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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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장 노동의 대가는 챙겨야지4
“허억 허억”
정신없이 숨을 들이켰다. 쪼그라들었던 폐가 신선한 공기를 만나자 폭발적으로 펌프질했다. 혈류가 초당 20m 속력으로 혈관을 치달렸다. 산소가 세포 조직에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이완된 근육이 긴장을 찾고, 메마른 신체기관이 기지개를 켰다.
인식은 시각보다 후각이 빨랐다. 공기 중에 섞인 온갖 냄새가 몰려들었다. 나무 냄새, 흙냄새, 인간의 분뇨 냄새……. 추상적 개념이 실체화된 이미지로 나타났다. 지상의 호수다. 기어코 지상으로 올라왔다.
“자유다~”
환희에 찬 괴성이 터졌다. 수면이 푸르르 파문을 일으켰다. 블랙맘바는 양팔을 번쩍 치켜들고 흉곽을 최대한 벌렸다. 달콤한 물비린내가 천국으로 다가섰다. 얼마만의 신선한 공기인가! 지저 호수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쏟아졌다.
그렇다. 희망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희망 그 자체다. 블랙맘바의 진정한 강함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었다.
서쪽 하늘에 걸린 실 가락지 신월이 시리다. 계명성이 밤바람에 껌벅이고 있다. 신월을 가로질러 이름 모를 철새떼가 야간 비행을 하고 있다. 밤 산책을 나온 개구리가 정적속에 펄쩍 뛰어들었다. 창백한 정적이 출렁 흔들렸다. 땅 위의 모습이다.
“신에게 감사해야겠구마!”
깊은 탄식이 새나왔다. 거대한 자연의 위력과 위대한 시간의 흐름을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만만했지만 지구에 빌붙어 사는 작은 미물에 불과했다. 수면으로 부상할 때 얼마나 조마조마했던가. 지상이냐 지중이냐를 생각하느라 호수 깊이는 염두에도 없었다.
물안개가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새벽이 멀지 않았다. 땅 위라면 어디든 좋다. 빛이 없는 폐쇄된 공간이 주는 압박감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빛과 공간을 잃어본 사람만이 자유의 소중함을 안다.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이 없었다면 감옥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돼지처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감옥이 오히려 편할 테니 말이다.
얼마만의 여유인가! 유유히 물살을 갈라 호변으로 나왔다. 행색이 말이 아니다. 호수에서 기어 나온 지니다. 쫄팬티가 되어버린 바지 사이로 언득펀득 불알 한쪽이 내비쳤다.
“이거야 원!”
혀를 찼다. 허리에 둘렀던 괴물 가죽은 뱃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옷도 무기도 없다. 옆가슴 홀드에 들어있는 쿠크리, 허리에 둘둘 말린 보스사우루스의 힘줄 뭉치, 다이아몬드 한 알, 입에 물린 요상한 금속, 그리고 고르곤.
“엇, 고르곤?”
허리에 감겨있던 고르곤이 사라졌다. 막다른 공동 천장을 빠져나올 때 매듭이 풀어진 모양이다. 신외지물이라고 간단히 치부할 물건이 아니다. 루만 작전 동안 고르곤만큼 유용한 무기가 없었다. 조금 가벼운(?)점만 빼면 최고의 중거리 무기가 고르곤이다.
물끄러미 손을 들여다보았다. 억수갑을 낀 흔적이 없다. 한 가지를 얻으면 한가지를 잃는다더니, 억수갑을 얻고 고르곤을 분실했다. 고르곤이 노말 아이템이라면 억수갑은 유니크 아이템이다.
“보니파스에게 만들라고 하면 되겠지. 마침 재료도 좋고 말이야. 공룡 힘줄로 만들면 드레곤이라 해야 하나?”
허리에 두툼하니 감긴 보스사우루스의 힘줄을 툭툭 두드렸다. 아쉽지만 고르곤은 다시 만들면 된다. 유니크 아이템을 얻은 놈이 노말 아이템을 아까워하면 좀생이라 불린다. 고래 힘줄보다야 공룡 힘줄이 더 뽀대난다.
꾸르륵- 위장이 아우성을 쳤다.
“임마, 보채지 말거라. 실컷 채워주꾸마.”
