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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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장 노동의 대가는 챙겨야지5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따스한 작은 몸의 온기가 49일간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아무려면 어떤가.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을.
“와엘, 다리는 어때?”
“마- 마으나- 하-다-?(무슨 뜻이에요?)”
와엘이 말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블랙맘바가 다리를 가리켰다.
“아항!”
와엘이 폴짝 뛰어 내려서 다다다 달려갔다가 다시 뛰어왔다.
“학깐 카-나 무쌀리얀.(너무 좋아요.)”
“야- 일라-히-! 학깐?(저런, 세상에! 정말로?)”
블랙맘바가 놀랐다는 표정으로 감탄했다. 여자는 나이가 많든 적든 맞장구를 쳐주고 놀라는 시늉을 해줘야 만수무강에 지장이 없다. 여자와 대화할 때 ‘헐!’ ‘진짜!’ ‘정말!’ ‘웬일이니!’ 4종 세트면 대화가 술술 넘어간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바로 팽이다.
“야- 일라-히-!(깜짝이야!) 꺄하하.”
깔깔대며 웃는 아이의 볼이 복숭앗빛으로 빛났다. 검은 눈동자가 흥분으로 반짝인다. 깨물어주고 싶도록 귀엽다. 이 아이의 웃음을 지켜주고 싶다. 괴물을 때려잡는 괴물이 되어버렸지만, 오히려 여린 인간이 부럽다. 평범하게 살기엔 이미 판을 너무 키워버렸고,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쬐끄만 게 멀리도 나왔네. 얼릉 집에 가자.”
편측마비가 완치되자 어지간히 뻘뻘 거리고 다니는 모양이다. 와엘을 번쩍 들어서 무동 태웠다. 꺄하하- 수위가 낮아진 마단끼 호수를 짤랑거리는 웃음이 채웠다.
호수 상류 쪽으로 올라가던 블랙맘바가 슬쩍 발길을 돌려 잡목숲으로 스며들었다. 마을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다. 호수에 인접한 코베리카 마을은 160호의 작은 마을이다. 자디르의 집은 마을에서 1km쯤 떨어져있다.
중년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다. 남자의 전면에 얼굴을 천으로 휘감은 남자 다섯이 버티고 서있다. 디시다사와 색바랜 카키색 군복 상의를 걸치고 소총과 칼을 들었다. 분위기가 영 컴컴했다.
케피에를 쓴 남자가 두루마리를 펼쳐서 큰 소리로 읽어내려갔다. 와하브(이슬람 근본주의 창시자), 파트와(종교적 법규 준수), 알우쑬리(근본주의 이슬람), 히스바(처벌 권한을 개인에게 주는 샤리아 법) 따위의 몇몇 단어 외에는 알아들을 수 없다.
낭독이 끝나자 마을 사람들이 와 함성을 질렀다. 블랙맘바가 겪어 본 아랍인의 기질은 좁은 협곡이나 와디와 같았다. 비가 쏟아지면 좁은 협곡에 급류가 흐르고 메마른 사막의 와디는 개울로 변한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진다.
무장한 남자 중의 한 명이 벌목도를 들고 중년 남자의 뒤쪽에 섰다.
‘설마?’
설마가 사람 잡았다. 벌목도가 번쩍 떨어졌다. 블랙맘바는 잽싸게 와엘의 눈과 귀를 손바닥으로 가렸다.
“아악!”
비참한 비명과 함께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목에 칼을 맞은 중년 남자가 버둥거렸다. 인간의 목은 쉽게 잘리지 않는다. 검도 고수쯤 되어야 단칼에 자를 수 있다. 탕- 총성이 울렸다. 버둥거리던 남자가 조용해졌다.
“아저씨!”
“쉿, 가자.”
시리아에는 시리아의 법이 있다.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지만, 간섭할 일도 아니다. 정체 모를 무장 집단의 출현은 큰 위협이다. 자디르 일가가 걱정되었다.
