 파고들자 손바닥에 찬 기운이 느껴졌다. 작업을 멈추고 공진파를 방사했다. 반사된 느낌이 달랐다. 천장 너머 공간이 있는 느낌이다. 작은 공간이면 느끼지 못한다. 큰 공간이다.
“그렇군!”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위쪽은 호수다. 온도 차로 판단하면 거의 지상에 다가섰다. 호수가 땅속 호수일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졌다.
만약 지중 호수라면? 파란트로푸스 블랙맘바 인생 쫑친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밤이 길면 꿈도 많은 법이다. 죽으려면 벌써 죽었을 인생이다. 퍽퍽- 과감하게 동굴 천장을 뜯어냈다.
천장에 물방울이 주르르 맺히기 시작했다. 굳건하게 버티던 천장에 균열이 생겼다. 금속을 박아넣고 죽 그었다. 갈라진 틈바구니로 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꽝- 분노의 박치기다. 역시 철두다. 쿠르르-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3, 4초나 지났을까. 천장이 우지끈 무너졌다. 화들짝 놀란 블랙맘바가 동굴 천장에 올라붙었다. 자라에 물려 본 놈은 솥뚜껑에도 놀란다.
콰아아- 성난 호숫물이 들이닥쳤다. 높이 3m의 석회굴은 순식간에 수중 동굴이 되었다. 엄청난 수압이 몸을 내리눌렀다.
‘간닷!’
동굴 바닥을 박차고 무너진 천장 구멍으로 탈출했다. 역시 호수다. 지중인지 지상인지 모르지만 넓은 곳으로 빠져나온 것만 해도 어디인가.
‘이기 머꼬?’
블랙맘바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밟히는 촉감이 괴이했다. 무엇인가 바스락거리며 부서진다. 입에 물고 있던 금속을 손에 들고 아래를 비췄다.
호수 바닥에 해골이 켜켜이 쌓여있다. 발에 밟힌 뼈다귀가 힘없이 부스러졌다. 지저 호수에 둥둥 떠다니던 수많은 시체,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연속 시체를 뱉어내던 폭류 동굴이 기명 되었다.
한가하게 해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수압으로 판단하면 깊이는 약 130m다. 잠수병? 그딴 거 걱정할 틈이 없다. 물속에서 11분을 소모했다. 폐가 터질 듯이 벌컥거렸다.
파악- 바닥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충격파를 받은 부식된 뼈가 산산이 바스라졌다. 블랙맘바가 지난 자리가 뿌옇게 흐려졌다. 잔잔한 호수면이 일렁였다. 푸악- 시커먼 물체가 포탄처럼 물밖으로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