둘둘 말린 보스사우루스 힘줄 뭉치에서 가느다란 힘줄을 빼냈다. 가늘다고 해도 굵기 12mm, 길이 8m에 달하는 힘줄이다. 지저 호수 최강자라는 보스사우루스의 신체를 굴신시키는 힘줄답게 묵직했다.
양손으로 잡고 당겨 보았다. 힘줄이 3배쯤 쭉 늘어났다. 힘을 풀어주자 고무줄처럼 제자리로 돌아갔다. 대단한 신축성과 인장강도다. 대단 해봐야 블랙맘바에겐 낚시줄에 불과하다.
힘줄을 쭉 늘여서 쿠크리 손잡이에 묶었다. 아쉬운 대로 고르곤 대용이다. 추악- 쿠크리가 빗살처럼 수면을 뚫고 들어갔다. 한가로이 물속을 유영하던 사키딜라가 졸지에 횡액을 당했다. 사키딜라는 잉어목에 속하는 물고기로 60~70cm까지 자란다.
쿠크리에 몸통을 관통당한 사키딜라는 곧바로 블랙맘바의 위장으로 직행했다, 지느러미와 비늘도 떼지 않았다. 손톱으로 배를 갈라 내장만 들어내고 입에 처넣었다. 추악- 다시 쿠크리가 물속을 파고들었다. 이번엔 메기다. 메기도 순식간에 배속으로 사라졌다.
얼마만의 음식인가! 둥둥- 위장이 환호했다. 손톱 크기의 동굴 벌레에 찌들었던 소화기관이 주르륵 기지개를 켰다. 혈액이 메마른 세포에 당을 퍼 날랐다. 흐릿했던 시야가 제자리를 찾았다.
벌거벗은 몸으로 컴컴한 호숫가에 주저앉아 퍼덕이는 물고기를 뜯어먹는 신세라니, 처량하고 괴기스러운 장면이다. 진순이 보았으면 눈물을 펑펑 쏟을 꼬라지다. 그럼에도 행복했다. 눈물날만큼 행복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배가 불러야 행복해진다.
쓰레기 썩는 냄새가 등천했다. 바로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다. 돼지가 꽥하고 도망갈 수준이다. 동굴을 헤맬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악취가 지상임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코를 쥐어박기 시작했다.
“괴물의 세상에서 인간 세상으로 돌아왔구마. 인간 꼴이 되야제.”
떡이 진 머리를 감고, 피와 체액, 땀, 먼지로 범벅이 된 몸을 대충 씻었다. 호숫물이 꺼멓게 물들었다. 걸레가 된 바지도 살살 흔들어 빨았다. 자신이 인간이란 사실이 실감 났다. 누가 인간을 호모 라벤더라 했던가! 그렇다. 인간은 목욕하는 존재다. 목욕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걸레가 된 군복 하의, 아니 쫄팬티를 들고 잠시 고민했다. 이곳은 이슬람 사회다. 쫄팬티를 입고 돌아다니다간 돌에 맞아 죽는다. 무성한 갈대를 한 움큼 잘라냈다. 갈대를 이리저리 엮어서 이엉을 만들었다. 대충 만든 이엉을 허리에 두르고 힘줄로 허리를 묶었다.
“허허, 이거 참!”
아프리카 원주민 패션이 따로 없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헛웃음을 남겨두고 호안을 올랐다.“이게 뭐야?”
블랙맘바의 눈이 잔뜩 커졌다. 호변에 놓인 그네가 눈에 익다. 와엘이 타던 빨간 그네다. 특급 스나이퍼는 지형지물을 사진 찍듯 뇌리에 저장한다. 잘못 봤을 리 없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주변 풍광이 눈에 익다. 올리브 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벌판, 긴 띠처럼 길게 뻗어있는 호수, 물결에 흔들리는 거룻배 두 척, 바크리 자디르를 만났던 장소다. 멀리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언덕이 보였다. 고공 강하했던 언덕이다.
“헐, 마단끼 호수!”
블랙맘바의 입이 떡 벌어졌다. 운명의 이끌림인가! 땅에서 기어 올라오니 하늘에서 떨어졌던 곳이다. 이거야 부처님 손바닥에서 맴돈 손오공 꼴이 아닌가.