흙벽돌로 쌓아올린 단층집이 나타났다. 와엘이 폴짝 뛰어내렸다. 쏜살같이 집안으로 달려갔다.
“허, 그 녀석 참.”
표정없이 조용하던 아이가 말괄량이가 되어버렸다.
“아빠, 아저씨 왔어. 내 말 맞지?”
무너진 울타리를 고치던 바크리가 벌떡 일어났다.
“너 이 녀석 또 그곳에 갔구나.”
“힝, 아저씨를 만났단 말이야.”
“정말이냐?”
“응!”
와엘이 방아깨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바크리는 가슴이 벌떡거렸다. 뚜바이부르파께 아저씨라는 말을 배운 후로 딸은 암마 대신 아저씨라는 한국말을 사용한다. 와엘이 아저씨라 부르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다. 딸은 사촌 모하메드에게도 암마(아저씨)라 부르지 않는다. 병은 완쾌되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아직도 걷히지 않았다.
“아크 자말, 그분이 오셨나 봅니다.”
아크는 나의 형제란 뜻으로 절친이나 종교가 같은 상대방을 친밀하게 부르는 호칭이다.
“그분?”
양젖을 짜던 자말이 자디르를 돌아보았다.
“아크, 내가 그분이라 칭하는 분은 뚜바이부르파님밖에 없소.”
“뚜바이부르파님이?”
자말이 양젖이 절반쯤 찬 물통을 들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지만 뜬금없는 소리다. 겨우 여섯 살난 아이의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그것도 여자 아이다. 여성에 대한 아랍인의 인식은 처참할 정도다. 소나 양과 같이 소유물로 여긴다. 여자의 말은 효력이 없다.
“하드리탁 자디르, 정말이요?”
하드리탁은 연장자나 존경하는 이에게 붙이는 호칭이다. 한국의 ‘노형’ ‘선생님’과 비슷한 의미다.
“아직도 그분을 모르시오. 그분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시는 분이요. 댐이 터지고 산이 무너져도 그분의 발길을 묶을 수는 없소. 그분은 알라의 적자요.”
“바크리, 고마운 말이지만 나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갈대로 짠 치마로 치부만 겨우 가리고, 수염이 난발로 뻗친 남자가 마당에 들어섰다.
“헉, 뚜바이부르파님!”
자말의 손에 들려있던 양은 물통이 툭 떨어졌다. 슛- 10m 공간을 단축한 블랙맘바의 발등이 물통을 슬쩍 받쳐 올렸다.
“음식을 버리면 쓰나.”
20ℓ 물통을 번쩍 들어 올려 벌컥벌컥 마셨다. 물통에 반쯤 찬 양젖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양젖 반 통을 단번에 비워버린 블랙맘바가 손등으로 입술을 훔쳤다.
“크아, 좋다. 비린 냄새가 신선하구마.”
“뚜비, 돼지!”
내내 블랙맘바의 주위를 뱅뱅 돌던 와엘이 소리쳤다.
“하하하, 맞다. 나는 돼지 아저씨다.”
블랙맘바가 껄껄 웃었다. 텅- 빈 물통이 떨어졌다.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바크리와 자말의 정신이 돌아왔다. 괴상한 차림이지만 한눈에 뚜바이부르파임을 알아보았다. 거침없는 행동, 양젖 한 통을 단번에 마실 수 있는 존재는 그분 외에는 없다.
후다닥 무릎을 꿇었다. 아랍인은 남에게 고개나 허리를 숙이지 않는다. 무릎은 당연히 꿇지 않는다. 이들이 무릎을 꿇음은 블랙맘바를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뚜바이부르파님, 이게 어찌 된~”
“바크리, 옷이 필요하다.”
“아, 이런!”
바크리가 이마를 치고 후다닥 일어섰다. 와엘이 토브를 들고 다다다 뛰어왔다.
“이거 참!”