그제야 호수 바닥에 쌓인 해골이 이해되었다. 터키군이 살해해서 던져넣은 쿠르드족과 시리아 정교도다. 확실히 마단끼 호수다. 인간의 악랄한 행사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지고, 호수 주변의 주민들은 마단끼 호수의 고기를 잡아 식탁에 올린다. 슬픈 역사의 민낯을 감춘 호수가 꺼멓게 펼쳐져있다.
물이라면 지긋지긋했다. 광폭한 물 폭탄, 지옥으로 끌고들어가던 폭류, 독기로 끈적이는 지저 호수, 이번에 제대로 물먹었다.
물먹은 곳은 따로 있다. CIA 공작부와 무카바라트다. CIA 공작부 마틸다 분석 반장은 아담 부장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키홀의 체널 3개를 모두 배정받고 블랙버드와 드레곤 레이디까지 동원했다.
DIA쉐도우 두 개조와 일급 첩보원 20명을 동원해서 아바돈을 추적했다. 결과는 허탕이다. 아바돈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40일간 시리아 북부 지역을 들쑤신 마틸다는 손을 들었다. 보고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아바돈은 프랑스가 비밀리에 만들어낸 듀얼 혼터로 추정된다. 카파루자 댐은 지진 충격파에 붕괴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바돈은 일시에 쏟아져 나온 3억톤의 물폭탄에 분쇄되었거나 붕괴된 절벽에 압살된 것으로 추정된다.]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추정이다. 끔찍한 보고서를 받은 아담이 괴성을 지를만했다. 마틸다는 이빨을 갈았다. 망할놈의 아바돈 덕분에 경력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그녀가 키홀과 블랙버드를 조금만 더 운용했더라면 마단끼 호수에서 솟아오르는 블랙맘바를 포착했을 것이다. 그녀는 집요했지만, 한치가 모자랐다. 그래서 인간이 일을 꾸미지만 결과는 하늘이 만든다고 했다.
아사드는 카파루자 계곡 일대 방원 200km 지역에 무카바라트 2만을 풀었다. 2만이란 숫자가 저인망식 수색과 추적에 나섰지만 허탕 쳤다. 그들이 땅위를 이잡듯 뒤질 때 블랙맘바는 지하를 헤메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사드는 더 이상 이브리스를 신경쓰지 못했다. 격렬해진 와하비즘의 준동을 막느라 무카바라트를 총동원해야 했다.
새옹지마라 했다. 블랙맘바는 고초를 겪었지만, 시리아와 미국의 정보망에서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물론 당사자는 아무것도 몰랐다.
블랙맘바는 물고기로 허기를 메운 다음 누렇게 말라가는 풀밭에 털썩 누웠다. 수십 년 전에 살해된 인간들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피로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태엽 풀린 인형처럼 몸이 풀어졌다.
하늘에 뜬 초승달을 노려보았다. 착륙 예정지인 엔다하 언덕을 벗어나 코베리카에 착륙했을 때 상현달이었다.
“망할, 도대체 며칠이나 지난 거야?”
마단끼 호수에서 카파루자 계곡까지 직선거리로 52km, 도로 거리로 83km다. 자신의 기준으로 보면 짧은 거리다. 상현달이 보름달이 되고 다시 초승달로 변했다면 20일이 지났다.
지하에서 15일까지 카운트한 다음에도 긴 시간이 흘렀다. 자라난 수염 길이로 보면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더 돌았다. 지하에서 49일을 보냈다는 이야기다.
지저 세계에서 보낸 시간은 이틀에 불과하다. 시리아 북부 지하를 47일에 걸쳐 헤매고 다녔다. 하루 30km씩 이동해도 47일이면 1,410km다. 서남아시아 지각판을 두더지처럼 파고 다녔다는 소리다.
“49일 만의 생환이라! 크크크, 49재날 귀신이 돌아온 셈이구마. 아무렴 어때. 살았으면 그만이지. 크크크!”
달을 쳐다보며 낄낄거렸다. 공교롭게도 49일 만에 돌아왔다. 사부님은 49재를 올려달라는 신도의 부탁을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헛짓거리 하지 말라고 야단을 쳐서 돌려보냈다. 죽은 이에게 줄 음식과 노잣돈을 불쌍한 사람에게 주라고 일갈했다.