안채 여자들이 자신의 꼬락서니를 훔쳐본 모양이다. 자디르 집안은 시리아 가정치고는 개방적인 분위기다. 니깝이나 히잡을 덮어쓴 여자도 없다. 그럼에도 전형적인 남성중심의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남자가 벌거벗고 집안에 들어섰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바크리가 도끼를 들고 나오고, 여자들은 남자의 몸을 보았는지 여부를 심판받아야 한다.
토브로 몸을 가린 블랙맘바가 마당에 놓인 큼직한 바위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바크리, 자말 다시 만나서 반갑다.”
“알라후 아크바르 하-다- 아프달 야우민 피- 하야-티- 더 쑤더 뚜바이부르파 와 싸디!(알라는 위대하시다. 주인이신 뚜바이부르파님이 오셨다. 생애 최고의 날을 찬양하라!)”
“뚜바이부르파님,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슈쿠르카!(고맙다!) 어린 와엘이 이른 시간에 호수에 내려오다니 어쩐 일이냐?”
“뚜바이부르파님이 떠난 뒤부터 아침이면 날마다 처음 만났던 그곳에 가곤 합니다. 아무리 말려도 몰래 빠져나갑니다.”
“그것참, 꼬마 아가씨에게 인기를 얻었군. 자말 잘 찾아왔구나.”
자말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카파루자에 시리아군이 대대적으로 들이닥쳤습니다. 소인은 주인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몸을 뺐습니다.”
“잘했다. 목숨은 그까짓 황금 따위와 비교할 수 없다.”
“아!”
자말과 바크리가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역시 뚜바이부르파다. 그가 아니면 누가 이처럼 대범할 수 있단 말인가. 자말로부터 카파루자 사건을 전해 들은 자디르는 전율했다. 뚜바이부르파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안다고 여겼지만 어림도 없었다. 뚜바이부르파의 능력은 끝이 없었다.
“주인님, 자말이 피신할 때 주인님의 물건을 챙겨왔습니다. 모하메드가 자말과 함께 금괴도 운반해왔습니다. 언덕 위 성채 사원 지하에 숨겨 두었습니다.”
블랙맘바가 펄쩍 뛰었다.
“저런, 위험한 짓을 했다. 알레포주 전체에 무카바라트와 군인이 깔렸을 덴데……. 인명 피해는 없었나?”
“예, 알라와 주인님의 보살핌 덕분에 무사했습니다. 소인은 주인님 재산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었습니다.”
자말의 말에 블랙맘바가 고개를 흔들었다.
“자말, 황금이 소중하지만, 생명의 무게에 비할 바 못 된다. 인명 피해가 났으면 어쩔뻔했나? 다음에는 생명을 우선토록 하라. 아무튼, 수고했다.”
“뚜바이부르파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진정한 사도의 말씀이다. 그들은 뚜바이부르파를 위해 언제라도 목숨을 던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블랙맘바의 만류가 오히려 충성심에 불을 질렀다.
“자말, 부모님은 모셔왔나?”
“넵, 하드리탁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잘했다. 카파루자는 어떻게 되었나?”
겁나게 쏟아져 내린 호숫물이 하류 마을에 피해를 주지 않았는지 은근히 걱정되었다. 자신의 목표는 테러리스트와 군인일뿐 일반 시민이 아니다.
“소인은 주인님이 계곡 깊숙이 진입한 후에 금괴가 든 배낭을 고지대로 옮겼습니다. 킨달 B 지점은 계곡 진입로라 배낭이 발각당할 위험이 높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소인의 소심함이 재산을 지켰습니다. 거센 물살이 탱크까지 날려버렸습니다. 옮기지 않았으면 사라졌을 겁니다요. 헤헤헤!”
“적절한 조치를 취했구먼.”
블랙맘바가 빙그레 웃었다.
“계곡을 꽉 채우고 덮치는 물줄기를 생각만 해도 오금이 떨립니다. 높이 50m의 홍수가 자동차보다 빨리 덮쳤습니다. 탱크 중대를 앞세운 제3공수여단이 홍수에 휩쓸려 괴멸되었습니다. 곧바로 카파루자 계곡 양쪽 절벽이 무너졌습니다. 계곡 자체가 사라져버렸습니다.
“헐! 그 정도였나? 내가 좀 심했구먼. 아사드가 열 좀 받았겠어.”
블랙맘바가 호박에 말뚝 한 개 박았다는 식으로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어이가 없어진 바크리와 자말은 입을 딱 벌렸다. 루만, 생화학탄 저장고, 전략 방공 사령부, 댐을 날려버렸다. 덤으로 제3공수여단을 절름발이로 만들고 카파루자 지형을 바꿔버렸다. 그게 조금 심했단다. 많이 심하면 아라비아 반도라도 침몰시킬 존재다.
“아사드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창과 방패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빨을 갈고 있겠지요. 하드리탁께서 모하메드 아크를 정보 수집차 보냈습니다. 돌아올 때가 되었습니다. 자세한 상황 보고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모하메드라면 믿을만하지. 바크리, 당분간 일족과 교도들의 외부 출입을 자제토록 하라. 소요 사태가 커질 것이다. 마을 입구에서 유쾌하지 못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크리의 얼굴이 흐려졌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와하비즘이 극성입니다. 그들은 수니파 원리주의자들로 이슬람의 전사를 자칭하는 자들입니다.”
“무카바라트가 용인하는가 보군.”
블랙맘바가 바로 맥을 짚었다. 정보기관의 속성은 선악 구분이 없다. 국가에 이득이 되면 선이고, 손해가 되면 악이다. 그들에게 테러리스트란 개념은 없다. 이용할 수 있는 존재인가 아닌가의 문제일 뿐이다. 판단의 주체가 국가가 아닌 조직 그 자체일 때도 있다. 정보기관에 도덕성을 요구하느니 유곽촌에서 숫처녀를 찾는게 빠르다.
테러리즘은 정보기관의 존재 이유가 되고, 정보 활동의 당위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영국의 정보기관은 1870년 아일랜드 페니언파의 폭탄공격을 기점으로 설립되었다. 러시아 비밀경찰 오호라나도 아나키스트와 니힐리스트 폭파범을 표적으로 설립되었다.
CIA를 비롯한 대부분의 정보기관이 테러리즘 정보 획득을 존속의 한 축으로 삼고 있다. 국가 기관이 보는 테러리즘은 일반인의 시각과는 온도 차가 있다. 심하게 말하면 정보기관과 테러리즘은 샴 쌍둥이다. 아사드 역시 루만의 ANO와 검을 구월단을 퍼스트 블러드로 키우지 않았던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드 왕조는 와하비즘의 대부다. 와하비즘을 국시로 삼아 국내의 불만을 잠재우고 전제정치를 유지하는 대표적인 왕가다. 반면에 범아랍주의자 아사드는 와하비즘 붕괴를 내세워 국민을 탄압하는 독재정치를 펴고 있다. 양쪽이 도덕성과 관련없이 테러리즘과 연계된 정권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서 아랍의 복잡한 역학 관계와 이합집산이 발생한다. 아사드가 이슬람형제단을 박멸하고자 군대를 동원할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형제단에 군자금과 무기를 몰래 공급해주는 식이다.
아랍권이 한 줌도 안 되는 이스라엘을 어쩌지 못하고 지리멸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블랙맘바는 명색이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문화 참사관이다. 책상도 없는 핫바지 자리지만, 꾸준히 국제 정세에 대한 보고서를 받는다.
“그렇습니다. 와하비즘 격렬 분자들을 이용해서 같은 수니파를 제어하는 거죠. 뚜바이부르파님이 목격한 그 남자는 계율을 어긴 수니파 교도입니다. 18세 난 딸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고, 이교도와 사랑에 빠진 딸을 처벌하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헐, 그게 이유란 말인가?”
블랙맘바는 깜짝 놀랐다. 히잡이야 그렇다 치고 이교도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딸을 처벌해야 하고,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아비를 참수하다니, 미친놈이 따로 없다.