49재는 망자를 잘 봐 달라고 지옥 십왕(十王)에 부탁하는 행사다. 제대로 지내려면 49재가 아니라 10재를 지내야 한다. 망자는 7일마다 지옥 십왕의 심판을 받는다. 7일째 진광대왕을 시작으로 49일째 태산대왕까지는 7일마다, 100일째 되는 날 평등대왕, 1년이 되는 날 도시대왕, 3년이 되는 날 오도륜대왕에게 아부함으로써 삼년상이 끝난다. 유교 지상주의자인 사대부가 불교식 3년상을 치렀음은 역사의 아니러니다.
긴장이 풀어지자 49일간 쌓이고 쌓인 피로가 폭포처럼 덮쳤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들뿐이다. 자신이 저지른 불장난으로 유발된 사건이다. 탓할 사람도 없다.
“깜둥이 그놈 바이오 매트가 좋은데 말이야.”
향긋한 풀냄새와 맑은 공기가 휴프노스를 축복했다. 블랙맘바는 땅속에 묻혀도 태평하게 자는 인간이다. 코 고는 소리가 금방 드렁드렁 울렸다.
여명이 트고, 박명이 지나고 태양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인기척을 느낀 블랙맘바가 눈을 번쩍 떴다. 300m 밖, 대지를 두드리는 가벼운 발걸음, 어린아이다.
“아즈 레!(푸른 하늘!)”
눈을 뜨는 순간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찍어누르는 불길한 어둠이 아니다. 쨍하고 깨어질 듯 푸른 하늘이다. 싸늘한 바람이 볼을 스쳐 갔다. 가만히 볼을 쓰다듬었다. 바람이 스쳐간 흔적을 찾았다. 메마른 볼에 물기를 남겨 놓았다.
후각이 제 기능을 찾았다. 지상의 수많은 생명체와 유기물이 뿜는 온갖 싱그러운 향기가 스며들었다. 올리브 나무 아래 뿌려진 두엄조차 향기로웠다.
작은 새가 지저귀는 재잘거림이 귀를 즐겁게 했다. 중생대 공룡의 공명통에서 울리는 둔중한 괴성에 깨어났을 때는 얼마나 황당했던가. 푸른 빛을 뿜는 야광충대신 따스한 양광이 목을 간질인다. 괴물이 휘젓는 음산한 호수가 아니다. 물 맑은 호수 상공에 이름모를 물새 몇 마리가 한가로이 활공하고 있다. 평화롭고 정겨운 지상의 풍경이다. 생의 축복이다.
“쎄 르 쁠뤼 보 주흐 드 마 비!(내 생애에 최고의 날이군!)
쿠크리를 뽑았다. 칼날에 푸르스름한 녹이 슬었다. 칼집에 든 칼은 녹이 슨다. 변할 수 없는 진리다. 정련된 다마스쿠스 강도 지저 세계의 독기와 습기를 이기지 못했다.
엄지와 검지로 도면을 잡고 훑었다. 쭈웅- 점착된 이물질이 쓸려나갔다. 파르스름한 도면에 얼굴을 비쳤다. 해골처럼 마른 얼굴에 수염만 무성하다. 수염을 깎을까 말까 고민할 때 사박 사박- 가벼운 발걸음이 다가섰다. 눈앞에 빨간 신발 두 짝이 멈추었다.
“마르하반!”
짤랑짤랑한 음성, 와엘이다.
“마르합테인 람 나타까-발 문두 자만?(안녕, 오랜 만이지?)”
블랙맘바가 고개를 돌리자 와엘이 흠칫 물러섰다.
“와엘, 아저씨다.”
블랙맘바가 빙그레 웃었다. 주춤거리던 와엘의 눈이 커졌다. 두 눈동자가 바쁘게 블랙맘바의 아래위를 뛰어다녔다. 아저씨는 뚜바이부르파님이 가르쳐 준 말이다.
“암마? 아저씨?”
“야, 하비바!(귀여운 계집애)”
우엥- 와엘이 울면서 펄쩍 뛰어 달려들었다. 번쩍 들어서 빙빙돌렸다. 와엘이 좋아하는 헬리콥터 놀이다.
“꺄하하!”
짤랑거리는 웃음이 마단끼 호변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